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되찾기 위한 대만 원주민들의 투쟁

지난 5월 12일, 대만 원주민들이 대만 내무부 청사 앞에 모였다. 「내 이름을 돌려달라, 還我名字、單列族名」 기자회견을 위해서다. 이들은 원주민 이름의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모인 수십여 명의 원주민 중에는 원주민청년전선 활동가로 알려진 사분가즈 발린시난(Savungaz Valincinan)이 있었고, 그밖에 원주민들을 지지하는 인권운동가들도 함께 했다. 이날 원주민들의 주된 요구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문서에 로마자로 표기된 이름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2001년 성명법 개정 이후 원주민들은 신분증에 로마자를 병기할 수 있었는데, 한자로 된 중국어식 성명도 반드시 기재되어야 한다.

사진 : 公民行動影音紀錄資料庫

 

이게 우리의 이름인가요?

타이야족 활동가 바우투 파옌(Bawtu Payen)은 “<국가어언발전법>과 <원주민족어언발전법>이 이미 통과됐지만 정부는 원주민 언어를 나라의 언어로 다루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미족 활동가 유시코 파라한 파피얀(Yusiko Falahan Papiyan)은 자신의 이름 ‘유시코’가 외할머니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고, 파라한은 어머니의 이름, 파피얀은 씨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며, 만약 종족명을 학교에서도 표기할 수 있게 하면 사람들로하여금 원주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디그족 타낙스 야고 왕샤오우(Tanax Yago 王小武)는 ‘Tanax’의 끝음은 바람소리이지만 중국어에는 이 발음을 표기할 글자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게 우리의 이름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대만의 민족 구성은 매우 복잡하다. 대만 섬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이 있는데, 이들은 오스트로네시아족으로 분류된다. 한족과는 생김새도, 언어도 다르다. 넓게 보면 말레이계나 남태평양 섬들에 있는 폴리네시아인도 오스트로네시아족으로 분류된다.

 

대만 원주민의 작은 역사

대만 원주민들이 어디에서 왔느냐의 문제는 다양한 학설들이 있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2~3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에 중국 화난지방(지금의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일대)에서 왔을 것이라 주장하고, 혹자는 8천년 전 혹은 5천년 전에 지금의 중국 푸젠성 쪽에서 건너왔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쨌든 아주 오래 전 서쪽 대륙에서 왔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토착설과 남래설(남태평양 군도에서 온 말레이인), 대륙설, 류구설(오키나와), 다원설 등 다양한 학설이 있다.

중국에서 대만섬 원주민족에 대한 기록이 직접적으로 등장한 것은 명나라 이후다. 명청시기 중국인들은 대만 원주민들을 ‘번(番)’이라 불렀고, 1661년 명나라 멸망 직후 정성공 세력이 대만섬으로 건너간 후에는 토번(土番) 또는 번이(番夷)라고 불렀다. 이와 무관하게 선사 시대부터 대만 섬에 살던 사람들은 다두왕국이라는 부족연맹 국가를 세우는데, 무려 876년간(854년~1732년) 타이완 지역에 존속했다. 불행히도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상당 부문 유실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다.

1624년, 서구 제국주의의 그늘이 대만 섬에도 찾아오면서부터 대만 원주민들의 고난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네덜란드 인들이 남서부 해안지대를 장악했고, 1661년 이후로는 당시 동중국해 일대의 해상네트워크를 장악하고 반청복명 운동을 이끌던 정성공이 장악한다. 그리고 1683년, 정성공이 대만섬에 세운 작은 왕국을 평정해야겠다고 여긴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정씨 왕국을 멸망시시키고, 50년 쯤 후에는 다두 왕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대만섬에서 이뤄지던 원주민-네덜란드-정성공 세력-청나라로 이어지는 권력 이동의 혼돈이 마무리된다.

1670년 대만섬의 원주민들, 올퍼드 대퍼 그림

1732년 전후 한족들의 대만섬 이주가 본격화된다. 이때부터 지금의 푸젠성 일대에서 한족들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고, 개간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17~19세기, 대만섬으로 한족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원주민의 한족화도 이루어졌고, 서로 많이 섞이면서 완전히 동화된 사람들도 생긴다. 한족들은 평지에 살던 원주민을 ‘평포번’, 한족화 되지 않은 고산지역 원주민을 ‘생번’ 또는 ‘고산번’이라 부르며 구별해왔는데, 평포번은 근대화 과정에서 상당부분 대만의 한족 공동체에 동화된다. 이에 반해 여전히 자기 문화를 보존하면서 남아서, 부족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보통화도 할 줄 알고, 동시에 자기 종족의 언어도 할 줄 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만에서는 더 이상 ‘평포번’과 ‘고산번’을 구분하지 않고, 여러 소수민족들을 통칭할 때에는 ‘원주민족’이라고 칭한다.

중요한 것은 대만 원주민 종족들을 구별짓는 기준이 정복자들의 편의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식민지 역사가 만든 질곡이 대만 원주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셈이다. 심지어 과거 국민당 정부는 학교 교육에서 대만 원주민의 역사를 다루지도 않았다. 그러니 원주민족의 역사는 단일하지 않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16개 원주민들을 정부가 인정(지방정부 차원의 인정은 3개, 미인정 23개)하는데, 주로 동부 고산지대에 분포하며, 대만 인구의 2.44퍼센트(57만 명; 2019년 통계)를 차지한다. 많게는 21만 6천 명(아미족), 적게는 382명(카나카나부족)으로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정명 운동

대만 원주민들에게서 자신들만의 정명운동(正名運動;말 그대로 ‘이름을 찾는 운동’)이 벌어진 것은 1984년 대만원주민권리촉진회(臺灣原住民權力促進會)가 설립되면서다. 이 단체는 원주민족정명운동을 펼치는데, 이때부터 시작된 운동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족명의 이름을 되찾는 운동’, ‘토지반환 운동’을 다루며, 이런 운동은 단순히 소수민족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기억과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한 것과도 맞닿아 있다.

5월 12일 대만 원주민들이 내정부 청사 앞에서 개최한 ‘내 이름을 돌려달라, 還我名字、單列族名’ 기자회견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날 수십여 명의 원주민 중에는 원주민청년전선 활동가로 알려진 사분가즈 발린시난(Savungaz Valincinan)이 있었고, 그밖에 원주민들을 지지하는 인권운동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의 주된 요구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문서에 로마자로 표기된 이름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2001년 성명법 개정 이후 원주민들은 신분증에 로마자를 병기할 수 있었는데, 한자로 된 중국어식 성명도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이날 기자회견을 이끈 사분가즈 발린시난은 원주민들이 평소에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미스 사(撒小姐)”라고 불리곤 하는데, 모든 이름에는 그 의미가 있음에도 중국어로 이름을 쓰면 이름이 담은 뜻을 알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런 현실이 대만 헌법이 규정한 인격권과 이름에 대한 권리가 현행 <국가어언발전법>과 <원주민족어언발전법>과 충돌하는 것이니 사기가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출처]

    • 「以我的族名呼喚我」行動小組, 【聲明】「還我名字、單列族名」訴願記者會, 公民行動影音紀錄資料庫
    • 公庫記者洪育增, 姓名改鮭魚容易、單列族名困難? 原住民遞交訴願盼「正名」, 公民行動影音紀錄資料庫
    • 姓名條例, 全國法規資料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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