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직공맹에 대한 전방위적인 탄압으로 해산 절차 돌입

홍콩에는 총 4개의 노조연맹조직이 있다. 홍콩 정치·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나뉘는데, 가장 많은 회원(조합원)수를 가진 것은 친중 계열 노총인 홍콩공회연합회(香港工會聯合會; HKFTU)로, 약 41만 명이 가입되어 있다. 1948년 홍콩 내 중국공산당 활동가들에 의해 설립된 홍콩공회연합회는 영국식민지 시기 극좌 노선을 유지했다. 1967년 홍콩에서 노동자 봉기가 발생했을 땐 적극적으로 이에 가담했다.

그러던 HKFTU도 홍콩 반환 이후에는 친중 관변 조직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적극적인 친정부 노선을 밟아왔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조직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중국 대륙 내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공식 노총인 중화전국총공회(ACFTU)와 연계되어 있기도 하다. 홍콩 내 민주파 활동가들에 의하면 HKFTU의 조합원수는 허수가 많고 크게 부풀려져 있다.

*공회工會 : 중국 본토와 타이완, 홍콩 등 중화권에서 ‘Trade Union(노동조합)’을 지칭.

두 번째로 많은 회원수를 가진 게 홍콩직공회연맹(香港職工會聯盟; HKCTU)이다. 1990년 설립돼 2019년 홍콩 항쟁 초기에 약 20만 명의 회원이 있었으며, 교육계·방송산업·항공업·공공교통·호텔업·건설업·이주노동자 등 61개 업종별 노조들이 가입돼 있었다. 한국 노동자운동과도 인연이 깊은데 민주노총과 비교적 여러 차례 교류해왔다. 2016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펼쳤고, 201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노조활동가 워크숍 프로그램에도 활동가들을 파견한 바 있다.

홍콩 항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직공맹의 조합원수는 크게 늘어난다. 이는 ‘공회 설립 캠페인’의 성과이기도 하다. 2019년 가을 이래 “공회를 조직해서, 전면 파업에 들어가자!(組織工會!全面罷工!)”라는 구호 속에서 전개됐다. 그해 11월 1일 3개에 불과했던 신규 공회(추진모임 포함)는 한 달 후인 12월 1일에는 38개(직공맹까지 합쳐 57개)에 다다랐다. 11월 중순 여러 청년들이 잡혀갈 때에는 “동지를 지키기 위해 공회를 만들자!”고도 했고, “거리에서 쓰러져 가는 청소년들을 지키기 위해 공회라는 큰 힘을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에서의 노동자운동

공회 가입 운동과 업종별 파업의 흐름은 분명 홍콩 항쟁의 다른 흐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12월 8일 세계 인권의날을 맞아 열린 민간인권진선 집회에는 새로 결성된 공회 깃발들이 나타났다. ‘보다 조직적으로’ 싸우고자 하는 홍콩 시민들의 열망을 반영했다. 직공맹은 이런 흐름을 고양시키고자 12월 13일 좌담회를 열고, 새 시대에서 공회의 정치적 과제와 역할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2019년 10월 결성한 금융업직공총회의 아창(阿昌)과 캔디는 공회의 목표로 홍콩 내 금융업 종사자 23만7천 명 중 6할인 13만 명 가입을 목표로 한다며, 공회 가입을 통한 전면 파업으로 홍콩 항쟁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0년 새해에도 공회 가입운동은 지속됐다. 1월 1일 열린 대규모 집회엔 59개의 공회가 참여해 확대된 세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1월 2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규모 감염에 따른 도시 봉쇄 조치가 이뤄지면서 중단된다. 당일 홍콩에서 공회 가입 캠페인을 전개하던 공회 조직가 위원회는 방역에 대한 ‘5대 요구’를 수립하고, 이튿날엔 50개 공회 합동 기자회견을 개최하는데, 그 요구 사항은 아래와 같았다.

1. 고용주가 고용인 및 방문객에게 마스크를 제공하라.
2. 고용주는 모든 대륙 입경 공무 일정을 취소하라.
3. 고용주는 피고용인에게 탄력적으로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
4. 노동자들의 재택근무를 허용하라.
5. 중국 대륙으로부터의 홍콩 입경을 전면 금지하라.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초기 홍콩은 바이러스 전파를 비교적 잘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거리 활동은 급격하게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결성된 공회들은 9월 입법회 선거를 앞둔 준비를 계속했다. 반면 직장에서의 탄압이 계속되면서 노동자들은 노조로부터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특히 많은 수의 교사들은 항쟁을 지지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다 강화된 교육과정을 수용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거나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정치적 의제가 일터에서의 문제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6월 20일 30개 노조가 공동으로 국가보안법 제정안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기획했고,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한 게 그 예다. 바로 그 즈음 홍콩에서의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홍콩을 해방시키기 위해 공회에 가입하자!”(光复香港, 加入工会)
“공회 혁명을 통해, 폭정에 맞서자!”(工会革命, 对抗暴政)

투표한 조합원 9000명 중 95%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당국과 회사의 압박으로 인해 투표를 기권하는 수가 많았다. 공회 활동가들은 투표율이 낮은 점을 감안해 파업 무산이 무산됐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밝혔다.

2020년 5월 28일 오후 중국 인민대표대회는 ‘건전한 홍콩특별행정구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안전의 법률제도와 집행기제를 건립하는 것에 관한 결정(全國人民代表大會關於建立健全香港特別行政區維護國家安全的法律制度和執行機制的決定)’이란 제목의 안건(이하 ‘국가보안법’)을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로 최종 의결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사실상 홍콩의 특별행정구 지위를 빼앗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특별행정구 지위 여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내용에 있었다. 이 법은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운동적 저항을 국가 분열 행위로 규정하고, 테러리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였으며, 국외 세력의 홍콩 개입을 금지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까지 직공맹은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었다. 소속 공회는 85개로 늘었으며, 총 조합원수는 23만 명에 다다랐다. 2년 사이 3만 명이 새로 조직된 셈이다. 하지만 공안 당국의 사회운동에 대한 전방위적인 탄압은 직공맹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전교조’격인 홍콩교육전문인원협회(香港教育专业人员协会)가 올해 8월 10일, 48년의 역사를 끝으로 해산을 선포했다. 교협의 조합원수는 약 10만 명이었기 때문에, 이는 총연맹인 직공맹에겐 크나큰 타격이 됐다. 135,954명으로 줄어들었고, 곧이어 직공맹 자신에 대한 공격을 직면해야 했다.

2019년 8월 5일 홍콩섬 어드미랄티(金鍾)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서 발언 중인 캐롤 응 전 주석

항공 노동자인 캐롤 응(吴敏儿) 전 주석의 경우, 2020년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야당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개한 ‘민주파 내부 경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2020년 도입된 ‘국가안전법’ 상 ‘국가전복공모죄’ 혐의로 구속되었다. (올해 3월 6일 사퇴)

리척얀 전 사무총장 역시 2019년 항쟁에서 직공맹 측이 집회신고, 무대설치 등 지원역할을 하고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는 이유로, 불법집회 주최와 선동, 방역지침 위반 등 여러 건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년8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심지어 리척얀에게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추가되었다.

9월 17일, 홍콩 현지의 문회보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직공맹 집행위원회가 해산 절차를 시작했고, 다음 달에 조합원 총회를 열어 해산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틀 후인 9월 19일, 직공맹의 웡나이윈(黄迺元) 주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연맹 해산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사무총장 멍시우닷(蒙兆达)은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시아에서 민주노총과 함께 ‘사회운동적 노조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직공맹의 해산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노동자 국제연대 앞장 서온 홍콩 직공맹

민주노총의 류미경 국제국장에 따르면, 직공맹은 지난 시기 “아시아에서 노동자 국제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노총, 나아가 한국 민중운동 역시 홍콩노총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가령 “2005년 WTO 각료회의 저지 홍콩원정투쟁단 활동과 이후 구속자 지원, 2008년 홍콩증시 상장 저지를 위한 이랜드·뉴코아노조 원정투쟁은 직공맹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또, “2013년 철도노조 파업, 2014년 씨엔엠 하청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당시 누구보다 먼저 한국총영사관, MBK 홍콩사무소를 찾아가 항의행동을 전개했고, 2008년 쌍차 옥쇄파업 당시에는 다른 용무 없이 연대기금을 전달할 목적으로만, 2016년 한상균위원장 구속 당시에는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하기도 했”으며, “2014년에는 민주노총의 3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배우기 위해 대규모 대표단이 방문하기도 했”다.

더구나 직공맹은 한국 노동운동과도 인연이 깊다. 리척얀 전 사무총장의 경우 87년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이던 때에 서울을 찾아, 당시의 노동운동 상황을 직접 관찰하였으며, 직공맹 활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민주노총과 교류해왔다. 직공맹은 2016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펼쳤고, 201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노조활동가 워크숍 프로그램에도 활동가들을 파견한 바 있다.

홍콩의 기나긴 밤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홍콩 사회운동이 직면한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고,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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