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 첫발 내딛기 | 부끄러움과 용기가 공존하는, 엉성하지만 묵직한 자리

사회운동 첫발 내딛기 | 부끄러움과 용기가 공존하는, 엉성하지만 묵직한 자리

2024년 초 진행한 사회운동 첫발 세미나 참여자들의 생생한 후기

2024년 3월 29일

사회운동, 사회운동첫발내딛기, 책읽기모임

작년에 이어 두 번째 <2024 사회운동 첫발 내딛기 세미나>가 지난 2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1월 3일부터 2월 21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8회에 걸쳐 전쟁, 노동, 기후, 젠더, 장애, 동아시아 국제주의 및 자본주의의 역사 등의 주제로 책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두 달에 걸친 세미나를 통해 참가자들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가 단지 경제에 국한된 것이 아닌 여러 방면에 해악을 끼치는 하나의 사회체제라는 사실과, 각자가 삶에서 겪었던 억압들이 모두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공감했다.

『아! 팔레스타인』을 통해 이스라엘의 식민주의와 서구의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비판,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에 연대하는 마음을 다졌으며,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과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 에서 과잉생산-소비를 통한 자본의 이윤 추구로 지구를 갉아먹는 자본주의에 조직적인 저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소금꽃나무』에서 과거 1970~8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저항하며 쟁취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로 자본주의는 당연하거나 영원하지 않으며 지극히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99% 페미니즘 선언』과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를 읽으며 젠더차별 또한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으며,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는 장애라는 개념이 생산적 신체만 ‘사람’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낙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읽은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평범한 사람들과 만나 연대하고 함께 저항하는 동아시아 국제주의의 필요성을 공유하며 마무리 했다.

토론 과정 속에서 참가자들은 함께 저항한다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막막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연대감을 느꼈다. 플랫폼C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활동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동지’가 되어 함께하려 한다. 내년 사회운동 첫발 내딛기 세미나 때 또 다른 동지들과 만날 것을 기약하며, 참가자들의 후기를 소개한다.

ㅂㄹ: 혼자서는 대충 흘려듣는 정도였지 관련 책을 손에 안잡던 분야였는데 이 시간을 지내며 제3의 눈이 (여전히 흐릿하지만) 떠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간이 끝나면 좀 더 알아가고자 책을 잡는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쩌나. 제3의 눈이 약간 보이는 듯 하지만 제대로 뜰 의지를 내가 부릴 것인지. 나는 나부터도 이렇게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벽을 뚫고 삶의 체제전환을 하기 힘드니 체제전환은 어려울거라고 일치감치 외쳐버리고 유튜브나 보는 나로 여러 번 돌아간다.

발제를 하며 제3의 눈이 떠지는 맛은 유튜브를 보며 길게길게 보내버린 시간 후의 허기짐보다는 분명 뭔가 진짜 국을 먹은 것처럼 진국이다. 혼자 앉아 이렇게 진득이 책을 보며 세상을 알아가는 맛. 그 맛을 보는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나마 유튜브를 보며 하하하! 웃던 나로부터 세상을 좀 더 알고 싶고 내 삶을 바꾸는 자발적 나로 살게 될까? 내 삶의 체제전환. 성취감이 이윤추구 괴물이 되지 않고 인간의 DNA에서 같이 살아가는 행복을 기억하게 하고 지구공동체에게 필요한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시킬 수 있을까? 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조금 더 알게 된걸까? 그래서 내 삶의 체제전환은 어떻게? 삶이 더 절실해지기 전에 더 눈을 떠야할텐데.

오프라인에 계신 분들의 얼굴들은 자세히 뵙지 못해 체제전환운동 포럼에서 만나도 제가 잘 못알아보고 그랬는데 발제문을 마치며 문득 이 자리에 같이 모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주셨던 분들의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이제 흩어져 각자 어떤 삶을 살게될까요? 우리 각자는 스스로 삶의 변화를 만들게 될까요? 우리는 세상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게 될까요?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우리는 어떤 불이 될까요?

ㄹㄹ: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나누는 시간이 해방감을 주었어요. 감사합니다. 자본주의사회를 넘어선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함께 움직일 동료를 찾는 게 여전히 과제이긴 하지만, 질문하고 상상하고 조언을 구할 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혼자서는 너무 막연하고 벽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모든 걸 다 알지도 못하는데, 추상적인 말만 공부한 내용을 읊는 느낌이어서요. 학자 이름 나열하면 뭐하나, 기후재난은 닥쳐오지, 자본가들은 계속 이윤추구때문에, 해결방법을 뒤로 미루지, 주변 사람들은 너나 잘하라고 하면서 계속 일회용품 쓰레기 잔뜩 쌓지, 육식지속하고, 시위를 나가지도 않고, 우리가 뭔가 해야 희망이 만들어진다 하면 바쁘다는 말을 하고요..

당장 기후재난으로 사람은 죽지, 이를 명확히 비판할 언어를 찾은것으로 기뻐하기에는 누군가에게 게속 화를 내는 방식으로는 저 혼자 고립되지, 제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제 잘못이라고 말하는 주변인들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혐오만 깊어졌구요. 기후재난에 영향을 더 미치지 않으면서, 반대방향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혼자서는 역시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들어갈지, 막막했어요. 사실 신청할때만해도 막막함이 컸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요. 사람들과 함께 공부 이상의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나서고 싶다 하는 순간에, 어쩌면 딱 그렇게 정확한 제목의 세미나가 있었는지요. 앞으로도 단발성 세미나에서라도, 함께 만나고 고민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다른 길도 보일까요? 참여하며 책을 꼼꼼히 모두 읽지 못해서 이후에라도 차분히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앞으로는 저항의 언어로, 돌봄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발제하고 말씀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 드려요.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많으셨어요.

ㅌㄹ: 저는 늘 보수의 언어가 진보의 언어보다 사람에게 더 잘 다가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보수적인 언어가 주는 막강한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모든 걸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면 그건 어느 순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되고 그건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거든요. 사람은 원래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고도 (대중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요, 원래 인간의 뇌가 단순한 걸 좋아하고 복잡하지 않은 것이 이끌리지 않을까요?) 생각하고요. 진실은 사실 그런 의미에서 믿음보다 힘이 약하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어느 순간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고민을 멈추고 편한 설명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건 아닌지… 진실이 더욱 힘을 잃는 이 가짜뉴스의 시대에 책이 빛을 내는 이유가 있다면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책의 저자와 함께 고민해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함께 책 읽어주셔서 감사했고 발제하고 말씀 나눠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ㄱㄹ: 다양한 책을 읽고 다른 분들이랑 감상평을 나누면서 개인의 가치관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몰랐던 지식들을 많이 알게 되어 그동안 참 두 눈을 가리고 살았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그와 동시에 세상이 한층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미나 시작부터 종료하는 날까지 빠지지 않고 쭉 들었으면 세미나를 처음 듣기 시작한 나와 끝낸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일정이 맞지 않아 많이 듣지 못한 게 참 아쉽네요…사회운동 첫발 세미나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ㅇㅇ: 저는 항상 화만 잔뜩 나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노를 분노로만 내버려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커졌을 때 딱 '첫발 세미나'를 만났어요. 저에게 분노를 공부와 실천으로 해소할 수 있게 해주어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내가 했던 생각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미 많은 이들이 뭉쳐 모여서 함께 행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내 스스로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분노를 연대로, 겸손으로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첫발 세미나 첫 참여날, 제가 "너무 좋은 이야기들이 오가서 들으면서 너무 좋은데, 이걸 세상과 공유하고 세상에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생각하면 우울한 것 같습니다" 라고 제가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몇몇 다른 분들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라며 씁쓸한 위로가 되기도 하였어요^^) 그런데 그 때 한 분이 우리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갖고 있답니다 ! 라고 엄청 확신있게 말씀해주셨어요 !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은 '나도 저런 확신을 갖고 싶다!' 였습니다. 첫발 세미나가 끝나고 난 후, 저는 여전히 당시만큼 확신을 갖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그 '첫 발'을 내딛은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분노로만, 감정으로만, 생각으로만 남았을 뻔한 사람을 꺼내주셔서 (?) 감사드려요 ! 앞으로도 영원히 첫발을 내딛는 데에 도움이 되어 주세요 플랫폼씨 ... ! ㅎㅎ

ㅅㅎ: 저는 매시간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제가 후반으로 갈수록 책을 안/못 읽고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해서 죄송하지만 ㅠㅠ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실천, 설득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 기후위기, 자본주의, 장애차별 등 여러 구조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계속 고민하고 싶습니다! 모임에 함께한 모든 분들,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ㅂㅂㅇ: 처음 세미나를 하기로 결정했었을땐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섯습니다.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저로써는 매주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커리큘럼을 받고 제가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주제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이야기 한다는 생각에 너무 걱정했지만 꾸역꾸역 이해하고 따라가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중 토론을 진행할때에 제가 소심한 성격이라 제 생각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하진 못했지만 세미나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모임에 함께한 모든분들, 모임을 위해 힘써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ㅅㅅㅁ: 책을 함께, 많이 읽은 것도 좋았지만 세미나의 형식도 정말 좋았습니다. 각자 돌아가면서 한 파트씩 맡아서 설명하고, 참여한 모두가 한 마디 이상 하게 되는 것이요. 누군가 말을 독점하게 두지 않고 말(목소리)이 없는 자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운동의 방향성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각자가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함께 무언가 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체제전환의 첫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힘든 시기였습니다.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방황하던 중이었는데 여러분들의 고민을 듣고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좀 더 깊이 고민하고 많이 이야기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첫발세미나에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에 또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ㅆㄴ: 가장 먼저, 감사합니다. 읽자고 제안해주신 책들이 참 좋았어요. 맨 처음 『아! 팔레스타인』,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읽고, 이곳 책들 보통 아니다 싶어 꼭 다 챙겨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기존에 하던 생각들 많이 헤집고 또 정리해준 책들이었어요. 어째 모든 책들이 '체제를 바꾸자!'는 결론으로 읽혔는데, 그 부분도 매우 좋았습니다. 책 다 읽어 오려고 두 달 간은 중고서점, 도서관을 마구 돌아다녔는데, 즐겁고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꼭 읽어 가야겠단 생각은 같이 모이는 분들 덕분에 하게 된 것 같아요. 각자 공유해주시는 소감이나 고민들이 무척 좋았거든요. 모르시겠지만 제 마음에 몇몇 분들이 해주신 말씀 한두줄이 여럿 남아있어요. 이런 분들에게 저 또한 좋은 영향을 드리고 싶어 열심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생에서 간직할 말들을 남겨주신 여러분들께 또 감사드립니다.

ㅈㅎ: 먼저 사회운동 책모임을 통해 다양한 주제로 평등하게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처음 시작할 때의 야심과는 달리 그 주의 책을 다 읽고 참석하지 못하기도 해서 죄송하기도 했지만.. 참여하신 분들과 플랫폼C 활동가님들의 토론을 귀동냥하며 많이 배울 수 있는 고마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변화와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신 분들의 열정과 나눔도 정말 의미있었어요. 어떻게 사회운동을 할 수 있을까..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함께 했던 참여자분들도 저와 동일한 고민을 하며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았던 모습들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첫발내딛기 세미나는 이렇게 마쳤지만 아직 더 많이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플랫폼-C를 통해 배워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ㄴㅈ: 내 주권을 가지고 있는 주체는 나인가? 국가인가? 혹은 자본인가?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 일상이다. 다만 결심한 것은 주권을 쥐든 쥐지 못하든, 자격이 있든 없든 세상을 앞으로 밀어내는 사람들과 혼란한 틈을 비집고 불씨를 만들어야겠다는 느낌표같은 마음이다. 특히 국경과 민족을 넘는 운동과 연대의 중요성이 깊이 새겨진 2024년의 첫발을 남겼다는 묵직함이 있다. 플랫폼C의 감각으로 함께 읽었던 사회운동의 경험은 체제전환운동으로의 초대로도, 각자 자리에서의 고민에 닿는 지지로도 읽혀져서 불씨가 지펴진 지난 겨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ㄴㅎ: 우린 더 오래 기다리자. 그들의 고민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꼭 내 마음 한 구석을 후벼판다. 난 이게 사회운동인 것 같다.

# 고민들의 등장

세미나에 사회운동을 하는 여러 사람들이 참여했다. 사회운동이라 해서 꼭 집회에 나가야하는 건 아니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투쟁하는 일을 나는 ‘사회운동’이라 부른다. 그들은 사회운동을 하며 생긴 고민을 세미나에서 공유했다. 그 고민 중 몇몇이 내 정곡을 찌른다. 내가 회피하려던 문제를 끄집어낸다. 답이 나오지 않아 고민하기를 멈춘, 그런 골치아픈 문제들을 직면하게 만든다. 날카롭다.

# 엉성하지만 묵직한 세미나

그렇다고 무진장 말 잘하는 사람들이 세미나에 참여한 건 아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쭈볏거리는 참여자들과 정돈되지 않은 말들이 오가는 게, 이 세미나의 매력이다. 세미나의 색깔은 부끄러움과 용기가 공존하는 분홍색이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이 세미나는 되려 무엇이든 말 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묵직한 고민을 슬쩍 꺼내놓는다.

# 모든 고민은 무겁다.

사회운동은 감히 사라지게 하려는 것들과 투쟁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고민에 ’수준‘이 매겨져서는 안된다. 세미나는 우리의 고민이 등장하기 까지, ‘기다리는 법’을 알려줬다. 우리는 서로를 기다렸다. 모든 고민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떤 고민은 등장과 동시에 ’어떻게 그런 멋진 의식을 가지고 있냐‘며 박수받지만, 어떤 고민은 냉소를 감내해야한다. 그렇게 어떤 고민들은 사라진다. 감히 사라지게 하려는 것들과 투쟁하려면, 우리의 고민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투쟁이 함께 가야한다.모든 고민이 존중받아야한다. 더듬고 망설이고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하고 떨려하면서 고민을 주고받자. 모든 고민은 무거우니 우린 더 오래 기다리자. 세미나에서 그랬던 것처럼.

ㅅㅇ : 자본주의가 너무 당연한 사회에서는 주식으로 앉아서 돈 버는 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게으르거나 둔한 사람 취급되곤 하는데, 첫발 세미나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각 주제에 관한 서로의 이해와 질문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부터 전지구적 기후 위기와 노동권, 자본주의의 역사와 상위 1%가 아닌 99%를 위한 페미니즘, 퀴어와 노동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장애 차별과 동아시아 연대의 역사를 통해 보는 국제주의를 다루는 9권의 책을 읽으며 각 문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세미나를 통해 완독한 책도 있고, 다음 책으로 진도를 넘어가느라 다 읽지 못하고 남은 책도 있지만 첫발 세미나에서 매주 나눈 대화들이 기억에 남아 못 읽은 분량도 부지런히 읽어나갈 동력을 얻은 것 같아요. 전쟁, 기후, 노동, 젠더, 퀴어, 장애, 국제주의까지의 커리큘럼 흐름도 광범위한 문제들을 유기적으로 톺아볼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책을 혼자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생각을 한 번이라도 정리해서 입 밖으로 뱉어보고, 다른 분들의 고민을 같이 생각해 보는 과정이 있어 뜻깊었던 것 같습니다. 첫발 세미나를 통해 스스로 해결된 질문도 있고, 새롭게 생긴 질문도 있는데 앞으로도 함께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ㅂ : 많은 분들과 사회운동의 주요한 의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에 관심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 대해 잘 알기 어려운데, 페미니즘부터 노동 문제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의 배경이나 기후위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세미나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습니다. 또한 너무 기초적이라 물어보기 꺼려졌던 많은 의문들도 거리낌없이 꺼내어 토론해볼 수 있었습니다. 피치 못하게 줌으로 참여하게 되더라도 모두의 발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자리라고 느꼈습니다.

ㅂㄱ : 항상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맡았던 직책을 내려놓고 이번 방학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가벼운 마음과 달리 좋은 책들 좋은 동료분들과 함께하니 머릿속은 더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혼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걸 어려워했는데 덕분에 팔레스타인도 자본주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애운동에 관해서도 내가 모르는 영역이 더 있었다는 걸 깨닫고 더 많이 공부하고 활동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회운동 첫발 세미나를 통해 제 자신이 큰 보폭으로 한단계 성장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건강문제가 생겨 입원을 하는 바람에 못 들었던 회차가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내년에도 여건이 된다면 같은 책이더라도 또 신청 할 것 같습니다. 그때는 친구들도 데리고 와 보겠습니다. 플C활동가분들께서 깊은 고민과 경험 끝에 고르신 책들이라 그런지 몇 번씩 다시 읽어보려합니다.

ㅈㅁ : 사회운동 첫발 세미나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체계적인 사회운동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여태 어중이떠중이로 해왔다는 생각에, 플랫폼C의 조직적인 활동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이참에 배워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특히 첫발 세미나는 이미 큐레이션 완료된 도서목록과 매주 진행되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 게으르고 수동적인 삶을 사는 저에게 있어 새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새해 다짐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책은 빠짐없이 전부 구매해서 읽었고, 꼼꼼히 읽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정작 참여는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일에 치여?(진짜? ㅋㅋ) 책을 쌓아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제게 이번 세미나는 n년치 읽을 도서를 읽게 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뿌듯함을 느낍니다. 또한 책의 내용이 대부분 연대를 강조하고, 우리가 뭉치면 불가능한것이 없다!의 기조를 띄고 있었다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현재의 제 상황에서 큰 용기가 되었으며, 이 용기를 주변 동지들과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플랫폼C 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성실하지 못했던 점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ㅠㅠ

ㄴㄹ : ‘사회운동 첫발 세미나’를 진짜 첫발인줄 알고 신청하였다. 평소에 한국어로 된 책을 읽는 편이라 이번에도 별 무리 없이 읽고 이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회기마다 나의 한국어 실력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도저히 읽혀지지가 않은 책이 몇 권 있었다. 그렇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 첫발을 떼는 것이 중요하니까.

‘사회운동 첫발 세미나’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절대 읽지 않을 책들을 첫발을 떼고 있는 여러분과 함께 읽고, 듣고, 질문하고, 토론했던 시간들이 좋았다. 덕분에 나의 시각은 한층 넓어졌고, 나의 생각은 한 층 깊어졌다. 나는 성장했다. 이 성장의 기쁨을 다음 세미나에서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ㅅㅁㅇ : 첫발 내딛기라는 말이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사회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더라고요. 그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구겨져있었는데 초심자의 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 강연을 들으며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팔레스타인 역사 관련 책이 시작이어서 좋았습니다. 또 좋은 커리큘럼을 알게 되어서 지역에서 동지들과 같이 공부하기 좋은 코스를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오프라인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 마지막 쫑파티에 가지 못한 것, 전참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번 세미나를 기획해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금이라도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또 만나길 희망합니다.

ㄱㅇ :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 등의 영화로 유명한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찾아온 젊은 영화학도와 영화감독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자신과 같은 선배 영화인들로부터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대신 또래 영화감독들과 함께 만나 식사하고 이야기하며 포부와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라고.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번 '사회운동 첫발세미나' 도 제게는 비슷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부문운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이에 대해 배우는 것도 좋았지만, 이와 관련된 서로의 감상을 나누던 시간이 제게는 더욱 값지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과 활동의 경험이 맞물리며 쉬 잊을 수 없는 화학작용을 만들어냈습니다. 과거에 이미 읽었던 책의 경우에도 함께한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레닌이나 로자 룩셈부르크, 체 게바라가 살아 돌아온다 한들 우리 앞에 놓인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 선배들의 투쟁의 역사도, 우리 시대의 언어와 호흡으로 다시 읽어야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사회운동 첫발세미나는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을 컬러로 현상하듯, 단순 사회 운동 관련 정보전달을 너머 이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했던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함께 나눴던 기억 고이 간직한 채, 각자의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다시 웃으면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정리 : 김현빈, 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