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산업의 착취에 맞서 싸우는 필리핀과 미국의 노동자들

콜센터 산업의 착취에 맞서 싸우는 필리핀과 미국의 노동자들

필리핀과 미국, 그리고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연결되어 있다.

2022년 12월 5일

[동아시아]필리핀노동운동, 노동조합, 동아시아, 말레이시아, 미국, 여성노동자, 필리핀

'세계의 콜센터' 필리핀

필리핀은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산업(BPO: 콜센터, 데이터입력, 소프트웨어 개발 등 기업 핵심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을 전문업체에 의뢰해 수행)의 중심지다. 필리핀에만 1,200만 명이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총 124개의 콜센터 업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객사로 에이아이지(AIG), 제이피모건체이스(JPMorganChase), 아메리칸 온라인(American Online), 시티뱅크(Citibank) 등 미국계 다국적기업과 HSBC, 셸(Shell) 등 유럽계 다국적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케스(Sykes), 텔레테크(Teletech), 피플서포트(People support) 등 미국계 거대 콜센터 회사들은 필리핀에 위탁 서비스 거점을 개설하고, 각각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다른 콜센터 관련 기업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남쪽 타귁시티 콜센터에서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직원들
필리핀 마닐라 남쪽 타귁시티 콜센터에서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직원들

필리핀이 세계적인 콜센터 중심지가 된 이유로는 우선 ‘저임금’을 들 수 있다. 콜센터 산업 중심지였던 인도가 지난 5년 동안 임금이 50% 상승했고, 훈련비용이 증가하면서 필리핀이 기초 업무를 위한 저임금 시장으로 주목받은 것이다. 또, 필리핀은 장기간의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 경험으로 아시아에서 서구 문화에 가장 익숙하고 영어 사용자가 많다는 점, 필리핀 정부가 서구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IT 인력 육성 정책을 편 것 등이 필리핀 콜센터 산업이 확대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콜센터산업 1위 국가를 만들기 위해 두테르테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필리핀 콜센터 노동자는 낮은 임금, 고용 불안, 점점 더 엄격해지는 모니터링과 작업량 증가, 안전하지 않은 작업 여건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직면해 있다.

2017년에는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콜센터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37명의 콜센터 직원이 사망했다. 올해 초, 노동자들은 화산 폭발 중에도 계속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일부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런데도 두테르테는 외주 대신 직접 고용할 것을 명시하는 ‘안티엔도 법안’을 거부하고, 노동자와 기업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기 동안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많은 직원은 정직 상태가 되었고, 정식 고용을 유지하는 노동자들도 일이나 급여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운이 좋은 사람들은 적절한 사회적 거리두기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회사의 지원이 없어 보호 장비도 없이 일해야 한다. 국내 이동이 제한되어 출퇴근이 어려운 사람들을 사무실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잠을 자게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미국은 필리핀에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군사 및 치안 지원을 제공한다.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 필리핀 경찰이 노동자들을 억압함으로써 다시금 미국 기업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세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무역 및 투자 협정, 사유화 및 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한 대출, 간헐적인 쿠데타를 통해 각국의 공적 통제에서 사실상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재편되었다. 자본이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각국의 이윤 추구를 위해 투자자 유치, 임금 삭감, 노동 조건 악화, 환경파괴, 규제 완화 등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과 필리핀 노동자 모두가 파괴적인 경주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필리핀-미국 노동자의 국제연대

필리핀 노동조합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산업 네트워크(BIEN)는 이런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웠다. BPO 산업의 긴밀한 동맹자인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적인 체포와 살인을 자행했다. BIEN을 이끌던 앤 크루거(Anne Krueger)와 56명의 조합원들이 체포되고, 최소 43명의 활동가가 살해당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노동운동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2018년에는 미국 에이티앤티(AT&T, 미국의 세계 최대 통신 다국적 기업으로, 알로리카의 실제 고용주)의 캘리포니아 기반의 콜센터 파트너 기업, 알로리카(Alorica)가 필리핀 노동자들을 해고해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파트너 기업은 한국의 하청업체와 유사한 개념이다.) 노동조합 추산에 따르면 200명 이상의 직원이 해고되거나 강제 퇴사했다.

이에 알로리카의 노동자들은 회사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알로리카의 노동조합 대표인 사라 프레스토자(Sarah Prestoza)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회사에 많은 시간 및 노력을 바쳐 헌신했지만, 그들은 우리의 권리를 가차 없이 박탈했습니다. 우린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9년 4월에는 미국통신노동조합CWA(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산하의 에이티앤티 미국 노동자들과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노동연맹(APALA), 필리핀 활동가 단체 마이그란트(Migrante)와 바얀유에스에이(Bayan-USA, 미국에 있는 필리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풀뿌리 동맹) 회원들이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알로리카 콜센터 노동자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통신노조(CWA)는 국제주의를 표방한다. 대표단을 파견해 외국 노동조합과 만나고, NAFTA에 반대하기 위해 멕시코 노동조합과 협력하고, 연대 행동에 참여해 왔다. 2018년에는 에이티앤티에 압력을 행사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는 프랑스 BPO회사인 텔레퍼포먼스(Teleperformance)의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하도록 돕기도 했다.

CWA, APALA 및 필리핀 활동가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에이티앤티(AT&T) 앞에서 필리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CWA, APALA 및 필리핀 활동가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에이티앤티(AT&T) 앞에서 필리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8월 25일에는 미국의 에이티앤티 노동조합 대표단이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해 "에이티엔티는 필리핀의 콜센터 노동자들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간당 2달러 미만의 급여를 받고 있으며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에이티엔티의 노동자 착취를 폭로하고 임금인상과 인원 감축 반대,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에이티앤티와 알로리카는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해 필리핀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해야 하며, 미국 내의 일자리 감축 역시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에이티엔티는 많은 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미국 내의 콜센터 노동자 일자리 27,828개를 없앴으며, 많은 일자리를 임금이 낮은 필리핀 등 해외로 옮기고 있는데, 앞서 파업에 돌입한 알로리카 같은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미국 콜센터 노동자 2만여 명이 파업에 돌입하는 등 미국에서도 콜센터 노동자들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의 알로리카 노동조합도 미국의 콜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를 표명했다. 알로리카의 노동조합 대표 사라 프레스토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에이티엔티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미국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필리핀의 콜센터 노동자들도 고용 안정, 생계,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전 세계 에이티엔티 직원들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이 싸움에 참여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1위 콜센터기업 유베이스

2018년 12월 18일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니티)가 한국의 콜센터 기업 유베이스를 인수했다. (사모펀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로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일반 펀드와 달리 개인 간 계약의 형태를 띠며 금융감독 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어피니티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KY탕 회장이 삼성전자 샐러리맨 출신 박영택 어피니티 부회장과 함께 독립시킨 사모펀드다. 박영택 부회장과 이철주 대표 등 한국계 매니저가 주축이 되어 버거킹, 카카오, 더 페이스샵, 하이마트, 오비맥주, 로엔엔터테인먼트 등의 주식 지분을 인수해 최소 수천억 원에서 최대 5조 원까지 지대한 차익을 남겼다. 이들은 '기업 가치 제고 역량'을 통해 투자기업의 가치를 평균 2~3배 끌어올린다고 한다. 기업을 인수해 성장시킨 후 매각하는 것이다.

어피니티가 인수한 국내 최대 콜센터 기업인 유베이스는 현재 서울과 경기도 부천 등에 1만 6천여 석의 콘택트 센터(콜센터)를 운영 중이다. 최근 동종업계 한일네트웍스 지분 50% 이상을 인수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유베이스는 올해 안에 1천 명을 채용하고, 사업 성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1천여 명을 추가 고용하는 것을 검토하며 성장 중이다.

유베이스 송기홍 대표는 지난 2022년 1월 부산시 박형준 부산시장과 만나 유베이스 부산 콘택트 센터 신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부산시는 콘택트 센터 유치를 위해 4억 원을 한도로 1년 임차료의 50%, 6억 원을 한도로 시설/장비 설치비의 30%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유베이스에 총 10억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유베이스의 매출액은 2007년에 약 593억에서 2021년 3,896억으로 껑충 뛰었다.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16.7%이고, 2020년은 매출액 증가율이 무려 39.5%에 이른다. 당기순이익은 상대적인 부침이 있었지만 2017년에만 약 192억을 기록했다.

이렇게 엄청난 이익을 얻었음에도 세금부과 커녕 부산시에서 파격적인 재정 특혜를 받은 것이다.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 이익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원인은 외국계 임원들의 임금 상승으로 추측되나 제대로 밝혀진 바는 없다. 이 외국계 임원들이 바로 사모펀드의 주인일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수익 배분과 재정 지원 혜택에서 노동자들은 제외되었다. ‘업계 1위’를 자랑하는 유베이스는 콜센터 노동자 36명에게 "수원사업장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전환배치 혹은 퇴직을 강요했고, 24명의 노동자에게 부천사업장으로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이를 거부한 11명은 결국 해고되어 현재까지 싸우고 있다.

사실 유베이스의 이익은 노동자들의 착취로 얻은 것이지만, 이 성과를 낚아챈 것은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했다고 조작한 사모펀드였다. 수익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노동자를 쥐어짜고, 구조조정을 하여 수익을 늘린 후 비싸고 좋은 건물로 회사를 이전하고, 몸집을 불리고, 언론 홍보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과대 포장해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배를 불린다.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 콜센터 노동자가 받는 170~180만원의 저임금과 밀집된 사무실에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게 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이 돈 많은 일부 '개인'이 모여 자본을 투자했다는 이유로 얻는 수억, 수조 원 펀드의 근원이다.

금속노조 유베이스 수원지회
금속노조 유베이스 수원지회

기계처럼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

한국의 콜센터는 대부분이 하청업체로 콘택트회사라고 불린다. 회사 내에 흡연실이 있을 정도로 직원들은 강도 높은 업무량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관련업무에 대한 숙지가 되어야만 답변할 수 있는 전문직의 특성이 있음에도, 단순 업무로 평가절하되며, 항상 고객에게 웃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감정노동자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상담사의 업무는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는 인바운드 업무의 경우 매니저가 30분마다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 명단을 제공하고, 전화 상담도 반대로 정신없이 걸려 온다. 콜센터로 걸려 오는 고객 전화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을 거쳐, 자동 콜 분배기를 통해 통화 대기 상태의 상담사에게 개별적으로 분산된다. 따라서 상담사는 스스로 노동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전화를 밖으로 거는 아웃바운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매니저가 끊임없이 밀어 넣는 전화 목록과 실적 압박은 마치 자동응답기처럼 일정한 내용을 반복하게 말하도록 한다. 화장실을 가려면 메신저 창에 손을 들고 팀장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회사도 있다. 모욕적인 일이다. 직원이 졸지 못하도록 4월에 에어컨을 켜거나, 창밖을 보지 못하도록 블라인드를 내리기도 한다.

KT는 2005년 114 교환원을 아웃소싱해서 자회사로 퇴출하게 시켰는데, 1,000여명이 퇴출당하고 이후에도 400~500명이 전환 배치 혹은 퇴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퇴출 명단에 오른 여성들은 근무 연수가 많거나 나이 든 노동자, 혹은 노조 활동을 했던 이들이었는데, 울릉도에 전환 배치를 받고, 전신주를 오르고, 풀매기를 강요받기도 했다.

상담사의 목소리는 ARS 기계음과는 달라야 한다. 업체에서 요구하는 목소리는 ‘미소 띤 음성’이다. 오랫동안 콜센터를 연구하고 그 역사를 책으로 펴낸 문화인류학자 김관욱씨는 “콜센터 노동자들은 인간이지만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하면서 동시에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를 강요받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있다”라고 지적했다.

필리핀의 콜센터 산업과 노동자 탄압

지난 10월 12일 유베이스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유베이스 아시아' 법인 설립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송기호 대표는 "유베이스는 차별화된 고객 관리 노하우와 인프라 운영 역량을 활용해 동남아 시장 공략에 집중할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과 현지 플랫폼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콜센터 사업은 세계적으로 확장 및 재편되고 있으며, 유베이스 같은 기업도 동남아시아 시장의 수혜를 누리고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사모펀드가 유베이스 인수처럼 국경과 업종을 넘나들며 더 많은 이윤을 위한 더 많은 착취를 주동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베이스를 소유한 사모펀드의 투자는 이제 말레이시아에 세워질 새로운 착취 콜센터에서 사업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국적은 다르지만, 미국의 필리핀 콜센터 외주화와 한국의 말레이시아 콜센터 외주화는 무척이나 닮았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노동정치에서 정부는 자국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유베이스에서의 착취는 보다 손 쉽게 확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콜센터 산업에서 횡행하는 저임금 착취에 맞서 대안을 만드는 것은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연결되는 것에 있다. 앞서 설명한 필리핀 노동자들과 미국 노동자들의 연대와 같은 행동을 통해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권리가 우리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유베이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귀기울이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멀리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고, 저 멀리 말레이시아 콜센터 노동자들의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참고 자료

글 : 김지혜 (동아시아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