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태국 민주항쟁 (상)

  • 군사 정권 퇴진과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태국 청년들의 항쟁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언론에서도 꽤 보도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 항쟁에 얽힌 내용은 낯설다. 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역사적 모순을 근원으로 하는지 2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상편은 최근 상황에서 시작해 지난 7월 18일 항쟁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날까지 살펴본다. 하편에서는 항쟁 이전의 흐름과 태국 근대 역사의 모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태국 왕실자산국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규모 시위 장소가 시내 시암상업은행(SCB) 본사 앞으로 바뀌었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 은행의 지분 23%(45억 달러)를 소유하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자유청년(Free Youth)과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UFTD; the United Front of Thammasat and Demonstration) 측은 집회 장소 변경의 이유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노란색 셔츠를 입은 왕실 지지 세력들이 모이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시민들 간 충돌 상황은 군부 정권이 가장 바라는 바일지도 모른다. 강력한 진압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쁘라윗 총리 자격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헌재 앞 대규모 집회 역시 계획하고 있다. 5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도심 시위는 그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11월 19일 목요일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다. 더 폭력적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만약 입장을 내지 않으면, 조국과 친해하는 국왕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정부는 시위대가 법을 어기는 것에 맞서 행동과 법 집행에 집중할 것이다.”

쁘라윗 짠오차(ประยุทธ์ จันทร์โอชา; Prayut Chan-o-cha. 이하 ‘쁘라윗’) 총리의 퇴진과 국왕의 권력 억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몇 달째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자, 총리가 직접 고강도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이런 대응에 형법 112조가 포함되는지 여부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활동가들에게 이는 악명 높은 왕실모독죄를 통해 기소를 확대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정부는 운동을 주도하던 7명의 활동가들을 지목해 ‘왕실모독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이 7명의 활동가들이 지난 8월 열린 시위에서 왕정을 모욕한 혐의를 받고 있다며, 조사를 위해 11월 30일까지 출석하라고 소환장을 보냈다. 황당하게도 태국에는 ‘왕실모독죄’가 존재하는데, 최고 15년의 징역형이 부과된다. 정부는 이와 같은 엄포 혹은 실제 조치가 저항을 약화시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협박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은 항쟁의 파고를 멈추지 않기로 했다. 헌법 개정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요구안의 항목들 역시 확대해나가겠다는 게 태국 사회운동의 계획이다. 이를테면 동성 결혼 합법화와 자산법 개정, 교육 예산 확충과 개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활동가 아논 남파(Arnon Nampa)는 “다들 이 운동이 군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운동의 중심엔 평등과 자유가 있어요”고 말한다. 그는 “많은 시위대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이슈를 놓고 싸우고 있어요. 군주제 개혁 요구는 진정한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출발한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아르논 역시 왕실모독제 혐의로 소환된 7인 중 한 명이다.

 

11월 18일 수요일

태국 국회가 이틀 간 이어져온 심의 끝에 헌법 내 7개 조항의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이는 시위대의 거센 요구에 대한 국회의 소극적 응답이었다. 결과는 7개의 헌법 개정 요구안 중 2개만 수락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왕의 권력과 역할에 대한 헌법 내용은 그대로 남았다. 알맹이만 쏙 빠진 셈이다.

국회의사당과 경찰청 앞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최소한 2만 명의 시민들이 전날의 경찰 폭력에 항의해 경찰청 건물까지 행진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많았고, 젊은 직장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경찰이 세워놓은 차단벽을 반정부 슬로건들로 가득 채웠다. 일부 시위대는 덤프 트럭으로 둘러싸인 경찰청 벽에 유리병과 페인트 폭탄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는 러버덕도 등장했고, 세 손가락을 든 승려도 있었다. 저명한 활동가 자투팟 분팟타라삭사(Jatupat Boonpattarasaksa)는 11월 25일에 왕의 영지를 관리하는 ‘왕실자산청’ 외곽에서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왜 왕실자산청이 타격 포인트가 되었나? 태국 왕실은 약 400억 달러(우리돈 약 46조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왕실은 태국 5위 기업 시암시멘트그룹 지분 32%를 소유한 대주주이고, 6683만㎡의 광활한 땅을 보유한 부동산 재벌이면서, 최고급 호텔 체인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한데 이 막대한 왕실 자산에 대해 태국 정부는 어떤 세금도 부과하지 않으며, 감시도 하지 않는다. 재산 관리 내역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왕의 행보가 도덕적인 비판을 받을 때, 이 막대한 왕실 자산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태국 경제를 강타하면서 왕실에 대한 불만은 폭발했다. 태국은행은 2020년 마이너스 7.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올해에도 왕실은 10억 달러가 넘는 정부 예산을 받았다. 시위대는 왕실 자산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11월 17일 화요일

태국에 항쟁이 촉발된 7월 이래 가장 심각한 폭력 충돌이 발생했다. 국회 안에서 헌법 수정 초안에 대한 변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사당 바깥에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위대와 노란색 셔츠를 입은 왕실 지지자들 간 충돌이 발생했다.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모인 민주파 시위대는 그들을 막고 있는 의사당 벽까지 전진해 철망과 콘크리트 바리케이트 철거를 시도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최루탄을 발사했다. 양측 시위대에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매우 상이했다. 민주파 시위대에겐 적대적이었고, 왕실 지지자들에겐 친절했다.

방콕 도심의 긴급의료센터엔 부상을 입은 시민들이 실려왔다. 총 55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중에서 12명이 최루탄에 의해 부상을 입었으며, 6명은 총상을 입었다. 의료센터 측은 누가 총을 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상처로 보건데 고무탄에 의한 상처가 명백했다. 경찰 측은 실탄이나 고무탄 사용을 부정하고, 총상을 입은 사람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아무도 경찰을 믿지 않았다.

 

11월 8일 일요일

일요일 저녁 족히 1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왕궁 광장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시민들은 국왕에게 정치개혁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려 시도했고, 당시 궁궐 안에는 라마10세가 있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군중들의 해산을 시도했다. 전선 앞의 청년들은 홍콩에서처럼 고글과 안전모를 쓰고 저항했고, 이들은 궁궐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버스 여러 대를 밀어내고, 경찰이 쳐놓은 철조망을 뜯어냈다. 일부 시위대는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에게 물건들을 던지며 저항했다. 얼마 후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경찰은 이날 집회가 ‘불법시위’라며 비난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흔한 얘기였다.

 

11월 1일 일요일

계절이 바뀔 때 열리는 왕실 공식 행사에 와지랄롱궁 왕과 소티다 왕비, Sirivannavari 공주가 나타났다. 노란색 셔츠를 입은 수천 명의 왕실 지지자들 역시 이곳에 모였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의 왕실 지지 집회였다. 이날 왕과 왕비 부부는 지지자들이 있는 광장으로 나와 직접 인사를 건넸다. CNN 채널4의 조나단 밀러(Jonathan Miller) 기자가 왕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개혁을 외치는 시민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라마10세는 “노코멘트”라면서도 “우리는 모두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똑같이 사랑해요.”라고 덧붙였다. 듣는 입장에 따라선 기만적인 언술이었다. 밀러가 “권력 억제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타협할 여지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국왕은 “태국은 타협의 땅입니다”라고 답했다. Sirivannavari 공주도 “태국은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들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SNS 상 시민들의 반응은 조롱 일색이었다.

태국 왕실이 외신과 인터뷰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올해로 68세인 와치랄롱꼰 왕이 외국 언론과 통화한 것은 그가 직위한 2019년 이후로도, 왕세자 시절인 1979년 이후로도 처음이다. 어쩌면 도심에서의 대규모 항쟁이 그가 언론에 얼굴을 비추게 된 계기가 된지도 모른다. 2020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위는 짜끄리 왕조가 세워진 1782년 이래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10월 26일 월요일

쁘라윗 총리는 집회금지령 통고를 해제했다. 하지만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않았다. 수천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다시금 방콕 도심 거리에서 시위를 펼치면서, 쁘라윗 내각 총사퇴와 헌법 개정, 왕권의 제한과 입헌군주제 개혁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방콕에 있는 독일대사관으로 행진했다. 와치랄롱꼰 왕이 독일 바이에른의 호화 호텔에 체류하는 동안 원거리로 내정을 조종했는지 여부와 세금 기록을 조사해줄 것과 독일 법률 위반 여부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독일대사관에 제출한 서한 말미는 “봉건주의 타도”와 “인민 만세”로 끝맺었다. 이에 대해 하이코 마스(Heiko Maas) 독일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이 사안을 검토 중이며, 위법 행위가 있었다면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21일 수요일

이른 아침, 한 무리의 학생들이 법원으로 가 집회금지령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리고 이날 밤, 군주제 개혁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집회금지령에 맞선 불복종 시위를 전개했다. 학생들이 대부분인 시위대는 다시 총리청사 인근 거리에서 대규모 행진을 감행하며, 쁘라윗 총리에게 사흘 내 퇴진과 체포된 시민들의 석방, 헌법 개정, 왕권 제한, 입헌군주제로의 개혁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바리케이드 뒤에 선 무장 경찰과 충돌했는데, 경찰은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같은날 밤 쁘라윗 총리는 “만약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집회금지령을 해제할 수 있다”며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발표했다. 국제 사회의 우려에 대한

그러면서 의회에서의 논의로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거리에 나서지 않은 수백만 명의 시민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며 “의회는 문제를 공평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라고 강조했다. 물론 군부 쿠데타로 의회를 장악한 쁘라윗 입장에서는 의회 내 해결을 강조하는 게 가장 편리할 것이다.

 

10월 19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쁘라윗 총리는 의회를 긴급 소집하고 작금의 초긴장 상태에 몰린 정세를 어떻게 극복할지 토론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위대가 법률을 위반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정부는 이미 모종의 양보를 제출했다”고 변명했다.

시민들에게 이런 제스쳐는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같은 날 경찰이 보인 태도 때문이다. 경찰은 국가방송통신위원회(NBTC) 고위관계자로부터 텔레그램 사용을 제한하는 긴급 조치를 요구하고, 반정부 성향의 출판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나아가 태국 디지털경제사회부는 4개 언론기관의 보도를 철회할 것과 민주항쟁조직 Free Youth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삭제해달라는 명령을 법원에 제출했다.

저녁이 되자 반정부 시위의 조직자들은 집회금지령 취소와 체포자 석방 등 새로운 요구를 내세우고, 24시간 안에 응답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만약 정부가 대답하지 않을 경우 놀랄만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시민들은 집회금지령에 맞서 방콕 시내 3개 장소에서 동시다발 대규모 집회를 펼쳤다. 시민들은 쁘라윗 총리와 정부의 퇴진, 군부가 제정한 헌법의 수정, 왕권 제한, 입헌군주제 개혁을 요구했다.

 

10월 18일 일요일

최소한 전국 12개 지역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쁘라윗 총리는 민중들이 법률이 포함한 범위 안에서 민주자유의 쟁취를 요구해야 한다며, 정부는 인민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쁘라윗 총리는 동시에 4개 법령에 서명했다. 방콕에 긴급상황을 선포했고, 5인 이상 집회를 위법으로 규정했으며, 민중들이 정부가 지정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국가안전을 위해하는 어떠한 시도도 금지하며, 반정부적인 뉴스와 인터넷 정보를 금지하는 사실상 계엄령에 준하는 조치들이었다. 인권변호사들은 이날까지 8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경찰 부대변인 Kissana Phatanacharoen은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정세는 매우 불확정적”이라며, 시위 진압에 있어 뭐가 돼고 뭐가 안되는지 정해진 준칙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준칙이 없는 순간 경찰 폭력은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10월 16일 금요일

2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자들은 주로 랏챠쁘라송Ratchaprasong 상권과 에라완 사원Erawan Shrine, 파툼완 구역Pathum Wan District, 라차테위 Ratchathewi 지하철역 등 방콕의 핵심 지역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곳은 방콕의 상업 중심이자 정치 활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태국 역사에서 빈번하게 일었던 거리 항쟁과 군사 쿠데타가 바로 이곳에서 발생했다. 2010년 탁신(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의 지지자들과 정부는 에라완 사원 앞에서 대치했다. 군대와 경찰이 구역을 포위하고 현장 진압을 단행했고, 여러 명의 친탁신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 외신은 태국 시위는 홍콩 항쟁의 풍경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태국의 청년들 역시 손짓으로 정보를 전달했고, 줄지어 서서 대치 전선 쪽으로 우산과 생수를 전달했다.

저녁 6시30분, 파툼 완 구역에 모인 시민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경찰 진압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회 조직자는 사람들에게 침착해지자고 호소했고, 이에 사람들은 시암 센터Siam Center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7시 전후, 경찰의 물대포차 여러 대가 푸른색 물대포를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 현장의 경찰기동대 방패는 시위대를 향해 다가와 무작위로 시민들을 체포했다. 전선의 청년들은 우산을 써서 막았지만, 매우 빠르게 대오가 밀렸다. 부상자도 속출하고, 일부는 화상을 입기도 했다. 경찰이 물대포로 쏜 액체 속에 캡사이신과 같은 자극적인 물질을 섞었기 때문이다. 울부짖음과 고함, 때리는 소리와 충돌음, 사이렌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방콕에 사이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트위터에는 “해산은 투항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방콩포스트>는 경찰이 이날 밤 8시반 즈음에 제차 파툼 완 지역의 주요한 교차로를 봉쇄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이 동원한 물대포차는 한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 한국의 시민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목격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물대포에 의해 고 백남기 농민이 목숨을 잃었다. 태국의 인권 활동가들은 경찰들이 무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 대변인은 “긴급칙령을 위반하는 집회와 인터넷상에 ‘위법한 정보’를 게시하는 사람들을 모두 체포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프리 유스(Free Youth) 등 운동단체들은 구체적인 장소는 보안에 부친 채 이튿날 다시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한 활동가는 언론에 신뢰의 멘트를 덧붙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설령 더 많은 활동가가 체포되더라도 말이죠. 항쟁은 이미 달라졌어요. 우리는 하나의 리더를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집단적인 힘을 갖고 있어요. 전 세계가 모두 이곳을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쁘라윗 총리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법률 행동을 통해 집회를 멈추게 할 것이지만, 인민의 권리를 침범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총리의 입과 손발이 따로 노는 형국이 계속되었다.

 

10월 15일 목요일

쁘라윗 총리가 5인 이상의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국가안전에 유해한 정보를 전파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긴급칙령을 공포했다. 몇 시간 동안 방콕 시내에는 전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4시가 되자 대량의 시위자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집회를 열고 경찰과 정면 대치했다. 시민들은 금지령에 굴복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9월 20일 일요일

해가 뜨기 무섭게 왕궁 앞 광장에 명패가 박혔다. “이곳에서 인민들은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 이 나라는 왕실이 우리를 속인 것과 달리, 왕실의 것이 아니다. 인민의 것이다.”

시민들은 이 자랑스러운 명패를 향해 줄을 섰다. 마침내 차례가 된 사람들은 세 개의 손가락을 드는 태국 시위 특유의 경례를 하고, 인증샷을 찍었다. 명패에 대한 처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피야 타와이차이 경찰차장은 이 명판이 불법인지 여부를 논의하고,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다음날, 명패는 사라졌다.

군주제에 공개적으로 도전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왕권을 제한하는 개혁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시민들은 왕궁을 둘러싼 장벽을 지키는 수백 명의 경찰에 의해 봉쇄되었다. 활동가들은 경찰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상세히 적은 편지를 건넨 후 승리를 선언했다. 한 활동가는 “우리는 승리한 거예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왕실에게 도전하고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잖아요.”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대는 시암상업은행에 대한 보이콧 캠페인을 선언했다. 와지랄롱꼰 왕이 최대주주로 있는 이 은행에 대한 압박이 군주의 강력한 권력에 도전하는 운동에 상징적인 캠페인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암상업은행은 1907년 국왕의 고조부인 라마5세에 의해 세워진 가장 오래된 은행이자, 시가총액이 가장 큰 은행이다. 은행 측은 “은행 시스템의 유동성에 대해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운동이 장기화된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8월 23일 금요일

23일 일간 방콕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수안두싯폴이 지난 16∼21일 온라인으로 19만7천29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반정부 집회에서 제기되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 또는 의회 해산 요구에 응답자의 53.88%가 찬성했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38.43%에 그쳤다.

 

8월 16일 금요일

프리유스는 왕실 개혁 관련 요구를 제외한 기존의 3개 항만을 요구안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왕실모독죄의 함정에 걸리는 순간 전체 운동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금기를 지킬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8월 15일 토요일

방콕 시내 Democracy Monument에서 열린 집회에서 2만여 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한 달 동안 시위를 주도해온 청년들은 태국의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왕실과 군부 정권의 정치적 권위에 겁먹지 않고, 개인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강하며, 다양한 표현의 수단을 갖고 있다. 언어를 되찾은 것이다.

저항하는 청년들에겐 다양한 경향이 뒤섞여 있다. 학교의 촌스러운 규범에 저항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이성애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추구하는 성소수자 그룹들도 있고, 각양각색의 페미니스트 그룹들도 보인다. 그러니 총리 퇴진과 국회 해산, 헌법 개정, 반체제 인사 탄압 중단과 같은 요구들 외에도 삶 속에서 끄집어낸 다양한 요구들이 잠재되어 있다.

정치적 요구에 있어서도 일정한 스펙트럼이 있다. 온건파는 헌법 개정과 완전한 입헌군주제의 실시 정도에 동의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청년들은 군주제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길 원한다. 하지만 민심은 매우 복잡한 층위로 겹쳐 있다. 가령 군주제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입헌군주제의 실시를 요구하는 것이 보다 대중적인 요구일 것이란 판단이 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 군부가 없으면 군주를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는 태국 현대사에 쌓인 굴곡들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5일 전 탐마삿대학에서의 집회로 왕실모독죄에 대한 금기가 깨져버렸고, 정부는 강한 탄압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 때문에 이날 집회에서는 군주제 개혁 요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만약 시위대가 왕실을 정조준해 비판하면, 과거에도 그랬듯 왕실 지지 세력이 꿈틀거릴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쁘라윗 총리 정권 내에도 노선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경제를 안정시키고 집권의 합법성을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각료들은 거리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공감을 구하려 하기도 한다. 반면 군 통수권자인 아피라트는 이보다는 참을성이 부족한 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 차례 거리의 청년들을 비난하고, ‘가짜 뉴스’와 ‘매국노’들로 인해 조국이 위험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8월 10일 월요일

탐마삿 대학 랑싯 캠퍼스에 4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학생운동가 빠누사야 시니찌라와타나꾼은 ‘왕실개혁 10개항’을 공개 낭독했다. 3개월 후 경찰은 이 낭독문을 빌미로 빠누사야를 소환한다. 모든 대중운동은 영향력 강한 활동가를 낳기도 한다. 그는 왕실모독제 위반 혐의로 소환된 7명의 핵심 활동가 중 1명이 됐다.

  1. 누구도 왕을 비판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6조(2017년 제정)를 철회하라. 인민당이 공포한 헌법에 규정된 바와 같이 의회가 왕의 잘못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하라.
  2. 형법 제 112 조를 철회하고, 군주제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군주제를 비판한 혐의로 기소된 모든 사람들을 사면하라..
  3. 2018년 왕실자산법을 폐지하고, 재정부 산하 왕실 재산과 개인 재산을 명확하게 구분하라.
  4. 국왕에게 할당된 국가 예산액을 국가의 경제 상황에 맞게 삭감하라.
  5. 왕실청을 폐지하라. 예를 들어 왕립 보안사령부와 같은 명확한 의무를 가진 부대를 다른 기관 산하로 이전 배치하라. 추밀원 등 불필요한 기관은 해체하라.
  6. 군주제의 모든 자산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왕실 자선기금에 대한 기부금 수령을 중단하라.
  7. 왕실에 대한 정치적 의견 표현에 대한 금지를 중단하라.
  8. 군주제를 과도하고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모든 홍보 및 교육을 중지하라.
  9. 군주제를 비판하거나 이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 대한 의문사를 규명하라.
  10. 국왕은 더 이상의 군부의 쿠데타를 지지하지 말라.

 

8월 7일 금요일

인권운동 변호사 아논 남빠 등 활동가들이 늦은 밤까지 경찰과 대치하다 체포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위한 빌미 삼아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집회를 개최한 혐의, 내란 선동 등 7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두 달째 태국에선 신규 전염이 발생하고 있지 않았다. 정부 측이 저항의 핵심으로 지목한 이들을 표적 삼아 체포하기 위해 핑계를 만들 뿐이었다.

 

8월 3일 월요일

‘불량 학생’운동(Bad students’ movement)이라 명명된 청소년들이 나탑홀 티푸완 교육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교육부 장관에 대한 모의 장례를 열고 태국 청소년들을 옥죄고 있는 낡은 교육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태국의 열악한 공교육 제도의 폐해가 폭발한 것이다. 값 비싼 사립학교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태국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공부해야 한다. 만성적인 교원 부족과 학교 안에서의 체벌 역시 만연해 있다. 이런 모순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왔다. 한 청소년 활동가는 말했다. “우리의 학교는 작은 독재정권과 같아요.”

이날 밤 도심 한 쪽에서는 해리포터 목도리를 두른 1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해리포터>를 패러디하여 태국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는 많은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대중문화를 전유한 퍼포먼스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7월 24일 금요일

경찰이 2012년 있었던 ‘레드불’ 창업주 손자 워라윳 유위티야(Vorayuth Yoovidhya)의 뺑소니 사망 사고를 둘러싼 모든 혐의가 기각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사고 피해자의 가족은 “너무 슬픕니다. 이건 이 나라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경찰이 정치계와 유착되어 있는 만큼, 부자들과의 유착관계도 매우 깊다는 걸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다시 폭발했다. 이 사건은 분명 거리 시위를 폭발시킨 하나의 요소 중 하나였다. 며칠 후 쁘라윗 총리는 워라윳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과 관련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총리 직속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때늦은 선택이었다.

 

7월 18일 토요일

새로이 등장한 사회운동 조직 프리유스(Free Youth)가 태국 민주항쟁의 포문을 열었다. 2,500명의 시민들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민주기념비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한 달 전부터 이 항쟁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조직해왔다. 사람들을 모으고, 동참할 청년 조직들을 찾았다. ‘프리유스’와 ‘태국학생연대’는 국회 해산, 재선거, 반체제 인사 체포 중단, 헌법 개정, 민간에게 정권 이양 등을 담은 호소문을 낭독하고 2주 안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평화로운 집회 현장, 스마트폰 불빛을 이용한 퍼포먼스, <헝거 게임>의 세 손가락 경례를 모방한 퍼포먼스 등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른 항쟁의 풍경을 만드는 것 같았다. 더구나 이는 2019년 홍콩 항쟁의 모습과 닮기도 했다. 외신과 인터뷰한 한 참석자는 “홍콩 항쟁은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폈어요”라고 말했다. 새롭게 폭발한 태국 청년들의 대중운동은 군주제와 군부 독재의 모순이 중첩된 태국 사회를 변혁할 수 있을까?

7월 18일 민주기념비 광장 시위 현장 (사진 Anusak Laowilas/Nur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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