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무덤이 된 카타르 월드컵과 시장화 된 축구

“우리는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은 걸 알고 있다. 월드컵은 축구 그 이상이다. 모두가 참여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을 뛰고 싶지는 않다.”
― 브루노 페르난데스(포르투갈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자본주의와 축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스포츠 경기와 선수가 상품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는 현실은 20세기 초 축구의 발전과 함께 시작됐다. 축구 경기장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위계 질서가 여과 없이 반영됐다. 경기장 안에서는 두 팀의 경기가 진행되지만, 그 경계선에는 빼곡하게 광고판이 들어서 있고, 관중들 역시 좌석 위치에 따라 다르게 가격이 매겨진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경기 시작 전에는 국가가 흘러나오고,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종종 애국주의적 열광을 쏟아낸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통치자는 관중들과 일체감을 형성하고, 일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해낸다.

1928년 웸블리 민족대항전 경기에 나서고 있는 스코틀랜드 대표팀

이처럼 스포츠는 개인들의 자아실현과 사회적인 통합의 매개이면서, 동시에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거나, 지배계급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대중을 동원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모든 스포츠는 정해진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쉽게 공정한 실체가 있는 것으로 포장된다. 스포츠에 참여한다는 것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규칙을 내면화한다. 규칙은 참여자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경기 결과는 일종의 능력주의로 포장되고, 따라서 지배계급은 스포츠 경기를 통해 대중이 기존 질서가 공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인정하게 만들 수 있다.

자본주의 이전까지 지배계급과 상류층에 의해 자주 금지되곤 했던 민중놀이 축구가 자본주의와 함께 오히려 대중화된 역사적 과정에는 지배계급 통치전략의 변화와 민족주의가 있다. 가령 영국은 웸블리 인터내셔널 경기를 통해 ‘대영제국’을 구성하는 4개 민족 간 민족주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 민족은 공동체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경기를 통해 그 감정을 분출했다. 축구 경기만큼 공동체의 감정을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표출할 수 있는 장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FIFA 언커버드>는 축구라는 대중 스포츠 문화가 가진 더러운 이면을 파고드는 다큐멘터리다. 이 시리즈 1화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FIFA(국제축구연맹) 임원들을 검은 봉투로 매수해 회장이 된 브라질 사업가 출신 아벨란제와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Jorge Rafael Videla)의 공모에 의해 개최됐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델라는 1976년 군부 쿠데타 이래 5년 동안 약 3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과 좌파 활동가들을 고문하거나 구타해 사망 또는 실종에 이르게 했다. 1978년 여름, 아르헨티나는 우승컵을 안았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더러운 월드컵이라는 오명도 함께 안았다.

1978년 월드컵 경기장에서 우승컵을 끌어안고 있는 군인과 축구선수

FIFA의 상업화 및 임원진 부정부패와 함께 오늘날 FIFA 월드컵’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이자 브랜드 전시장이 되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64개 경기의 TV 생중계 평균 시청자가 1억9100만명이었고, 결승전은 5억1700만명이었다. 그해 FIF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월드컵이 진행된 두 달 동안 TV나 디지털 미디어, 거리 응원을 통해 경기를 관람 또는 시청한 사람은 35억7천200만 명이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월드컵을 시청한 셈이다.

이런 ‘스포츠 워싱’은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가까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역시 경기장 바깥은 온갖 추문과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다. 행사 기간 내내 경기장 바깥에서는 집 없는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 “‘피파가 납치한 월드컵’에 혈세를 지원하지 말고, 교육과 주거, 교통 등 공공서비스를 지원하라고 요구하며 집회, 거리 행진, 점거, 예술행동 등 다양한 형태로 저항”했다. 특히 ‘집없는노동자운동(MTST)’은 기업 토지 점거와 거리 시위, 상파울루 시청 앞 점거 등 직접 행동을 통해 ‘공공주택 건설’을 요구했다. 당시 집권 브라질 노동자당 정부의 호세프 대통령은 월드컵 개최 비용 문제를 둘러싼 빈민 대중의 불만을 무시했고, 엄청난 대중 저항의 여파로 지지율 추락을 맞닥뜨려야 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역시 구속 중인 죄수들의 건설 현장 강제동원, 인종 차별 사건, 크림반도 침공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보이콧 운동이 전개되는 등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

일련의 논란들이 일면 FIFA 측은 월드컵이 정치화되어선 안 된다고 앵무새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더러운 곳으로 만드는 주체는 다름 아닌 FIFA의 부패한 임원진들 자신이다. 이들은 월드컵의 흥행과 더불어 특권화된 FIFA를 무기삼아 공공연하게 금품수수를 통해 유치 활동을 벌이는 국가들에 표를 던지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다. 특히 이번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부터 개막까지의 일련의 여정은 FIFA의 오명이 가장 선명하게 알려진 시간이기도 했다. 분명 월드컵이 정치적 쟁점에 의해 이슈의 한가운데에 서면 이들과 스폰서 노릇을 하는 초국적 대기업의 돈벌이와 뒷거래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2015년 5월 말,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미 국세청 범죄수사과와 함께 남미 축구연맹(CONMEBOL) 및 북중미카리브 축구연맹(CONCACAF) 임원 등 14명을 공갈 및 돈세탁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 취리히의 한 호텔에서 7명의 FIFA 임원들이 함께 체포됐는데, 뇌물 수수 규모만 1억5천만 달러로 추정됐다. <가디언>의 저널리스트 Claire Phipps와 Damien Gayle에 따르면, 이 엄청난 금액 중에는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가 유니폼과 축구화 등을 공급하는 유일한 기업이 되기 위해 지불한 4천만 달러의 뇌물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FIFA 역사상 초유의 위기 앞에서, 1998년부터 2016년까지 18년 동안 회장으로 군림하던 제프 블라터는 퇴임해야 했다. 동시에 FIFA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관련된 뇌물수수를 시인했다. IFA가 월드컵 개최국 선정 관련 뇌물수수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FIFA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뇌물을 쳐먹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적어도 6,750명

지난 11월 21일, 오랜 논란 끝에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했다. 월드컵은 언제나 매스미디어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동시에 그림자도 짙다. 특히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유독 그 농도가 짙다. 포르투갈의 브루노 페르난데스, 독일의 토니 크로스와 레온 고레츠키,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드 등 적지 않은 현역 선수들이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뤄진 노동권 침해에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경기장 안에서 공개적인 규탄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바로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안의 심각성이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됐다. 2013년 여름,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수십 명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6월 4일부터 8월 8일까지 두 달 간 네팔 출신의 젊은 이주노동자만 44명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시 적지 않은 네팔인들은 “우리는 떠나고 싶지만 회사가 허락해주지 않는다”며, 강제 노동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카타르의 인구 구성 : 카타르 시민권자는 26.0%에 불과하다.

카타르 통계청에 따르면 카타르엔 29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카타르 시민권자는 33만 명에 불과하고, 인도(70만)나 네팔(40만), 방글라데시(40만) 이주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이들은 브로커를 통해 이주노동을 왔다가 불투명한 계약관계와 임금 체불 등으로 이러지도 못한 채 사실상 강제노동에 시달려왔다.

사실 카타르 월드컵 건설 과정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강제노동, 중간 수탈 문제 등에 대해선 무수히 많은 비판과 시정 요구가 있어왔다. 일찍이 국제노총(ITUC)은 2014년 3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10년 말부터 2013년 말까지 3년간 총 1,239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으며, “지금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매주 12명, 매년 600여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향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50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이주해올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소 4천 명이 산재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카타르 정부의 의뢰로 조사 업무를 맡은 DLA 파이퍼(Piper) 로펌 역시 국제노총과 비슷하게 추정하고, 이에 더해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의 경우 약 1천8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국제노총 보고서 중

일련의 비판에 대응해 당시 피파의 악명 높은 리더 제프 블라터는 “광범위한 이주노동자 학대를 용납할 수 없다”며, “하루 속히 공정한 노동조건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악명 높은 뇌물 수령자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실제로 피파는 카타르 월드컵 보이콧이나 엄정한 감시감독, 즉각적인 사망자 조사 등 어느 것도 실천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비난 여론에 압박감을 느낀 카타르 정부 당국은 노동안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관계 법령을 개정했다. 2017년 이주노동자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받아온 출국 비자제도를 폐지했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월 1천 리얄(우리돈 40만 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걸프만 국가들에 만연한 카팔라(kafala) 제도를 폐지했다. 우리로 따지면 고용허가제와 유사한데, 고용주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노예 상태로 전락시킨다고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노동법 개정 이후에도 정부는 관리감독에 무관심했고, 고용주에 의한 체류 비자 취소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결과적으로 카타르 정부의 조치들은 생색내기에 불과했으며, 문제 해결에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시키는데 가장 큰 노력을 펼친 가디언은 2021년 2월 분석 보도를 통해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및 기반시설 건설이 이뤄진 2011년부터 2020년 10년 동안 최소 6,75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인도(2,711명), 네팔(16,41명), 방글라데시(1,018명), 파키스탄(824명), 스리랑카(557명) 순이었다. 

이미지 출처: the Rosa Luxemburg Stiftung

카타르 정부가 분류한 사망 원인 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사(인도 출신 80%, 네팔 출신 48%)였는데, 25~35세의 젊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심혈관 이상’이나 ‘호흡기 질환’으로 죽은 것을 ‘자연사’라고 명명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2019년 4월 의학전문지 『Cardiology 심장병학』지에 발표된 기상학자와 심장내과 전문의들의 공동 연구 논문 「카타르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열스트레스가 심장질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카타르 당국이 ‘자연사’로 분류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사망은 열사병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적인 노동 현장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치며 싸운 노동자들도 있었다. 가령 올해 3월에는 경기장 건설 시공사인 한 건설사가 수개월에 걸친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시위가 일었다. 8월에도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에 맞서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카타르 정부는 이들 중 일부를 체포해 강제 추방해버렸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카타르 월드컵 관련 노동 현장에서 임금 체불 신고건수만 3만4,425건에 달한다. 이는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불법화된 동성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타르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와하비즘(수니파의 주류 종파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적힌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이념.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의 근원이라고 지목받음) 국가다. 카타르 정부는 성소수자들을 구금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결혼 외의 성관계에 대해 최대 징역 7년형을 선고한다. 카타르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현재 카타르 월드컵 대사를 맡고 있는 칼리드 살만은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이라고 발언하여 뭇매를 받았다. 압둘아지즈 압둘라 알 안사리 카타르 월드컵 보안 운영위원장은 “카타르는 성소수자 커플을 환영할 것”이라면서도 “무지개 깃발을 든다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깃발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환영하겠다면서 깃발은 뺐겠다니 역겨운 농담이다.

축구계의 적지 않은 인사들은 카타르 월드컵의 반인권을 비판하고 있다. 선수 은퇴 직후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전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 토마스 히츨슈페르거는 월드컵 보이콧을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레온 고레츠카, 요주아 키미히, 토니 크로스 등 현역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이런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독일 대표팀은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 카타르 월드컵에 항의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덴마크,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호주 등 9개국 대표팀이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무지개 로고 완장을 착용하고 출전할 예정이다. 덴마크의 경우 아예 “모두를 위한 인권(human rights for all)”이라는 메시지가 적힌 유니폼을 입으려 시도하기도 했는데, 불행히도 피파 측에 의해 불허됐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공정한 경기”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노르웨이 국가대표팀
반인권 비판을 넘어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가령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개막을 하루 앞둔 11월 19일 카타르 내셔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간의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교훈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매우 부당하다. 유럽인들이 지난 3천년 동안 해온 것을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기 전에 앞으로의 3천년 동안 사과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교훈을 주는 건 위선적이다. 월드컵은 북한에서도 열 수 있다.”

서구 바깥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인권 현실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역사적 위선을 감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주의자들은 내내 이런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침묵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전 세계 이주노동자들은 타국에서 ‘권리 없는 상태’에 노출된다. 파키스탄과 네팔, 인도 등에서 살기 위해 카타르로 온 이주자들은 불가피하게 카타르의 건설현장으로 왔다. 우리는 그들의 이주가 왜 불가피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서구 주류 언론들에 의한 “카타르의 인권 침해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외침에는 이 억압을 낳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반성이 부재하다. 그저 억압의 사례들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수입하고 또 송출하기 위해 변모해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래 노동의 이주는 ‘바닥을 향한 경주’에 맞춰져 있다. 

가령 동남아·남아시아에서 중동으로의 이주는 1973년 석유위기와 함께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이주가 대부분 건설현장에 투입된 남성 노동자들로 이뤄졌었다면, 1985년 이후 건설 부문이 일시적으로 쇠퇴하면서 서비스 분야로의 이동도 두드러졌다. 이와 같은 중동 자본의 노동 수요는 이주의 핵심 동인이다. 걸프협력회의 6개국의 소규모 국내 노동력은 공공 부문에 집중되어 있어 민간 부문에서 크게 부족해 외국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건설 프로젝트 조감도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은 더 이상 석유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새로운 미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얼마 전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해 국내 재벌 총수들을 접견한 것 역시 네옴시티라는 초대형 건설 사업과 맞닿아 있다. 학살자 빈 살만에게도 축구는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카타르 왕실 자본 역시 월드컵을 유치하지 못했더라도, 다른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수백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수입했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카타르의 억압적인 성격만이 아니라, 세계 자본이 노동을 조직하고 착취하는 방식에 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이주노동자 착취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축구를 진짜 즐기기 위해

FIFA의 잔니 인판티노 회장과 파트마 사무라 사무총장은 “축구는 이념·정치 싸움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축구에 집중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고, 노동 착취로 죽어간 수천 명의 피로 지어진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이지 않은가?

축구에 대한 정치적 반성은 축구라는 스포츠 문화를 혼탁하게 만드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축구계를 역동적으로 만든다. 축구가 자본주의 체제 하 다양한 사회적 공간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성찰할 때, 비로소 축구를 이 세상의 다양한 요소들이 교차하고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현실로 읽을 수 있다. 그러니 탈정치화된 축구에 대한 맹목적이고 비현실적인 강박에 사로잡혀 침묵하는 것은 FIFA의 고위급 퇴물들에 놀아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카타르 월드컵 건설현장 안팎 6,75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죽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우리가 사는 현실, 축구라는 자본주의적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 축구의 장에서는 자본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은 내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곧 완벽하게 시장화된 스포츠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구의 변화를 위한 비판은 축구와 사회의 관계가 왜곡된 지점, 즉 축구의 제도적 구성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축구를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 FIFA는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축구 제도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축구의 민주화는 만인의 평등한 참여와 이윤의 재분배, 사유화된 물리적 시스템(경기장 등)의 개방, 초국적 자본과 대립하는 국제 경기 등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한다. 물론 현 상황에서 이는 매우 터무니 없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우연들의 연쇄 속에서 형성되었듯, 축구가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된 것 역시 매우 우연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노예화된 노동의 착취와 죽음을 대가로 세워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보고 싶은 사람은 이 사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는 자본 이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란 시위 지지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이란 관중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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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저, 서강목·이정진·천지현 역, 『축구의 세계사: 공은 둥글다』, 실천문학사, 2014

글 :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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