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 지정학적 논리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영원히 말할 수 없다

역자의 말 : 이 글은 중화권의 정치연구자 한따거우(韩大狗; 가명)의 글 “分離主義”的無奈:脫離民衆的“民族自決”,如何成爲俄羅斯區域霸權的傀儡(‘민중과 유리된 ‘민족자결’은 왜 러시아의 지역패권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가’)를 번역한 후, 우리 시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안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역사적 모순을 배경으로 한다. 미디어는 친서방과 러시아의 대결이라는 단순화된 구도로 응시하지만, 이것으로는 이 전쟁이 왜 발생했는지의 문제나 여러 쟁점들에 대한 물음표들에 답할 수 없다. 이 글은 돈바스 지역의 민족갈등을 다른 ‘얼어붙은 갈등’이 발생한 지역들에 대한 역사 서술과 함께 설명한다. 전쟁의 시급한 종결과 더 이상 무고한 민중들이 삶을 빼앗기지 않길 기원한다. 아래로부터의 반전 운동만이 그 힘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2008년 8월 9일 그루지야에서 트빌리시로부터 80km 떨어진 고리에서 폭격을 받은 그루지야 남성이 친척의 시신 옆에서 울고 있다. (사진: Gleb Garanich/Reuters)

2월 24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우크라이나로의 병력 진입 작전을 진행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는 “정세는 우리에게 단호하고도 과감한 행동을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러시아를 향해 구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독립을 인정하는 이유로 “돈바스 지역(즉,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두 지역) 주민들의 희망과 인상, 그리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꼽았다.

역주 : 우크라이나 정부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무장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2014년 6월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3월 도네츠크 자치권 요구 시위가 발발한 직후 도네츠크 지역 일부를 점유한 러시아 출신 무장집단은 러시아의 네오나치 극우정당인 러시아국민통합(Russian National Unity)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에도 네오나치를 이념으로 삼는 부대가 편재되어 있는데, 바로 악명 높은 아조프 연대(A30B)다. 즉, 2014년 돈바스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네오나치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고, 그 뒤에는 두 나라 정부가 있었다. 파괴된 것은 민중의 삶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을 민족 갈등,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어 사용 인구의 민족주의적 성향으로만 돌리는 것은 현지 문제를 단순하고 평이하게 이해하는 발상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푸틴의 해석이기도 하다. 이런 해석이 의도하는 바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가 민족자결의 원칙에 호소할 수 있게 만들고,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명목상 법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있다.

애석하게도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침공한 이래 푸틴이 구상했던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권역 시민들이 줄지어 러시아군을 환영하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푸틴의 주장은 일련의 간단한 조사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불합리하다는 걸 보여준다. 2016년, 오타와대학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인구의 분리주의운동에 대한 지지율은 고작 12퍼센트에 불과하며, 돈바스 지역에서도 31퍼센트에 그친다. 

역주 : 2016년 『유럽 정치와 사회』(European Politics and Society)에 실린 이반 카챠노프스키(Ivan Katchanovski)의 논문 「The separatist war in Donbas: a violent break-up of Ukraine?」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연방의 일부로서 자치권 획득을 찬성하는 비율은 23%,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와 독립국가의 형성을 찬성하는 비율은 8%, 우크라이나에서 탈퇴하고 다른 국가에 합류하는 선택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2018년에 발표된 컬럼비아대학의 또 다른 연구 논문은 고작 29퍼센트의 돈바스 사람들만 우크라이나의 분리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분명하게 분리주의운동을 반대한다고 밝힌 사람은 52퍼센트를 차지했다. Giuliano, Elise. “Who supported separatism in Donbas? Ethnicity and popular opinion at the start of the Ukraine crisis.” Post-Soviet Affairs 34, no. 2-3 (2018): 158-178.

바꾸어 말해, 만약 푸틴이 전쟁 이후 크림반도에서처럼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더라도 푸틴은 결코 그가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역주 :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는 확실히 비중이 높다. 2001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부 크리미아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어를 모어로 삼는 인구 비중은 70퍼센트를 상회한다. 하지만 이것이 곧 러시아로의 편입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상기한 바와 같이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하여 러시아로의 편입을 지지하는 비중은 29%에 불과했고, 반대한다는 입장은 52%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유럽이라고도 규정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인구 비율 (2001년 인구센서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맹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관세동맹 가맹을 둘러싼 여론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유럽연합보다는 유라시아 관세동맹을 국적 불문 크게 지지한다. 사무엘 차랍(Samuel Charap)과 티모시 콜튼(Timothy J. Colton)의 저서 『Everyone Loses: The Ukraine Crisis and the Ruinous Contest for Post-Soviet Eurasia』에 따르면, 2014년 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각각 73%(도네츠크)와 64%(루한스크)로 EU보다 유러시아 관세 동맹 가입을 선호했다. 이는 중·서부 지역에 비해 26~42% 포인트 더 높다.

돈바스 지역민들의 국적에 따른 유럽연합 또는 유라시아 관세동맹 가입 지지율

따라서 푸틴이 비록 “우크라이나 러시아어 사용 인민의 해방”이라는 구호 아래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오히려 우크라이나 인민 자신의 목소리는 여지껏 나타난 적이 없다. 이번에 푸틴에게 구원을 요청해 러시아 침공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두 정치적 실체(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정권 존립 합법성이 돈바스 지역에서 얼마나 인정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분리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지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고 있다면 분리주의 정권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들의 존재는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일까?

돈바스와 그밖에 러시아 주변의 분리주의 충돌을 함께 살펴보면 이 지역의 ‘민족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이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살펴보면 문제는 ‘민족모순’이나 ‘민족자결’로 표현될 정도로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적 정서가 존재하고 때로는 그 정도가 선명할 때도 있지만, ‘민족자결’은 지배 엘리트나 러시아 쇼비니즘에 의해 지역민을 마음대로 짓밟는 구실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통치 엘리트들은 러시아와 비공식적으로 이익을 교환했고, 이러한 이익 교환으로 인해 현지의 러시아에 대한 물질적 의존은 충돌이 장기화되는 뿌리깊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지아의 ‘얼어붙은 갈등’ : 국가와 범죄집단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 남서부이 인접한 조지아[조지아어로 자국을 지칭하는 토착지명은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sakartvelo)이며, 조지아(Georgia)는 영어 국호이다.]는 돈바스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 독립된 두 개의 정치체, 즉 조지아 북서부 압하지야와 북부 남오세티야를 포함한다. 학계에서 두 지역에서의 충돌은 흔히 ‘얼어붙은 갈등’(frozen conflict)로 묘사된다. 두 나라의 정세가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쟁 양상으로 격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통과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세가 얼어붙게 된 배경에는 지역의 유일대국인 러시아가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를 가한 결과가 작용됐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국 게임’과는 다르게 이런 얼어붙은 갈등은 주류적인 국제 여론이 무시한 비공식 거래와 범죄,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압하지야남오세티야의 분리주의는 소련 붕괴 직전 모스크바 중앙권력의 붕괴를 앞두고 조지아 소비에트 정부가 지체 없이 새로운 국경에서 조지아화 정책, 특히 조지아어 교육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조지아 민족주의자들의 행태는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또 다른 소수민족 지역인 아자라(Adjara)의 민중들에게 불만을 안겨주었다. 더불어 당시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실권을 빼앗기 위해 러시아와 소련의 다른 가맹 공화국 내 자치지역에 “더 큰 권력을 쟁취하라”고 호소했다. 당시 많은 자치지역 정부들이 이에 호응하였고, 그 중에는 이후 옐친에게 크게 성가시게 할 체첸타타르스탄, 조지아 등 3개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1990년 남오세티야는 자치주에서 자치공화국으로의 승격을 자체적으로 선포했다. 이에 맞서 조지아 정부는 남오세티야 자치구 지위 박탈을 선언했다. 압하지야 역시 조지아에 더 큰 자치권을 요구했고, 협상 실패 후 내전으로 치달았다. 1992년과 1994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각각 러시아의 중재로 조지아와 휴전했고, 러시아는 두 지역에 상주부대를 파견했다.

조지아의 분쟁 상황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아자라)

이를 언어정책과 민족신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짜 이야기는 휴전협정 이후 벌어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분쟁에 민족주의적 정서가 더 많이 얽혀 있었다면, 휴전 이후 새로운 국가의 운영과 유지에는 러시아의 보급에 의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소련 붕괴 전 남오세티야의 일자리는 광업(연광·아연광)과 농업에 의존했지만, 압하지야는 농업(특히 헤이즐넛·감귤 등 상업작물의 수출)과 흑해 연안 관광업에 의존했다. 90년대 초 조지아 내전 후 인구의 대규모 방출로 인해 남오세티야의 광업은 더 이상 가동되지 못했다. 압하지야의 관광업 역시 비자 문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신생 독립국가 정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생존의 지혜는 새로운 독립과 함께 도래하는 고립된 환경과 산업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때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정부에게 있어 ‘비공식 산업’은 가장 편리한 답이 됐다. 90년대 이후 남오세티야는 광업을 부흥시킬 아무런 방법을 찾지 못하였고, 수출이 없어 농업에서 얻는 재정수입은 턱없이 적었다. 다행히 남오세티야의 지배자들은 다른 나라들이 원하는 편리한 조건인 교통의 독점을 가지고 있다.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에서 러시아 내 북오세티야 도시 블라디캅카스로 통하는 고속도로 터널은 남오세티야가 조지아와 왕래를 끊은 뒤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는 유일한 통로였고, 남오세티야 사업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코스다. 남오세티야 정부는 이 터널에 검문소를 설치함으로써 정상 관세 외에 공식 명분이 없는 통행료를 많이 받고 있다. 결국 이 통행료는 대부분 남오세티야 주민들의 일상용품의 소비에 의해 전가되었고, 그 수익금은 정부 비용으로 착출되거나 중간에서 몰래 빼갔다. 반면 이런 교통 독점의 이점이 없는 압하지야에서는 반(半)관영 마피아들이 매년 가을마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농민들이 헤이즐넛을 수출하는 차량을 약탈한다. 두 지역에서 정부가 돈을 벌어들이는 또 다른 통로는 마약 판매자로부터 보호비를 받는 것이다. 코카인 무역을 금지하는 것은 현지의 세미-정권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약 판매상과의 협력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조지아-남오세티야 접경 검문 초소의 군인들

조지아와의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분리주의 정권인 두 정권(남오세티야, 압하지야)의 거의 유일한 무역 파트너이다. 이런 무역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극단적으로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러시아는 현지 분리주의 정권을 대대적으로 육성한다. 가스프롬(러시아의 에너지 국영기업)이 조지아와의 천연가스 거래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빚을 독촉할 때, 분리주의 지역들에게는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만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인민이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며, 혹은 이와 같은 혜택마저도 평범한 민중들의 머리 위까지는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 지역은 러시아로부터 생활용품 수입을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정부에게는 독점적인 권력이 부여되고, 이는 동시에 주민들을 옥죄게 된다.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 등에서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러시아 루블과 교환할 수밖에 없다. 현지의 러시아인 고용주들은 루블을 사용해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러시아와 거의 결속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은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줄어들수록 러시아에 의존해야 하고, 러시아에 의존할수록 주변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현지 지배 엘리트들이 러시아와 단일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생활용품과 생산재를 철저하게 독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립된 환경은 대개 저주이지만, 두 지역의 지배 엘리트들에게는 조지아와의 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오히려 현지에 대한 확고한 통제와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 보장 수단이다. King, Charles. “The benefits of ethnic war: understanding Eurasia’s unrecognized states.” World politics 53, no. 4 (2001): 524-552; Lynch, Dov. “Separatist states and post-Soviet conflicts.” International affairs 78, no. 4 (2002): 831-848.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국가를 조직범죄에 비유한다. 틸리에 따르면, 국가가 전쟁을 일으켜 안보위기를 조성하게 되면 국가는 이를 통해 국민에게 보호비(즉, 세금)를 받는다. 그러면 다시 보호비를 활용해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써 국민들에 대한 통제·조세 능력을 강화하고, 전쟁의 위협을 더욱 확대한다. 그리고 이를 이유로 더 많은 보호비를 받는다는 것이다. 비록 이런 문제설정은 현대 전기의 서유럽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이와 같은 국가와 조직범죄의 유비는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의 분리주의 정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분리주의 정권은 전쟁의 위험을 통해 현지 통제를 구축하고 (말 그대로) 보호비를 받는다. 주민들에게 사회서비스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정권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권이 모든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독점한다. 그 때문에 ‘얼어붙은 갈등’ 속에서 전쟁의 위험은 여전히 지역민의 눈 앞에 놓여 있다.

The Battle of Waterloo, by William Sadler II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지역의 민족주의 정서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1990년대 초 조지아 정부의 문화정책이 소수민족 정서의 반등을 초래한 것은 분명 사실이며, 그에 따른 소수민족들의 반발은 정당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개입, 러시아에 의존적인 현지 정권의 육성, 그리고 이들 정권이 조직적 범죄를 통해 현지를 통제하는 수단이 지속적으로 충돌해온 문제는 지역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관건적 요소이다.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것은 1990년대 초반 마찬가지로 민족운동이 일어났던 또 다른 자치공화국 아자라의 경우에는 소련 붕괴 이래 현지 정치인과 군벌 아슬란 아바시저(Aslan Abashidze)의 손아귀에서 상당한 자치를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태 전개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 바로 아자라가 가장 필요로 했던 바깥과의 연계 대상이 러시아가 아니라 터키였다는 점에 있다. 터키가 조지아에 대리정권을 수립하는 데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에 아자라 정세는 무장충돌이나 얼어붙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아자라는 트빌리시(조지아 정부)와의 협상 이후에도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아바시저가 현지 시민들에 의해 전복된 것은 2003-04년 발생한 ‘장미혁명’ 때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 그들은 러시아인이며, 러시아인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몰도바는 구 소련 영토 내 또 다른 분리주의 ‘얼어붙은 갈등’의 사례다. 몰도바 동부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좌안 지구는 역사적으로 결코 특별한 소수민족 밀집지역이 아니었다. 소련 시절에는 철강생산의 요충지였고,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 주로 온 체제 내 일꾼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철강기업 외에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소련군의 주둔지였다. 따라서 러시아어 사용 인구의 대다수는 소련 시기의 당과 국가기구와 신분적 정체성과 일상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련 붕괴의 풍파 속에서도 몰도바는 조지아와 마찬가지로 주체적 민족으로서의 문화주권을 자기 경내에서 재확인하려 했다. 이는 소련의 70년 묵은 러시아 문화패권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러시아어 인구의 이익과 정서를 건드리고 말았다. 결국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남아 있던 구 소련의 주둔군은 공장주들과 함께 현지 정부와 안보기구를 장악하였고, 몰도바가 소련으로부터 독립(1991년 8월)한 후에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다비아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1992년 3월)하고 국기의 좌측 상단에는 아직도 낫과 도끼를 상징물로 내세우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그 때문에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지는 않지만, 압하지야나 남오세티야 못지않게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1992년 러시아군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에 직접 참전했다. 지원군 명목으로 참전하였지만 러시아 관공서에서는 ‘지원군’ 지휘관들에게 대대적으로 승진 포상을 내렸다. 러시아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군사기지를 건설함으로써 몰도바와 철군에 합의했지만, 오늘날까지도 러시아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러시아는 거의 유일한 교역 상대인데, 오직 하나의 예외가 있을 뿐이다. 구 소련의 오래된 공업기지로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2000년대 소총 등 경무기를 만들어 동병상련의 상황에 놓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아제르바이잔 내) 나카 등 다른 분리주의 충돌지역에 수출했다. 루블화는 압하지야나 남오세티야보다 더 잘 유통되고 있으며, 트란스니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1990년대에 오랫동안 러시아 정보요원을 맡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트란스니스트리아 중앙은행은 모스크바의 지도를 받아들였다. King, Charles. The Moldovans: Romania, Russia, and the politics of culture. Hoover Press, 2013.

민족주의 충돌에 대한 연구에서 광범하게 내린 결론이 있다. 바로 자치지역의 경우, 소수민족 인구 비중이든 민족문화간 차이의 정도이든, 분리주의 충돌 내지 내전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것에서 부차적인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평화로운 시대에 중앙정부가 이 지역에 부여한 자치권이 클수록 위기가 도래하며, 국가주권이 훼손될 때 그 지역의 충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Cornell, Svante E. “Autonomy as a source of conflict: Caucasian conflicts in theoretical perspective.” World politics 54, no. 2 (2002)

하지만 실제로 이 결론은 “관련성을 인과관계와 동일시한다”는 논리적 오류의 단적인 예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사례는 바로 이 관점의 오류를 말해 주고 있다. 소련 시절에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자치지역이 아니었지만, 소련 붕괴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함으로써 결국 전쟁을 통해 지역을 접수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군대 퍼레이드 행사

사실에 보다 가까운 해석은 평화로운 시기에 중앙정부가 부여한 자치권이 클 수록, 현지의 상층 통치 엘리트들이 향유하는 정치·경제 자원은 더 커지고, 지역 통치자에 대한 현지인들의 의존성도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위기가 도래하여 외부와의 연계가 단절되면, 이런 지방 통치 엘리트들은 더욱 빠르게 통제권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현지 인민들은 별다른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그저 통치 엘리트들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비록 공식적인 자치권이 없긴 하지만 제철소의 경영주가 장악하고 있는 현지 경제 명맥과 잔류한 소련 주둔군이 보증한 군사권력을 잃진 않을 것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러시아어 사용인구의 러시아 민족 동일시는 (어쩌면 소련이 인정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진지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대다수 보통 주민들에게는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선택의 권한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동일시’는 일종의 자주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삶의 형편에 대해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현지인들의 의식주와 매우 낮은 수입은 모두 현지 통치자들과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러시아 정부)가 함께 묶어두고 있으며, 민족과 국가의 동일시는 종종 하나의 기정사실로서 그들 앞에 놓여 있다. 그들에겐 이미 선택된 길을 선택하는 것말고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우크라이나를 돌아보다

크림반도 위기가 폭발하기 몇 년 전인 2010년대 초까지 우크라이나는 주류학자들에 의해 소련 해체 이후의 민족주의 충돌의 불씨를 안정적으로 넘겼다고 여겨져 왔다. 이와 같은 판단의 근거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인”이 결코 하나의 안정적인 ‘민족’으로 동일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에 따라 신분 집단을 구획하는 것은 확실히 지나치게 단순하다. 실제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인’이라는 분류가 생겼다는 것은 그 안에 모종의 우크라이나 정체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어쨌든 신분에 관한 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러시아인’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있어 선택할 수 있다. 돈바스 지역과 키이우 사이에 여러 가지 이견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경제 상황이 최악이고 정세 역시 심하게 동요하는 90년대조차도 우크라이나를 연방제로 바꾸고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수용해달라는 요구는 요원한 호소에 그쳤다.

전쟁 폭발 이후의 오늘, 나는 이 연구가 현실과는 유리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동부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쓰는 지역인 하르키우(러시아어로는 ‘하리코프’)주에서 우크라이나 정체성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돈바스 지역에서도 러시아 민족주의가 약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민중의 생각이 어쩌면 충돌 예측에 대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돈바스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될 것인지, 전쟁을 할 것인지, 분리주의 정권이 지속될 것인지는 현지의 평범한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아가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 크리미아(크림반도)에서의 민족주의는 일정한 합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권력자가 부패하고 러시아 세력이 침투해들어오지만, 어쩔 수 없이 강요된 민의도 민의라 할 수 있고, 정권에 일정한 합법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바스에서는 이런 일말의 합법성마저 사라져버렸다. 광업이 발달한 돈바스는 소련 붕괴 이후 국영자산의 사영화 과정에서 심각한 부패 문제가 발생해 현지의 친러 과두세력이 오랫동안 정치와 경제를 장악해왔다. 이곳의 권력 집중은 정경유착의 ‘돈바스 파벌’의 수중에 있으며, 이 때문에 학자들에 의해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비민주적이며 가장 어두운 지역”이라고 여겨진다. Kuromiya, Hiroaki. “The Donbas: The Last Frontier of Europe?” In Oliver Schmidtke and Serhy Yekelchyk (eds.). Europe’s last frontier?: Belarus, Moldova, and Ukraine between Russia and the European Union. Palgrave, 2016.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은 인민이 아니라 푸틴에게 의존하는 과두파에 의해 존재해왔다. 여론조사 결과는 푸틴이 말하는 ‘민족자결’이 허울에 불과하며, 벌거벗은 제국주의 권력투쟁의 민낯을 드러낸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를 해방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우크라이나 정부에 불만이 많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러시아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해온 모든 것은 그저 우크라이나 민중에게 채워진 쇠사슬을 더 강하게 죄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는 러시아가 항상 주변 지역에 종속적인 분리주의 정권을 육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사를 진술하는 것이 분리주의 지역들을 러시아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소련 해체 이후에 가장 진실되고 격렬하게 민족주의를 표출한 지역은 러시아 내부의 체첸 지역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들 지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세의 동요에 직면하여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꼭두각시’가 될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게다가 약탈적인 통치자나 제국주의적 야망을 지닌 강대국(러시아)의 존재는 이러한 분리주의 지역만 지닌 특별한 요소도 아니다. 주권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이나 벨라루스, 중국, 러시아이라한들 어느 평범한 민중이 ‘꼭두각시’가 아닐 수 있겠는가. 지배자들은 조직적인 범죄를 통해 만들어온 통치를 통해 사람들을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지정학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나 말할 수 없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돈바스에 사는 평범한 민중의 생존 체험에 대한 신뢰할 만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충돌이 일어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고, 몇몇 지역의 얼어붙은 갈등도 오래되었으나, 깊이 있는 탐구는 턱없이 적다. 2000년대와 2010년대의 지난 연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이는 국제학계의 무지와 오만을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이 시각에 대한 관심이 매우 부족하고, 특히나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오지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결핍은 그 자체로 현지인들의 생존의 험난함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말은 이미 물렁해진 말이지만, 우리는 그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 오랫동안 지배받아온 사람들과 이른바 ‘국가이익’이 박해해온 평범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지정학적·전략적 게임을 원치 않는다. 민중들에게 있어 전략가들이 국가를 내세워 하는 모든 일은 모욕이자 학살일 뿐이다. 🍀

글 : 한따거우 韩大狗
번역 : 홍명교


#플랫폼C #월례포럼 “전쟁은 이제 그만!”✊🏾🔥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세계대전의 위협이 점증하는 가운데,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민중이 집을 떠나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시민들은 푸틴의 침공을 규탄하고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해 연일 반전 시위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만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체포됐다고 합니다. 3월 월례포럼에서는 이 전쟁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고, 한국에서 반전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일시: 2022년 3월 27일(일) 오후2시
🎈장소: 서울 망원동 플랫폼C + ZOOM ONLINE
🪑참가: https://bit.ly/stop-ukraine-war
💸참가비: 5,000원 (플랫폼c 회원은 면제) | 우리은행 1005-203-964648 플랫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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