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인신매매의 소리없는 희생자, 일대일로 시대의 이주노동

글쓴이의 말 : 이 글은 China Labor Watch 보고서(SILENT VICTIMS OF LABOR TRAFFICKING: CHINA’S BELT AND ROAD WORKERS STRANDED OVERSEAS AMID COVID-19 PANDEMIC)와 펑파이신문(澎湃新闻) 쉬잔화(许振华)의 르포 기사 困在印尼苏拉威西岛的中国工人를 토대로 해설을 덧붙여 작성했다. 이 연구보고서는 아시아·유럽·중동·아프리카 등에 위치한 일대일로 연선 국가 8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진행한 SNS 메시지와 전화 통화, 이메일을 통한 소통으로 구성됐다.

얼마나 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나?

중화인민공화국 상무부가 발간한 자료 「중국대외노무합작발전보고(中国对外劳务合作发展报告)」에 따르면 2018년 12월 말 기준 중국의 해외노동협력기업은 연인원 951만4000명의 노동자를 해외에 파견했다. 그해 연말 해외에 있는 중국인 노동자의 수는 997,000명이었다.

해외송출 중국인 노동자 수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통상 해외에 나가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의 상당 부분을 고향으로 송금하는데, 이 돈의 액수가 해외 노동자 수를 잘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인도(송출 노동자 1,700만 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송출 노동자의 임금을 송금받는 나라다. 송출 노동자들은 현대판 노예제와 같은 환경에서 일한다. 학대와 착취, 계약 위반, 임금 체류, 저임금, 암울한 노동 조건, 극심한 차별, 문화적인 갈등, 법적 보호의 결여, 사회·정치적 배제 등 무수한 벽 앞에 직면해 있다. 

중국 대륙 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연구 및 조사 활동을 펼쳐온 중국노공관찰(中国劳工观察)은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해외에 나가있는 약 100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대상자 대부분은 관광 비자나 비즈니스 비자를 받고 현지에서 일했는데, 이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방식이라서 정부 통계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100만 명이라는 공식 집계 바깥에 위치한 송출 노동자들의 숫자는 가늠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출국 전 노동자들은 좋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약속받는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고용주들은 여권을 압수하고 “일찍 떠나려면 계약 위반에 대한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이는 몇 달치 급여에 해당한다. 취업 비자를 받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그들이 겪은 노동권 남용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취업비자를 받는 노동자도 고용주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고, 노조나 파업을 조직할 권리도 없다.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지만 법률의 보호를 받기도 어렵고, 강제노역을 부과하는 기업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이후 중국 정부는 귀국 비행기편을 제한함으로써 매우 엄격하게 여행을 제한했다. 이러한 방침은 항공료 급등을 불러왔고, 연쇄적으로 중국 귀국 항공편을 더 크게 제한했다. 결과적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 하의 수백 개 현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해외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연이은 사업장 폐쇄와 실업, 빈곤에 시달려온 노동자들은 이제 귀국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렸다. 이들 중 대부분은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PCR 테스트와 코로나19 항체 검사를 모두 통과할 수 없다. 기업들도 중국 출신 직원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귀국을 막는 경우가 다반사다. 업무 중 재해를 입은 일부 노동자들은 이동 제한과 의료서비스의 결여로 치료받지 못하기도 하고, 일터와 기숙사는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사진출처 AFP
일대일로 구상과 중국 해외송출 노동자 인권침해

노동자들은 사측 관리자부터 여권을 빼앗기거나, 채용 브로커에 의해 구속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임금을 강탈 당하는데, 많은 노동자들이 비슷한 문제에 노출되고 있다. 이것이 ‘강제노동’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불행히도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이나 정상적인 근로기준의 룰을 위반 당했을 때 주재국의 대사관·영사관에 연락을 취하고, 그 덕분에 대사관·영사관은 송출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각 대사관은 노동권에 대한 위반을 감시하고 추구할 만한 의지도, 인원과 자금도 갖고 있지 않다.

2013년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구상(Belt and road initiative)을 제안했다. ‘전략'(strategy)이라 불러 마땅한 이 ‘구상’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지정학적·지경학적으로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belt’는 중국을 관통해 중앙아시아―동유럽으로 뻗어나가는 육지 회랑을 말한다. ‘road’는 중국―동남아시아―아프리카/중동의 항구들 간 해상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 야심찬 계획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3분의2 이상의 국가들을 포괄하는데, 주로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위치한 개발도상국들이다. 대규모 인프라 건설,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개발, 운송, 경제자유구역과 산업단지 등 산업 건설, 투자 및 기타 무역 활동을 통해 세계에 대한 베이징(중국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부와 기술을 활용한 시장 창출만이 아니라, 저렴한 인건비의 노동자(특히 ‘농민공农民工’)를 착취하는 중국식의 발전모델마저 수출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은 고용주로부터 여권을 억류 당하기 일쑤다. 그 때문에 현지에서 고립된 채 살 수밖에 없고, 빚과 추방으로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합법적인 취업 비자, 교통·의료 서비스를 누리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인신매매와 강제징용 피해자라는 점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해도 곤경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일대일로 사업의 신규 프로젝트들 다수가 포진해 있는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역사적·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포괄적인 노동력 인신매매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주재국들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범죄를 예방하는 형사 사법제도를 결여한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에게 개인 안전에 대한 보호, 법률 지원, 임시 대피소,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에는 자원이 부족하다.

중국 정부는 해외 중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도 부족하다. 중국의 노동법과 노동계약법은 해외에서 아무 효과가 없다. 2008년 중국 정부기관 개혁 이후 해외송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기능은 노동사회보장부에서 상무부로 넘어갔다. 하지만 상무부의 주요 업무는 노동보호가 아닌 경제와 무역에 관한 업무에 국한된다. 중국에는 해외송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부기관이 따로 없고,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에는 해외근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도 없다.

노동자 인신매매에 대한 충분하고 효과적인 자료도 부족하다. 1997년 형법에 따르면 여성과 어린이만이 법적으로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성인 남성의 납치와 착취는 인신매매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중국 형법은 성인 남성을 강제징용한 사람 중 고의로 상해를 입히거나 불법 감금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에만 유죄를 선고하고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현실에서 현지 경찰 등 형법 집행기관의 개입 없이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증거를 수집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사진·영상 같은 증거를 모아 노동권 침해에 맞서려고 시도하거나, 다른 노동자와 함께 행동하려다 적발될 경우, 사업주로부터 빈번하게 경고를 받기 때문이다. 주재국이든 출신국(중국)이든 가해자를 조사·기소·유죄판결을 내릴 만한 형사 사법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피해자 중심의 예방·보호·보상 메커니즘도 없다.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의 침체로 중국에서는 특히나 건설업 부문이 심각하게 둔화됐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가난한 농민공들 역시 그만큼 늘어났다. 농민공의 일자리 복귀가 지체되면서 귀향한 농민공들의 외지 취업비율은 전년 동기대비 감소했고, 일부 농민공의 경우 코로나19 초기에 도시로 돌아왔지만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문제는 본국에서든 주재국에서든 모집업체-하청업체-고용주에 의한 지속적 착취에 갇힌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브로커에게 채용 수수료와 보증금을 헌납해야 하고,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는 불법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 취업비자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노동권 남용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고, 노동비자를 받는 노동자든 아니든 자신의 고용주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다. 즉,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당연하겠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파업을 조직할 권리도 없다. 집에서 수만 마일을 벗어나 외국에서 일하기 위해 온 노동자들이 임금 체류와 여권 압수, 강제적인 초과근무, 의료서비스 제한 등 상황에 직면할 때, 사회적 보호를 구하고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힘은 심각하게 제한된다. 더구나 중국 정부의 엄격한 항공편 제한은 송출 노동자들의 귀국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1998년 중국 정부가 조인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2조 4항에 따르면, “누구도 자국에 입국할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팬데믹 초기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발이 묶였을 때, 중국 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여행 제한 조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중국에게 매우 제한된 항공편을 제공하면서 항공료가 급등하게 만들었다. 해외송출 중국인 노동자들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 발이 묶여 실직과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달, 해외 중국인 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는 소셜미디어 상의 글, 사진, 댓글이 빠르게 검열되었는데, 이로 인해 바깥에서는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박탈된 권리

농민공들의 상당수는 학력이 낮은 편이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농민공 중 학력이 없는 사람은 1%, 소학교 졸업은 14.7%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중학교 졸업이 55.4%으로 가장 많았다.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글을 쓸 때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일터에서 학대를 당했을 때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체류국의 언어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의사소통을 하거나 도움을 구할 수 없다. 이들은 주로 노동공급 대행업체나 하청업체에 고용되어 숙식을 제공받는데,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고용주가 아무런 근거 없이 “비싼 항공권 가격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답변하면, 그들은 남아서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는 매우 비일비재하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은 채용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속아서 해외로 오기도 한다. 사업주는 약속한 임금과 노동보호 장비를 지급하지 않기 일쑤다. 용역업체 역시 노동자들을 위해 합법적인 취업비자를 신청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체류국에 도착한 후에야 자신의 비자가 관광 비자나 비즈니스 비자이고, 이로 인해 ‘불법 취업’ 상태로 왔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한 푼도 못 받고 추방당할까봐 두려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심지어 근로계약이 끝나 귀국할 때 단기관광비자나 비즈니스비자는 이미 만료됐을 것이기 때문에, 출국 허가를 받기 전에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 하기도 한다.

술라웨시섬으로 송출된 노동자들의 귀국을 요구하는 캠페인

사업주들은 아예 근로계약을 맺지 않거나, 맺더라도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항을 기대한다. 가령 “노동자가 제공하는 근로계약서 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갑이 업무상 부상을 입었을 경우, 을은 갑이 인정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의사의 소견서를 받은 뒤 휴직할 수 있으며, 기본급만 지급된다. 노동자가 질병이나 재난, 기타 사유로 일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을에게 발생하는 어떠한 상해나 사망, 질병, 장애와 관계없이 을의 가족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출국한 고인을 위한 준비를 요청할 수 없으며, 갑은 모든 것을 현지 관습에 따라 처리한다.”

이동 제한과 고립

싱가포르에서도 노동자들은 단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현장 출입문에는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데, 노동자들은 관리자나 통역원의 허락과 동행 없이는 외출할 수도 없다.

알제리에서 현지 수도 및 난방 인프라 건설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 A씨의 경우를 보아도, 이런 처지를 잘 알 수 있다. 후난성 정저우 출신의 A씨는 구인광고에 이끌려 아프리카 알제리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린시(林錫)건설사에 여권을 강제로 뺏기고 말았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10시간씩 일해야 했으며, 매달 5~6천 위안(85만~102만 원)을 받았다. 알제리인 노동자들보다는 많이 받지만, 중국 내 건설현장 임금 수준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가 이직하려고 하자 관리자는 그에게 2~3만 위안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협박했다. 2021년 초 춘절 연휴에 40여 개의 노동NGO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하자, 비로소 타협점을 찾기도 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들은 대개 머나먼 타국 외딴 지역의 중국 기업들이 소유·운영하는 신설 산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노동자들은 휴일 없이 장시간 일을 하기 위해 기숙사에 거주한다. 그들의 하루는 기숙사와 건설 현장 사이에서 보낸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가족과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위챗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부와 접촉할 기회 자체가 없다.

2018년 6월 3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중국인 건설노동자들. 사진출처 애덤 딘/뉴욕타임스
물리적 폭력과 협박

일부 철강·광업업체에서는 노동자들이 불복종 저항이나 파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사측과의 분쟁으로 회사 경비 노동자들에 의해 감금과 구타를 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중국 철강기업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구타가 횡행한데,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 B씨는 작업복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관리자로부터 뺨을 반복적으로 맞기도 했다.

협박과 위협도 노동자 통제에 빈번하게 발생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위협으로는 추방, 귀국 후 보복, 높은 벌금 등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에게 고소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강요하고, 노동자의 핸드폰에서 노동권 침해 증거를 삭제하도록 강요한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대형 철강회사에서 일한다고 밝힌 노동자 C씨는 작업 도중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그날 밤 사측 관리자가 위챗 단체채팅방에서 그를 태그하면서, “오늘 철골 구조물 설치할 때 떨어진 사람이 누구지?”라며 묻고는, C씨가 어느 하청업체 소속이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캐물으며 잠재적인 트러블메이커를 가려내려 시도했다고 증언히기도 했다.

중국노공관찰이 인터뷰한 약 100명의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사측으로부터 여권을 압류당했다고 밝혔다. 통상 송출 노동자들은 일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권을 빼앗긴다. 이따금 가족 중에 누군가 사망하거나, 업무 중 재해를 당하는 등 긴급한 상황이 벌어져 노동자가 귀국하기를 간절히 바라더라도,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다.

요르단으로 떠난 노동자 D씨
요르단 아타라트 셰일연료 발전소

요르단으로 떠난 노동자 D씨도 그런 경우다.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요르단 아타라트 석유 셰일연료 발전소(The Attarat oil shale-fueled power plant) 일을 소개받은 D씨는 2019년 12월 요르단에 도착했다. 현지에 도착해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는 말만 믿고 요르단으로 온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권을 빼앗겼고, 근로계약서는 쓰지도 못했다. 그가 귀국하겠다고 하자 사측은 돌아가려면 8,000위안(150만원)을 지불하라고 협박했다. 당연히도 D씨는 요르단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사막 한복판에 얇은 철판으로 만든 임시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너무나도 더운 나머지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4개월 넘게 일했지만, 첫 주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한 그는, 고향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생활비를 받거나 동료들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자 노동자들은 요르단 정부에 의해 작업장 점검이 이뤄질 때까지 아무런 방역 장비도 제공받지 못했다. 일주일에 단 한 개의 마스크를 제공받을 뿐이었다.

2020년 4월, 공정이 마무리되자 현장 노동자들은 약속대로 귀국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이 현장 사무실로 달려가 중국인 관리자들과 대치할 때마다 현지의 요르단인 경비노동자들이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쫓겨나야 했다. 사측은 관광비자를 받고 온 노동자들을 향해 요르단 정부 이민국 직원을 불러 체포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D씨를 비롯한 동료 노동자들이 별 수 없이 중국 대사관 앞으로 달려가 항의하고 절규했다. 하지만 얼마 후 노동자들은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현지 공안당국이 “당신 가족이 요르단에서 계속 시위에 참여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것이며, 다시는 귀국할 수 없게 할 것”이라는 경고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매주마다 요르단 내 중국 대사관 앞으로 가 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넉 달에 걸친 시위 끝에 노동자들은 결국 전세기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게 2020년 8월 중순이다. D씨에 따르면 요르단 아타라트 발전소 현장에는 여전히 300여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남아있다. 그들 역시 귀국을 열망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요르단 아타라트 셰일연료 발전소는 중국의 국영은행 공상은행과 중국은행이 16억 달러 전액을 출자한 대형 프로젝트다. 중국건설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도 이 프로젝트에 대출을 제공했다. 이는 요르단 민간 인프라 프로젝트를 위한 중국 최대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시진핑이 시작한 ‘일대일로 구상’에 부합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조달, 건설 계약은 중국 에너지 엔지니어링 그룹 계열사인 광둥발전공업이 수주했다.

요르단에 갇혀 항의시위를 벌였던 노동자들이 사측의 강요로 쓴 각서
임금 체불과 채무 속박

임금 체불도 다반사다. 요르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E씨는 사막에서 5개월 동안 일했지만 일을 처음 시작한 6일 동안만 급여를 받았다. 알제리의 인프라 건설 사업에 투입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F씨를 비롯한 동료들은 2019년 완공을 앞둔 상황에서 남은 정비 및 설치를 위해 현장에 남겨졌다. 그들은 사측이 미지급한 6개월치 월급을 주지 않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에 사측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한데 이들은 임금 지급을 약속한 관리자의 퇴사로 16개월째까지 임금을 받지 못했고, 밥을 사먹을 돈도 없어 동료들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투입된 수십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에게서 이와 같은 임금 체불은 비일비재하다. 근무를 시작한지 처음 두 달 동안은 숙식만 제공되고, 3개월차에 접어들어서야 첫 달치 월급이 지급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6개월에 한 번씩, 혹은 그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몇 달치 일만 하고 귀국하는 걸 봉쇄하기 위해서다.

해외로 일하러 떠날 때 노동자들은 약 1천 위안에서 1만 위안 가량(약 155~1,550달러)의 수수료를 브로커에게 건넨다.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가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도착하자마자 빚이 생겼다는 말을 사측으로부터 듣는다. 통상 고용주들은 “위약금”이라고 부르는데, 노동자들이 이 빚 또는 위약금을 갚을 수 없을 경우 귀국할 수 없고, 아무런 임금도 없이 몇 달 동안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알제리에서 일하다가 앙골라로 떠난 한 노동자 G씨는 알제리를 떠나기 전 1만7천 위안(한화 약 310만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사측에 물어야 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또 다른 노동자 H씨는 알제리에서 5개월 동안 일해야 했다. 모두 합쳐 2만6000위안(약 48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했지만 위약금 공제 후 고작 1,800위안(33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노동자 I씨는 6개월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강제 노동을 당했다.

이런 조기 복귀에 따른 위약금은 사측이 책정한 부채 함정인데, 일반적으로 5~6개월치 월급에 해당한다. 코로나 유행 기간 동안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위치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 가격은 최대 10배까지 올랐다. 전세기만 남은 일부 항공편은 이보다 더 비싸다. 많은 고용주들은 노동자에게 약속된 왕복 항공권 지급을 거부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2~3만 위안(약 360만~480만원)의 빚을 더 진다.

학대와 생활환경

작업 현장의 노동 안전도 매우 열악하다. 노동자 J씨는 건설 현장의 높은 곳에서 떨어진 망치에 맞아 허리가 마비되는 산재를 입었다. 보호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로 일하던 K씨의 경우엔 눈을 다쳤고, L씨는 공사장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다가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일대일로 건설 현장에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유로 많은 노동자들이 제때 치료조차 받을 수 없다. 일부 노동자들은 치료를 위해 귀국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치료되지 않은 업무상 재해가 점차 악화되면 영구적인 신체 장애를 입기 마련이다.

2020년 11월, 인도네시아 웨다베이(Weda Bay) 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화물트럭에 치여 사망하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제공한 영상을 보면, 관리자가 영상 촬영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당장 촬영을 멈춰!”라고 소리치는 걸 들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웨다베이 산업단지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는 일터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지거나 다치더라도, 현지의 중국 기업 관리자들은 병원에도 가지 못하게 한다. 그저 처방전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소염제를 건네줄 뿐이다. 노동자들은 이동수단이 없고, 현지 언어도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병원에 갈 수 없다. 2020년 11월 인도네시아에 있는 중국 광산업체 직원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비어있는 기숙사 방에 20일 넘게 아무런 치료 없이 격리 수용된 적도 있다. 며칠 후 동료들이 기숙사 안에서 싸늘하게 식은 그의 시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싱가포르에서도 최소한 세 명이 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장쑤성 출신의 노동자 구전페이(51세), 안후이성 페이둥현 출신의 우리위(41세), 역시 장쑤성 출신의 노동자 양샤오레이(楊小磊) 등이다. 양샤오레이 씨는 격리된 방에서 숨진 후 이틀 뒤에야 발견됐다.

강제적인 초과 근무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다양한 핑계를 댄다. 심할 경우 하루 12시간, 1년 365일, 쉬는 날도 없이 일을 시킨다. 계약 전 맺은 노동시간에 대한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추가근무를 강제로 시키는 문제도 만연하다. 팬데믹 기간 많은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이 만료되었지만, 고용주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에서 온 대체 노동자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일을 시킨다.

노노 갈등 유발

매일같이 강제로 주입하는 세뇌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의 저항 의식을 무마시키기도 한다. 2020년 가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노동자 총파업 투쟁 과정에서 현지의 중국인 노동자들은 사측으로부터 쇠파이프를 할당받고,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노동자 K씨는 현장 노동자의 50~60퍼센트는 사측이 주입하는 애국주의 교육에 세뇌당했고, 많은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공포에 떤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경우 귀국 후에 문제가 될까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의 중국인 노동자 추방 요구 시위

옴니버스법(노동법 개악)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던 2019년 자카르타에서는 여러 차례 중국인 노동자 추방 요구 시위가 열렸다.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논리에서 촉발되었지만,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반중 감정과 더불어 온갖 가짜뉴스의 유포가 낳은 산물이었다. 하지만 중국 자본은 이에 대해 내내 무관심했으며, 중국인 노동자들을 노노 갈등과 충돌의 현장으로 내몰 뿐이었다.

브로커에 의해 이리저리 팔려나가는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종종 브로커나 하청업체에 의해 재판매되기도 한다. 가령 중국건설 제2엔지니어링국이 계약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일하던 노동자 M씨는 다른 동료들이 모두 브로커와 개별적으로 계약했고, 직접 고용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M씨 역시 두 차례에 걸쳐 다른 현장으로 팔렸는데, 그럴 때마다 임금의 일정 비율을 소개비조로 브로커에게 바쳐야 했다. M씨가 받은 돈은 월급 전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충처리 체계의 결여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건설현장이나 밀폐된 산업단지에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를 감옥에 비유한다.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고용한 사측 관리자들과 경비원들, 동료들 뿐이다. 이동의 자유도 없고,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거나 접촉을 시도하는 NGO도 없다. 이들의 일터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나 NGO 활동가들조차 중국 기업이 참여한 현장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따금 활동가들이 사측과 접촉하면, 사측은 항상 이 노동자들이 모두 하청업체에 의해 채용됐으며, 자신들은 이들의 채용이나 노무관리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거짓말한다. 간접고용이 감추는 이러한 현실은 노동자들의 생존과 권리를 더더욱 심각하게 침해하는 제도적 구멍이다.

대사관조차 무관심

열악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이따금 현지의 중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여권이 업체에 의해 압류됐다고 신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사관 측으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개입 권리가 없으니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라는 말 뿐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작업 현장 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나가더라도 언어 장벽에 부딪힌다. 더구나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관광비자로 온 이들의 존재는 현지 경찰에게 ‘추방의 대상’으로 간주될 뿐이다. 경찰이 피해를 호소하는 신고자들에게 법적 노동자 지위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역으로 구속하거나 막대한 벌금을 물기 때문이다.

의사표현의 자유 없음

인도네시아의 한 중국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N씨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사측이 취한 조치는 둘 뿐이었다. 발열 증상이 있는 노동자들을 격리하고, 현장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소식이 외부로 퍼져나가지 않도로 차단하는 것뿐이었다. 소셜미디어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동료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라는 공고도 내려졌다. 노동자들은 위챗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된 소식을 올리거나 메시지를 보냈다가 스마트폰을 압수당할 것이 두려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설사 노동자들이 개인 계정을 통해 코로나와 관련한 게시글을 올리더라도 이 내용은 몇 시간만에 삭제되었다. 한 번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해온 한 활동가가 특정 회사명을 거론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는데, 얼마 후 그는 중국대사관과 사측 관리자로부터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끊으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밀입국배를 타고 탈주하다

이와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도전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귀국을 요구하는 시위, 노동권 침해에 맞선 저항 끝에 탈주를 택한 노동자들도 있다. 지난 12월 13일 펑파이신문(澎湃新闻)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 갇혀 있다가 밀입국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술라웨시섬 모로와리(Morowali) 니켈 광산단지에서 일하던 황궈먼(黄郭蒙) 씨 등 다섯 노동자들은 회사와 대사관 등을 향한 자신들의 청원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참다 못해 밀입국 알선업자를 찾았다.

동남아시아 일부 지도 : 파란색 표시는 말레이시아 조호르, 빨간색 표시는 인도네시아 큰다리, 초록색 표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9월 19일, 다섯 노동자들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인신매매조직(蛇头)을 통해 불법 선적을 타고 말레이시아 조호르(Johor) 해안가에 도달했다. 현지 군에 의해 체포된 이들은 몇 달간 출입국관리소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12월 24일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2021년 5월, 브로커를 통해 인도네시아로 온 이들은 앞서 소개한 온갖 고난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메모리얼대학 공중보건·인문학과의 샨더사이(单德赛) 교수는 펑파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권 압류는 노동 강요, 인신매매 등 형사 범죄의 소지가 있으며, 자본의 단골 수단”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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