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재검토해야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정의당 창당 후 지난 8년 간의 활동에 대해 깊이 있게 점검하고, 향후 1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단순히 ‘지도부 교체’로 끝나면 제대로 된 혁신이라 말하기 힘들다. 정의당의 체질과 구조를 제대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당의 근간인 이념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시효 만료한 ‘정의로운 복지국가’

현재 정의당의 정치적 포지셔닝은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 어디쯤이다. 정의당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분배를 정의롭게 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 왔다. 북유럽 복지국가를 모델삼아 과감한 증세와 보편복지를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 구호를 실현할(혹은 ‘내세울’) 정치세력이 오직 정의당뿐인지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물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음 대선까지 ‘개혁’보다는 ‘체제 관리’의 기조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재명·박용진 등 민주당 개혁파가 힘을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혁적이라고 꼽히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집을 만든 민주당 정책라인도 건재하다. 상황에 따라 민주당은 얼마든지 정의당의 현재 포지션을 자기 품으로 가져올 수 있다. 정의로운 복지국가의 핵심 화두인 증세와 보편복지는 더 이상 정의당만 외칠 수 있는 구호도 아니다. 이념에서부터 민주당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으면 민주당의 하위파트너 취급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당의 이념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가 된다. 자칫 이념논의가 과잉되어 민주노동당 때처럼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홀대가 문제

통합진보당 사태의 쓰라린 기억 때문인지 창당 이후 정의당은 내내 ‘정치노선’이나 ‘이념’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덮어두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고수해왔다. 멀리는 민주노동당이 “이념 충돌로 인해 무너졌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엉뚱한 진단이다.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정당운동은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홀대’가 문제였다. 이념으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직 보위를 앞세웠고, 그 사이 꾸준히 다듬고 벼려야 할 이념이라는 ‘날’을 방치한 게 문제였다. 세력 간 투쟁의 중심에는 이념이 아니라 뱃지가 있었다. 이념의 경합이 아니라 ‘세력의 경합’이었고, 세력의 경합 속에 이념의 날은 무뎌졌다.

폐허 속에서 새 집을 지어야겠는데 무뎌진 이념을 다시 벼를 여력 없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덜 한 ‘복지’를 꺼내와 정의당이라는 색이 더 옅어보이는 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복지국가’라는 이념은 다른 정치세력이 보다 오른쪽에 포진했던 과거에는 유효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정의당이 외치는 복지를 민주당의 복지와 크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약간 더 센 목소리로 들을 뿐이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분당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이념 논의가 자칫 당 분열을 초래할까 우려한다. 이념논의를 당혁신의 발판으로 삼지 않고 자기세력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그 두려움은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분열의 아픔을 여러번 겪는 과정에서 당내 민주주의 발전의 경험을 쌓았고, 조직 운영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당원 분포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정의당이 첫 당인 당원도 꽤 많다. 분당의 경험은 당 혁신논의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당이 이념 논쟁에만 빠져 정치 사업을 못할까봐 우려할 수도 있다. 당의 새로운 슬로건을 채택하는 과정이 사변적 논의에 머물러선 안된다. 현 정세에 맞는 실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집세 거부운동(Rent Strike)이 일어나고 있다. (>> 서구 세입자 파업 운동의 역사와 전략)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책은 고작 ‘착한 건물주 운동’과 ‘대출 프로그램’ 등에만 머물러 있다. (>> 코로나19 대책에서 배제된 빈곤층, 어떻게 개선될 수 있나)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임대료를 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인가? 건물주의 생산수익을 사회적으로 통제하자고 주장하는 것을 정의당은 현재 당이 가진 이념으로 채택할 수 있는가? 채택하기 힘들다면, 당은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적인 위기에서 꾸준히 집세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이와 같은 고민을 이념 논의와 병행할 수 있다. 급진적 정치활동을 실행하며 그에 맞는 이념의 필요를 함께 느끼고 정식화 해 갈수 있을 것이다.

이념의 혁신, 급진적 평등주의

정의당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분명히 대답해야 하는 위치에 서있다. 민주당 및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의’로 대하는 제 정치세력과 완전히 구별되는 이념을 채택해야 한다. 심화된 자본주의의 폐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념을 채택함으로써 민주당과 정의당은 전혀 다른 세력임을 천명해야 한다. 그 이념의 이름이 민주적 사회주의인지, 생태 사회주의인지, 보다 분명한 사회민주주의인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 분명한 건 ‘~주의’로든, 아니면 새로 개발한 문장이든 상관없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당의 이념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복지 프레임을 뛰어넘는 이념으로서 분배만이 아니라, 소비와 생산으로 파고드는 급진적 평등주의가 필요하다. 진보정당 존재의 의의는 하층계급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에서부터 불평등이 발생한다. 시민들에게 생산과 분배의 사회적통제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의 이동이 필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건물주와 재벌 총수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 자산, 기업의 소유권에 이의제기 할 것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주택소유 상한, 건물주 임대소득 제한, 물·전기·교통 등 공공재의 전면적인 사회화, 노동자의 기업통제 및 운영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 초국적 자본의 활동을 그 출발선에서부터 개입해야 한다. 진보적인 정치권력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평등의 가치를 최대한 밀어붙여야 한다.

견인차가 아니라 소방차

정의당은 정부여당 개혁의 견인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불을 끄는 소방차가 되어야 한다. 정의당의 정책이 십여년 후에나 타 정치세력의 손에 의해 빛을 보는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등대정당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지금 판을 뒤집고자 하는 진보주의자들이 모여드는 배가 되어야 한다.

정의당은 ‘민주당 정의로운복지국가특별위원회’가 아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이념을 채택하여 집권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지금 정의당은 급진적 평등주의로 당을 혁신하고 불평등에 맞설 때다.

 

이효성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혁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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