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양강퀴어! : 춘천퀴어문화축제 리포트

출발, 춘천퀴어문화축제

춘천에서의 퀴어문화축제를 꿈꿔오던 춘천 시민들은 2021년 2월 2일 첫 모임을 가졌다. 20대부터 40대까지, 학생, 직장인, 시민사회 활동가 등 각기 다양한 배경과 직업을 가진 4명의 시민은 동네 카페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상반기에는 격주에 한 번씩 모였는데, 모일 때마다 첫 30분은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공부했다. 공부가 끝나면 내부 합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는데,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해 축제의 비전과 미션, ‘우리의 약속’을 정리했다.

비전은,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안전하고 차별 없는 춘천공동체를 만든다’이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과도 함께하는 교차적이고 포괄적인 인권축제로서의 지향을 정했다. 미션은, ‘1년에 한 번 축제를 개최하는 우리, 성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대해 공부하는 우리,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실현하는 조직과 연대하는 우리, 안전하고 차별 없는 공동체를 먼저 실천하는 우리’ 이렇게 네 가지이다. ‘우리의 약속’은 구성원들이 모임을 지속하기 위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아홉가지 합의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조직위 구성원은 나이,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장애 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식이지향, 혼인여부, 가족관계, 연애지향 등에 관계없이 동등함을 명시했다.

하반기에는 이전보다 자주 모여가며 본격적인 축제 준비를 시작했다.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강원도청 앞에서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준비모임을 조직위원회로 정식 명명하고 춘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열 것임을 지역사회에 알렸다. 지지자와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김민수 기록활동가의 ‘다시 만나 Queer Together in 춘천’ 사진전에 연대했고, 축제 전에 더 많은 시민을 만나고자 영화 <굿마더> GV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축제를 두 달 정도 앞두고 조직위원이 한 명 더 합류하여 축제 준비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소양강퀴어

축제 슬로건은 춘천에 사는 퀴어를 의미하는 ‘소양강퀴어’로 정했다. 1회 축제가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춘천에도 퀴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춘천사회에 알리는 일이다. 소양강처녀상은 춘천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소양강퀴어는 춘천시민의 정서를 담고 있는 소양강처녀상의 모습 속에 성소수자인 춘천시민의 정서도 담겨있음을 상징한다. 소양강처녀상이 춘천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상징물이라면, 성소수자인 춘천시민도 소양강처녀상을 맘껏 사유하고 그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일 자격이 있다.

소양강퀴어에는 성소수자인 춘천시민이 지역사회의 차별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외로이 살았는데, 문득 찾은 소양강에 홀로 서 있는 소양강처녀상이 마치 자신과 같은 퀴어로 보이면서 동류의식을 느끼며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낸다는 이야기를 실었다. 소양강처녀 노랫말을 생각하면 소양강처녀가 떠나간 임을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소양강처녀상을 자세히 보면 매우 당당하고 진취적인 모습에 많은 이들이 놀란다. 조직위원회는 춘천에 사는 퀴어시민인 우리 소양강퀴어가 당당한 소양강처녀상처럼 춘천에서 우리들의 삶을 함께 당당히 쟁취하며 살자는 메시지를 이 슬로건에 담았다.

연대의 힘으로

조직위원회는 축제예산마련을 위해 굿즈 꾸러미를 만들고 시민들에게 후원을 요청했다. 많은 개인과 단체에서 후원을 해 주었다. 특히 춘천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진보정당은 공식적인 축제 연대단체가 되어 후원금 납부, 릴레이 지지선언, 홍보뿐만 아니라 함께 회의를 하고 당일 실무에도 참여했다. 참여자 접수 및 안내, 무대 설치와 진행, 축제 후 뒷정리까지 거의 모든 실무를 함께하였다.

지역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차원의 연대흐름도 있었다. 제주, 광주, 대구, 인천, 그리고 우리 춘천까지 5개 지역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연결된 축제’라는 이름으로 모여 서로의 축제를 홍보하고 지원하였다.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온라인 부스 및 각종 이벤트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였다.

제1회 춘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했던 10월에서 한 달 미룬 11월 20 토요일, 춘천 소양강처녀상 앞에서 축제를 진행했다. 부스 없이 공연과 발언을 진행하고, 바로 자긍심행진을 시작했다. 이날은 트렌스젠더 추모의 날이기도 했다. 발언시간에 우리의 곁을 떠나간 트렌스젠더 동료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기도 했다. 춘천시에서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과도한 제한을 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길 건너편에서 반동성애 맞불집회를 열기도 했으나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춘천 시민들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여자들의 강한 연대로 축제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소양강처녀 노래를 차별금지법 지키라는 노랫말로 개사하여 함께 부르고 춤추면서 도심을 거쳐 의암공원까지 한시간 정도 행진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이 여럿 있었지만, 놀랍게도 주류 언론이라 할 수 있는 춘천MBC <강원 365>에서 축제를 우호적인 관점으로 상세히 다뤄주었다. 조직위원회가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부터 축제의 배경과 의의, 축제 당일 풍경과 행진, 관계자와 참여자 인터뷰까지 우리의 축제를 도민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10분짜리 영상이 강원도 전역에 방송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연대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지역활동응원기금과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물품지원,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무대와 차량지원, 자원활동가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등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도움으로 첫 축제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퀴어가 넘쳐흐르네

1회 축제가 끝난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조직위원회는 2022년 봄, 2회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개인 사정상 2회 축제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직위원이 있었고, 2회 축제를 더욱 잘 준비하기 위해 조직위원을 충원했다. 1회 축제 때 자원활동가로 함께 해 주었던 분들 중 세 분과 조직위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봐 왔던 한 분이 조직위원으로 합류하였다.

2회 축제의 콘셉트를 논의했다. 1회 축제의 슬로건이었던 ‘소양강퀴어’는 주변 반응이 좋아서 이제는 슬로건을 넘어 춘천퀴어문화축제의 별칭, 고유명사로 계속 가져가기로 했다. 축제 분위기는 작년 1회 축제가 추모의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서서히 줄어드는 시점이기도 하니 조금 밝고 역동적으로 가보기로 하면서 소양강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수많은 물줄기가 뒤엉켜 역동적인 소양강이 되듯,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넘치는 열정으로 차별과 혐오를 뛰어넘어보자는 의미를 담아 2회 축제 슬로건을 ‘퀴어가 넘쳐흐르네’로 정했다.

서브 콘셉트로는 ‘벽장을 뚫고 나오는 퀴어’로 정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혐오와 차별을 피하려고 세웠던 마음의 벽장으로부터 나와서 우리 자신을 연대와 환대가 있는 축제의 자리로 초대해보자는 의미이다. 축제일 전 주가 추석인 것을 생각하면서 ‘이성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와 같은 ‘정상성’ 잔소리들을 떨쳐내자는 의미도 함께 있다. 조직위원회는 이 서브 콘셉트를 형상화해 굿즈에 담았다.

이번 축제에는 부스를 차리기로 하고 1회 축제 자긍심행진의 도착지였던 춘천 의암공원을 선정했다. 의암공원은 강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넓은 잔디밭과 나무데크가 있어 춘천의 다양한 축제가 꾸준히 열려왔던 곳이다. 장소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시청을 찾았다. 잔디밭은 녹지공원과, 잔디밭 안 나무데크는 여성가족과에서 관리했다. 녹지공원과는 장소 사용 허가를 했지만, 여성가족과는 자신들이 청소년단체들 위주로 사용허가를 내주었으며, 특히 퀴어문화축제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이어서 많은 민원 발생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어 허가해주지 않았다.

의암공원에서 청소년단체뿐만 아니라 수많은 단체가 행사를 진행했음을 모르는 춘천시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각종 행사가 공개적으로 꽤 많이 진행되는 곳인데 이곳에서 유독 퀴어문화축제만을 못 하게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조직위와 춘천 내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학생단체, 진보정당들은 춘천시청 앞에서 장소사용허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허가를 끈질기게 촉구했으나 춘천시는 끝내 무대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축제를 며칠 앞두고는 녹지공원과마저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면서 축제를 통제하려 하였다.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으며, 사회적 약자의 경우 삶을 돌보고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의 역할은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예정대로 축제를 열고, 성소수자만을 배제하는 나무데크 무대에 올라가 춘천시의 차별행정을 규탄하면서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했다.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정오, 춘천 의암공원에서 제2회 춘천퀴어문화축제를 열었다. 잔디 위에 천막 부스를 차리고 춘천시로부터 허가받지 못한 나무데크 위에 보란 듯이 무대를 세웠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직위는 인구 30만 이하 소규모 축제의 장점을 살려서 콘서트장이 아닌 마을잔치처럼 참여자가 주인이 되어 환대받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참여자가 자신을 관객이 아니라 이 축제의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참여자 장기자랑, 일명 ‘장퀴자랑’을 열었다. 이것은 제주퀴어문화축제 등 다른 지역 축제에서도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연대발언을 많이 배치하여, 다른 곳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곳 춘천에서 춘천의 지역사회로부터 강한 지지와 연대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마을잔치를 하다 보면 한쪽 편에서 전통 놀이를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우리 축제 역시 비석 치기, 윷놀이, 공기놀이, 제기차기 등을 할 수 있는 전통 놀이 코너를 마련했다. 바로 전 주인 추석 때에 마음 편히 못 놀고 ‘정상성’ 잔소리만 들어 지쳤을 법한 참여자들에게 춘천퀴어문화축제가 춘천퀴어들의 명절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게 기획했다.

가을이었지만 한여름같이 뜨거웠던 날에 조직위, 시민사회단체, 자원활동가, 부스팀, 공연자, 참여자 모두는 소양강물처럼 한데 어우러졌다. 저 멀리 당당하게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소양강처녀상, 아니 소양강퀴어상까지 벅찬 마음으로 자긍심 행진을 벌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모처럼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지역에 퀴어문화축제가 필요한 이유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서 가시화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성별이분법적 사회, 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서 퀴어는 어디에나 살고 있지만, 어디에도 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평소에 성소수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비성소수자는 성소수자를 매우 낯설어하고 많은 오해를 하기도 한다.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지역사회에 성소수자가 가시화되면 비성소수자는 성소수자를 의식하게 되고,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퀴어문화축제라는 공식적인 공간이 생기면 섬처럼 흩어져 고립되어 있던 성소수자가 모이면서 지역사회에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축제참여자들은 축제를 즐기면서 억눌려왔던 존재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는다. 열악한 성소수자 인권실태를 사회에 알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외침을 시작한다.

지역사회는 대도시와 달리 익명성이 잘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아우팅의 위험이 크고 더 가까이에서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게 되어 생활의 불편함을 크게 겪는다. 지역에 퀴어문화축제라는 성소수자를 향한 공식적인 공간이 생기면 성소수자는 보다 안전하게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기회를 얻게 된다. 퀴어문화축제가 정기적으로 개최되면 지역사회는 점차 성소수자 시민을 투명인간이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퀴어문화축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키고 확장해나가는 축제의 형식을 띤 사회운동이다. 물론 그 자체로 인권축제이기도 하다. 퀴어문화축제는 공기처럼 퍼져있는 성별이분법적인 사회문화, 그로 인한 차별과 혐오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숨죽여 살아온 성소수자가 단 하루, 온전히 숨쉴 기회를 가져보는 날이다. 춘천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춘천에 사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춘천사회가 성소수자인 춘천시민을 차별과 편견 없이 대하기를 바란다.

효성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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