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사람] 20대의 또 다른 얼굴, 쉬리즈

[동아시아와 사람] 20대의 또 다른 얼굴, 쉬리즈

2021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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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1년 9월 말 발송한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동동 제8호에 실린 짧은 인물 소개입니다. 앞으로 종종 ‘동아시아와 사람’이란 코너를 통해 동시대 동아시아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뉴스레터 구독을 원하신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1990년생 쉬리즈(许立志)는 중국 광둥성의 지급시 지에양(誌陽)에서 태어났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도시지만 인구 500만이 넘는다. 부모님은 농사일을 했지만 그는 또래의 여느 친구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공장이 많은 대도시로 갔다. 스물한 살이었던 2011년 2월, 선전에 있는 폭스콘 공장에 입사해 아이폰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또래 노동자들처럼 그 역시 하루 16~17시간씩 일했고, 심할 땐 한 달에 이틀 정도 밖에 쉬지 못했다.

2014년 2월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나 타의로 일을 그만 두게 된 그는 장쑤성에 가서 잠시 일하다가, 같은 해 9월 26일, 다시 폭스콘 공장으로 와서 3년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가 쓴 근로계약서에 적힌 월급은 1900위안(우리돈 33만원)이었다. 연수는 다르지만, 이런 식의 계약직 고용 수법은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이것이 고용에 대한 기업의 재량권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동유연화이다.) 그런데 4일이 지난 2014년 9월 30일 오후 2시, 쉬리즈는 공장 근방 사글세방이 가득한 빌딩 17층에 올라가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그는 아이폰 만드는 하청 노동자로 짧은 20대의 시간을 다 보냈고,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쓴 시들은 그가 죽은 후에 주목 받기 시작했고, 중국의 여러 tv방송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다. 세계의 공장에서 일하는 신세대 농민공 시인의 삶은 목숨으로 쓰여졌다. 그의 시는 심플하면서도 단호하고, 엄청 강렬하다. 서정적인 문체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어떤 시보다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살아있는 도끼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종종 자신이 막 일을 시작했던 2011년 봄 직전까지 연달아 죽어간 동료 노동자들을 생각했다. 21세기에 또 다른 김남주, 혹은 전태일이 있었다면 그가 아니었을까 싶다. 곧 아이폰 신제품이 나온다는데(나도 아이폰 유저다..), 아이폰의 화려한 스펙과 이력도 쉬리즈가 남긴 발자국과 시를 지울 수는 없다.

선전 폭스콘 공장 앞에 가면 내내 할 말이 없어진다. 말 없이 공장 주위를 걸어다니게 된다. 우리가 쉬리즈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의 시라도 한 편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빨간소금)의 뒷부분에 아래 시가 있다.

몇 해 전 그는
배낭 멘 채
이곳을 밟았다
이 번화한 도시를

의기양양하게

몇 해 뒤 그는
자신의 유골을 움켜쥐었다
이 도시의
네거리에 서서

— 망연히 사방을 둘러보다(茫然四顾) 중

덧붙여, 『아이폰을 위해 죽다』(Dying for an iPhone : Apple, Foxconn, and The Lives of China’s Workers)는 폭스콘 공장의 동학과 노동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연구서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상징적 상품 ‘아이폰’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삶과 노동조건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