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생태사회주의인가 : 사사키 류지×사이토 코헤이 『마르크스와 생태주의』 대담

[번역자] 이 글은 2018년 일본의 여러 생태사회주의 연구자들의 글을 엮어 낸 『마르크스와 생태주의』(マルクスとエコロジー ―資本主義批判としての物質代謝論) 발간을 기념해 2018년 4월 호리노우치 출판사 주최로 사이토 코헤이(斎藤幸平)와 사사키 류지(佐々木隆治) 사이에 이뤄진 대담을 번역한 것이다. 원제는 “사사키 류지×사이토 코헤이 『마르크스와 생태주의』 발간 기념 대담 : 마르크스의 현재성”이다. 사이토 코헤이는 아이작 도이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연구자로, 국내 번역된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의 저자이며, 사사키 류지는 사이토가 해당 저서에서 주요하게 참조하는 ‘물상화론’을 연구한 연구자다. 이 대담은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자체의 개념과 주장을 이해하기보다는, 저자가 하는 주장의 학문적 배경과 맥락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참고할 만한 자료이며, 아울러 오늘날 일본 내에서 이뤄지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흐름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다. 

[편집자] 사이토 코헤이의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를 살피려면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을 읽어야 한다. 가능하면 이 책의 서평도 발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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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생태주의인가

사사키 류지 (이하 사사키) 최근 이와사 시게루(岩佐茂) 선생과 제가 엮은이가 되어 『마르크스와 생태주의』를 호리노우치 출판사에서 간행했습니다. 이 책의 집필진의 일원이자, 마르크스와 생태주의를 주제로 한 박사논문을 낸 사이토씨와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대화해 보고자 합니다

사이토 코헤이 (이하 사이토) 잘 부탁드립니다. 이 책 간행 이후 반응을 보면 마르크스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철학과 경제학이 중심이고, ‘생태학’과 결부시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것인 듯 합니다.

사이토 코헤이 斎藤幸平

사사키 딱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으로 떠오른 주제이네요. 이 책 간행의 경위를 보자면 먼저 마르크스의 물질대사개념에 주목한 점이 있습니다. 저는 최초의 단독저서인 『마르크스의 물상화론』(社会評論社, 2012)에 대해 마르크스를 ‘소재의 사상가’로서 특징지었습니다만 이 때 주장의 원천이 된 것이 「발췌노트」라고 불리는 마르크스의 연구 노트입니다.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을 쓰기 직전에 MEGA의 편집작업에 관여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마르크스가 농업화학 등의 저작을 매우 주목하여 적어놓은 발췌노트를 접하여 마르크스의 ‘소재’ 그 자체에 대한 강한 관심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소재stoff’의 작용을 순환적으로 파악한 물질대사(stoffwechsel)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되어 그 속에서 마르크스와 생태주의와의 관련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사이토 그에 대해서 해외의 연구에서도 자극을 받았던 적도 있지요?

사사키 그렇습니다. 특히 영어권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 연구에서도 존 벨라미 포스터나 폴 버켓이 별도의 흐름 속에서 물질대사론을 기반으로 한 생태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연결짓는 주제로서 ‘마르크스의 생태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생태주의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이 책을 간행하기에 앞서 생태주의론을 전문으로 하는 이와사 시게루 선생을 엮은이로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이토 애초에 ‘생태주의’에 대해서 일본과 세계의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격차를 느낍니다. 지금 제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수년에 걸친 역사적인 가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캘리포니아의 광대한 토지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은 터무니없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는 자동차 사회일 뿐만 아니라 긴 시간을 걸쳐 저장된 지하수를 대량으로 끌어올려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소비사회입니다. 확실히 지속가능한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거기에 기후변동의 영향이 추가되어 매우 심각한 사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악화하고 일상의 문제로서 느껴지는 가운데 지금가지의 생활을 발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론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현재의 대립축은 리버럴한 다수파로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로 지구공학과 같은 기술혁신에 의해 환경문제를 해결해 생활을 이어가 보자는 진영과, 그러한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본이나 상품화의 논리를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은 없다라는 좌파진영으로, 후자의 의론이 마르크스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닌 나오미 클라인도 포스터의 ‘물질대사의 균열’이라는 개념을 채용해서 기후변동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그렇네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기후변동에 대해 다룬 클라인의 “This Changes Everything”도 그렇고, 수자원문제를 다룬 “Blue Gold”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해 물질대사가 교란되는 것으로 인해 수자원이 희소해지고, 수자원이 희소해지는 것으로 인해 물이 상품화되고, 그것으로 인해 더욱 물질대사가 교란되고, 물이 마실 수 없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은 단순히 저널리즘뿐만이 아닌 현실의 여러 운동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그런 세계의 저널리즘이나 운동에 비해 일본에서 기후변동 등의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이해되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이토 일본에서 알려져 있는 ‘에코’ 사상은 결국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의 연장으로서 네오 맬서스주의적인 자원한계론입니다. 인구가 증대하면 자원이 고갈되어 인류가 멸망하거나 성장이 정체한다 라는 이야기로 이어지거나, 또는 녹색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에 관련된 운동과 같은 개인적 합리성으로 환원되곤 하기 쉽습니다.

마르크스가 주용한 것은 환경위기를 그러한 네오맬서스주의나 소비자주의가 아닌 사회적 생산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필요성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자신은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의 교란’이라고 하는 개념을 사용해서 자본주의에 고유한 모순의 표현으로서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위에서 물상화, 또는 상품의 힘의 역제라고 하는 주장을 하고 있어 현재로서도 굉장히 시사적입니다.

 

구루마학파를 이어받아

사이토 ‘물질대사(stoffwechsel)’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만 이번 마르크스의 생태학에 연결된 착안점은 stoff, 즉 ‘소재’, ‘물질’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포스터 등의 연구와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 ‘소재의 사상’은 사사키씨가 독자적으로 전개한 것입니다만 사사키씨의 『자본』 독해는 오오타니 데이노스케 (大谷禎之介), 다이라코 도모나가 (平子友長) 등 MEGA 편집에도 관여하고 있는 일본의 연구자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또 거슬러올라가면 구루마 사메조 (久留間鮫造) 선생의 연구에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구루마 선생의 연구는 그닥 잘 알려져 있지 않네요.

사사키 구루마 선생은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스미토모은행에 들어갔습니다만, 쌀 소동 중 노동자의 운동에 충격을 받아 다시 돌아와 호세이대학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 (法政大学 大原社会問題研究所)에 들어가 연구자로서 활동하신 분입니다.

구루마 선생은 먼저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에 관심을 가지고 마르크스가 스미스와 리카도를 연구한 『잉여가치학설사(1861-63 원고)』를 읽은 것에서 마르크스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흔히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는 정치적인 마르크스 해석에 얽히지 않고 마르크스를 어디까지나 텍스트 그대로 연구한 것입니다. 확실히 구루마 선생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의 핵심을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이끈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독자적인 틀을 만들던 것이나, 독자적인 학파를 전개한 것이나, 그저 멋져 보이는 정도가 아닌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특히 화폐론이나 공황론에서 세계 유일의 작업을 진행한 분입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가치형태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구루마 선생의 작업을 계승하는 조류뿐입니다.

사이토 구루마 선생 자신이 정말 그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지요. “마르크스가 적고 있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계속해서 읽어본 결과, 역시 이것은 이런 뜻이었구나 라는 식으로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었다. … 만약 내가 변증법이나 분석방법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마르크스를 읽었더라면, 잘 못했더라면, 오히려 되지도 않는 틀린 해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루마 선생의 연구의 성과가 『마르크스경제학용어집』(大月書店)으로 출판되어 그것이 독일의 출판사의 눈에 띄어 독일어 판이 출판된 것을 보아도 해외에서도 업적이 인정된 것 같습니다. 구루마 선생의 제자인 오오타니 선생도 『자본』 초고를 암스테르담에서 읽고 한문장 한문장 엥겔스판과 비교해 검토하여 그 성과를 해외의 연구자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MEGA가 90년대에 들어와 소련이 붕괴하며 프로젝트의 존속이 위협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체제 속에서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인 새로운 프로젝트로서 MEGA가 계속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일본의 그룹으로서도 참가해 달라고 요청받은 것은 오오타니 선생뿐이었습니다.

 

일본 내 마르크스 이해의 문제점

사사키 마르크스의 이론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만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에 대해서는 근대고유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떤 귀결을 가져오는가, 그런 것이 가장 핵심적인 논제입니다. 그런데 아카데믹한 세계에서는 그러한 마르크스 자신의 문제구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외부에서 어떠한 철학이나 사상을 가져와서 그 틀에서 마르크스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독해방법들으로 읽어볼 만큼 마르크스는 쉬운 사상, 이론이 아닙니다.

히로마츠 와타루(廣松渉)는 그런 전형이 아닐까요. 에를 들어 히로마츠는 실제로는 지구가 공전하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도 ‘물상화’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물상화라고 말하면 근대 고유의 관계를 파악하려고 했던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는 후설이나 하이데거의 철학적 문제구성에서 좌파적으로 생각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그것에 마르크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이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에 대해서도 먼저 자신의 철학적 짜임틀이 있어서 그 가치형태론해석은 칸트의 초월론적 통각에 연결되어 일반적 등가물을 다르게 읽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철학적인 관심을 강요하는 접근방법의 일례입니다.

사사키 그 말은 아카데미 세계에 있어서는 무언가의 학문적인 권위에 기대어 마르크스를 ‘재해석’하는 것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왔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철학에 한하지 않고 경제학에서도 그렇습니다. 많은 마르크스경제학자는 기존의 경제학적 문제구성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대어서 『자본』 해석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그 부제로 달고 있듯이 ‘경제학 비판’인 이상, 그러한 문제구성에 의존해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그저 기존의 경제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경제학의 존립근거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 자체에서부터 명확히 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로 마르크스는 그러한 시도를 『자본』 모든 편에 걸쳐 수행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제3부의 ‘삼위일체정식’에서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의 세계관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는 자신이 수행한 경제학비판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얼마만큼 곤란한 것이 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사이토 왜곡된 마르크스 해석은 아카데미 이외에서도 볼 수 있지요.

사사키 바로 그렇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어떤 의미에서는 심플하고 수미일관해서 이해하기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내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난해한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따라서 현실의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에 대해 마르크스의 주장을 펼칠 때에는 이를 다소 데포르메시켜서라도 통용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역할을 처음으로 담당한 것이 절친 엥겔스였습니다. 엥겔스까지는 괜찮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통속화되어서 결국 평면적인 계급투쟁일원론, 경제결정론적인 의론으로 환원되어갔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소위 ‘마르크스주의’입니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를 보더라도 마르크스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이토 소위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운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의 단순화나 왜곡으로 이어졌습니다. 운동에 대해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원전에 기반해 마르크스의 이론 그 자체를 검토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또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사사키 마르크스연구에 한정하지 않아도, 고전적 저작의 연구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텍스트 비평에 기반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히로마츠나 가라타니든 어디까지나 독자의 이론이나 철학을 창조한 것이지 마르크스연구와는 다릅니다.

사이토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히로마츠의 『독일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으로는 블라디미르 아도라츠키의 판본을 사용한 해독문을 사용하여 재편집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종이 뒷편에 적혀있는 장소라던가 복사본에 찍혀있지 않은 장소는 전부 누락되어서 집필순서도 검토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사키 물론 당시에는 여러 시대적 제약이 있어 지금처럼 자유롭게 문헌에 접근할 수 없었고, 초고를 직관적으로 재현하려고 한 히로마츠의 편집방식은 획기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전부 무의미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헌에 자유로이 접근 가능한 시대이고 실제로 시부야 타다시(渋谷正)와 같은 수고에 의거한 치밀한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도 히로마츠의 『독일 이데올로기』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은 히로마츠 자신의 의사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주의와 후기 마르크스

사이토 생태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마르크스 그 자체를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나 문제 관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해외의 생태주의 연구에서도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90년대 이후 환경운동과 노동운동, 적색과 녹색의 사상의 대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고 하는 실천적인 과제가 도출되었던 때에 앙드레 고르나 앨런 리피에츠는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틀렸다’, ‘사회주의는 이미 불가능하다’ 등 마르크스의 한계성을 제멋대로 전제해버립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제약 없는 소비활동이나 이윤만을 추구하는 생산은 좋지 않다 라는 식으로 표면적으로는 자본주의 비판을 환경보호운동과 연결시켜서 양자를 절충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마르크스의 이론이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 경향에 대해 포스터나 버킷은 마르크스 자신의 텍스트에 기반한 접근으로 가치론과 물상화론 속에서 매우 유용한 생태주의 비판을 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초를 닦습니다. 그들은 이에 기초하여야 21세기의 여러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 전개 가능해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구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사키 그런 것을 전달하기 힘든 것도 있는 것 같네요. 마르크스연구자들도 반절은 ‘자본주의는 이윤추구로 인해 물질대사의 교란을 일으킨다’라는 정도의 얕은 인식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생태론은 그러한 단순한 의론이 아닌 물상화론이라는 근대 고유의 관계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것입니다. 즉 사적노동이나 임노동이 필연적으로 낳는 가치의 논리가 어떻게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 결국엔 물질대사의 양식을 변형하는가 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가능한 이론의 짜임틀이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이며 물상화론인 것입니다. 즉 결정적인 것은 노동양식 즉 물질대사의 매개양식이며, 그것이 물질대사를 얼마나 변형하고 있는가입니다. 여기에 마르크스의 생태론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였기에 마르크스에 대해 그저 근대라고 하는 사회형태의 특수성뿐만이 아닌 그것에 의거해 편성되는 소재적 세계의 논리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저항의 거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의 중요성이 명확해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말기의 연구이며 그것에서 ‘물질대사의 사상’, 혹은 ‘소재의 사상’이 전면적으로 전개되어가는 것이 됩니다.

사이토 말기의 연구를 알기 위한 일차자료는 발췌노트입니다. 발췌노트는 최후의 15년간의 1/3이 쓰여 그 중 절반이 자연과학, 생물학, 농업화학, 지질학, 물리학에 대한 연구입니다. 마르크스가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늙은 마르크스는 공부에 지쳐 컨디션이 나빴던 탓에 발췌만 하고 있었다던가, 지대론을 완성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학비판이라는 관점, 특히 그 물질대사라고 하는 개념을 단서로 말기의 자연과학연구의 보다 넓은 관심범위를 명확히 한 것이 이 책의 의의입니다.

사사키 말년에 작성된 대량의 발췌노트가 우연히 작성된 것이 아님은 분명해서 그것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로서 물질대사론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집약될 수 없는 가능성은 남아 있어서 그것은 이후 연구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만 지금까지의 발췌노트를 보면 마르크스가 그저 계급투쟁을 하면 된다, 분배를 하면 된다 라던가, 경제정책을 잘 펼치면 된다, 라는 식으로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사회변혁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란 것이 명확합니다. 마르크스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거점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의 세계적인 사회운동에 연결되는 듯한 풍부한 시선을 그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획기적인,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결정적인 상을 전개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췌 노트는 공동체론이나 젠더 등 여러 각도에서 읽는 것이 가능합니다만, 생태주의는 하나의 결정적인 논점입니다. 그것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재밌을 것입니다. 이만큼 체계적으로 말기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물질대사론을 결부짓는 책은 없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의 결론 부분에서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의 전개를 볼 때 말기의 발췌노트의 의의는 ‘소재의 사상’의 전개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가설을, 한정적이지만, 발췌노트를 사용하여 논증한 것이 사이토씨의 박사논문이며 『마르크스와 생태주의』입니다. 일부라도 가설이 논증되었다는 것에서, 치밀한 문헌연구에 기반해 마르크스 연구가 전진한 것이라는 것에서 이 책의 의의가 있습니다. 이 이전에는 랴자노프와 같이 우수한 연구자ㆍ편집자라도 광대한 발췌노트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니까요.

사이토 재밌는 것은 같은 말기 발췌노트연구를 한 독일의 칼-에리히 폴그라프가 저희와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논문도 이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만, 번역되어 있어서 흥분했습니다.

또 말기 마르크스의 현재성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 오늘날 환경문제로 누가 영향을 가장 받을까라고 하면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이며, 그곳에서는 온난화로 인한 해면상승으로 투발루와 같은 섬이 소멸해 가게 되었으며 가뭄으로 농업에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사사키 물질대사의 교란은 자본주의나 사회의 문제가, 그 원인뿐만이 아닌 그 결과에 대해서도 불가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는 뜻입니다.

사이토 어떻게 세계적인 연대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포스터 등의 사람들도 나름의 생각이 있습니다만 마르크스도 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런던에 살았지만 아일랜드 문제나 인도의 식민지문제 등 주변사회와 영국제국주의의 억압적이고 불균형적인 관계를 분석해서 공동체의 파괴나 구아노 (남미 등에서 유럽에 수출된, 섬의 분뇨를 원료로 한 비료) 의 낭비에서 보이는 생태적인 관심도 자분주의의 문제로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기의 마르크스는 공동체연구와 자연과학연구를 병행해서 진행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글로벌 사우스 등에 대한 생태주의적인 문제와 경제학적인 착취의 문제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방법론적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은 지금 우리들의 사회가 안고 있는 실천적 과제를 생각하는 실마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도 ‘소재의 사상’, ‘물질대사의 사상’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그렇네요. 『칼 마르크스』(사사키 류지, 2016)에서도 조금 다뤘습니다만 예를 들어 최후반의 베라 자술리치에의 편지도 정말 그러한 관점에서 읽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마르크스의 사회변혁론은 정치적 기술론 뿐만이 아닌 자본주의와 같은 인류의 생산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매우 특수한 생산양식, 더욱이 그에 규정된 생활양식 전체를 변혁하는 것도 염두에 둔 것이어서 그만큼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키 류지 佐々木隆治

 

이후의 연구

사사키 우리들의 연구는 개개인의 주제는 각자 다릅니다만, 공통의 지점은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마르크스의 초고 연구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MEGA 제 3부 제 4권 제2분책, 흔히 말해지는 『자본』 제3권 주요초고를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자본』의 연구의 다수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사후에 편집한 현행판 『자본』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전개는 역시 그 자신의 초고를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오오타니 선생 등 여러 연구자들이 진행해 왔습니다만 아직 이를 쫓아가는 것보다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발췌노트입니다. 이것도 방대한 영역이 있어서 생태학에 한정하지 않고 공동체론이나 젠더론 등 틈새에서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있어서 말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관이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요소로서 그가 무엇을 생각했던 것인가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번째는 그런 마르크스연구를 통해 현대사회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론을 발전시킬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생태학이라면 생태학의 이론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과 현실사회를 어떻게 매개할 것인가 등의 연구입니다. 경제학으로 치자면 중앙은행이 대규모의 금융완화를 행하고 국가가 거액의 채무를 떠안고 있는 현상이나 국가의 제도적 개입의 의의와 환계를 평가하고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없었더라도 마르크스의 짜임틀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과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이토 세번째 지점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도 마르크스에는 한계가 있다고 너무 빨리 단정지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루마 사메조의 연구 등을 국내외에 밝혀가고,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마르크스이론의 의의를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사키 150년 전의 사람이니까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걸 말하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죠. 오히려 그만큼 천재이니까 얼마만큼의 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토 가을에 호리노우치 출판사에서 간행되는 『nyx』 3호의 「마르크스특집」에서는 그저 새로운 것이나 눈 앞의 문제관심들에 사로잡혀 이들을 비판하거나, 다른 이론을 접합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하지 않고 텍스트 자체에 기반하여 내재한 무엇을 이해할 것인가 라는 것을 MEGA의 최신자료나 초고를 사용하면서 철학, 경제학, 국가론, 나아가 공동체, 젠더, 생태학 등의 영역에서 검토하고 다시 한번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저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자본주의를 변혁하기 위한 최강의 무기라고 『칼 마르크스』에서 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지금의 현실에 접근시킬 수 있는 매개작업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다시 그런 일본의 마르크스연구를 해외에 알려가는 것도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토씨, 힘내주세요. (웃음)

 

번역 : with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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