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지금 당장 취소하라

여성가족부 폐지, 지금 당장 취소하라

지난 10월 15일 낮, 서울 종각역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집회가 열렸다. 195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천5백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집회 현장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여성 정책을 비판하는 다양한 발언이 이어졌다.

2022년 10월 19일

[읽을거리]페미니즘페미니즘, 직장내성희롱, 성차별

규탄의 목소리

작가 이라영씨는 가정폭력, 취업 성차별, 신당동 스토킹 사망사건 등 취약한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을 언급하며,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반박하였다.

대한항공 성폭력 피해자인 A씨는 발언을 통해 “사내에서 겪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으나 대한항공은 가해자를 징계 없이 사직 처리했다”는 것을 설명하며, “이후 회사에 맞선 소송에서 대한항공의 대형로펌 선임 등 기만적 태도로 고통받았지만, 여성가족부 산하 단체들의 도움으로 법적 소송에서 피해자 권리구제 등을 통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A씨는 성차별 구조를 해결하는데 있어 정부가 보다 세밀하고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지금까지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성취한 수많은 성과를 무마시키려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 정책을 규탄하고, 성평등 사회를 위해 (민주노총이) 함께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가 역사적 오명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나영은 “성평등은 남녀 누구의 편을 드냐의 문제가 아니”며, “여성 관련 범죄도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전사회적으로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통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한편으로는 낙태죄는 유지하면서, 장애와 노숙인에 대한 불임수술을 강제하는 이중잣대로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 하더니, 이제는 저출산을 이유로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 한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드는 것도 여성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하고, 재생산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알량한 선별적, 시혜적 정책이 아니라 여성이 평등하게 존중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성평등 정책에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맞서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서, 눈치만 보고 있는 민주당도 다를 게 없음을 꼬집고, 속히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여성장애인연합 서혜정 대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의 성폭력 상담 건수가 2021년에만 28만 건이 넘고, 장애인 시설 피해가 8천 8백 건에 이르는데, 여성장애인 보호 쉼터는 전국에 고작 10개 뿐인 현실”을 폭로하며, 여성장애인 지원정책 확대를 요구했다.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병원 의료진에게 아이를 지울 거냐는 질문을 받는 등의 자신이 겪은 부당한 차별을 알렸다.

나랑토야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활동가는 지난 20년간 수십명의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당했지만 정확한 수치도 없는 현실속에 이주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 폭로했다. 이주여성이 한국에 남으려면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을 유지하거나 자녀를 출산·양육해야 하는 등 이주여성을 저출산에 기여하는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규탄했다.

그밖에도 여성가족부 폐지가 전국의 성평등 기관 폐지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 지역의 여성 인권과 사회복지가 축소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 여성에 대한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 등 다양한 주장이 있었다.

집회 이후 이어진 거리 행진에서 참여자들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웬말이냐”,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여성가족부 강화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구조적 성차별

많은 사람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결정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발언자들이 잘 지적했듯) 윤석렬 정부가 반복해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며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를 기준으로 한국은 전 세계 146개국 중 99위에 머물러 있다.

성격차가 가장 심각한 분야는 경제적 기회 부문으로, 경제활동 참가율, 소득 격차, 고위직·관리자 비율 등 5개 관련 수준은 112위이다. 특히 고위직·관리자 비율의 성별 격차는 125위로 가장 하위권이다. 정부 부처 고위관료들의 성별 치우침은 매우 심각하여, 국회의원 81%, 기초단체장의 96%, 광역단체장은 100%가 남성이다.

소득 격차도 120위로, 여성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68%이다. OECD 국가 중에서는 성별임금 격차 1위 국가이다(OECD 평균 여성임금은 남성의 84%). 지난해 상장기업에서 일하는 남성이 평균 9,413만원을 벌 때 여성은 5,829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나, 임금 성별 격차는 3,584만원(38.1%)으로 작년보다 2.2% 더 벌어졌다. 가족 내 돌봄노동의 여성편중, 출산,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고 있는 여성의 수는 150만여 명에 달한다. 코로나 전염병 유행 1,000 일 동안 여성의 노동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하다는 또 다른 근거는 줄어들지 않는 성폭력과 성관련 범죄이다. 지난 9월 14일에 벌어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단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전주환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괴롭힘과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 살해당했다.

직장 내 성범죄는 2021년 5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폭력 피해자 사망사건(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2022년 롯데칠성음료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 지난 7월 포스코 내 성폭력 사건 등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훨씬 더 많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성범죄를 신고한 후에도 고통이 줄어들기는커녕 악화됐다는 점이다. 고 이예람 공군 중사는 회식때마다 반복되는 성추행 피해를 견디다 못해 신고하였지만, 그 후 80여 일 동안 공군 내에서 조롱과 회유, 협박, 성차별과 방조를 맞닥뜨려야 했다. 급기야 ‘관심간부’ 취급까지 받다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고 이예람 중사의 사망 후에도 공군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는커녕 사건을 축소·은폐했다.

롯데칠성음료의 성희롱 피해자 역시 신고 후 스스로 퇴사했으며, 포스코 내 성폭력 피해자 역시 신고 후에 부당한 신체접촉·외모평가·음담패설 등 계속된 집단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5월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고한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중 80%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는데, 신고자 10명 중 9명이 신고 후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피해를 겪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여가부가 발표한 ‘2021 성희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66.7%는 부당한 상황을 겪고도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과반 이상의 피해자들이 신고 후에 닥칠 괴롭힘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는 상황은 구조적 성차별의 심각성을 매우 잘 보여준다.

무늬만 페미니즘 말고

현재 여성가족부는 정부 전체 예산의 0.24%(2022년 국가 전체 예산 107조 7천억원 대비 1조 4,650억원)만을 배정받는 ‘초소형’부처다. 이러한 조건에서 구조적 성차별 해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예산마저 가족 관련 9,063억원, 청소년관련 2,716억원이 포함된 액수로, 두 항목의 예산만 부처 전체 예산의 80%가 넘는다. 여성의 불평등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해 여성·성평등 예산은 1,055억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여성가족부가 반드시 대처해야 하는 성범죄 피해자 지원조차 예산 부족으로 인해 집행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전국 사이버성폭력 피해지원 네트워크’는 여가부가 운영 중인 ‘디지털 성범죄 지역 특화상담소’에 상담원이 2명 뿐인 점을 지적하면서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9월 6일 여가부 관계자는 “인력 증원은 예산과 관련된 부분이라 아직 반영된 바 없고 상담사들의 정규직화를 일차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해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여가부는 젠더관련 정책을 과도하게 출산·양육·가족중심으로만 사고하고 있는 셈이다. 성평등 관련 예산과 정책은 너무나 부족하다.

지금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은 여성 관련 정부 부처의 폐지가 아니라, 부처의 성평등 관련 예산을 강화하고,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도구로만 강제하는 데 치우친 부처의 역할을 수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임금 등 여성의 실질적 차별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과는 정반대로 예산을 축소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의 격하는 즉각 취소되어야 한다. 나아가 구조적인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더 많은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5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지만 여성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는 미흡했다. 되려 집권 기간 내내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주요 정치인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기만 했다. 구조적 성차별에 제대로 맞서 싸우려면 이런 ‘무늬만 페미니즘’이 아니어야 한다. 지난 10월 15일 거리를 달구었던, 다양하고 당당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페미니즘이어야 한다.

글: 김지혜·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