북토크 | 거대 수도 베이징을 바꿔놓은 촌놈들의 관계와 생활사

북토크 | 거대 수도 베이징을 바꿔놓은 촌놈들의 관계와 생활사

신간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 북토크 후기

2024년 4월 11일

[활동]북토크이주민, 중국, 조선족, 농민공

지난 3월 28일 책 <경계를 넘는 공동체>의 북토크가 서울 대림동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실에서 열렸다. 북토크의 사회는 '이주민센터 친구'의 조영관 센터장이 맡았고, 이 책의 역자 박우 한성대 교수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활동가가 함께 했다. 이 글은 이 북토크 행사 후기이다.

『경계를 넘는 공동체』 북토크의 사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대림동 투어는 대림역 2번출구 앞에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이주민센터 친구' 조영관 센터장의 안내에 따라 대림동 거리를 함께 걸었다. 대림동을 처음 방문하는 필자 역시 조 센터장과 함께 대림동 투어에 참여했다. 대림중앙시장 골목 초입에서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사 나누어 먹었는데, 대림동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간판, 한국어보다 많이 들리는 중국어, 처음 보는 먹거리 등 이국적인 풍경이 많았지만, 동시에 그리 낯설지만도 않았다.

대림중앙시장은 분명 우리가 흔히 아는 먹거리와는 다른 품목들을 팔고 있었다. 여느 재래시장 먹거리가 그렇듯 맛있는 것들이 많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다른 시장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시장 거리를 가로질러 대동초등학교 앞에 다다랐다. 전국에서 다문화가정 학생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학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어린이공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다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보호자들의 호통이 뒤섞여 꽤나 요란스러웠는데, 그 소리마저 활기차고 정겨웠다.

북토크에서 나눈 이야기

투어를 마치고 이주민센터 친구 공간으로 돌아왔다. 북토크가 시작되자 참가자들의 짧은 소개가 이어졌고, 이내 역자 박우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 교수가 처음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빈곤과정>의 저자 조문영 연세대 교수의 권유 때문이다. 그는 덥석하고 "그러죠!", "감사합니다" 답하고 번역 작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박우 교수는 박사논문 집필 때 참조했던 <경계를 넘는 공동체>의 영문판 Transcending Boundaries: Zhejiangcun 초판을 생각했다고 한다. 영문판 초판은 198쪽의 비교적 얇은 분량. 하지만 정작 번역을 해야 했던 건 많은 분량을 편집한 영문판이 아닌 중국어 원본이었다. 중국어로 557쪽에 달하는 이 책은 그렇게 박 교수의 손을 거쳐 895쪽에 달하는 한국어판으로 탄생했다.

북토크가 한창인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실
북토크가 한창인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실

박 교수는 이 책을 처음 접한 석사과정 당시를 회고했다. 재외동포법이 개정되고 방문취업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과도기였던 2005년, 그는 가리봉동에서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민)" 자진 출국과 관련해 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 즈음 박우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주민의 집거지 형성이라는 주제를 삼아 석사논문을 쓰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참조가 많이 됐던 책이 바로 베이징의 이주민 공동체 '저장촌'을 다룬 <경계를 넘는 공동체>였다고 한다. 그만큼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어서 박우 교수는 원저우의 농민들이 베이징으로 이주해 기존의 1차 산업이 아닌, 2·3차 산업에 종사하며 원래 현지에 있는 선주민과의 부대낌, 그 부대낌 속에서 발생한 다양한 관계들의 재편 등이 저장촌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다룬 이 책이 지역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이해를 가져다 주었다고 평가했다. 저장촌 같은 공동체가 개인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이주민과의 대화도 원활히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박 교수는 우리가 북토크를 하고 있는 이 대림동이라는 장소 역시 이주민 집거지가 되기 이전 거주했던 선주민의 기억과 경험, 정체성이 기록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우 교수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플랫폼c의 홍명교 활동가는 책에 수십 개에 달하는 표식을 붙이고 있었다. 그만큼 책을 꼼꼼히 읽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스트립 스티커를 붙이는 게 "그냥 버릇"이라고 한다. 이 책에 대해 그는 "제가 읽어본 인류한 책 중에서 제일 재밌고 치밀했다"고 평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 문제와 관련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고민을 다양하게 접한 것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이,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저장촌의 골목 풍경
1990년대 저장촌의 골목 풍경

홍 활동가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챕터가 '서문2'였다고 한다. 저자 샹뱌오 자신의 2016년 강연 내용을 정리한 '서문2'에서 샹뱌오는 ▲이 책을 쓰던 당시(1990년대 후반) 자신이 시장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인간에 대한 복잡성과 다면성을 간과했으며, ▲젠더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는 점도 시인하고 반성했다. 저자 스스로 이렇게 솔직히 반성하고 면밀하게 토로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거물'과 그와 관계맺는 주체들에 대한 분석은 관계망을 통한 공동체 형성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었다. 공동체, 혹은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를 생각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정부의 강제철거에 저항했던 과정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민간 공동체의 저항이 어떤 양상을 띠고, 종종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지 이해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한편, 홍명교 활동가는 책에서 유일하게 혹은 가장 동의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자는 결론부에서 저장촌과 같은 공동체에 대한 공권력의 '뿌리 뽑기'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민간이 주류 사회로부터 그들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해 공동체를 조직화하는 것에 대해서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별로 동의하기 어려운 입장일 것이다. 저자 샹뱌오는 공동체와 기존 체제 사이의 모순이 대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홍 활동가가 보기에 그러한 모순들은 특정 시기에는 대립적이지 않더라도, 정세가 바뀌고 모순이 갖는 잠재된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변화하면 충분히 대립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수 있지 않겠냐며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토크 토론자들(홍명교, 박동찬)과 『경계를 넘는 공동체』의 역자 박우 교수
북토크 토론자들(홍명교, 박동찬)과 『경계를 넘는 공동체』의 역자 박우 교수

마지막 토론자인 박동찬 활동가는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주민 당사자로서 지나온 경험을 시작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2015년 한국에 들어온 그의 할머니는 한·중 수교 이전 친척 방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입국했고, 한동안 미등록 체류로 살다가 2004년경 '한시적 귀화 허가'라는 절차를 통해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다. 그리고 2008년 대림동에 정착한 후로는 계속 이곳에서 살고 계신다고 한다.

박동찬 활동가에게는 이런 개인적인 서사가 있는 만큼, 저장촌과 대림동을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시각을 안겨준다. 그에게 두 마을은 동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눈에 띈다. 적어도 저장촌의 경우 선주민과 원주민이 같은 중국인으로서 공유하는 동질성이 있는 반면, 대림동의 경우 국적부터 문화, 언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런 만큼 저장촌이 대림동보다는 이주민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저항이 훨씬 덜하지 않았겠냐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박 활동가는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계(系)' 개념을 가져와 서울의 이주민 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양동의 경우 상인회가 활성화돼는데, 상인회를 주축으로 하는 네트워크 및 활동이 많다. 하지만 대림동이나 가리봉동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대림동이나 가리봉동처럼 한국의 이주민 공동체에 '계'라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자양동의 경우, 같은 조선족 이주민임에도 대림동에 대한 계층 차별적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도 상기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대림동보다는 자양동이 저장촌과 좀 더 비슷할 수는 있겠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저장촌은 저장성 원저우의 의류 가공업체와 운영자들이 1980년대 중반에 형성한 마을로,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한다. [사진 端传媒]
베이징 저장촌은 저장성 원저우의 의류 가공업체와 운영자들이 1980년대 중반에 형성한 마을로,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한다. [사진 端传媒]

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후, 참가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구화교'와 '신화교'라는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이분법적 명칭의 문제, 이주민의 세대 교체에 따른 지역 공동체의 변모에 대해 질문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저자 샹바오가 단순히 저장촌 사람들의 삶을 '성공하면 성공하는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대로' 기록하는 연구자의 관점을 넘어 그들의 삶에 있어 더 나은 변화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 또한 연구자의 역할은 아닌가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회학 연구자라고 밝힌 다른 한 참가자는 중앙을 다루는 거시적 관점과 개인을 다루는 미시적 관점의 사이에서 저자 샹바오가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본인은 저장촌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에 천착해 미시적인 영역을 다룬 사람으로서 샹바오 또한 개인을 통해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필자도 박우 교수의 석사논문과 책에 나오는 내용의 유사성을 비교하며 질문했는데, 번역자 박우 교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질문들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었다.

예정보다 30분 이상 넘겨서야 북토크가 마무리됐다. 1990년대 베이징의 이주민 공동체 '저장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2020년대 한국에서 어떻게 접목하고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 북토크를 통해 이주민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관계맺는지, 나아가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이주민 공동체와의 융합이 중요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학술서가 번역된 만큼,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해줄 수 있는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저자 샹뱌오에 대해

이 책의 저자 샹뱌오는 저장성 원저우 출신으로, 톈안먼 사건 직후인 1990년 베이징대학에 입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다. 학부와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1992년부터 6년 동안 베이징 교외의 이주민 공동체 집거지 저장촌을 드나들며 고향인 원저우 출신 민중의 삶을 민족지연구로 기록했다. 이때 쓴 석사 논문이 중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고전으로 인정받았는데, 『경계를 넘는 공동체』는 이 석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중국에서는 2000년 1월 출판됐다.

박사 논문에서 그는 인도 출신 IT 인력들의 국제적 유동과 인도 사회의 관계를 분석했고, 이후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0년부터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2023년 『주변의 상실: 방법으로서의 자기』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고, 올해는 『경계를 넘는 공동체』가 번역됐다.

플랫폼C에서는 단체 설립 이전인 2019년 9월에 홍콩 우산운동에 대한 그의 논문 「홍콩 대중운동의 민주화 요구와 정당정치」를 번역해 소개한 적 있다. 아래 영상은 2023년 봄 EBS를 통해 방영된 '위대한 수업: 샹뱌오편'을 모은 것이다.

글 : 박성우 (플랫폼c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