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좌익과 민중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교화膠化’인가 ‘실어失語’인가, 홍콩 좌익은 왜 실패했는가?

원문 : 膠化還是失語,香港“左翼”爲何不討好?左翼與民衆,還能有交集嗎?
필자 : 黎恩灝 Eric Lai
번역 : 홍명교

 

역자의 말 : <교착상태인가 실어인가, 홍콩 좌익은 왜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는가?>라는 제목과 <좌익과 민중은 여전히 만날 수 있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글은 2019년 6월 이래 1년 여의 시간동안 홍콩 민주파 내 ‘좌익’들이 마주해야 했던 곤경들을 설명하고 있다. ‘교화(膠化)’란, 1967년 홍콩 도심을 뜨겁게 불태웠던 노동자들과 마오주의자들의 봉기 이후 홍콩 좌파들에 대해 오랫동안 딱지가 붙여졌던 꼬리표다. 2014년 우산운동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민주파와 독립파가 분화될 때, 민주파 내 좌파들을 향해 다시 ‘좌교’ 혹은 ‘교화’의 딱지가 붙게 됐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올바른 소리만 실어나르는 이들”이란 경멸의 말로 쓰인다. 이 글의 주된 화두인 ‘실어(失語)’란, 말 그대로 ‘실어증에 걸린 좌파들’을 지칭한다. 폭발적인 대중운동 속에서도 대중운동의 변두리로 내몰리고, 동시에 ‘말’을 잃어버린 좌파들의 상태를 설명한다.

<대만사회연구계간 台灣社會研究季刊>이라는 학술지에 실린 글에서 후이포컹 교수는 좌익이 과거의 언어를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는 항상 변동하고 사회적인 맥락 역시 변화하는데, 논술의 전략이 이에 걸맞게 변화하지 않다보니, 사회운동 스스로 새로운 정세에서 민중들의 정서와 요구에 부응하는 논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이것이 좌파의 ‘실어증’ 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 에릭 라이는 이런 견해에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이에 논거를 빌어 그러니 사회운동과 좌파는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당면한 정세에서의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파의 지향이 뭔지, 사회운동의 비전은 뭔지, 대중이데올로기가 갖고 있는 정서의 요인이 뭔지… 를 발굴하고, 계속해서 대중들을 만나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운동 비전을 밝히고, 능동적 주체로서의 활동가들을 존중하며, 민중의 감정과 생각을 경청하고, 이론적 전통과 인민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고, 사회운동의 목표와 민중의 염원을 교차시키는 것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이는 후이 교수의 말을 재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자로서 이 글의 모든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하지만 홍콩 좌파들이 처한 곤경과 좌파 내의 논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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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폭발한 홍콩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이하 ‘반송중운동’ 또는 ‘홍콩항쟁’)은 세계 대중운동의 “시대혁명”이었다. 무대가 없고, 플랫폼을 넘나드는 흐름의 운동이었고, 시위 현장 전략과 전술은 다양했으며, 오랜 시간 지속되는 완력과 국경을 초월한 동원이 이루어진 운동이기도 했다. 과거 십년에서 수십년을 돌파하여, 세계 각지의 반권위주의 운동의 형태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항쟁자들을 서로 북돋는 효과를 보여줬다. 칠레, 이라크, 스페인, 미국, 벨로루시, 태국의 권위주의 정권과 경찰 폭력에 맞선 시위 장면들에서 내내 홍콩 항쟁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지만 반송중운동은 동시에 현상을 굴절시켰다. 홍콩에서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는 좌파적 슬로건을 표방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이다. 잠정적으로 이를 “좌익 실어”라 부르고자 한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 시기 좌파의 언술과 시야는 변경에 놓여 발버둥친 게 아니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과거 홍콩의 사회운동은 주로 전통적인 학생운동조직과 공회(工会; 노동조합), 민간단체들의 선도를 통해 전개됐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체계는 평등과 사회자원의 재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강렬한 ‘반신자유주의’ 경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눈 속에서 오늘날 ‘본토주의 운동’은 기실 전통적인 사회운동과는 ‘다른 길’이다. 이들 본토주의자들은 홍콩인 신분을 강조하고, 내지(중국 대륙)로부터의 이민에 반발하며, 심지어 좌파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좌교(左膠)’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또, 홍콩인들은 더 이상 “민주중국을 건설하겠다(建設民主中國)”는 오랜 과제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은 “분화되지 않을 것”, “절교하지 않을 것”, “함께 산에 오르는 형제,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자(兄弟爬山、各自努力)” 등의 행동 슬로건 혹은 강령을 강조해왔다. 표면적으로는 과거 사회운동에서 존재하던 노선 상의 ‘좌우 대립’을 일시 중지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운동의 언술과 형식에 있어서 좌파 운동은 보다 저류로 밀려 나갔다. 종합적으로 보면 작년 6월 9일 1차 백만인 대행진으로부터 올해(2020년) 중국공산당이 홍콩판 국가안전법을 만들기 전의 궤적까지, 투쟁 과정에서 네 가지의 ‘좌익 논술’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운동의 주류가 되진 못했다. 

 

반송중운동에서 홍콩 좌익 내 네 차례의 논쟁

첫번째 좌익 논술은 세계 패권론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의 본질은 세계 패권의 힘겨루기로 인식하고, 그 때문에 보편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은 어떤 일방의 패권에 기대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의 폭발이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자, 미국과 영국, 일본, 유럽의 자유민주국가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연합 성명의 방식을 통해 관심을 표명하고 중국이 철저하게 일국양제 등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다 여러 차례 홍콩 문제와 중미 무역분쟁을 결부시키곤 했다. 일부 항쟁자들은 중국공산당에 타협을 압박하려면 트럼프에 접근하고 그를 찬성하는 것이 출로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투쟁 과정에서 시위 현장에 미국 국기가 등장했고, 나중에는 더 많은 언론들이 독자들로하여금 트럼프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중국공산당이 홍콩 국가안전법을 강요하는 것에 반대하도록 소리 높여 요구했다. 이것이 바로 친미반중의 사례들이다.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친미반중의 전략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라틴아메리카나 대만, 한국의 역사 경험을 보더라도 미국 정부는 군부 독재 정부과 자신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권을 지지할 뿐이었다. 하물며 트럼프는 인권 방면의 악행들로 얼룩져 있다. 자국에서는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고, 단지 실리를 중시하는 장삿꾼일 뿐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가 홍콩의 민주자유를 위해 중국을 제재할 수 있으리라 믿게 할 수 있는가? 하지만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은 일방주의를 피하지 않는다. ‘미제’가 필요할 때 좌익의 ‘반미’를 논하는 것은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는 것(自討沒趣)에 그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분열하지 않는다’는 운동의 신조를 위반하는 것에 부딪히게 될 수 있다.

두번째 좌익 논술은 전통 좌익이 약한 세력과의 동등함을 중시하는 것에 돌아가는 것에 있다. 특히 이는 계급과 성별, 인종 간 평등을 촉진하는 아젠다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최종적으로 뜻밖에 ‘군중과 싸우는 군중’의 논쟁이 되어버렸는데, 그 원인은 이와 같은 논술이 겨누는 것이 국가 기제가 어떻게 항쟁자들을 향해 성폭력을 행하고, 항쟁자들을 ‘벌레(曱甴)’처럼 비인간화하고, 운동 내부의 성별 평등과 인종 평등의 인상을 소홀히하는 점을 겨눈다는데 있다. 운동이 부권과 배외로 묘사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꽝웡삥삿(光榮冰室’ 광영빙실)’ 사건이다.

사건은 2020년 초에 발생했다. 홍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반송중 운동 기간 시위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노란가게(yellow shops)’인 ‘꽝웡삥삿’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게시물이 올라왔다. “오늘부터 저희 식당은 홍콩인 손님만 받습니다. 음식 주문시 광둥어나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보통화를 쓰는 손님은 잠정적으로 받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여기에 “대만 친구들은 환영합니다.”는 말이 추가됐다. 특구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않고, 중국 내지인들의 해상·육상을 통한 홍콩 방문에 대한 개방을 중지하지 않자 항의한 것이다. 이 게시글은 한 대학 강사의 주의를 이끌어냈다. 그는 우선 남편과 함께 국제의학잡지 <란셋>에 논문을 기고하고, ‘꽝웡삥삿’이 대만 이외의 보통화 손님을 암시하는 것은 중국 내지인 경시의 혐의가 있었다. 나중에 그는 또 몇몇 속칭 ‘항표’(홍콩에 체류하는 중국인)들과 함께 이 가게에 가서 보통화로 음식을 주문했고, 점주와 대화 가능성을 찾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성과없이 돌아와야 했다. 이 강사는 나중에 이 행동을 해석하는 논문을 기고했다. 한데 더 많은 비판을 겪어야 했다. 그녀가 수족들을 지지하는 ‘노란가게’들을 순찰하는 분열 활동을 한다며, 자신의 강사 지위를 통해 음식점을 압박하는 기층 공작원이고, 이런 식의 행동 방식은 진정한 대화의 태도가 아니라는 등의 비난들이었다.

이후, ‘꽝웡삥삿’은 평등기회위원회(Equal Opportunities Commission; 平等機會委員會)로부터 전화 경고를 받았다. 평기위 주석은 문서를 통해 ‘꽝웡삥삿’의 거동이 장애 경시와 인종주의적 경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사의 행동은 관방의 ‘노란가게’ 탄압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밖에, 민주당의 리차드 초이(蔡耀昌; Tsoi Yiu Cheong Richard)는 당시 이미 홍콩 사구조직협회 간사의 신분으로서 평기회 주석 朱敏健을 접견했는데, 평기회에 ‘꽝웡삥삿 사건’을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정부가 현행 조례를 수정하여 홍콩에 온 대륙인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경시를 ‘인종주의’ 범주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얼마 후 그의 말은 당내 최소 63명의 구의원들과 사구 주임들의 불만을 낳았다. 그러면서 “리차드 초이는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蔡耀昌不代表我)”는 연서를 발표했다. 결국 리차드 초이는 다음날 자신의 당중앙위원회를 향해 당내의 모든 직무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힌다. 좌익 운동이 자주 마주하는 ‘반차별’의 논술은 관방 법정기구의 유용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전통 민주파 성원 멸시를 위해서라면 ‘좌익’과 ‘좌교’는 계속해서 운동 참여를 위한 ‘금기’가 되게 한다.

세번째 좌익 논술은 누구도 좌익의 논술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이 불러일으킨 ‘황색경제권’의 저항 모델은 시민들이 항쟁자들을 지지하도록 격려하고, ‘수족’의 상점과 음식점에서 소비하도록 했다. 또, 인터넷 쇼핑과 운수 등의 서비스산업으로 뻗어나갔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항쟁의 자원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동시에 친중 기업들의 상호를 보이콧했다. 이러한 ‘정치적 소비자주의(political consumerism)’는 사실 전형적인 ‘착한 소비’ 모델이다. 그것은 단지 양심에 호소하는 것일 뿐이지, 공정무역과 환경보호는 아니다. 항쟁을 지지하는 정치 신념이다.

과거 홍콩의 좌익 운동 역시 작은 상점을 지지하며 대재벌에 저항하는 소비 모델을 강조한 바 있다. Link REIT(領展房地產投資信託基金; 부동산투자신탁)의 공공주택시장 독점(참고: 홍콩 불안의 이면에서 부동산 헤게모니는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반대했던 것이 바로 그 예다. ‘황색경제권’ 역시 좌익 색채를 충족시키는 부분이 있다. 중국 자본의 패권에 대항하고, 자주를 지지하고 강조하며, 사구경제의 경영 모델과 유사하다. 하지만 현실은 적은 사람들이 좌익적 사유를 따르고, 운동 속에서 시장지상주의와 자본의 농단에 반대하는 시야를 강조한다.

그 원인은 이번 정치소비운동이 자본 패권에 대한 대항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란가게’를 지지하는 동기는 수족들을 버티게 하고, 항쟁의 신분을 지킨다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또한 상점들이 몸소 실천하는 ‘파시’에 대한 ‘보답성 소비’에 기원하기도 한다. 풍자적인 점은 경찰과 시위자들이 중문대학에서 대치하던 시기에 홍콩에서 가장 부유한 리카싱(李嘉诚)의 깃발 아래 있는 체인 슈퍼마켓이 여전히 학교에 들어와 물자를 보충했다는 점인데, 이것 역시 수족들을 지원하고 물자 공급의 행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여졌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 패권은 정부의 폭력을 마주하고 있고, 오히려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셈이다. 

‘파란가게’ 보이콧은 중국 자본이나 친중 기업들에 항의하는 운동적 조치였다. 중국 자본 사슬 상점들의 ‘내장 공사(装修)’ 역시 항쟁자들이 체인마켓과 시위현장에서 시민을 습격하는 패거리(帮派)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슈퍼마켓 체인이 관리층과 패거리 간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성명을 내게 하고, 친정부를 향한 폭력 행동과 단절했다.

네번째 좌익 논술은 소위 ‘여신에겐 마음이 있고, 양왕에겐 꿈이 없다(神女有心,襄王無夢)’는 말에 함축돼 있다. 이는 반송중운동이 낳은 새로운 공회 운동에서 체현됐다. 홍콩 좌익 사회운동은 이것에 신념을 갖고 있다. 이는 16자의 슬로건으로 표현되는데, “공회를 조직하자, 동료들과 단결하자, 노동권을 쟁취하자, 권리를 확대하자” (組織工會,團結工友,爭取勞權,深化充權)으로 집약된다. 친공산당 공회가 복리우애와 은혜복종의 네트워크를 강조한다는 점과는 다르다. 민주운동 진영의 노동자운동에 속하며, 노동자 권리 확대의 자원과 기회를 위해 공회 조직을 중시한다. 설령 현재 법률이 노-자 간 분규에서의 공회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고, 또 단체교섭 법률 상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 노동자들이 파업의 권리를 갖게 되는 조건이 되면, 공회는 파업 발의를 통해 자본의 탄압을 향해 노동자 대우를 개선할 수 있다. 여기엔 확실히 승리의 경험이 있다. 70년대 교사협회(역주: 홍콩의 교사노조)가 교사들의 임금 조건을 개선한 것에서부터 2007년 지하철 노동자 파업, 2013년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까지, 총공회는 산별 연계를 동원해 일정한 성과를 가져왔다.

2019년 신공회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일부 전통적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막론하고 진귀한 보물을 얻었다(如获至宝). 조직 중시를 상상하고 경제 및 사회 평등을 강조하는 좌익 운동 역시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의 보편적인 역량이 된 셈이다. 오랫동안 홍콩의 노동자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학자들과 활동가들 역시 이를 구실삼아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借题发挥) 새로운 공회 운동 역시 전통적인 노동자운동이 제창했던 노동3권의 논리를 이어받고, 경제민주를 쟁취하고 재벌기업의 억압에 맞서야 한다고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 이번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과 새로운 공회운동은 실은 또 다른 일이기도 하다.  

항쟁자와 운동의 동태에서 보면 공회는 운동에 공헌할 수 있고, 그것들은 정당한 명분으로 이치에 맞게(名正言顺) 파업과 ‘의회전선’에의 참여를 조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부터 파업을 한 시민들의 성공 경험은 단지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동원한 광둥성-홍콩 총파업이나 전후 67폭동 수준일 수 있다. 지련회도 1989년 6월 4일 중국공산당의 학살 이후 홍콩 전역에서의 ‘3파’(파업, 파시, 동맹휴학)를 발의한 바 있으나, 애석하게도 결국 몽콕에서의 소동으로 보류된 바 있다. 2014년 9월 28일 경찰이 센트럴 점거 시위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포하자 우산운동이 폭발했었고, 직공맹은 당일 저녁 전 홍콩의 파업과 파시를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응답한 참여자는 많지 않았다. 단지 2개의 공회가 열성적으로 센트럴 점령운동의 지지를 표하는 파업을 동원했을 뿐이다. 

 

새로운 공회운동과 좌익 간 거리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에서 공회와 전통적 사회운동진영은 파업을 성공하지 못했나? 2019년 6월 9일 백만인 대행진 후에도 정부는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6월 12일 예정된 범죄인 송환조례 수정초안의 ‘2독’을 견지했다. 이는 당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원한 동맹휴업과 파업, 파시를 통한 입법회 앞 집회를 유발했다. 당일 경찰기동대는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현장을 진압하여 인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민간인권진선은 전 홍콩에 6월 16일 집회를 공개적으로 호소한 후 월요일에 ‘3파’를 제안했다. 정부가 법안을 철회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정부는 아직 조례 잠정 중단을 선포하지 않았다. 정부가 조례의 잠정 중단을 공포한 후, 민간인권진선은 집회를 주최했는데, 입법회는 이미 회의를 취소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3파’와 입법회 바깥의 집회 행동을 잠정 중단했고, 정보 혼란을 유발한 것에 대해 사과를 표했다. 

민간인권진선의 결정은 일부 공회와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이의를 낳았다. 직공맹은 당일 같은 시간 홍콩섬 어드미럴티(Admiralty; 金钟)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표명했다. 어떤 민간단체 활동가들은 연서 성명을 발표하면서 “6월 17일 3파의 발기인으로서, 개인 신분의 발기 외에 소속 단위의 인가를 쟁취하여 6.17 총파업 투쟁을 쟁취하자”고 밝혔다. 또, 다른 활동가들에게 실명 연서를 호소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공신력’ 얻어내자고 했다. 하지만 6월 17일 당일 직공맹의 집회엔 100여 명 정도가 참여했을 뿐이었다. 이미 파업 발기를 원한다고 표명한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름의 뒤따르는 행동이 없었다. 이를 통해 봤을 때 전통적인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 조직은 여전히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의 파업 행동에 있어서 발기와 동원을 성공하지 못한 셈이었다. 이후 8월 5일부터 11일 까지의 ‘총파업’은 완전히 네티즌들이 주도한 것이었고, 탈중심화되고 탈구조화된 집체행동과 용무 항쟁이었다. 

이상의 역사 궤적은 새로운 공회가 운동의 활력소가 됐음에도 노동자운동을 중요시하는 좌익 논술을 운동에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다소 설명이 된다. 노동법이 정치파업을 보장하지 않는 이상,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 ‘3파’에 참여하는 직장인들이 하루 휴가를 내고 투쟁에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집단적인 파업을 일으키려면 고용주 및 정부와 끝까지 싸울 의지와 더불어 충분한 파업기금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평소에 공회의 파업 준비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중심 무대가 없고 “물 흐르듯(be water)” 행동하자는 슬로건이 대두된 운동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파업은 운동의 조건을 넓히기 어렵다.

2020년 5월, 중국공산당은 홍콩 국가안전법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그러자   ‘2백만3파공회연합전선(二百萬三罷工會聯合陣線)’과 ‘중학생 행동준비 플랫폼’은 곧바로 ‘홍콩특별행정자치구 국가안전법 반대’ 파업 돌입 여부를 놓고 6월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30개 공회가 총 8,943표의 투표를 모았는데, 이는 파업이 가능한 6만표를 크게 밑도는 것이었고, 파업은 무위로 끝났다. 전통적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이 맞닿아 있는 좌파의 논리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공회를 통해 노동권을 쟁취하자는 논술을 강조하는 좌파는 정치파업에 적용하기 어렵다.

새로운 공회들의 조직 형태와 사업 작풍은 전통 공회와 차이가 있다. 탈중심화되어 있고, 정체성정치(identity politics)가 주도하며, 직능 단체와 선거위원회라는 목표를 위해 건제권력을 탈취하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소위 ‘탈중심화’란 항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지만, 전통적 공회연맹 가입을 수용해 조직과 자원을 통합하자는 것은 아니다. 직공맹은 새 공회와의 3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동원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정치적 주도성에 있어선 새로운 공회들이 중요시된다. 정체성정치에 있어서 새 공회가 중시되고 흡입력을 갖는 것은 권익 쟁취의 능력에 있지 않다. 정치적 제스처와 친밀감 때문이다. 

범죄인 송환조례 이후 세워진 신공무원공회의 경우, 신공무원공회의 창립 멤버들은 2019년 8월 “公仆仝人,与民同行”(공복공인 민중과 함께)라는 제목의 공무원 집회를 열어 공무원들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진짜 보스’인 홍콩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운동의 주축이 된 ‘홍콩인 신분’과 운명공동체에 호응했다. 이는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의 도덕적 권위를 강화했다. 그러면서 당시 정부와 지역사회 흑사회와의 결탁을 부인하는 경찰에 대해 대등하게 대립했다. 신공무원공회 설립 이후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일은 정부가 운동에 참여하여 구속된 공무원들을 해고해야 한다는 청산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 그리고 새로 입사한 공무원들이 기본법에 대한 충성맹세를 해야 한다는 등의 정치적 의제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도권력의 탈취는 ‘의회전술’에 나서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반송중운동에서 새 공회가 가장 중요시하는 전략적 목표는 노동자-자본가 간 분규를 위한 협상 준비가 아니라, 2022년 선거위원회 선거와 2024년 입법회 직능 선거에서 표를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특별행정장관을 선출하는 홍콩 선거는 의석 1천2백석 중 60석을 노동계 대표가 가져간다. 노동계는 만장일치로 60명을 선출하고, 입법회 직능 의석에 3석을 배출할 수 있다. 공회 조합원 1명당 1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7명만 모이면 등록이 가능하다. 따라서 새 공회 설립의 중요한 임무는 2020년 5월 2일 전까지 설립된 공회를 1년간 운영함으로써, 유권자의 등록자격에 맞게 하고, 이듬해 선거위원회에 참여시키는 것에 있다. 운동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개설한다는 것은 ‘공회 생성기’와 같다. 물론 민주파와 건제파 양측 모두 이와 같은 권리를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공회 설립이 행정 권력 쟁취를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고, 전통적 공회운동과 체제 밖 투쟁을 강조되는 양상의 장력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반송중운동에서 좌파 운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항쟁, 예를 들어 파업과 공회 설립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모두 좌익운동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 형식만으로는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좌익은 한편으로는 다시는 ‘실어’에 빠지거나, 말세에 처해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극심한 탄압의 시대, 좌익 운동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반송중운동은 사실 좌우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체성, 자리매김, 행동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많지 않다. 그 지속의 열쇠는 용무파와 분열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잠시 좌우간의 논쟁을 멈추고, 응집력을 가져오는 것에 있다.

오늘날 막강한 권위가 있는 리더나 무대가 없는 운동과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굴기는 전통적 형태의 정당과 공회들을 정치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위치짓게 한다. 홍콩의 권위주의적 시스템 역시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그 결과 홍콩의 정당정치는 중국-항콩(中港) 간 관계 설정을 통해서만 정치적인 공간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다. 중간파적 노선은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선수는 건제파 뿐이다.

전국인대에서 임기를 연장하자 전통적인 민주파는 본래 계속 입법회에 남아 싸움을 지속하기로 선택했었다. 그런데 지난 주(11월 중순)에 다다러 전국인대가 민주파 의원 4명의 의석을 없애기로 발표하자, 민주파 의원 전원은 총사퇴를 결정했다. 따라서 이제 시민사회가 홍콩 ‘당외운동’의 토대가 된다면, 시민단체와 공회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정권이 반송중운동의 국제전선과 가두 투쟁, 의회 등을 국가안전법을 통해 무너뜨린 다음 단계는 당연히도 ‘파업’과 선거를 통해 권력 탈환을 노리는 새 공회를 청산하는 것에 있다. 새 공회는 이제 한창 발전 중인데(方興未艾) 정권의 압박에 맞서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계속해서 도처에서 확산될 수 있을까? 실제 정부는 이미 노동복지국 국장의 온라인 공지를 통해 새 공회들에 대한 등기 신청이 3천 건이 넘어 현재로서는 다음 선거 때까지 이 서류 작업을 완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구나 ‘3파’가 국가안전법 상 정권전복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두고 볼 일이다.

나는 정당운동과 시민사회사회운동의 결합이 가장 이상적인 투쟁모델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오랜 개인적 경험과 관찰을 통해 강한 시민사회가 정당 발전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였다. 미래 홍콩 민주운동의 단기적 흐름은 탈중심화 내지 지하화의 구도를 유지할 것이다. 상업, 종교, 교육, 언론, 문화 등 사회 각 영역은 국가안전법의 흐름을 외면하고 보다 보수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새 공회가 이런 분야에서 어떻게 실력을 유지할지는 공회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주의, 그리고 지역민족주의가 민주운동과 법치에 미치는 파장에 맞서, 보다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시민사회, 특히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비전, 새로운 책략을 가진 공회 조직이 필요하다. 공회가 접지해야 할 가장 필요한 것은 기존의 의식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반송중운동은 중앙 무대가 없는 전 인민의 운동이다. 무대가 없으면, 일정한 이데올로기도 없다. 주류의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주류 항쟁자들의 사상에서 반영한다. 이와 관련, 후이포컹(許寶強) 박사는 최근 발표한 학술 논문에서 좌익운동에 대한 성찰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실어’의 논법은 다만 ‘좌익’이 과거의 언어를 지나치게 고집해왔음을 반영한다. 그것은 특정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언어이다. 하지만 좌익의 궁극적인 지향을 드러내고 새로운 정세에 대한 민중의 감정과 갈망에 응할 수 있는 논술을 발전시킬 수 없거나, 그것을 꺼릴 뿐이다.

어떤 시공간에서나 ‘좌익’의 궁극적 지향을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언어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주류사회의 통념’에 사로잡힌 민중의 목소리와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자 운동을 구축하고자 하는 사회운동가 모두에게 있어서 ‘실어’의 문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만약 사회운동 활동가가 당분간 적절한 언어를 구하지 못하면, 좌익의 궁극적 지향과 민중의 감정과 인지까지도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작금의 사회적 맥락에서 고려하고, 사회운동을 방법으로 삼아, 다시 한번 근본으로 돌아가, 무엇이 좌익의 궁극적 지향인지 묻고, 사회운동의 비전을 밝히고, 항쟁자의 능동적 주체를 존중하고 귀담아들어야 한다. 진지하게 민중의 감정과 생각을 경청하고, 이론 전통과 민중의 일상 생활 중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고, 좌익 사회운동이 목표로 하는 바와 민중들이 갈망하는 것을 교차시킬 수 있도록 사고하고 찾아내야 한다. 양자를 연결함으로써 ‘다수자연합을 구축’하고, 일종의 ‘실어’ 혹은 ‘우울’의 좌익정치에 다시는 빠져서는 안 된다.”

 

무엇이 좌익의 궁극적인 지향인지 물어야할 때

앞서 글에서 제시한 ‘실어’ 상태에 빠진 네 가지 좌익 논술을 제시한 바 있다. 후이포컹 교수가 지적하듯 그것은 수렁에 빠져 일종의 ‘저절로 영유하고, 영원불멸’(自有永有、恆久不變)한 실어의 결함이다. 속된 말로 그것이 곧 ‘교화(膠化)’ 아니겠는가? 

사실 반송중운동에서 좌우 이데올로기로서 스스로 인정하고, 정의하며, 행동하는 사상적 리더쉽은 거의 없다. 당연히도 정치 리더들과 조직들은 명확한 이데올로기와 이론을 통해 지지자들을 단결시키는 초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에 있어서 지속적인 관건 요소는 용무파와 분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좌우 간 논쟁이 멈추었을 때 응집력을 가져왔다. 활동가들의 의협심, 소박함, 구체적인 활동들, 심원한 형상은 좌익이나 우익 이론에 비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비좌파 법률학자 베니 타이(戴耀廷)는 최근 요아킴 브테바엘 (Joachim Wtewael)의 그림 <라자로의 부활(The Raising of Lazarus)>을 소개하면서, 성경에서 예수가 평범한 사람 라자로로 부활해 서술한 것을 인용한다. 우리 역시 시민사회와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상상력을 청하고, 홍콩이 뼈저린 시련을 경험(浴火重生)한 후의 이상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사고해야 한다. 후이포컹이 말하듯, “좌익은 무엇이 좌익의 궁극적인 지향인지 물어야 한다. 사회운동의 비전을 밝히고, 능동적 주체로서의 (준)항쟁자들을 존중하며, 민중의 감정과 생각을 귀담아 듣고, 이론의 전통과 인민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고, 사회운동의 목표와 민중의 갈망을 사고하고 찾아내야 한다.”

 

에릭 라이 黎恩灏
런던정치경제대학 아시아아프리카 칼리지 박사 과정, 민간인권진선 전 의장이자 전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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