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의 시대, 한·중 청년의 연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편집주 : 이 글은 지난 4월 30일에 열린 다가치포럼 주최의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다가치포럼은 국내 조선족 동포 단체들의 연대체로 지난 수년 간 한국 사회 내 조선족이 받는 차별에 맞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 토론회는 한-중 청년들의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혐중 여론의 고조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 상의 반중 감정은 상당한 수준으로 고조됐다. 인터넷 게임 등 하위문화 일각을 중심으로 재생산되던 민족주의적이고 유희적 형태의 발화들이 ‘혐중’과 ‘인종주의’의 색채를 띄고 예사롭지 않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2021년 5월, 유력 주간지 <시사IN>과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한국인의 對중국 정서는 크게 하락하였고, 2021년 5월에는 마침내 북한과 일본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당에 대한 지지 성향이나 ‘진보’ 혹은 ‘보수’ 성향과 무관하게 일관된 결과를 드러냈는데, 일본이나 북한에 대한 감정 온도가 진보와 보수에 따라 뚜렷하게 나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20대의 긍정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이오성, ‘중국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핵심 집단, 누굴까?’, <시사IN>, 717호, 2021.06.17.)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세계 주요 국가(14개국) 시민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조사에서도 2002년 긍정 66%, 부정 31%를 보였던 한국인의 대(對)중국 정서는 2021년에 이르러 긍정 24%, 부정 75%로 극적으로 뒤바뀌었다. 2010년대 초까지는 긍정 여론이 더 높았으나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이하 사드)’ 배치와 ‘한한령(限韩令)’ 논란 등을 계기로 급속도로 반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2002년 긍정 55%, 부정 42%였던 것이 2020년에는 긍정 9%, 부정 86%으로 치달았다.(LAURA SILVER, KAT DEVLIN AND CHRISTINE HUANG, ‘Large Majorities Say China Does Not Respect the Personal Freedoms of Its People’, Pew Research Center, 2021.06.30.) 2021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위탁해 발표한 「2021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 설문조사」에서도 중국이나 일본 등 인근 국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도는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김용호·김윤호,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 동북아에서 동남아로 인식의 지평 확대’, 『아시아브리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22)

퓨 리서치센터의 주요 선진국 반중 여론 조사

한국 내 반중 정서는 양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인터넷 게임 문화나 유튜브 영상, 중국 관련 기사 등의 댓글창에서는 극단적 견해를 스스럼 없이 표출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의 파편적 인식 속 중국인의 모습은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고, 비위생적이며, 패권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자의 모습으로 일반화된다. 또,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중국 내 사회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이를 구체적인 근거를 결여한 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개개인의 발화 의도나 생각을 재단한다. 중국 사회에 이렇게나 큰 문제를 안고 있으니, 중국 사회와 중국인 혹은 중국 출신 이주민 개개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 욕설이 모두 정당한 행위가 된다는 식이다.(하남석·김명준·김준호, ‘한국 청년세대의 온라인 반중 정서의 현황’, 현대중국학회 2021년 추계학술대회)

반중 정서가 서구 사회에 친서방 국가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자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미국에서 반중 정서는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혐오 정서와 인종주의적 폭력으로 표출되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2020년 한 해 미국 내 아시안 혐오 범죄는 전년도인 2019년에 비해 124퍼센트가 증가한데 이어, 2021년에는 339%가 증가해 기하급수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Kimmy Yam, ‘Anti-Asian hate crimes increased 339 percent nationwide last year, report says’, NBC) 한국에서는 이런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혐오 범죄가 부각되지는 않지만, 반중 정서가 고조되는 만큼 배제나 차별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관련기사: [아시안 혐오] ① 경제력으로 줄 세우고 혐중 당연시

미·중 대결 정세의 심화

이처럼 민족주의적 혐중 정서가 고조된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다양한 원인들이 중첩되어 반중 감정이 심화되었다고 보지만, 시각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 둔다. 우선 가장 널리 공유하는 관점은 시진핑 집권기 이후 중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당-국가가 주도하는 애국주의 노선이 국제사회에서 반감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 미·중 갈등의 고조 속에서 사드 배치 문제나 군비 경쟁 등 군사적 쟁점이 심화됐다는 사실 등 외부적인 요인을 강조한다.(박민희, ‘한국과 일본 반중정서의 양상과 원인 : 사회·문화·역사’, 현대중국학회 2021년 추계학술대회)

나아가 논자들은 2016년 이래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중국의 한한령으로 이어지는 논란이 대중적으로 회자된 것, 이와 거의 동시에 중국발 황사·초미세먼지 문제가 대중의 생활 감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 2019년 이후 홍콩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과 2020년 초 코로나19의 발생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가령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수경(2020)은 최근 들어 한국 내 반중 감정을 고조시킨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논하면서 단순히 그 감염원이 우한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반감이 확산된 것은 아님을 논리적으로 규명한다. 한편, 한국 내 보수진영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 전부터 문재인 정부를 “친중”이라고 규정하며 비판해왔고,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정치적 기회로 삼아 반중 여론을 확산시키는 것에 의도적으로 기여한 측면을 강조한다.

코로나19 이후 반중 감정의 고조는 외부 요인이기보다는 내부 요인이다. 하지만 이를 정치그룹 간 쟁투의 결과로만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음모론이 대중들에게 소구되는 객관적인 현실과 배경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사IN>의 반중 정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기한 이슈들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가 대중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만큼 이런 요인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알리바이는 불가역적인 외생변수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무기력감을 증폭시키며, 대중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타자를 비이성적으로 악마화할 위험이 크다. 또, 외부 요인보다 훨씬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부 요인의 영향력을 부정하거나 소홀하게 인식할 위험이 있다.

2011년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이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로 전환되고, 미국과 서구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와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의 ‘주권적 국제주의’가 대결하는 양상이 심화되었다. 그러자 각국 내의 다양한 정치세력들은 세계 질서 재편에 대한 입장을 놓고 첨예하게 분화·대립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 우크라이나 등 서구식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어 있는 인접국은 그런 분열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친중이냐 친미냐’ 혹은 ‘친러냐 친미냐’를 중심으로 정치 세력 간 쟁투가 펼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도정치 당파가 명확하게 ‘친중’ 혹은 ‘친미’의 입장을 갖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이는 실제 성격보다는 훨씬 강조되어 있다.

흔히 한국 정치에서 ‘친중’으로 묘사되는 민주당의 대외 정책에 대한 노선적 성격은 친중보다는 경제 정책에서는 서구 중심의 국제무역질서 체계에 조응하고, 외교 노선에서도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통해 실리적인 중견국 균형외교를 지향할 뿐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는 한국 주류 정치의 흐름과 국민의힘식의 전통적인 친미 노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균형 외교’로 상징되는 역대 정부의 중견국 외교는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을 다소 지연시킬지언정, 한반도 숙명론*이나 강대국 결정론의 문제설정을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최근 제도정치 세력을 ‘친중’ 혹은 ‘친미’로 대별시키는 관점은 노선에 대한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부정확하다.

한반도숙명론
한반도의 운명이 외부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으로,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갖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따라서 한반도의 생존전략은 외부와의 관계설정으로 인해 결정된다는 지정학적 논리에 기초한다.

사실 그간 한·중 양국은 경제 관계에 있어서 정치·외교적으로는 대립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을 공유해왔다. 무엇보다 자본의 이윤증식에는 그런 인식이 부합했다. 한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이런 분리 인식을 점차 불가능케 했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내지 적대 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의 발전 또는 팽창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합의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막론하고 지배 엘리트 전반에 형성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일대 충격을 가했는데, 큰 틀에서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런 기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에서 발을 뺀다는 점을 제외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 측면에서 트럼프의 대외 정책 기조를 선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러니 트럼프 시기 시작된 미·중간 대결을 특수하고 돌출적인 것으로 여겼던 기존의 해석은 부정확하다.

경제 위기

반중 감정의 외부적 발생요인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폭넓게 이뤄져 왔지만, 이에 반해 반중 감정의 내생적 요인에 대한 고찰은 과소한 편이다. 대중국 감정의 세대적 분기가 가시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 요인에서 찾는 게 합당해 보인다. 왜 유독 청년 세대로부터 반중 여론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지 물어야, 그것의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는 것 역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신흥개발국가의 발전주의적 경제성장 경로를 거쳐 경제 규모를 키워왔다. 오늘날 3국의 청년 세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한 불안정 고용과 자산 가격 급등에 따른 불평등 심화를 공히 마주하고 있다. 2008~9년 세계 경제위기 이전까지 일본-한국-중국 간에는 발전국가로의 성장이 이뤄진 시간적 배열에 따라 사회 변화도 시차를 두고 벌어진다고 인식됐지만, 이제는 실업 문제나 이민자에 대한 배외주의 정서 등에 있어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의 동시성이 형성됐다.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와 가치사슬(value chain)의 형성 이후 위기는 결코 일국적 차원에서 극복하기 어렵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은 발전국가모델에서 신자유주의모델로 이행하며, 산업 자본 중심의 발전에서 금융 자본 중심의 발전으로 성격을 변화시켜왔다. 발전국가 모델 하에서 내셔널리즘 (nationalism; 國民主義)은 중산층 확산과 고도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공유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모델에서는 중산층 역시 양극화되고, 노동시장이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사회 전체가 개인주의화된다. 다카하라 모토아키(高原基彰)에 따르면, 기존 발전국가모델에서 작동하던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은 실효성을 잃고,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 성격을 갖게 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에 버블 경제가 몰락하고 ‘잃어버린 20년’을 경과하면서 이른바 프리터(フリータ)NEET족, 사축(社畜) 등 노동시장의 변화된 특성을 띤 현상들이 대두되었다. 진보적인 전공투 세대의 사회운동 주도성이 상실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단카이세대(団塊の世代)와 청년 세대 간 사회 인식이 분절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2007년 ‘88만원 세대론’, 2010년 ‘헬조선’, 2012년 ‘열정페이’ 등 조어들을 통해 유사한 인식론적 분절이 등장했다.

프리터 :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일자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의 조어. 평균 연령 15세~34세로, 1990년대 버블경제 몰락 이후 장기침체가 도래하자 그 의미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었다.
NEET족 : 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또는 Training”을 나타내는 약자다. 교육을 받거나 직업훈련에 종사하지 않고 실업자인 사람을 가리킨다.
사축 : 회사(會社)와 가축(家畜)의 끝 글자를 합쳐서 만든 조어.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라는 의미로, 회사가 하라는 대로 어떤 일에도 불평하지 않고 일하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인 풍자가 담겨 있다.
단카이세대 : 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를 지칭한다.

과거 1960년대 일본이나 1980년대 한국의 청년 세대는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학생운동을 거치면서 내셔널리즘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사회구성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대안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일정한 ‘주체화 양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1970년대 이후 좌익 운동이 몰락하였고,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사회운동이 체제 내화되면서 이러한 주체화 양식은 점차 위축되거나 소멸되어갔다. 한국 사회운동의 경우 통치 이데올로기가 강압적인 군부 독재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호도된 개혁 방향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의제설정 능력이나 정치적 비전, 가시적인 조직력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1970~80년대 프랑스 사회당과 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등 서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집권 이후 오히려 초국적 금융 자본의 압력에 밀려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시행하는 흐름이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이뤄질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말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시행 등으로부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가속화되었고, 이에 따라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는 가운데서도 반대 투쟁을 벌였으나, 이렇다 할 대안 사회의 상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더군다나 한국 제도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던 민중운동은 내부의 정파 갈등 문제로 사분오열되어 침체기를 겪었고,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던 대안 정치 세력은 사회변혁의 추동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사회운동 일부가 기성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탁함으로써, 게토화되는 과정을 겪었고 스스로를 제3의 대안으로 부상시킬 수 있는 싹마저 잘라버렸다.

일본의 ‘NEET족’이나 한국의 ‘88만원 세대’, 중국의 ‘방라오족’(傍老族; 성인이 된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여전히 의존하는 현상) 등을 둘러싼 논의는 표면적이고 현상적인 양상을 드러낼 뿐, 근본적인 원인을 가리킨다고 말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88만원 세대’와 같은 세대 착취 담론은 계급모순을 세대담론으로 부정확하게 전유함으로써 설득력 있는 호명이 되는데 실패한다. 다카하라 모토아키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한국에서 고조된 민족주의 감정 역시 상당부분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이 아닌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과 능력주의의 양상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이 고양된 시기에 청년 세대는 인터넷을 전형으로 하는 뉴미디어와 도시 소비문화와 하위문화를 근거지로 삼고, 반(半)유희적인 정념의 움직임을 가시화한다.

모든 국가와 사회에는 그 사회 내부의 대립과 모순이 존재한다. 한 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은 내부의 모순이 기존의 제도 정치와 통치 시스템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고, 사회변혁의 경로가 차단되어 있을 때 대두된다. 미래(현재)에 대한 불안감을 외부의 적 때문이라고 표적을 돌리고, 내부의 불만을 완화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셔널리즘에 대해 단순히 “내셔널리즘은 나빠!”라고 외치는 것은 “반민족 매국노 규탄”이라는 구호만큼이나 내셔널리즘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한 적실한 대응이 될 수 없다. 

연결과 연대를 위해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은 국경에 온전히 구속되지 않는 다양한 연결성을 보인다. 금융 자본주의와 불평등, 불안정 노동의 시대에 양국 청년들이 겪는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일과 삶에서의 성차별과 불안, 플랫폼 자본 하 가려진 노동의 현실, 저임금과 취업난 등 양국 청년 다수는 유사한 현실 모순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경험은 개별 영토에 고이지 않고 지구 곳곳을 가로지르며, 세대 갈등이나 가부장적 모순, 노동 착취 역시 첨예한 사회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가령 장시간 노동 문제의 경우 한국에서는 이미 수년간 정치 쟁점이 되고, 청년 세대 불안의 주된 모순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지난 정권 시기 주52시간으로 연장 근로 시간의 법적 제한을 두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격론이 벌어진 바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장시간 노동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IT업계의 ‘996制’ 철폐를 요구하는 대중적인 온라인 서명운동이 펼쳐졌고, 한때 개혁개방 40년사의 영웅으로 추켜세워지던 자본가 마윈(马云)도 996제에 대한 실언을 해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성차별과 직장 내 성추행 문제 역시 양국 모두에서 큰 화두이다. 양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게 #METOO 운동을 경험하고 있으며,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노동 문제와 여성 문제 모두를 아우르는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여성 노동자 일반의 불만이 충돌하는 과정에 있으며,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이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2018년 이래 대학가와 일터, 연예계 등에서의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크게 대두되어 왔으며, 온라인 상에서 광범한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동시대적 모순에 대한 동일성을 확인하고, 동일성 가운데서도 각 사회에서 어떠한 차이점을 동반하여 드러나고 있는지 폭넓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취업난이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미래에 대한 불안 정서 등 억압이 국경을 넘나들며 하위계층 모두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을 자각한다면, 그것이 단순히 “중국 때문” 혹은 “일본 때문”, “한국 때문”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다. 오히려 이와 같은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대중적 인지는 국가나 민족이 아닌, 보다 구조적인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자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경계 바깥에 대한 적대를 각국 내부의 모순에 맞선 연대,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발굴해야 한다.

대안① 가짜뉴스 모니터링

그렇다면 한·중 청년들의 연결과 연대를 실천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할까?

우선, 잘못된 전달된 정보와 가짜뉴스에 대해 공신력 있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본질과는 거리가 있지만, 가짜뉴스가 양산하는 오인과 반중 감정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홍주현·설진아·이종임의 연구 「유튜브 채널에서 코로나19 중국관련 허위정보 확산에 관한 연구: 확산 주체와 정보유형 분석을 중심으로」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상에서 중국 관련한 코로나19 감염증 허위정보는 긍정적 콘텐츠보다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회수가 가장 높은 코로나19 중국 관련 유튜브 콘텐츠 영상들은 개인 유튜버가 제작한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나, 언론사들의 팩트 체크가 이뤄지지 않은 허위정보였으며, 부정적 내용이 긍정적 내용에 비해 약 3배 이상이나 많이 생산되었고 확산되었다.

하남석·김명준·김준호(2021) 역시 “한중 양국간 허위보도 불식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을 주요 대안으로 제시한다. “김치 종주국 논쟁이나 샤이닝니키 등 게임 문제를 비롯해 (…) 양국 미디어의 허위보도나 사실 확인이 잘 되지 않은 루머 보도로 인해 한중간 온라인 갈등이 발생하거나 확산되는 경향”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양국의 상업 언론사들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서 주류 입장이 아닌 인터넷의 일부 악플러 댓글을 과장해 기사화하기도 하고 사실관계가 미처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하기도 한다”며, 이러한 기사가 “양국 네티즌들에게 부정적이고 왜곡된 이미지들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0년 11월 발생한 ‘샤이닝니키 한복 사태’나 중국 일러트스레이터의 ‘갓’ 그림 논쟁은 한·중 간 인터넷 민족주의가 가짜뉴스에 의해 부정적으로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2020년 11월 1일 올드시엔(Old先)이라는 ‘BL물’(보이즈 러브(Boy’s Love)의 약자로, 남성 캐릭터 간 연애를 소재로 다루는 하위문화 팬픽 장르이다. 동아시아에서 인터넷 하위문화의 한 양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갓’을 쓴 남자의 그림을 올렸는데, 그러자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트위터 유저가 “저 갓은 한국 모자다”라면서, “출처를 대라”고 요구한다. 이 일이 중국 쪽 인터넷 커뮤니티에 알려지자, “갓은 원래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작가의 트위터자체가 싸움판이 된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작가는 자신이 그림 그릴 때 참조한 자료를 공개하는데, 중국의 전통복 패션쇼나 명나라 시기 그림, 대중영화 장면 속 갓 이미지였다. 한데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11월 2일 샤이닝니키를 제작한 중국 게임사가 한국 서버 런칭기념 이벤트로 한복을 출시한다고 밝힌다. 이는 원래부터 예정돼 있었던 이벤트였는데, 하루 앞서 트위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한복 문제 관련 과열돼 있던 중국 유저들이 웨이보와 트위터에서 “해당 한복이 명나라 의상과 비슷하다”, “한국만의 고유 의상이 아니다”, “한푸를 왜 한복으로 내느냐”고 주장하면서 논란은 더 증폭된다. 사소한 논쟁이 눈덩이처럼 확대되는 인터넷의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이틀 후인 11월 4일, 샤이닝니키 제작사는 “매우 죄송하고, 한국 서버의 유저가 조국인 중국을 욕하면 한국인 유저들을 채팅 금지, 계정 정지를 시키겠다”, “앞으로도 중국의 전통과 국가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공지하였고, 이번에는 한국 유저들이 공식 카페에 가서 한국어로도 사과문을 올리라고 항의하며, 중국에 대해 비난한다. 다음날인 11월 5일, 게임회사는 한복 아이템 전량 회수 및 보상을 공지하고, 이후로 갑자기 시스템 점검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결국 서비스 종료를 통보하고, 한 달 후인 12월 9일 서비스가 공식 종료된다.

사실 한복(韩服)과 한푸(汉服)는 다르고 또 같다. 지난 2천 년 동안 동북아시아 민중은 무수한 교류를 거쳤고, 그 때문에 많은 문화적 공통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갓’을 두고 한국 것이니, 중국 것이니 논쟁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고대사의 문제에 대해 근대국가의 기준으로 논쟁하는 일에 휘말려선 안된다. 고대에는 국가 간 경계가 모호했고, 기준도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나 전통, 문화에 있어 상호 비슷한 부분을 통해 더 많이 대화하고, 차이가 있으면 그 차이를 낳은 역사에 대해 토론하며 교류해야 하지, 기원을 따지면서 싸울 일이 아니다. 실제 갓과 같은 형태의 동양 전통의상은 한국이든 중국이든 비슷한 부분이 있다. 고구려 감신총 벽화(4~5세기 추정) 속 패랭이갓을 쓴 인물, 6세기 신라 금령총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신라 원성왕(8세기 말)이 꿈에 복두를 벗고 소립을 썼다는 삼국유사 기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고구려에서 신라로 전해져 고려 시기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온 이후로는 몽골 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아 모양이 점점 변한다. 당나라 태종 시기에도 멱리(冪䍦)라는 모자가 있었다. 멱리는 본래 서북방 민족들이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과 전신 가리개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궁중의 여인들과 왕공의 귀부인들에게 유행되면서 외출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좀 더 과감하게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른바 ‘노계(露髻)’가 유행해서 당시 여성들은 가마를 타지 않고 말을 타면서 얼굴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남장을 즐겨 입는, 개방적인 패션이 유행했다는 사실이 『구당서(舊唐書): 여복지(輿服志)』에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서북방 민족’이란 칭하이 호수 서쪽에 있던 토욕혼(吐谷渾)국을 지칭하는데, 토욕혼은 원래 선비족 일부가 서쪽으로 밀려나서 만든 고대 유목국가다. 갓은 유목민 복장이 농경 사회에 전해지면서 변모한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갓의 기원을 굳이 따진다면 선비족을 포함해 고구려 등 북방 유목민들이 말을 타면서 모래바람을 차단하고자 착용하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갓의 기원을 두고 ‘중국 역사의 산물’인지 ‘한국 역사의 산물’인지 시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 “古风混搭(고대 스타일의 mix and match)”라고 답한 올드시엔 작가의 답은 꽤나 현명한 대답인 셈이다.

대안②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의 강화

양국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일종의 공공외교 전략으로서 ‘소프트파워(soft-power)’를 부각시키는 문화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1997년 이래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성장해온 한류(K-POP; 韩流)는 어떤 의도된 정책의 산물은 아니지만, 확산과 심화의 과정을 볼 때 “문화적 자부심과 우월감이 은연 중에 내재되어 있고, 문화를 통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투사하려는 민족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해방 이후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민중 저변에서는 여전히 저항적 민족주의 성격을 띠었으나, 국가권력에 의한 국가주의적 성격이 강화되기도 했다. 과거 한국 정부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 대신 ‘문화콘텐츠산업’을 사용하면서 국가전략산업으로서 ‘세계5대 콘텐츠산업 강국’을 목표로, 국가적인 콘텐츠산업 육성을 추진해왔다. 작금의 한류는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국가주의적인 기획의 산물인 셈이다. 문화산업은 21세기에 접어들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신자유주의 산업 논리로 무장(武裝)했는데, 특히 K-POP의 아이돌 양성 시스템은 “20년에 걸친 공세적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을 반영”한다. 많은 논자들이 “K-POP은 스테로이드제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소비자들을 맛있게 유혹하고, 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 비판한다.(VALENTINA PEGOLO(University of Oxford), How K-Pop’s Record Labels Exploit Its “Idols”, Jacobin magazine)

그런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역수준에서 보다 실체적이고 첨예한 특수문화들 간의 새로운 문화갈등이 민족국가들을 중심으로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각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자신의 민족문화를 자본화하고 산업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경쟁은 대중의 문화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깊이 있는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을 통해 오늘날 동아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이 비슷한 모순을 마주하고 있으며, 동일한 억압과 착취 양태를 경험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되게 미디어 혁신이 필요하고(안해준, ‘혐중 부추기는 언론, 무엇을 기대하나’, 더피알, 2020.2.4.), 지식계가 공유하고 있는 구조적인 분석을 대중화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근본적인 모순에 대한 인식을 외면하지 않은 채, 교육 공동체와 대중문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넓히고 공동의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대안③ 더 많은 마주침을 기획하자

더 많은 인적 네트워크와 마주침이 기획되어야 한다. 한국 내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 청년들의 마주침을 조직하기 위한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사업들을 기획함으로써 약 7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의 성장을 이루고, 한국 사회 모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14만 2205명을 기록했다. 주요 출신 국가별 유학생 현황의 경우, 중국이 6만 8537명으로 48.2%에 이르는 높은 비율을 보였고 이어서 아시아권인 베트남 2만 7061명, 몽골 6768명, 우즈벡 5496명, 일본 3977명 순으로 유학생 비율을 차지했다. 그리고 미국이 2746명 1.9%로 여섯 번째로 많은 유학생 비율을 나타냈다.) 중국인들에 대해 한국 청년들이 갖고 있는 단편적 형태의 이미지는 이러한 마주침을 통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하남석·김명준·김준호(2021)의 보고서 중 친구 유무에 따른 호감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외국인 친구가 있을 때 해당 국가에 대해 더 우호적이었다.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 친구가 모두 있는 경우, 한쪽 국가의 친구만 있거나 중국·일본인 친구가 없는 경우보다 상대 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올라간다는 점 역시 확인된 바 있고, 반대로 외국인 친구가 없으면 중국·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극히 낮았다. 또, 이념은 오히려 대외 인식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 역시 확인됐다. 그런데 중국인 유학생과 국내 청년의 마주침의 경우, 대부분 국가기관이나 기업, 외교부서에 의해 주도되거나, 지극히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 유인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비영리 민간 차원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관계맺음이 이뤄져야 깊이 있는 관계의 진전을 이룰 수 있으며, 가치관의 교류 역시 도모할 수 있다. 

하남석·김명준·김준호(2021)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중 교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단체에 소속된 주요 인물들이 전직 고위관료나 전직 기업가 출신으로서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치중할 뿐이었다. 즉, 다양하고 진지한 주제와 컨텐츠를 구비하고 공공외교를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시민단체들은 “중문판 웹사이트 구축과 중국어 번역 서비스”, “중국 시민사회와의 정기적인 포럼 개최” 등 사업을 통해 온라인 민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베이징과 광저우 등에 위치하며 수년 동안 대안적인 청년문화운동을 이끌어온 706청년공간(706青年空间)은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와 마주침이 기획될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증명한 중요한 사례이다. 2012년에 수십여 명의 공동 발기인들이 기금을 모아 설립된 이 공간은 청년들이 대도시의 소비문화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치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필자가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는 베이징 706청년공간은 우다커우(五道口)의 화칭자위안(华清嘉园) 아파트단지 내에 위치해 있는데, 청년들의 공동거주 공간이자, 문화·학술·예술 공간이었다. 테마별로 분리된 공간들 중 학술 실험실에선 강좌를 빈번하게 개최하고, 세미나를 기획해 열기도 한다. 문학테마 실험실에는 소설과 시 등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여 거주하며, 정기적으로 문학 토론회나 시 낭송회를 연다. 

“구성원 중 Mylikes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방구석 프로그래머’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실존주의 철학서 《아웃사이더》나, 신경과학, 후성유전학을 함께 논할 친구를 찾았습니다. 최근 UCLA의 미디어예술대학원에 지원한 저우챠오(邹俏)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룸메이트 여우양(悠洋)과 뉴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우양은 영국왕립예술대학를 졸업해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리학 연구자 짜오펑(赵鹏)도 있습니다. 중국과학기술대학 물리학 박사과정으로 연구 중인 그는 최근 이곳 학술테마 실험실에서 이론 강좌를 열기도 했죠. 옌펑(艳鹏)도 그처럼 강좌를 개최한 구성원 중 한 명입니다.” – 706청년공간 홍보 문구 중

706청년공간의 거주자들은 각 공간에서의 교류만이 아니라, 다른 공간을 오가며 교류하기도 한다. 문학 실험실의 문학 살롱에 참여하고, 음악 실험실에서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하며, 영화테마 생활실험실에서 상영회를 기획한다. 거주자들 중엔 프로그래머‧뉴미디어 종사자‧다큐멘터리 촬영기사‧대학생 등 다양한 직업이 있고, 이들의 취미 역시 명상‧요리‧디자인‧히피문화 등 다양하다. 생활 패턴 역시 낮에 출근하는 직장인이 있는가 하면, 밤 새워 일하는 프리랜서도 있다.

대안④ 디아스포라들의 국제주의

디아스포라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노동과 기후정의 등 민족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출 때, 비로소 ‘연대’의 지평도 열린다. 세계화의 가속화와 함께 노동력의 국제이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1980년대 말 노동집약적 산업의 인력난이 본격화 되면서 외국인력이 유입되었다. 초기 산업연수생제도는 제도적 한계 및 관리체계의 부재에 사회의 편견이 결합되어 극도의 차별과 착취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한때 불법체류 외국인의 비중이 80%에 이르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사회운동은 단순히 인권 침해 감시를 넘어, 이주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저항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주민 역시 동정적이거나 시혜적인 ‘주변부 노동자’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라는 인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도록 조력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주노동자 운동의 분화 과정을 보면 정부 정책보다는 이주노동자 내부의 단체들간 대응 전략이나 신념의 차이, 민족들간, 국적별 차이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 운동과 이주민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은 이러한 민족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가령 이주노동자 운동은 네팔·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나 필리핀·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주축으로만 이뤄져왔다. 실제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전체 이주노동자 권리 신장이 중국 출신 시민들의 노동권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큼에도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중국계나 조선족 권익단체 활동에 국한되어 왔다. 이런 경계를 뛰어넘어야 디아스포라들의 보편성을 담지하는 흐름이 한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일(노동)과 삶, 교육의 문제를 이주민의 보편적인 권리로 제기하고, 이를 다시 제도화할 수 있는 폭넓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주민 집단의 국적별 대응보다는 보편성을 매개로 한 정주민-이주민의 연대가 가장 효과적인 경로가 될 수 있다.

경제위기에 따른 불평등, 전쟁 등 국가폭력이 고조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위와 같은 단편적인 노력들만으로 배외주의 정서를 극복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동아시아(혹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를 테면 불안정한 노동 문제에 대한 노동권의 신장, 이주민들이 맞닥뜨린 차별에 대한 정의, 기후위기에 맞선 정의로운 대안을 확산하는 것 등은 동아시아 각국 청년들이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함께 요구할 수 있는 문제다. 노동권에 대한 공격, 이주민 차별, 기후위기 확산 등에 있어서 한국·미국·중국 정부 등은 국가권력이나 국가권력 상층부의 엘리트들이나 자본의 편에 서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세계)를 관통하는 개별불안형 민족주의적 대립에는 사회유동성의 증대와 더불어 국내에서 불만을 쌓아가는 통치 엘리트들이 이를 ‘역사 문제’라는 형태로 거짓되게 문제화하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국가주의 틀을 넘어서는 보편성으로 문제의식과 실천을 확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상상해보자. 지난 4월 4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56차 총회에서 210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9년 기준 전 세계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43%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인준했다. 해당 보고서는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경우 2100년 지구의 온도는 3.2도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나 중국 정부는 IPCC 보고서의 경고에 조응하는 수준의 대책을 전혀 내놓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 역시 세계 최대 탄소배출 국가로서, 기후위기에 책임있게 대응해야 할 대국으로서 IPCC 보고서의 문제의식에 조응하는 계획에 미달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고, 실제로는 이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양국 청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방관하고 있는 양국 정부와 기후악당 기업들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과 행동이 아닐까? 이와 같은 기후위기나 내 노동의 불안정성 등을 진정으로 복기하면, 반중 감정이나 반한, 반일 감정은 너무 우스운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새로운 연대를 구축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동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삶과 미래를 규정짓는 기후위기, 이주민 차별, 노동권 침해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전을 공유한다면, 한국·중국의 청년들은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중국 청년 세대의 연결과 연대를 위한 새로운 지평은 이런 공통성을 통해서만 열릴 것이다. 국경을 경계로 한 반대 정서를 극복하고 국제주의적 시야와 실천하는 문제는 ‘누구의 것도 아닐 때, 모두의 것이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 달려 있다. 🙊

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참고 자료
1.  이오성, ‘중국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핵심 집단, 누굴까?’, <시사IN>, 717호, 2021.06.17.
2.  LAURA SILVER, KAT DEVLIN AND CHRISTINE HUANG, ‘Large Majorities Say China Does Not Respect the Personal Freedoms of Its People’, Pew Research Center, 2021.06.30.
3.  김용호·김윤호,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 동북아에서 동남아로 인식의 지평 확대’, 아시아 브리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22.01.10.
4.  하남석·김명준·김준호, ‘한국 청년세대의 온라인 반중 정서의 현황’, 현대중국학회 2021년 추계학술대회
5.   Kimmy Yam, ‘Anti-Asian hate crimes increased 339 percent nationwide last year, report says’, NBC
6.  오수진, ‘[아시안 혐오] ① 경제력으로 줄 세우고 혐중 당연시’, 연합뉴스, 2021.05.19.
7. 박민희, ‘한국과 일본 반중정서의 양상과 원인 : 사회·문화·역사’, 현대중국학회 2021년 추계학술대회
8. 김수경, ‘감염병, 이념, 제노포비아: ‘코로나19’의 정치화와 반중(反中) 현상’, 다문화와 평화, 2020.
9.  홍주현·설진아·이종임, 「유튜브 채널에서 코로나19 중국관련 허위정보 확산에 관한 연구: 확산 주체와 정보유형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한국콘텐츠학회, 2021. 2.
10. https://twitter.com/old_xian/status/1322874833915445248
11.  박정수,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문화갈등: 한중(韓中) 간 한류와 반한류의 사례분석’, 『中韩研究』제37권 제1호, 2013년 봄.
12.  VALENTINA PEGOLO(University of Oxford), How K-Pop’s Record Labels Exploit Its “Idols”, Jacobin magazine
13.  안해준, ‘혐중 부추기는 언론, 무엇을 기대하나’, 더피알, 2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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