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분쟁, 바다 건너 불구경 해도 되나?

남중국해 분쟁, 바다 건너 불구경 해도 되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긴장은 우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020년 10월 8일

동아시아, 남중국해, 대만, 대만해협, 중국, 미국, 베트남, 필리핀, 반전평화

남중국해 분쟁의 역사적 기원과 현재 이 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각국 간의 첨예한 경쟁과 군사적 위기 고조, 그리고 그에 맞선 동아시아 민중의 평화운동 필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팍아사 섬의 새 부두

남중국해 인공섬 및 기지
남중국해 인공섬 및 기지

지난 6월 9일 필리핀군은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 남사군도(南沙群島)에서 점유하고 있던 몇 안되는 작은 섬들 중 하나인 팍아사 섬(Pag-asa Island; 中業島)에서의 3년 공사를 끝마쳤다. 군사용 항만을 정비하고 초등학교를 세웠으며, 5개 침상을 갖춘 병원도 만들었다. 거주민 184명, 축구장 45배 면적의 이 작은 섬은 필리핀만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 베트남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오랜 세월 무인도였던 이 섬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1933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군대가 이곳에 깃발을 꽂으면서다. 태평양 전쟁 시기엔 일본군이 점령해 깃발을 꽂았다. 그 후로 티투섬은 항상 남중국해 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남베트남, 필리핀, 중화민국(대만)이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옥신각신해왔고, 1971년부터 필리핀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따지고보면 바다 한복판의 작은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분쟁의 원흉은 다름 아닌 제국주의다.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이하 ‘PCA’)는 이 섬의 주권을 주장하는 중국 정부의 제소를 각하했다. 이듬해 8월 중국은 2척의 구축함과 1척의 호위함, 2척의 대형어선을 이끌고 해상 시위를 벌였고, 2018년 3월엔 600여 척의 해경총대 함대를 몰고 왔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 해상투명성 이니셔티브(Asia Maritime Transparency Initiative)는 이를 ‘양배추 전술 Cabbage tactics’이라고 부른다. 여의도 면적 12분의1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이 왜 이런 국제전의 중심이 된 걸까?

사실 올해 2월 필리핀은 22년째 지속되어온 필리핀-미국 방문군 협정(Philippines–United States Visiting Forces Agreement)의 중단을 공포한 바 있다. 이 협정은 양국 간 군사 협력을 토대로 하는데 2019년에만 280차례의 공동 훈련을 수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 협정의 파기로 인해 중국-필리핀-미국을 둘러싼 오랜 긴장관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듯 했다. 더구나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필리핀의 전통적인 친미 노선과 결별하고 중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려는 제스추어를 보여왔다. 임기 중 6차례에 걸쳐 중국에 방문했으며, 중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투자 약속도 받았다. 남중국해에서의 활로를 모색하던 중국 정부는 몇 년째 지속되던 영유권 분쟁을 멈추고 PCA의 판결을 수용하겠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4년에 걸친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꽃길도 이제 끝날 모양이다. 6월 12일 두테르테는 미국과의 방문군 협정을 이어가는 것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7월 14일 델핀 로렌자나(Delfin Lorenzana)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중국 정부가 남중국해에 대한 PCA의 2016년 조정을 수용해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 7월 13일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남중국해 대부분의 해양 자원들에 대한 베이징의 주장은 그것들을 통제하기 위한 괴롭힘 활동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불법”이라고 비판했고, 23일에는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반공 노선’을 천명했다. 25분에 걸친 연설에서 폼페이오는 중국공산당을 “프랑켄슈타인”으로 규정하고 중국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2018년 미·중 무역분쟁 이래 백척간두를 달리던 국제정세가 ‘신냉전’에 들어섰다고 말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의 기원

중국은 남중국해의 약 90%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대만, 말레이시아, 부르나이 등 주변국과 갈등을 빚고 있고, 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46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1935년 발행한 <중국남해각도서도 中國南海各島嶼圖>에 근거해 11단선(十一段線)을 선포하고 서사·남사·동사 군도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국공 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난 후,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는 1953년 ‘9단선’을 선포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해안선으로부터 근접한 지역에 9개의 가상 기준선을 그어 놓은 것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은 여기에 포함된 모든 섬이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은 소규모 전투까지 불사하며 곳곳에서 주변국과 대립하고, 군사기지를 만들고 있다.

남중국해 9단선
남중국해 9단선

가령 베트남과는 서쪽 파라셀군도(Paracel Islands; 西沙群岛)에서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 4월과 6월에는 중국 해안경비선이 파라셀군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을 하던 베트남 어선에 근접해 어획물과 어구 등을 강탈했고, 베트남 정부는 규탄 성명을 내고 중국 측에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그러자 중국은 이쪽 해역에 탐사선 하이양디즈4호를 보내 베트남의 해저 탐사를 방해했다. 중국의 싱크탱크 남중국해전략태세감지계획(南海戰略態勢感知計劃·SCSPI)는 이 분쟁 해역에서 6월 75척, 7월 90여 척의 베트남 어선이 출몰했다고 밝혔다.

대만과의 분쟁은 둥샤군도(東沙群島; Pratas Islands)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12일 대만 민정당 소속 정치인 왕딩위(王定宇)는 “중국군이 둥샤군도를 포위한지 이미 60시간이 지났다”고 언급했다. 대만 해양위원회는 이런 사실을 부정했지만, 긴장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둥샤군도와 남쪽 타이핑 섬에 대한 영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대만 정부는 점차 강력하게 두 곳을 군사 요새화하고 있는데, 만약 남중국해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힌다.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

미국-중국 간 군사적 긴장도 격화되고 있다. 올해 4월 10일, 중국 H-6와 젠-11등 전투기 6대가 대만 남부와 필리핀 바탄 제도 사이에 있는 바시(巴士)해협을 가로질러 출격했고, 이튿날 11일에는 중국의 1호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대만해협 한가운데로 등장했다. 대만 동쪽까지 간 랴오닝함 전단 6척은 대만섬을 한 바퀴돌아 바시 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돌아왔다. 중국의 국영언론 환구시보는 “미군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중국군은 먼바다로 군함을 보내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역외 국가이자 ‘세계의 경찰’ 미국이 나섰다. 같은 날 미국 이지스구축함 1척이 대만해협의 중국측 해역으로 통해 가로질러 남중국해 방향으로 항해했다. 중국 항공모함에 경고음을 보낸 것이다. 이틀 후엔 최단 시간에 최대 규모의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Elephant Walk’ 훈련도 감행했다. 핵무기 탑재 폭격기와 공중급유기, 무인 항공기 등이 죄다 출격했다.

이후 남중국해에서의 긴장은 첨예하게 확대됐다. 6월 18~20일 중국 잠수함이 일본 영해 인근을 잠항한 뒤, 바시해협을 거쳐 남중국해 쪽으로 빠져나갔다. 잠수함 기동 이후 미군은 정찰기 6기와 공중급유기 2기는 바시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향하는 지역을 6월 말 내내 정찰하며 잠수함 신호를 탐색했다. 잠수함 봉쇄 작전능력을 점검한 것이다. 항공모함 니미츠호와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다른 함정 4척도 6월 28일부터 필리핀해에서 대규모 훈련을 벌였으며, 또 다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도 바시해협 인근에 포진해 있다.

이런 사태는 7월에도 이어졌다. 미사일구축함 등 중국 함정들이 다시 일본 수역을 통과했다. 중국 전투기와 폭격기 등 군용기 수십 대는 대만 남서부 방공식별구역 부근에 접근했다가 바시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빠져나갔고, 7월 1~5일에는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 인근 해상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이 해상 훈련에 한창이던 7월 4일에도 미군은 남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펼쳤고, 6~8일에는 정찰기들이 중국 광둥성 연안을 근접 정찰했다. 특히 8일에는 지상과 공중의 모든 신호를 포착해 분석할 수 있는 정찰기(EP-3E)가 중국 영해 95㎞까지 접근했는데, 미국 정찰기들의 항로가 중국 연안에 점점 가까워지자 중국군이 강력 대응을 경고했다고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 Indo-Pacific Strategy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로 초고속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은 2010년 일본을 넘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2019년에 이르러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퍼센트로, 미국 24퍼센트에 이은 두 번째다.) 그러자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됐다. 이듬해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외교 정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혹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 Asia)’이 그것이다. 즉, 중동에 집중되었던 미국의 대외전략을 아태 지역으로 전환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이곳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미국이 중동에서 치르던 파괴적인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다.

그러자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천명하고,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연결고리를 넓히고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을 설립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체결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제안한다. 그 본질은 앞으로는 중국이 세계체제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으니, 수평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핵심이익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중국은 군사력 현대화를 통해 정밀타격 능력과 공중 전력을 높여왔고,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증대하면서 특히 아시아 지역의 질서를 재편하려 시도해왔다. 미국 역시 해군력과 첨단전력을 중심으로 아시아로의 군사력 리밸런싱(rebalancing)을 지속했다. 2017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과 함께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선언했다. 그러니 트럼프는 갑자기 돌출적인 전략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오바마 시기의 전략을 계승한 것일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는 중국과의 대립을 군사‧기술‧경제 경쟁으로 확대했고 2018년부터는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중국의 도전에 대응해 첨단무기 개발을 위한 투자를 본격화했고, 미사일 전력의 우위를 위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탈퇴했다. 또, 아시아에서의 전진태세를 강화하고 Quad를 중심으로 동맹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전략의 목표는 바다와 하늘에서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고, 지상 발사 중·장거리 미사일과 자동화된 무인무기체계, 전자무기 등을 개발하여 날로 발전하는 중국의 군사적 성장을 상쇄하는 것에 있다. 일본·인도·호주와의 군사 협력을 확대하면서 Quad를 준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이런 전략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니 큰 틀에서 보면 미‧중 분쟁은 미국의 선공과 중국의 대응이 지속되는 것에 가깝다. 미국의 입장에서 인도양과 태평양 일대는 중국 봉쇄의 경계선이고, 중국 입장에서 이는 뚫어야 하는 선이다.

지난 8월 말 미국 상무부가 남중국해 군사기지 건설에 연루된 24개의 중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일환에서다. 이번 조치로 미국 기업들은 해당 중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고, 거래를 원할 경우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재 대상이 된 개인과 그 가족의 경우엔 비자가 규제되어 미국 입국이 어렵다. 이와 같은 조치는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완전한 불법”으로 규정한 지 한 달 만에 이뤄진 것이다. 지난 9월 키이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이 대만을 방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크라크 차관은 반(反)중국 경제블록이라 불리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주창하고, 화웨이 보이콧을 앞장서서 추진해온 인물이다. 그의 방문은 1979년 대만의 단교 이후 41년 만에 이뤄진 고위 관료 방문으로,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차이잉원 총통을 접견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대만에 크루즈미사일과 드론 등 첨단무기를 판매했다.

중국‧미국‧대만 군의 대응 수준이 높아졌다. 크라크 차관의 대만 방문을 ‘하나의 중국’ 흔들기로 받아들인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또 9월 17일과 18일 이틀간 전투기와 폭격기 약 20기를 출격시켜 대만 방공식별구역과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했다. 꽤나 과격한 무력시위를 벌인 셈이다. 이에 더해 중국군은 둥펑(東風·DF)-11A 미사일 10발을 일제히 발사하는 훈련을 벌이는 등 인근 해역에서 동시다발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9월 말 필리핀해와 서태평양 일대에서 훈련을 펼쳤고, 정찰기들을 대만해협에 빈번하게 보내 중국군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대만 정부 역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차이잉원 총통이 군 부대에 방문해 “강력한 국방력”을 강조하는 등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의 해결책은?

중국 정부는 남중국해 9단선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모든 섬‧암초‧산호초 및 해역에 대한 영토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국가가 어느 한 해역을 역사적 수역으로 선포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이 해역을 통제하고 행사해 왔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증거는 빈약하다는 게 PCA의 판단이다.

더구나 국제해양법상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대륙붕에 대한 권리는 역사적 수역과 무관하다. 배타적경제수역이란 유엔 해양법협약에 근거해 설정된 경제 주권이 미치는 수역을 가리키는데, 연안국은 연안으로부터 200해리(370.4km) 내의 수산자원 및 광물자원 등의 자원의 탐사와 개발에 관한 권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영유권이 인정된 영해가 아니기 때문에 타국의 선박 항해가 가능하다. 나아가 대륙붕에 대한 연안국의 권리 역시 탐사 및 천연자원의 이용 및 처분에 한정된다. 중국 정부는 9단선 내 해역을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으로 간주하고 이 해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적이 없고, 영해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중국군이 남중국해에 처음 깃발을 꽂은 것은 남베트남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1974년이 처음이다.

싱가포르 출신의 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의장 키쇼어 마부바니(Kishore Mahbubani)는 그의 저서 『거대한 수렴』(The Great Convergence: Asia, the West, and the Logic of One World)에서 중국 정부가 국민당과 일본이 그은 선을 근거로 삼아 9단선을 변호하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9단선’에 근거한 중국의 영해 주장은 미국에게는 지정학적 선물이 될 뿐이라며, 그것은 마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중국에게 지정학적 선물이 되었던 것과 같고, 사실 9단선은 국제 해양법과도 무관하며, 합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주변국들도 미국에 조응해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외교관 알 자랄 역시 9단선은 정의도 좌표도 없기 때문에 합법성과 정확성이 불명확하다고 비판했고, 올해 7월 호주 정부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공언한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성명을 유엔에 제출했다.

앞으로 미국은 이전 보다 강경한 대중 정책을 구사할 것이고, 중국은 주변국 외교나 영토 분쟁 등에 있어 적극적인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양국의 군사 경쟁은 경제‧기술의 차원과 연루되어 있는데, 타협 지점을 찾기 어렵다. 물론 중국으로선 절대적인 전력 차가 있어 대립 일변도를 걸을 수 없고, 그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점이 생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경쟁적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중국을 세계 질서에서 주변화시켜 자국과의 격차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곧 있을 미국 대선 결과는 이 양상에 큰 변화를 주진 않을 것이다. 미 지배계급은 당파를 막론하고 ‘세계의 경찰’로서의 지위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당 바이든이 승리할 경우, 동맹국들로부터의 헤게모니 회복을 추구함으로써 트럼프보다 더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강경한 중국 견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기 세력권을 넓히면서 역외국가인 미국을 동아시아에서 배제하는 전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인공섬의 군사화를 통해 해양 통제력을 확보하고,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기정사실화하길 원한다. 대만해협에서는 통제력을 강화함으로써 대만 독립과 센카쿠 열도의 상황을 억제하고 미국의 개입을 막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를 밑거름 삼아 서태평양으로 진출하여 아시아 권역에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앞마당에 있는 미군의 봉쇄선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중국의 중장기적 지향일 것이다. 향후 경제 성장을 통해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게 될 때, 미국에 군사적으로 도전하면서 지역 패권을 추구하려 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맞서 미국은 보다 강력하게 중국을 견제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 봉합되든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가 지속되든 동아시아는 거대한 폭탄을 안고 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남중국해는 영원한 분쟁의 바다로 남아야 할까? 혹자의 말처럼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켜야 할까? 점증하는 전쟁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과격한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가장 합리적 제스추어를 보이는 것은 베트남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부는 중국이 점유한 시사군도 분쟁을 PCA에 제소하는 것을 피하면서, 국제사회에 “중국과 아세안 간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협상을 통해 남중국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 해양법협약이 정한 바다의 범위와 주권 등을 결정하는 근거와 COC 테이블에서 평화적으로 조율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2020년 현재 베트남은 아세안 의장국을 맡고 있는데,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강한 시점인 올해 중국 정부를 협상장에 끌어내지 못하면, 친중 성향이 강한 미얀마가 COC 모니터링을 맡을 내년 이후엔 우호적인 협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EU와의 국제 여론전을 통해 COC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이 주장하는 일부 섬에 대한 영유권 고집 역시 지지할 수 있을만한 것은 못 되지만 말이다.

균형 외교가 아니라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다자 안보 체제의 구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호주, 인도 등 인도·태평양의 주요 국가들을 끌어들여 구성한 4자 안보 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즉 쿼드(Quad)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봉쇄하기 위한 테이블이다. 얼마 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의 외교 협력을 다른 나라로 확대해 인도·태평양에 다자 안보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역시 “(인도‧태평양에서) 나토처럼 강력한 다자기구가 필요하다”며, “쿼드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포함해 논의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의 유력 저널리스트 캐어리 황(Cary Huang) 역시 쿼드가 “아시안 나토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베트남의 쿼드 동참은 지역 질서를 안정화하기는커녕 보다 심각한 전쟁위기로 격화시킬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첨예한 긴장은 결코 ‘바다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이 지역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동아시아 전역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일본 재무장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대만해협이 아니라 남중국해 한복판에서 준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한국군은 미국이 짜놓은 반중 연대라는 질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오히려 조선일보 등 극우세력은 ‘쿼드 플러스’ 편입 여부를 외교력 평가의 잣대로 들이대고 있고, ‘신냉전’이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임을 강요하면서 향후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를 정쟁의 프레임으로 제시할 것이다.

쿼드 회의 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와 스가 요시히데
쿼드 회의 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와 스가 요시히데

다시 말하지만 최근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의 분쟁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진보정치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입장 정리와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세 가지 차원의 실천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단순히 ‘균형 외교’(취임 이래 문재인 대통령은 “미·중 간 균형외교”를 강조하고 있다)를 위한 노력만으로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한편으로는 군비 증강과 무기 도입에 집중하고 다른 한편에선 균형 외교를 운운하는 것은 아무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사회운동과 진보정치는 정부 균형 외교의 ‘응원부대’가 아니라, 독립적인 평화운동을 국내에서부터 재건해야 한다. 둘째, 지역과 현장 곳곳에서 현재의 위기 정세에 대한 이해 증진을 위한 갖은 노력을 펼쳐야 한다. 대중의 인식이 미비한 상태에서는 언제든 호전적인 세력이나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째,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가 강화되어야 한다. 동중국해‧남중국해 분쟁의 중단과 협상을 촉구하는 동아시아 민중 공동 평화선언 등의 행동을 통해서라도 국경을 초월한 민중의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두 슈퍼파워들 사이의 전쟁에 의해 동아시아 각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이 빼앗겨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함께 확인함으로써, ‘신냉전’ 논리에 맞선 새로운 운동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