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좌파에 대한 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 내 논쟁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는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사회운동 조직이다. 버니 샌더스 대선 도전으로 확산된 사회주의 열풍을 통과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조직 규모가 10배 이상 확장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국 내에도 널리 알려진 편인데, 지난 2020년 2월(플랫폼C가 공식적으로 설립되기 3개월 전) 플랫폼C는 DSA의 회원이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선철 연구활동가를 초대해 ‘미국의 사회주의 열풍과 기후정의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6600DSA와 미국의 기후정의운동에 대해 설명 중인 김선철 기후정의활동가

전 세계에 군사력을 투사하여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사회운동은 어떤 고민의 토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국제연대를 실천하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최근 DSA 내부에서 벌어진 논쟁 양상을 통해 미국 사회운동좌파의 국제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어 과열된 양상을 보였던 이 논쟁을 검토함으로써 ‘국제연대’의 구체적인 형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미국 내부에서 사회운동의 역할이나 사회주의 체제이행을 이해하는 방식 등에 대한 고민을 살펴볼 수 있다. 나아가, 국제주의 실천의 양식과 이념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시사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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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A는 격년에 1회 대의원대회를 개최한다. 지난 2021년 8월1일부터 8일까지 한 주 동안에도 대의원대회를 열었다. 대의원대회에서 안건 중에는 차기 회기까지 어떤 활동에 집중할 것인지를 문서로 형식화하는 결의안이 있는데, 이번에 논쟁이 크게 이뤄진 안건은 14번 결의안(Committing to International Socialist Solidarity)이었다. DSA의 국제연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위원회(IC: International Committee) 운영위원회와 사무국이 제안한 ‘14번 결의안’을 살펴보면 크게 네 개의 핵심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해외 선거들에 우선적으로 선거 참관인원을 정기적으로 보낼 수 있는 절차를 구축할 것. 둘째, 타국 대중정당들과의 교환프로그램 개발 개시. 셋째, 라틴아메리카 좌파 대중정당[mass party]들과 관계를 맺어, 그 정당들의 활동가들이 DSA 지역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거꾸로 DSA 회원들이 교류하는 당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 넷째, 상파울루포럼(SPF: São Paulo Forum)에 가입 신청할 것 등이다.

여기서 상파울루 포럼이란, 1990년 브라질 노동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이 상파울루에서 개최하기 시작한 포럼으로, 매년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좌파정당 및 조직들을 초대해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는 공간이다.

위의 네 가지 내용에서 논쟁이 이뤄진 것은 둘째와 셋째에서 “대중정당”이라는 표현, 그리고 넷째 ‘상파울루포럼 가입 신청 여부’였다. 

먼저 ‘대중정당’이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지금의 DSA 국제위원회는 2019년도 대의원대회에서의 결의를 통해 구성되었다. 국제위원회 활동과 구성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자는 것이 골자였다. 또한 여기서 관계를 확립해야 하는 조직들이 제시되기도 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조직과 노동계급단체들, 특히 대중적 성격을 지닌 조직들로 설정된 바 있다. 한데 이견을 제시한 활동가들은 이번 2021년 대의원대회의 ‘14번 결의안’에서 대중정당[mass party]이라고 명시한 것은 이전 결의안에서 짚은 조직들보다 그 범위가 축소되기도 했고, 동시에 ‘사회주의’나 ‘노동계급’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DSA의 지향과 맞지 않은 집권 정당과 관계맺을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2018년 쿠바에서 열린 상파울루포럼São Paulo Forum

비판자들의 대표주자 댄 라 보츠(Dan La Botz)에 따르면, 브라질 노동당[PT]은 집권을 위해 우익정당들과 연정을 꾸림으로써 부패스캔들을 맞닥뜨린 바 있고, 이로 인해 발목이 잡힌 바 있다. 나아가 노동조합과 빈민의 지지만이 아니라, 고도금융이나 대형 건설사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고, 자본주의 체제를 확장했다. 이런 포지셔닝은 호황기에는 사회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브라질의 석유와 철, 대두 가격이 폭락하자, 긴축정책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따라서 브라질 노동당의 이와 같은 방향 선회에 비판적이었던 당원들 중 제명당한 일부가 사회주의자유당[PSOL]을 창당하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현재 20만명 정도의 당원과 9명의 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라 보츠는 이들 역시 노동당처럼 대중정당이지만 보다 급진적이고,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그런데 제시된 14번 결의안에 따르면 노동당보다 덜 대중적이라는 점 때문에 관계를 형성할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라 보츠는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PSUV]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충분히 변화시키지 못하였고, ② 석유 수출에 과도하게 기대 사회복지정책을 펼쳤으며, ③ 그 결과, 경제위기 이후 긴축정책을 펼치고, ④ 부패와 권위주의에 점철되었다고 지적했다.

상파울루포럼 가입에 반대하는 논리도 이와 비슷하다. 상파울루포럼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한 바 있는 라 보츠에 따르면, 이 포럼은 집권(또는 집권했던)정당들 중심으로 포럼이 진행되기 때문에 오류에 대한 자기비판이 이뤄지지 않는다. 자신들의 통치(경험)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 제국주의에만 책임을 넘기는 논의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DSA가 상파울루포럼에 가입하게 되면,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집권정당에 대해 비판적인 대안사회운동세력이나 미국으로 이주해온 라틴아메리카 동지들과 관계맺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을 했다. 따라서 라 보츠 등의 비판은 ‘14번 결의안’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라기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보하기 위해 토론에 부쳐야한다는 것이었다.

한데 이러한 비판은 상당한 반발에 부딪혔다. 먼저, “상파울루포럼은 포럼일 뿐이라서 공통의 입장이나 행동강령이 강제되는 것이 아니”며, 포럼 가입은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지역의 사회운동들과 교류를 시작하기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는 반박이 제시됐다. 실제 상파울루포럼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집권 좌파정당들 뿐만 아니라, 의회 내외에서 활동하며 정권을 비판하는 다른 좌파정당들도 가입되어 있다. 가령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모랄레스가 이끄는 집권정당인 사회주의운동당(MAS)만이 아니라, 그에 비판적인 볼리비아공산당(PCV)이 포럼에 가입되어 있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집권정당인 연합사회당만이 아니라, 그에 비판적인 베네수엘라공산당(PCV)도 가입돼 있다. 브라질 역시 2022년 대선에서 현 보우소나루 집권세력에 맞서 대응할 노동당만이 아니라, 앞에서 라 보츠가 교류할 대상으로 언급한 바 있는 사회주의자유당 역시 포럼에 가입한 상태다.

한편,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자유주의 세력(민주당)에도 지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미제국주의의 군화발” 아래에 눌리며 어렵게 사회주의 이행을 시도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손 쉽게 박한 평가를 내리는 이중잣대를 지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들도 나왔다. 라 보츠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에 지지를 표하는 공개서한서명한 바 있다. 손에 피를 묻히기로는 미국 민주당이 훨씬 더한데 미국 내에서 이들과는 여전히 협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브라질 노동당과 교류조차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설령 선한 의도를 지녔을 지라도 미국중심적인 배외주의[chauvinism] 함의를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 좌파들의 시도를 함부로 평가하기보다는 자국(미국 민주당)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막는 게 최우선이라는 주장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21년 6월 21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세계인민대회 개막식

DSA 내부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논쟁 구도를 발견할 수 있다. DSA는 지난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200주년 인민대회(Congreso Bicentenario de los Pueblos)”에 사절단을 보내 참가한 바 있다. 이때 참가한 몇몇 사절단원들은 대회 기간 동안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Moros) 현 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나 호화 호텔에서 머무는 사진, 그리고 마두로 정권의 전진을 성찬하는 트윗을 공유해 “관변 사절단이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고통을 인정하더라도, 마두로 정권의 인권 탄압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베네수엘라의 페미니스트 활동가 바네사 로잘레스는 강간을 당해 임신한 13세 여아에게 낙태의약품을 제공한 혐의로 9개월 간 구금된 후 지난 7월 말에 비로소 풀려났다. 이외에도 경찰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DSA는 붉은 기를 내걸고 있는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마두로식 사회주의 정부 하에서도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다른 좌파 세력과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다시 말해, 베네수엘라 정부가 조직한 행사인 200주년 인민대회나 관광을 허락해주는 코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는 다양한 코뮌이나 낙태법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조직들을 찾아 연대를 보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코뮌 건설운동에 대해서는 참세상 기사 ‘베네수엘라, ‘코뮌 국가’ 건설 시작…새 사회주의 운동 진입’을 참고할 수 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9818 

이에 대해 사절단의 트윗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반비판 역시 등장했다. 200주년 인민대회에는 아르헨티나 페미니스트들이 낙태가 가능하게 만든 성공적인 사회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 LGBTQ 활동가들도 참여하는 자리가 있었던 만큼, 정부측 입장만 듣는 행사가 아니었던 게 그 근거다. 실제 이러한 내용들은 이후 사절단 보고대회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보고서는 11월 현재까지 여전히 작성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 200주년 인민대회 참여는 사절단 일정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그에 앞서 자급자족을 위한 식량생산이나, 주거 문제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코뮌들에 방문해 어떤 투쟁을 이어왔는지 설명을 듣기도 했다.

DSA 국제위원회 사업 결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양측은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세력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야한다는 점이나 DSA가 이들과 “교류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일하다. 심지어 실질적인 활동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그 내용을 채울 것인가에서는 이견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번 논쟁은 왜 이리 과열되었을까? 

우선,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기반한 공통적 인식이 넓어지기보다 상호 간 딱지붙이기가 성행하고 있다.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정작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 집권 경험 있는 세력을 “권위주의”로 퉁치고 다른 한편 이렇게 비판을 하는 이들을 가리며 “미 국무부에 복무하는 제3캠프주의”, “사회주의 판별사”와 같은 비아냥을 섞어 토론이 가능한 공간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첫째, 한편으로 미국 헤게모니를 따르지 않는 국가들에 대한 경제 제재나 침공이 정당화되기 위해 동반되는 악마화와 거짓선전을 식별하기 어렵고, 동시에 미국 헤게모니에 저항세력이 국가형태를 갖추면 통치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지배적이게 되어 국가에 비판적인 사회운동이 취약해지는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주의 이행 과정의 복잡한 모순을 풀어나가는 것이 결코 간단하고 딱 떨어지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급하게 일반화가 불가능하며 개별적 사안에 대한 구체적 판단만이 가능할 뿐이다. 예를 들어 쿠바공산당 체제하 2019년 헌법 개정 과정에서 대중이 어떻게 참여하였고, 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계를 지니는지를 비교해보면, 손쉽게 ‘일당독재’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길 수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미국 좌파와 사회운동의 정치적·조직적 부상, 버니 샌더스 열풍 등은 전 세계 사회운동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패권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체제 변혁 세력의 성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진짜 숙제는 외양상 드러나는 성장이 아니라, 그 후의 구체적인 실천들에서 드러난다. 샌더스가 아무리 국내적으로 좌파적인 지향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DSA를 비롯한 좌파들이 세계 패권 질서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나아가 아래로부터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어떻게 견지할 것인지 대안적인 입장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없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참조할 바를 확인하게 되는데, 우선 운동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는 사업의 원칙을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토론하는 가운데서도, 동시에 이견을 가진 이들끼리 쉬운 낙인찍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국내에서의 전술적 선택을 합리화하는 논리와 타국 사회운동에 대해선 지나치게 엄격하게 비판하는 논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겸손하게 검토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셋째, 국제주의 이념 및 실천의 근본적인 동인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을 강화함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사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견지해야 한다. ●

참고 자료
Dan La Botz, “DSA’s Flawed International Outlook: The Appeal of the Mass Party and its Contradictions” New Politics 
Dan La Botz, “Report on DSA Participation in the Foro de Sao Paulo, San Salvador, El Salvador, June 22 — June 25, 2016”
Jason Schulman, Dan La Botz, “Against Campism, for International Working-Class Solidarity”, Socialist Forum(2020 Winter)
2021 DSA Convention Resolutions
Copy of Resolution 4:Building the DSA International Committee, 2019
Morgan Dowdy, Jack Suria-Linares, “DSA, Internationalism, and the 2021 Convention: Which Path Forward?”, The Organizer
Natalia Tylim, “Is this what solidarity looks like?”, Tempest
Haley Pessin, Andy Sernatinger, “DSA sliding right under Biden”, Tempest
“From North to South DSA International Delegation Reports back from Peru and Venezuela” Middle Tennessee DSA
https://www.youtube.com/watch?v=oirGWNF3X8c
“Socialist Internationalism in the 21s Century: Perspectives from the DSA” Progressive International
https://www.youtube.com/watch?v=CAW3u8oBhIg
“DSA Venezuela Delegation Report Back”, DSA
https://www.youtube.com/watch?v=bL2RHFnzpG0
“Venezuela: Resolutions of the Congress of the Peoples of the World – Cadre and Strategy”, Kawsachun news
Paul Garver, Austin Gonzalez, and Carrington Morris, “The International Question in DSA”, Socialist Forum(Summer 2021)
“New Simón Bolívar Institute for Peace and Solidarity Among Peoples: A Refreshing Contribution from Venezuela to the World”, 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Venezuelan Workers Solidarity, “DSA: Solidarity with the Venezuelan people or with the regime?”
Tom Wojcik, Jana Silverman, “In Defense of Resolution 14, and the Foro de São Paulo”

글: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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