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미안해요 리키』, 세련된 착취와 파괴된 일상

영화 리뷰 | 『미안해요 리키』, 세련된 착취와 파괴된 일상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세계를 보는 켄 로치 감독의 시선이 여전히 녹슬지 않음을 방증한다.

2020년 3월 12일

[읽을거리]비평영화, 플랫폼노동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이다. 한 영화의 생사는 박스오피스와 영화제 마켓의 잣대로 판가름 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있으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물결과 함께 할 수 있느냐에도 달려있다. 나아가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진작시키는 것은 그것을 함께 관람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에 있기도 하다. 플랫폼c에서는 앞으로 ‘영화와 사회운동’ 시리즈를 통해, 사회운동적 시선으로 영화를, 영화적 시선으로 사회(운동)를 응시하고자 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세계를 보는 켄 로치 감독의 시선이 여전히 녹슬지 않음을 방증한다. 그의 나이를 모르는 관객이라면 그것이 여든세 살의 노장이 만들었을 것이라 상상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은 여전히 날카롭게 시대의 어둠과 착취를 포착한다. 화면 연출에서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드스쿨’적이지만, 영화 내내 감독의 계급적 세계관을 놓치지 않으며, 예의 세심함마저 드러낸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이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빈민의 삶을 배척하는 신자유주의 관료제 하 복지 시스템의 이면을 다뤘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배달 앱으로 일상화된 ‘플랫폼 노동’을 통해 그것이 한 가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주인공 리키(크리스 히친 분)는 한때 건축업에 종사했지만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직장에서 해고된 중년 남성이다. 영화 초반 면접 장면은 그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며 거칠 게 살아왔음을 말해준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리키가 택배 기사 계약을 맺는 게 사건의 출발이다.

문제는 엄연히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리키의 법적 신분이 ‘노동자’가 아니란 점이다. 사업자와 사업자로 ‘용역 계약’을 맺고, 업무용 차량마저 직접 구한 차를 써야 하는 ‘프리랜서(free-lancer)’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만 ‘프리랜서’일뿐 그들은 결코 ‘자유롭지(free)’ 않다. 발송물에 대한 정보 기록부터 배달 노동자의 이동 시간과 위치를 감시하는 1000파운드(약 154만원) 짜리 ‘단말기’가 리키의 노동을 통제하고,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은 ‘점주’가 다시 법적인 ‘사업자’인 리키의 근태를 이중으로 통제하기 때문이다.

파급 효과

영화의 시선이 여기서 그쳤다면 조금은 평이한 사회 비판 영화로 끝났을 것이다. 방송 다큐멘터리처럼 특수고용노동자의 고된 노동을 스케치하는 것에 그쳤으리라. 하지만 켄 로치는 한 걸음 나아간다. <미안해요, 리키>는 단순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소묘하는 걸 넘어, 삶에 안착하지 못한 ‘플랫폼 노동’이 낳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깊고 두터운 시선을 유지한다.

카메라가 닿는 또 다른 주역은 요양보호사로 살아가는 아내 ‘애비’의 노동이다. 애비의 노동은 주로 건축업이나 운송업에 종사했던 리키와 달리, 사회복지 차원의 서비스 노동이다. 하지만 애비의 노동이 리키와 다를 바 없는 건 매한가지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수많은 가정을 돌아다니며 노인과 장애인을 간병해야 하는 애비의 노동은 리키가 그렇듯 ‘사업자로서의 용역’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정성들여 간병을 하려 해도 지나치게 과도한 하루 간병 할당량이 애비의 시간과 마음을 착취한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집들을 방문하기 위해 산 자동차마저 리키의 배달 노동에 필요한 지입차를 사기 위해 판 애비. 가뜩이나 빡빡한 애비의 노동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몸과 시간에 대한 착취가 강해지니 마음의 두께도 얇아진다. 자신이 돌보는 노인과 장애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쉽게 상처받고, 모든 걸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퉁명스러움을 받아들이기란 보다 고된 일이 된다.

리키와 애비 부부가 지치니 그 영향은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 우선 딸 라이자와 아들 세브와 마주보고 대화할 여유가 사라진다. 사춘기가 한창인 세브는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그래피티와 유튜브 방송, 힙합 같이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서브컬쳐에 심취한다. 하지만 세브로서는 학교에서나 부모에게나 ‘불량 문화’로 취급되는 자신의 꿈을 말하기 두렵다. 방황으로 인해 점차 비뚤어지지만, 아빠 리키와 엄마 애비의 변화된 노동은 아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라이자도 마찬가지다. 거칠고 각박해진 가족의 일상에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단순히 노동 현실을 소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열악한 노동 조건과 새로워진 착취, 그리고 그것을 조직하는 사회적 관계망이 어떻게 해서 노동자계급 가족의 일상을 허무는지 보여준다. 다시 말해, 노동의 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는 21세기 프리랜서 노동의 ‘보고서’인 셈이다.

필모그래피의 기나긴 투쟁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된 조주은의 <현대 가족 이야기>를 영상으로 구현한다면 바로 <미안해요, 리키>가 아닐까 싶다. 이미 켄 로치가 활동하는 영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에 리키와 애비 가족이 겪는 ‘플랫폼 노동’의 착취가 만연해 있다. 이런 전변한 노동자의 일상, 그것이 관통하는 모순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현대 가족 이야기>가 현대자동차의 생산 본거지 울산을 중심으로,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노동이 노동자 개인을 넘어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조목조목 짚어냈듯, 켄 로치 역시 불안정한 노동과 삶, 그리고 이들이 속한 공동체와 관계들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묘사하고 있다.

켄 로치의 이런 깊이 있는 시선은 그의 필모그래피와 이어진다. 반세기가 넘는 긴 필모그래피는 분명 이 땅에 존재했으나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던 ‘변두리’의 모순을 끊임없이 포착하는 기나긴 투쟁의 연속이었다. 초기 필모그래피를 이어나갔던 영국 BBC에서도,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후에도 켄 로치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접어들던 영국 사회의 사적이고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가장 사회적인 시선으로 포착하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이력은 <미안해요, 리키>에서도 이어진다. 플랫폼 노동을 접하는 개인은 플랫폼 노동자를 만날 일이 없다. 그저 앱이나 문자, 메일에서, 혹은 설사 대면하더라도 목적을 수행하는 순간 아주 잠깐 보게 될 뿐이다. 마치 영화의 원제인 “부재 중 방문했습니다”(Sorry We Missed You)처럼 말이다.

켄 로치는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노동을 꺼내기 위해, 피상화된 존재로 넘어가기 쉬운 플랫폼과 프리랜서 노동자를 ‘한 명의 사람’이자 사회에 속한 ‘구성원’으로써 하나의 인격과 존재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서사를 통하여 점차 비인간화되는 노동의 실상을 짚어냈다. 단순히 ‘노동의 소중함’을 읊는 것을 넘어, 노동이 어떻게 삶 속으로 연결되는지, 지속적인 탐사를 통해 구축한 구태의연하지 않은 시선으로 말이다.

고집

켄 로치가 현대 노동의 현실을 폭로하고 일갈하는 모습은 영화 외적인 의미로도 많은 인상을 준다. 80대 노장 감독이 분절화되는 노동의 양태를 짚고 행동을 촉구하지만, 정작 그보다 젊은 대다수의 감독들이 더 이상 그런 ‘프로파간다’의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된 상황도 한편으로는 많은 씁쓸함을 준다. 노동을 말하는 작품은 점점 줄고, 관객과 만날 장이나 기회도 줄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듯, 영화를 보는 ‘공간’은 개인화된 공간으로 분절화되고, 영화 제작과정 역시 과거보다 더욱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안적인 영화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역시 어려워지고 있다. 켄 로치의 최근 작품들 역시 영국 공영방송 BBC와 BFI(영국영화위원회)에 배분된 영국 복권기금, 프랑스 TV2 등과 같은 공적 자금을 모아서 겨우 제작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자본의 천국에서 배제된 이들의 얼굴을 비추고, 그 대안을 관객들과 나누고 교감하는 일이 녹록치 않게 된 현실에서 켄 로치는 <미안해요, 리키>를 통해 동시대 영화인과 활동가, 나아가 관객에게 어떤 이정표를 부여잡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 세대를 넘어 소통하고,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으며, 다시 이 세계의 대안을 상상할 틈을 사수하려 하는 그의 고집스러움에 경의를 표한다.

글 : 성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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