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나?

코로나19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나?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지구 자본주의의 내부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2020년 4월 11일

[읽을거리]사회운동기후위기, 자본주의, 코로나19, 사회운동

원문: Will coronavirus signal the end of capitalism?

14세기 흑사병 이후의 대중봉기는 중세 봉건주의를 무너뜨렸다.
코로나19도 자본주의의 종말을 불러올 것인가?
폴 메이슨 (영국의 언론인, 작가)

아시아에서 시작된 대유행병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휩쓸며 인류의 3할을 지워버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중세 봉건 시스템을 떠받치던 핵심 기관과 제도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 자체가 새롭게 짜여져야 했다. 1340년대 몽골에서 시작해 서유럽으로 확장되었던 흑사병의 이야기다. 당시의 경제가 지역의 농업과 수공업에 기초했기에 흑사병 이후 일상생활로의 복귀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일꾼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듦에 따라 생존자들의 협상력은 커졌고, 중세 도시에서는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변화로 이어졌고 결국 중세 봉건 시스템의 종말을 불러오며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촉발제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코로나 악몽

오늘의 자본주의도 하나의 악몽을 대면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확진자의 1~4% 정도만을 죽인다지만, 그 사회경제적 영향과 충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오늘날 경제는 1340년대에 비할 바 없이 복잡해졌고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는 더없이 불안정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는 이미 기후위기로 인한 불길한 예측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이미 발생시킨 변화들을 살펴보자.

첫째, 중국, 인도, 유럽과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일상생활은 이미 멈춰섰다. 둘째, 많은 정부와 정치 엘리트들은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지도력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셋째, 소비자 지출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엄청난 경기침체가 예고되고 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주식시장에 투자된 연금이 가치절하되면서 중산층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항공사, 공항, 호텔업계의 지불능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긴급 구제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그 엄청난 규모 때문에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떤 영향을 보일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정부는 시민들에 대한 재난대비 현금 지급과 경제사업자에 대한 대출 형태로 2조 달러(한화 약 2,450조 원)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정부 세수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한편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더 적극적인 양적 완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경제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정부 빚을 사들이기 위해 새로운 통화를 발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양적완화는 그때처럼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며 안전한 정부채권의 형태를 띠지도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2008년 당시 일종의 ‘패닉 조치’로 도입된 양적 완화가 이제는 일상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을 향해 “실물 경제”는 여전히 건강하며, 따라서 지금의 경기침체는 급격한 하강과 회복 곡선을 그리는 V자 형태를 보일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무너져가는 기초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과도하게 낙관적이다. 건물을 메타포로 삼아 이야기를 해볼까.

2008년 경제위기 때는 금융 시스템이라는 ‘지붕’이 건물 위로 무너져 내린 경우였다. 데미지는 있었지만 건물 자체는 멀쩡해 보였고 많은 이들은 지붕을 다시 올리면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물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 일을 하고 임금을 받아 소비를 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인데, 우리는 지금 사람들 보고 일터로 나가지 말라 하고 번 돈을 평소처럼 쓰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을 살고 있다. 건물이 얼마나 견고한가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만 같다.

근데 건물 구조 자체도 그다지 견고한 것이 아니다. 지난 경제위기 이후 12년간 세계가 이루어낸 경제성장은 중앙은행의 통화 발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 빚은 줄어들지 않았고 되려 72조 달러(한화 약 8.7경 원)가 늘었다.

흑사병의 시대와 달리 21세기의 무역과 금융은 복잡하고 이 복잡함은—우리가 지난 2008년 경제위기에서 배웠듯—이 체제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성격의 것임을 알려준다. 2008년의 위기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자산들의 대부분은 은행이나 보험사 등 금융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포장해 발행한 IOU(차용증서)들이다. 이 자산들의 가치는 보유자의 미래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개별 자산들의 가치는 올해, 내년, 그리고 미래의 헬스클럽 회원권 비용, 학비대출 상환, 매달 내는 월세, 자동차 할부금 따위가 이미 ‘지불되었다’는 가정 위에서 책정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대출금 상환을 못하게 되거나 차를 사지 않게 된다면? 이럴 경우 많은 IOU들은 쓸모없어지고 금융권은 다시 정부의 구제대상이 되는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상상할 수 없던 일들

일반인들은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를 수 있겠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이 위험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들이 중앙은행을 설득해 채권 시장을 국유화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한편에서는 트럼프의 2조 달러 긴급재정처럼 정부들이 개인과 기업을 살리기 위해 빚을 더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 이런 빚이 정부의 한 축, 즉 중앙은행에 의해 흡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좌파 경제학자들은 저성장과 높은 부채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 정책이 채택될 수밖에 없을 거라 경고해왔다. 1) 자동화로 인해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면서 불가피해질 정부에 의한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지급. 2) 정부의 지불능력 확보를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거래방식. 3) 이윤이 보장되기 어려운 핵심 서비스 부문 유지를 위한 주요 기업에 대한 공적소유 확대.

과거 투자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였다. 소련의 패망을 경험했던 이들은 분노를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자본주의를 죽이자는 거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과거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이런 일들은 오늘 벌써 현실이 되어버렸다. 시민에게 지급되는 보편 소득, 국가의 구제, 그리고 중앙은행에 의한 국가 부채 떠안기는 이런 조치를 주장했던 사람들조차 놀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던져야 할 물음이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등장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이런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고장나버린 시스템을 살려보기 위해 마지못해 이런 정책에 매달릴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이런 위기대응 조치들에 적대적이었던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한번 살펴보자. 보편적 소득과 관련해 영국의 보수 정치인인 이언 던컨 스미스는 보편 소득이 사람들이 일하지 않게끔 만들 것이라 주장했다.

국가 소유나—최근 인공호흡기 부족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채택되고 있는—계획 생산(planned production)의 문제에 대해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통제가 시장 메커니즘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할 것이라 한다. 그들은 시장을 높은 지능을 가진 자동 시스템으로 보면서 시장이 어떠한 국가나 계획 단위도 성취할 수 없는 세상의 질서를 가능케 해준다고 믿는다.

중앙은행에 의한 국가 부채 지원에 관련해서는 이들도 이것이 자본주의의 도덕적 패배(moral defeat)라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들에게 경제성장은 기업가 정신과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영란은행이나 미국의 연준이 발행한 통화를 정부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이 이전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자본주의 유지를 위해 정책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전

물론, 이런 긴급 대책들은 언제나 내 상상 속에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2015년 이후 나는 우리가 새로운, 과거와는 무척이나 다른 자본주의 모델을 도입할 수밖에 없을 거라 주장해왔다. 노년 인구의 증가로 인한 경제적 비용 증가 때문이 아니라면 기후변화의 위협으로 인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는 모든 것을 단기전의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2020년대 중반이 되었을 때의 자본주의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긴급재난기금으로 지불한 자본주의일 것이다. 많은 항공사와 호텔 체인들이 국유화된 자본주의일 것이며, 현재 GDP 대비 평균 103% 수준인 정부 부채는 훨씬 늘어나 있을 것이다. 정부 부채가 얼마나 늘어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는 어려운데, 그건 GDP가 얼마나 추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이 나쁘면 재정상태가 취약한 몇몇 국가들에서 채무 불이행 선언이 잇따르거나 정부 자체가 붕괴하면서 다자간 세계질서에 큰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 어떤 안보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나 북한,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들이 혼돈의 사태에 빠져들게 되면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대국들이 그들을 ‘구원’한다는 명목 하에 군사력을 동원할 인센티브가 커질 거라 우려하기도 한다.

우리는 1930년대 초반 급속한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모든 것은 금융위기에서 시작해 먼저 국제통화 시스템이 해체되었고 곧바로 각종 국제협약들이 쓰레기통에 던져지더니 군사력을 동원한 강제적인 합병[전쟁]이 뒤따랐다.

물론 그때에 비해 오늘날 IMF나 WHO, UN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더 탄탄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때와 상당히 유사한 문제점들을 대면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각종 정책에 있어 준거점을 제공하고 국제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그 어떤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파산을 막아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국가도 없다.

코로나 상황이 지나간 후 우리가 2008년 위기 이후의 그것과 같은 전형적인 각본을 따른다고 생각해보자. 정치 엘리트들은 정부 부채와 재정지출을 줄이자며 목 놓아 긴축을 외칠 것이다. 의료나 교육비는 줄어들고 임금은 삭감될 것이며 일반인의 세금은 올라갈 것이다.

이게 자유시장의 논리지만, 세상은 변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정책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이다.

14세기, 대규모 살상을 불러왔던 흑사병이 지나간 자리에서 봉건 엘리트들이 하려고 했던 게 딱 그거였다. 최악의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다시 자신들의 낡은 특권과 전통과 경제논리를 강변하려는 시도.

그 당시 지배계급의 이런 시도는 즉각적이고도 피비린내 나는 대중봉기를 불러일으켰다. 영국 농민들의 반란, 프랑스 자크리의 난, 프랑스나 이태리 장인들에 의한 도시 점령 등등. 이런 봉기의 대다수는 프랑스어로 부르주아라고 하는 꽤나 열혈적인 시민들에 의해 이끌어졌다.

흑사병 이후 나타난 봉기들은 대체로 실패했지만, 이런 봉기는 대중들의 사고방식에 결정적인 변화를 심어놓았다. 역사학자 사뮤엘 콘에 따르면 이 정치적 경험은 이들에게 “끝없는 절망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그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감”을 주어 “그들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자본주의를 이 세상에 불러온 부르주아 혁명의 초석이 되었다.

지구 자본주의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기 위해선 다수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그들에게 코로나19나 기후위기는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돌덩이가 지구에 날라들어 충돌하는 정도의 충격으로만 이해된다. 이런 외부적 충격은 나중에 되돌려질 수 있는 일시적 대응을 요할 따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위기들은 ‘지구 자본주의’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진 충격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제도와 기관, 문화, 일상적 행위는 전부 화석연료 채굴에 기초한 것이기에 우리는 탄소 없는 산업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슬럼에서 살아가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나 삼림 벌채, 야생 동물 시장, 발전된 나라들에서조차 널리 퍼진 빈곤이라는 질병 따위가 없는 세계화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다. 이런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요소들, 너무나 당연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들 때문에 나는 중장기적으로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어려우며 자본주의의 단기적 생존을 위해서 조차 ‘탈자본주의적’ 요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전에 이런 주장은 황야의 외로운 외침과도 같았다.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이나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같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국가 개입 프로그램을 주창했던 이들도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현실이었다.
이런 와중에 내가 놀랄만한 일이 있었으니, 그건 맥쿼리 웰스(Macquarie Wealth)라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호주 투자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제공했던 분석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자본주의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 더 근접한 버전으로 변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맥쿼리 분석가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배경에는 지금 갑자기 국가개입이 필요해졌다는 인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시장에서의 선택 문제(market choices)로부터 공정함과 웰빙(well-being)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현실판단이다.

14세기의 대 흑사병이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중세 봉건시대 이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면, 코로나19는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번역 : 김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