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적이고 함께 만드는 사회운동으로 재구성하기

박상은 활동가 인터뷰②

지향을 갖되 열린 조직

인터뷰 1부 「활동가가 가꾸어야 할 자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에서 박상은 활동가의 운동관과 운동사를 살펴봤다면, 2부에서는 그가 현재 몸 담고 있는 플랫폼c가 어떤 단체이며 어떤 활동 전망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이후 방향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모호한 이름의 단체가 어떤 성격의 단체이고 뭘 하는 단체인지에 대한 질문들을 받을 때 박상은 활동가는 뭐라고 답할까.

“여전히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단체죠. 그래서 간단히 소개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짧게 말하면, 사회운동 활동가 재생산 구조에 대해 고민하면서, 사회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명함에는 비영리 사회운동 교육단체라고 소개하고 있고요. 기후위기 등 전체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운동의 연대를 주된 목표로 삼고, 더 크게는 동아시아 사회운동 국제연대를 꿈꾸고 있어요.”

‘활동가 재생산 구조’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교육’을 통해 활동가를 양성한다는 의미인 것 같긴 하지만, 사회운동 교육이라는 건 뭘까?

“플랫폼C를 통해 함께 학습하고 활동가가 되는 사람들이 정파에 갇히지 않는 대중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자는 의미에요. 왜냐하면 보통 단체에 들어갔을 때, 각 단체에 맞는 (그 단체의 정파성이 강하게 담긴) 교육이나 활동을 하는데, 특정 시야에 갇히기보다는 사회운동의 보편적 의제에 함께 할 수 있는 활동가가 필요하니까요. 노조나 단체 상근 활동가가 되거나,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의 활동을 펼칠 수 있으면서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나 노동운동에 대한 관점, 국제주의, 페미니즘 등을 종합적으로 토론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활동가를 양성하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정파성을 넘어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조금 오글거리지만 “활동가는 르네상스적 인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박상은 활동가가 말하는 “정파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정파의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죠. 운동을 잘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공통의 지향을 찾으면서 생기는 것이 정파니까요. 그런데 정파는 언제 문제가 되는 걸까요? 정치적 입장을 정할 때 사회운동의 지향보다 자기 조직의 성장을 우선시하게 되면, 운동보다 조직이 앞서게 되고, 전체 운동을 위한 게 아니라, 단순히 그 조직만을 위한 운동으로 바뀌어버려요. 무엇이 조직을 우선시하는 것이고 무엇이 운동 전체를 우선시하는 것인지 명확히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지점입니다. 조직을 살리는 방식이 아니고 운동 전체를 살리는 방식의 결정이 뭔지를 알아야 정파성에 갇히지 않는 조직이 되는 거겠죠. 

처음 플랫폼C 활동을 시작하면서, 단순한 활동가 네트워크보다는 대안적 가치를 지향하는 조직으로 가자는 얘기를 했어요. 지향을 갖되 열린 조직이 되자는 것인데, 사실 되게 어려운 미션이죠. 지향을 갖되 열리려면 회원들 간 토론을 조직하고,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같이 공동으로 결정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연하면서도 체계가 있어야 해요.”

지향을 가진다면 어디까지 어떻게 열려있을지가 쟁점이 된다. 보편적인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하며 자기 정파의 대안만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초정파와 지향을 가진다는 것은 양립할 수 있나? 지향을 갖되 열린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말은 멋있는데,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웃음) 다만 몇 가지 가이드는 있죠. 예를 들어 페미니즘 공부모임을 진행할 때 소수자 배제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방식과는 함께할 수 없다거나, 한국의 양당 구도 속에서 민주당을 매우 진보라고 생각한다면 함께하기는 어렵다는 것 등이요. 이런 가이드를 두고 의견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과정, 즉 정세가 있을 때마다 입장을 공동으로 토론해 그것이 쌓이면서 지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입장을 확고히 정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이에서 공통된 중요한 원칙들을 토론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확인된 원칙들이 지향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실천과 토론의 시간이 매우 중요해요. 우리가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느낄 때까지 계속해야 하고요. 기획팀원들끼리 토론해서 입장을 정하는 하향식 의사결정으로는 지향을 만들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령 지난 4월 플랫폼c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한 월례포럼에서는 몇 가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무기 지원에 대한 특정한 입장을 정하거나 지정학적(국가적) 논리에 따르지 않고, 민중의 연대를 지지한다는 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입장을 놓고 토론하면서 최소한의 합의를 형성할 공통의 원칙을 확인해나가다보면, 그것이 지향이 된다. 

물론 그것만으로 끝나는 건 아닐 것이다. 박상은 활동가는 ‘열린 조직’이 그저 타인의 참여가 가능한, 공개 단체를 지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전체 운동을 살리는 방향으로 실천을 쌓아가야 ‘우리가 열린 조직’이라는 게 증명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월례포럼을 계속 열린 자리로 연다고 합시다. 그것만으로 누가 우리를 열린 사람들로 봐주겠어요? 사람들이 선험적으로  규정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그게 마냥 나쁜 건 아니에요. 그동안의 선택을 역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극복하려면 실제로 같이 사업을 계속해야 정말로 열린 포럼이 됩니다. 그래서 월례포럼도 계속 다른 단체와 협업해 진행하는 것이고요. 우리끼리 주제 정하고는 “우리 열려 있으니까 오세요~” 이렇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닌거죠. 지금은 회원이신 한 분이 처음 월례포럼에 왔을 때 다른 사회운동단체 포럼에 간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 분이 여러 포럼을 많이 다녀봤는데 특정 단체의 포럼은 분위기가 정말 폐쇄적이었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토론을 답을 다 정해놓고 한 거죠. 저희도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이런 후기를 생각하면서 계속 열린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합니다.”

단체를 만들기까지

플랫폼c는 2019년 초 소속되었던 단체를 잃어버린(집단 탈퇴) 사람들 약 스무 명이 모여 작은 공부모임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졌다. 각자 노동조합이나 여러 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했지만, 그렇게 각자의 운동만 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함께 도모하는) 활동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단체 이름을 정할 때 열하나, 곳간 등 여러 후보군이 있었다. 새 조직을 만들 때 기존 사회운동 조직과 다르게 하고 싶어 조직 이름도 운동단체 같지 않게 하자는 취지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에서 ‘플랫폼c’라고 정했다고 한다. 

“플랫폼C는 한국의 일반적인 사회운동 단체 이름이 아니잖아요. 언론이냐고 물어본 분도 있었어요. 인지도가 조금 오르면서 사람들이 저희를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플랫폼C를 보는 시선이 꽤 다양한 것 같아요. 특히 플랫폼C의 C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여기서 C란, 한국의 양당 구도처럼 항상 A와B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원론적 세계나 상황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C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플랫폼C에 대해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런 의미가 있다고 많이 설명해요.”

2020년 5월 공식적으로 단체를 설립하게 되면서 매달 사회운동의 정세적 주제로 토론하는 자리를 열었다. 바로 월례포럼이다. 기후위기, 노동, 페미니즘, 정세에 따른 사건 등 여러 사안을 주제로 발표와 참여자들의 질의응답 및 토론으로 진행되며, 비회원도 참여할 수 있다. 

지난 2년, 플랫폼c에는 250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30~40대 회원 중에는 오래된 좌파 정치조직에서 탈퇴한 사람들이 많고, 20대 회원들 중에는 사회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열의를 두고 있지만 사회운동 재생산 메커니즘의 부재로 플랫폼c를 찾은 사람들이 많다.

“적(籍) 없는 좌파, 활동가, 비판적 시민들의 둥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책읽기 모임이나 동아시아 국제연대 사업 등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박상은 활동가는 여전히 ‘목표’로 둔 곳에 다다르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운영과 조직

상은 활동가는 ‘반상근’으로 매주 이틀에서 사흘 망원동 사무실로 출근한다. 이틀만으로는 맡고 있는 역할이 굉장히 많다. 단체 재정, 연대 사업인 ‘길내는모임’ 회의와 업무, 플랫폼c의 책읽기모임과 노동세미나 등을 담당하고 있다. 박상은 활동가에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나, 올해 2022년 활동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당연히 있어요. 플랫폼c는 작은 단체이지만 회원이 꽤 빨리 늘어난 편이거든요. 제가 지향을 갖되 열린 조직이 되려면 유연하면서도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듯, 조직이 커질수록 체계가 없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참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경우에는 체계가 덜 있는 것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지만, 체계가 없으면 상근자와의 친분이나 조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등에 따라 발언권의 강도가 달라져요. 이 부분을 잘 조정하는 게 상근자로서 책임감이 드는 지점이죠. 올해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친분이나 기간에 따라 권력 관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조직이든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 조직 운영 관련해서는 요즘 고민이 있어요. 활동하기 힘든 상황 때문에 활동을 하고 싶어도 못해서 같이 하려고 오는 분들이 많은데요. 예컨대 학내에서 활동에 대한 고민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어서 활동하지 못하는 분들이요. 우리가 새로운 활동가 재생산 경로를 찾고 있는 입장에서 이 분들과 어떻게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 갈지, 어떻게 활동과 친밀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좋은 경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전업 활동가가 되거나 운동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어요. 특히 한국 사회는 운동조차 서울 중심성이 강하잖아요. 지방에 살면 집회나 포럼에 참여하기 힘들죠.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시기에 비대면으로 비수도권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잖아요. 이 분들과 어떻게 함께 활동하는 길을 만들어 갈 것인지가 고민이에요. 서울에 와야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어디서든 활동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이 인터뷰 기획 역시 활동에 대한 고민이나 열망은 있지만, 혼자서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정보와 고민거리를 공유한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이런 시도는 더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플랫폼C 20대 회원모임 같은 것도 생각했어요. 각자 떨어져 있지만 유사한 조건의 사람들이 모여 활동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어떨까 하는 고민이었죠.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면서, 회원들이 스스로 뭔가 기획할 수 있게끔 하는 모임을 긴 시간 잘 해봐야 될 것 같아요. 

‘노동운동 잘하자 모임’도 비슷한 고민에서 나왔어요. 작년 노동세미나 모임을 이렇게 바꿔보자고 한 건데, 사실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지만요.  노조 활동가들의 경우 하도 바쁘니까 자연스럽게 자기 사업장, 산별, 담당 사업에만 집중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자기 일만 생각한다고 꼭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소진되는 것도 있거든요. 거꾸로 시야를 확장하면 운동의 더 큰 전망이나, 자기 일이 더 잘 보이기도 해요. 각 노조의 상황 공유를 넘어서 사회운동 내의 노동운동의 역할이나, 세계노동운동 안의 한국의 노동운동의 위치를 고민하면서  함께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책읽기모임은 자기자신의 위치를 넘어 활동을 하려는 고민을 가진 신입 회원들이 많이 유입되는 통로 중 하나다.

“책읽기모임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자리죠. 원래는 마르크스주의 책을 읽는 모임이어서 어려운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진입 장벽이 높아서 여러가지 주제를 같이 읽어보자는 방향으로 바꿨는데, 이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관심사가 다양한 분들이 올 수 있고 계속 참여하시는 분들은 여러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할 수 있거든요. 같이 모임을 하다가 가입하는 분들도 많고요. 열린 책읽기모임이 하는 역할이 꽤 큽니다. 

<커밍업 쇼트>라는 책을 주제로 토론할 땐 스무 명 정도 참여했는데요. 읽고 의견 나누는 공간을 다들 원했구나 싶더라고요. 책읽기모임을 통해서 생각도 더 깊어지고, 또 책에 대한 감상이 재해석되는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저는 토론을 하다가 그 책이 더 좋아진 경우들도 많았어요. 서로 개방된 자세로 토론하는 일의 즐거움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인터뷰팀 역시 책읽기모임은 꾸준하게 참석하고 있다. 모르던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의 생각을 접하며 다양하게 고민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읽기모임과 페미니즘 공부모임은 플랫폼C 회원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다.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다음으로 우리는 ‘길내는모임’과의 연대사업에 대해 물었다. 길내는모임은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의 줄임말로, 여러 사회운동 단체의 활동가들이 참여해 사회운동에 관한 고민을 나누고, 앞으로의 비전과 실천을 논의하는 자리다. 왜 다양한 단체 활동가들이 모였고, 무엇을 도모하려 하는가?

“인권운동사랑방이 초기 제안을 했고, 작년 봄에 처음으로 모였어요. 두 가지 문제의식 하에 ‘길내는모임’이 탄생했는데요. 첫째는 “사안별로는 열심히 활동하지만 전체적인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사안별 연대체가 많다는 점은 한국 사회운동의 독특한 운동 양식이고 장점이기도 한데요. 문제는 사안별 연대만 하다 보니, 전체적 전망을 공유하고 공통의 정세 인식을 갖는 활동이 사라졌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여서 논의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전에도 항상 있었던 경향이긴 한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운동이 체제 내부에 포섭되는 경향이 전보다 심해졌다”는 점이었어요. 제도 개선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위해 운동을 시작한 거잖아요. 소위 정치적 조건은 좋아졌지만 이상하게 사회운동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 전체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나를 논의하기 시작했던 것이 ‘길내는모임’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내는모임의 집담회에서 활동가들은 각자의 상황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플랫폼C는 두번째 집담회부터 참여했는데, 집담회에서 각자 얘기만 했는데도 3시간이 지났다. 각자의 운동을 얘기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서로 비슷한 지점에서 곤란함에 부딪히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럼 이렇게 모인 길내는모임이 올해 얻고자 하는 결과물이나, 길내는모임을 외부에 대중적으로 알릴 기획은 무엇인가.

“작년 11월에 출범 시작을 알리는 공개 토론회를 했어요. 그때 21세기 새로운 체제 변혁을 위해 운동 키워드 3개를 뽑았는데 그것이 기후위기, 페미니즘, 노동이었습니다. 지금도 기후정의운동, 페미니즘 운동, 노동운동이 다 존재하지만, 마치 부문운동처럼 여겨지고 보통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운동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희는 이러한 긴급한 사안들의 활동이 새롭게 재편되고 서로 횡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공개적인 포럼으로 열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기후위기의 경우 기후정의동맹이라는 출범 직전의 단체와 공동으로 3월 말에 포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소위 기후 취약계층인, 기후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이 주체가 아닌 약자로서만 시혜적으로 호명되고 있다는 거에요. 어떻게 이 문제를 인식하고 또 활동할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포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동맹은 4월 29일에 출범했다. 3월 29~30일 양일간 열린 포럼은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이틀 동안 진행됐다. 기후정의포럼은 자본 주도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반대와 비판에서 나아가, 체제전환의 전망과 대안이라는 토대 위에서 기후정의운동의 전략 및 전술과 요구들을 다뤘다. 길내는모임은 ‘기후취약계층이 아니라 기후정의의 주체로’라는 세션을 진행했다. 박상은 활동가는 노동포럼을 담당하고 있다. 노동포럼과 페미니즘포럼의 전망은 어떨까.

“노동포럼에서는 세 가지 주제로 공개 행사를 기획하고 있어요. 첫 번째 주제는 자신들의 운동의 길을 만들어가기 힘든 조건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변혁을 도모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본주의 내 노동의 분할, 정규직-비정규직이나 원청-하청 등의 여러 경계 때문에 기존의 노조 형태로 단결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고 싶어도 제도상 만들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겠죠. 두 번째 주제는, 첫 번째 의제를 성취하려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회적 요구를 만들어야 될텐데, 과거에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면 현재의 요구는 어떤 것인지 밝히는 거고요. 세 번째 주제는 노동조합 운동과 사회운동 간 관계는 어떠해야 하나 입니다. 사실 저희는 만날 때마다 기획이 바뀌는데요, 저희도 모르는 길을 모색하면서 가고 있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웃음)

페미니즘팀도 하반기 포럼을 목표로 세미나를 진행하려고 하고 있는데요, ‘사회운동이 어떻게 페미니즘을 만나야 할 것인가’. 두 번째로 ‘노동시장 등의 경제문제를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어떻게 봐야 하는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 기후정의 운동이나 탈성장’ 등의 주제를 고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운동이 만나는 방식으로 포럼을 계획하고 있는데, 여전히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길내는모임이 계획한 활동이 죄다 ‘포럼’ 형식인 이유는 뭘까?

“처음엔 공동 집회를 열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운동은 토론과 세미나로만 하는 게 아닌데, 물리적 실천을 뒤로 한 채 논의만 계속하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죠. 하지만 그걸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천천히 논의하면서 서로의 운동을 이해하는 방식이 좋겠다고 이야기가 모아졌어요. 여기 모인 단체들이 얼마 되지도 않지만, 각자 떨어져 활동한 시기가 너무 길어서 서로 얘기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판단이었죠. 올해는 이렇게 갈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같이 할 동지들을 계속 만나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렇게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이 곧 “공통의 지향은 갖추지만 열린”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길내는모임의 고민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공통의 지향이나 공동의 원칙이 무엇인지 조금씩 합의해나가는 단계에 있다고 보면 되는 걸까?

“처음에 얘기할 때는 ‘아무튼 길게 가자’로 이야기가 모였어요. 실용적으로만 모이지 말고 좀 더디더라도 계속 공동의 전망을 꾸려가자는 얘기죠. 사안별로 대응하는 운동에서는 사안이 해결되면 흩어지고 다른 사안에서 또 모이는 식이니까요. 그래서 지난 여름 워크숍 할 때는 ‘5개년 계획’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어요. 사실 결의한다고 해서 무조건 계속 같이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포럼 기획이나, 대선 정국에 냈던 성명 등은 함께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의 일환이자, 공동으로 확인하고 정세 인식을 모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어디에도 명확하고 또렷한 답이 있을 순 없다.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민을 깊이 해온 활동가들이 모여 시야를 확장하려 노력하고 있고, 길게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해 우리의 시야도 열리는 듯 했다. 아무래도 긴 전망을 두고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일시적 대책위가 아닌 연대운동조직

‘전체적인 전망을 공유하고 공통의 정세 인식으로 하는 활동’은 아무래도 생소하게 들린다.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를 공부하거나 듣게 되면, 정파 갈등으로 지리멸렬해진 사례가 숱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던 때도 있었던 것인가? 이에 대해 물었다.

“무슨 얘기인지 생소해하는 활동가들이 많더라고요. ‘전국민중연대’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요. 2003년 출범한 연대운동조직인데요.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문화연대 등 37개에 이르는 진보적인 대중조직과 운동단체들이 모여 만든 소위 ‘상설연대체’였죠. 당연히 구체적으로는 견해차나 활동 양식의 차이가 있었지만, 큰 전망을 공유하며 활동했어요. 2007년 민족주의 운동진영이 한국진보연대라는 별도의 연대체를 꾸리고 나가기 전까지 4~5년 유지됐죠. 

이를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도 있었어요. 반(反)MB 공공투쟁본부를 거쳐 2010년 ‘민중의 힘’이라는 연대체가 출범했고, 저도 거기서 반상근 활동을 했어요. 좌파 운동진영과 민족주의 운동진영이 같이 활동하며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좌파가 주로 연대하는 투쟁인 유성기업 노조투쟁에 민족주의 계열 동지들도 가서 함께 간담회하고, 거꾸로 좌파도 미군기지 집회를 가는 식으로요.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무력화됐어요. 제가 지금 평가문서를 보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서 말씀드리는 것이긴 하지만, 신뢰를 갖고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반상근을 철회했던 것 같아요. 몇 달 간의 실험에서 별로 시너지를 못 느낀 것이죠.”

이후 한국 민중운동은 구심이 사라진 채로 각자의 운동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정세 인식도, 문제에 접근하는 운동적인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국제정세를 예로 들면, 홍콩 항쟁이나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시민불복종,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상당한 차이가 드러났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생각이 달랐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학생운동 시기와 맞물려 있었던 만큼 각별한 기억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 전국민중연대가 출범했을 때 대학에 입학해 운동을 시작했고, 2008년에 졸업했으니까 제 학생운동은 전국민중연대와 함께 한 셈이죠. 당시 제가 속해 있던 학생운동 그룹이 제시했던 중요한 목표 역시 전국민중연대를 강화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들어요.

당시 전국민중연대의 리더는 정광훈 의장이었는데 정파를 가로지르며 존경받는 활동가였어요. 굳이 분류하면 민족주의 계열이었지만, 저조차 “의장님이 아무튼 우리 대표지”라고 생각했죠. 해남에서 농사를 짓던 이 분에게는 자신의 상징이 있었어요. 집회 장소에 와서 “다운(Down) 다운, WTO!”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죠. 즉, 대안세계화 운동과 함께 하는 것이었죠.”

대안세계화운동은 1999년 시애틀 WTO 반대 투쟁 이후 전세계에서 대두된 운동이다. WTO, IMF, 그리고 세계은행 금융기관들이 추진하는 금융의 세계화에 맞서 지역운동들의 연대를 주창하였다. 세계사회포럼 등 세계적인 변혁 운동 흐름 속에서 연대를 구축하고자 한 시도도 맥을 같이 했다.

“이렇게 운동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안세계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잘 됐기 때문이기는 해요. 정파를 불문하고 세계사회포럼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영향을 받은 거죠. 농민운동도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처럼 대안세계화를 주도적으로 외치는 단체로부터 영향을 받아, ‘우리 농산물 살리기’에서 ‘세계화 문제에 맞서자’는 투쟁으로 가는 배경이 되었고요. 2000년대 초중반에 발간된 논문이나 자료들을 보면,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고무되어 있는 상태였다는 게 느껴져요. 운동과 운동이 서로를 가로지르고 만날 수 있었던 시기였던거죠. 그래서 국내적으로도 연대체나 사회운동포럼 등 운동을 가로지르는 자리를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죠.

하지만 공동으로 계속하기에는 어려운 차이들을 또 확인하게 되었고, 좀 짧은 실험으로 끝난 것이죠. 짧게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때를 경험하고 당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운동을 상상하는 방식과, 전혀 겪지 않고 운동을 상상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길내는모임의 배경에는 이러한 문제의식도 있었다. 세대가 바뀌고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접해본 적 없는 활동가들이 유입되면서, 박상은 활동가는 운동을 횡단하는 연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대안세계화 운동에서 느꼈던 희망을 현재의 활동가들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길내는모임에 함께 하는 플랫폼c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그 기회를 만들기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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