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우한까지, 무너진 시스템에 맞선 대항

홍콩시민과 우한시민은 동일한 원인이 만든 나쁜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 

[번역자 주] 이 글은 중화권 매체 ‘단전매’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 렁카이치 (梁启智; Carpier Leung)는 홍콩의 시사비평가로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지리학 박사를 취득한 후, 홍콩중문대학 중국연구센터에서 일해왔다. 번역 과정에서 독자의 편의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고 문단을 나누기도 했다. 원문 : 從香港到武漢,對抗系統性敗壞 —— 畢竟,香港人和武漢市民所面對的,其實是同一專制帶來的惡果


1월 21일 홍콩의 지하철 안

참으로 괴로운 새해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에서 비롯된 동요로 반년의 시간을 보내고, 홍콩 사회는 더는 이런 시련을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2019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속칭 ‘우한폐렴’의 폭발로 인해 대중의 정서는 다시 한 번 전면적인 긴장 상태가 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바이러스의 전염이 어쩌면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데 있다.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1월 초 세 차례에 걸쳐 아직은‘사람을 통한 전염’의 증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확진자 수가 며칠 간 연달아 늘어나지 않자, 정부는 “막을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를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이 관련 지시를 내린 후에 이르러 확진자는 급상승하고 그 범위 역시 전국으로 퍼졌다. 마치 영도자(역주: 시진핑)가 지시하지 않았다면, 전염병 발생상황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처럼 말이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전염병 발생상황도 고의적으로 감추고 전염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했다.

상황이 빠르게 변하면서, 홍콩인들은 익숙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왜 홍콩의 비극이 이토록 빨리 우한에서 재연되었는가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다. 여기서 말한 ‘비극’이란 전염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홍콩 문제는 정치적인 충성으로 실사구시의 대안을 덮어버린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인 정황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영합됐고, (폭력적 상황이라는) 일방적 이미지로 대체됐다. 필요로 했던 해결책은 리더의 체면 문제로 인해 집행이 늦춰졌다. 그리하여 작은 일이 큰 일이 돼버렸고, 큰 일은 재난이 됐다. 우한 문제 역시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1월 21일 중국 베이징. 춘절 연휴 전에 베이징역에서 근무중인 경찰차 근처에 서있는 여성이 가면을 쓰고 있다. (사진 : 케빈 프레이어/게티이미지)

향방  

이번 전염병이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으로 때문 그 향방이 결렬된 중국-홍콩 간 모순을 더욱 격화시키는 걸 피하기 어려워졌다. 작년 12월 말로 돌아가보자. 우한에서 전염병 발생이 드러나자 홍콩 사회는 크게 긴장했다. 그것이 2003년 SARS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홍콩인들은 전년도 연말 중국 내지(홍콩행정자치구를 제외한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미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한 통지를 늦춤으로써 전염병 발생의 사회적 폭발 사태를 야기했다. 그 결과 홍콩에서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고(최종 299명 사망), 사태가 종결된 후 중국 위생부장 장원캉(张文康)은 전염병  발생 상황을 감췄다는 혐의로 면직 처리됐다. 천재가 인재로 변한 과거 역사로 인해 홍콩은 끔찍한 대가를 치뤘고, 이는 홍콩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내지 민중은 이와 같은 인재에 대해 ‘선택적 기억상실’을 갖고 있다. 전염병 발생 초기에 적지 않은 내지 민중들, 심지어 홍콩에 거주하는 유학생들은 홍콩인들의 긴장 정서에 대해 이해하지 못 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홍콩인들의 과민한 반응을 비웃는 말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홍콩인들이 보이는 전염병 발생 상황에 대한 높은 관심이 단지 내지를 경시하는 풍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이 입을 열었을 때 “대규모 확산은 없을 것”이라 했던 전염 사태는 전면적으로 확산됐다. “사람을 통한 전염은 없을 것”이란 주장 역시 틀렸다는 게 드러났다. 오늘에 이르러 전염병이 전 지역적으로 감염되는 사례가 등장했는데, 언론자유가 있는 홍콩인들은 이를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지에선 처음부터 정보가 통하지 않았고, 전염에 대한 경계심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일부 홍콩인들은 전염병 발생현황에 대해 남의 재난을 보고 고소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1월 초 언론이 “정부가 전염병 발생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 내지 민중의 인터뷰 영상을 공유하며 비웃기도 한다. 심지어 ‘내지의 민중들은 맹목적으로 정부를 믿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설령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는 여론도 있다. 더불어 많은 홍콩인들은 도시 출입을 폐쇄하고 중국 내지에서 온 여행객들의 홍콩 방문을 전면적으로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이런 생각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것(落井下石)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於事無補)고 생각한다. 또한 홍콩 봉쇄의 입장들 역시 이번 기회를 빌어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진전은 너무도 슬프다. 필경 홍콩인과 우한 시민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같은 전제가 가져온 나쁜 결과’일 것이다.

1월 24일 홍콩의 도교 사원인 황대선사(黄大仙庙)에서 기도하는 여성. (사진 천차오후이/단전매)

홍콩 정부는 어째서 또 다시 실패했는가 

나는 홍콩 문제를 “시스템의 실패”라고 표현하곤 한다. 다시 말해, 홍콩의 문제는 개별적인 사람이나 집단에서 비롯되지 않았으며,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지 매체들은 과거 반년 간 홍콩의 동요를 홍콩의 경제 문제로 돌리곤 했다. 나는 물론 홍콩의 경제 구조가 매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왜 특별행정구 건설 이래 22년 간 유효한 개혁을 진행시켜 바로잡지 못했단 말인가? 왜 엘리트 계급은 여전히 아무 거리낌없이 역겨운 짓을 하고 다니고 있단 말인가?(橫行無忌) 이는 반드시 특구 정부 자체로부터 인식된 위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말하면, 곧바로 각양각색의 정치적 틀의 논쟁에 미치게 된다. 내지 언론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명확한 말이 없다. 따라서 홍콩 문제에 대해 중앙 정부가 잘못된 처방을 도출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을 때, 내지의 민중들은 객관적인 평가를 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러니 내지 민중은 “홍콩인들이 제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고 있다(自尋煩惱)”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지난 반년, 홍콩에서는 과거의 ‘평화·이성·비폭력’ 전통과는 완전히 맞지 않는 폭력 항쟁이 출현했고, 적지 않은 비난이 있기도 했다. “요구는 정확할지언정 잘못된 방법을 쓰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본래 이와 같은 폭력 항쟁의 출현은 모든 사회 시스템의 실패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항쟁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으며, 시스템의 실패를 제대로 바로 잡을 수도 없다.

시스템의 파괴는 지금의 방역 공작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가뜩이나 곤경에 처해있던 홍콩특구 정부는 자신의 행정 인식 상의 흠결로 인해, “방역”에 있어서 대중의 신뢰를 특별히 중시해야 하는 위기 국면에서조차 대중들에게 “안심하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대중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방역은 홍콩 정부가 운동 이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안타깝게도 홍콩 정부는 이번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예를 들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초기 홍콩 정부는 비행기를 통해 입국하는 여행객에게 건강 신고를 하도록 했는데 고속철도에서는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속철도를 통해 입국하는 여행객이 감염된 채 입국하자, 그제서야 정부는 지나간 잘못을 비로소 깨달았다.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했던 캐리 람은 홍콩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이 발생한 이후 귀국해 역병에 맞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계의 적지 않은 이들은 그녀의 지혜롭지 못함을 비판했다. 또, 귀국 후 치른 기자회견에서도 캐리 람의 세심하지 못한 대처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지에선 의료 자원이 여전히 현저히 부족한 상황인데도 그녀는 국가를 향해 “마스크 보급”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1월 23일 홍콩의 웨스트가우룽(西九龍) 고속철도역 로비. (사진 : 린쩐동/단전매)

타이완 정부가 우한에서 온 관광객의 입국을 금지했고, 마카오 정부 역시도 감염 사례를 확인한 뒤 신속하게 대응하며 주하이(珠海)와 소통했던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홍콩특별행정자치구 정부는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홍콩의 의료 시스템 역시 파업 여부를 둘러싸고 압박을 받고 있으며, 홍콩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진전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홍콩 정부의 실책과 부주의한 처리는 갈등과 적대를 민간에게 전이시킬 뿐이었다. 중국-홍콩 모순은 매번 심화되고 있고,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우한의 바이러스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거시적으로 봤을 때, 중국 각지에서는 매일 각종 통치 위기의 방식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적 판단의 관성은 정치적 임무에 의해 압도되고 있고, 과감하게 바로 잡을 것을 발언하는 이들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자연법칙으로 한정돼 있다. 상부의 지시가 없기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단지 다음 번에 일어날 형태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화학물질 창고가 폭발하든, 지하철 공사 현장 도로가 함몰되든 문제는 사망 숫자가 주의를 끌기 충분한지 여부뿐이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처음 일어났을 때는 어떤 개별 인원의 잘못을 탓할 수 있겠지만, 계속적이고 장기간 시정되지 않고 발생할 때에는 홍콩 문제처럼 어떠한 제도가 비극이 되풀이되게 하고 있는지, 또 누가 대중들이 “제도를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걸 방해하고 있는지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현대 중국의 빠른 발전 속도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제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국의 속도” 이야기는 별안간 사라진다. 예컨대 가짜 분유와 가짜 백신 스캔들은 이미 10년을 넘었는데, 왜 오늘날 내지 민중들은 여전히 홍콩으로 몰려들어 분유를 사고 백신을 맞으려 할까?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맹목적인 불신이 나타나기가 매우 쉽다. 이런 원인은 미디어학을 배우는 대학생 1학년이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도리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금껏 투척된 자원이나 기술에 의지해 해결할 수 없었다. 바꿔야 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예측해보건데 다음 파도의 시나리오는 대략 이와 같을 것이다. 우선 자리를 지키며 헌신적으로 방역과 치료를 위해 노력한 의료인들에 대한 찬양이 있을 것이며, 외지에서 온 지원대오가 타인을 위해 자기 이익을 버린 것에 대한 격찬이 이어질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들뜨지 않고 응대할 것이며, 당연히 적지 않은 밝은 에너지가 있을 수 있다. 스타들을 동원해 올라온 웨이보 상의 포스트들은 인기검색어에 오를 것이다. 책임 문제는 누구에게 속할까? “박쥐를 먹는” 사진들이 네티즌들에 의해 올라오면,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비웃고 비난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릴 것이다. 비판의 초점은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이건 모두 쓸모없는 짓이다. 지방과 정부의 단절은 죄다 지방정부의 잘못이 될 것이고, 중앙정부가 나타나 해결사 노릇을 하는 식으로 끝날 것이다. 결국 이 위기는 권력투쟁과 반대파 숙청의 기회가 되고말 것이다.

문제는 드러났다. 건국 70년 이래, 지방이 중앙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멈춰진 적이 없다. 촌은 향을 속이고, 향은 진을 속이며, 끝내 국무원까지 속여왔다. ‘묘산만근(亩产万斤; 1묘당 산출량을 1만 근으로 과장해 보고하는 악습. 중국현대사에서 이런 오류들은 반복적으로 드러났었다.)’이란 단지 이런 경향을 드러내는 한 문장일 뿐이다. 

1월 25일 우한의 한 다리. (사진 : 헥터 레타말/AFP)

하지만 나는 나쁜 일도 좋은 일로 여기는 중국식의 작풍이 이번에도 계속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쓰촨성 지진에서는 6만여 명이 죽었으니 충분히 심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후 제도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감방에 가둬버리지 않았는가? 지진에 따른 파괴는 한번의 경험이었지만, 전염병은 느리게 움직이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뒤따르는 사회적 반응 역시 반드시 똑같지는 않다. 더구나 최근 중앙 집권이 심각하게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권위주의 정부가 가장 정통했던 동원 역량을 허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상급의 지시를 기다리고 잘못된 줄에 서는 걸 두려워 하는 정치문화가 기존에 있던 행동력마저 잠심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관방(당-정부)은 항상 서양의 민주 제도는 효율성이 없다면서, 중국 정치체제의 우위는 행동 속도와 조직력의 강함에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번의 바이러스에 맞선 대응의 골든타임은 공교롭게도 정치 요소 때문에 지나쳐버렸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할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중국 정치체제의 우위는 대체 어디에 남아있는가?

시민사회는 지금?

2년 전 나는 우한에 간 적있다. 여행 속에서 중국 근대 혁명의 발자취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혁명 승지’ 우한에 도착하니, 갖가지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신해혁명 박물관은 의화단에 대해 “중국 북방의 대규모 군중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반제 애국 운동”이고, “8국 연합군과 청나라 정부의 합동 진압으로 실패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평가는 나로 하여금 잊을 뻔했던 천두슈(陳獨秀;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 중 1명)의 말을 떠오르게 했다. “의화단은 전 사회의 각종 미신과 각종 잘못된 주장들의 결정판이었다.” 과거 중국 역사에서 우한을 봤을 때, 분명한 것은 그곳 우한이 기풍을 이끄는 지역이었단 사실이다. 한데 오늘날 우한은 왜 이처럼 뒤떨어지게 됐는가?

우한은 대학 도시였다. 청년들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다. 나는 이런 ‘인재(人祸)’를 겪은 우한에서, 반드시 한 청년이 나타나 자신이 “트루먼쇼”(짐 케리 주연의 미국 영화) 속에서 살고 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로부터 나라가 부강해야 민중이 평안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염병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나라가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민중이 평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관료들은 사실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을 속이는데 열중하며, 자기만 보호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량은 원래 인민에 대응할 때에만 체현될 수 있다. 인민이 보호를 필요로 할 때에는 오히려 일격을 견디지 못한다.

정부는 신뢰를 잃었고, 시스템은 파괴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중이 서로 의지하는 것만 못하다. 쓰촨성 지진 이후, 수천수만의 지원자들이 자발적으로 재난 복구에 나섰었던 2008년은 ‘중국 시민사회(公民社會) 원년’으로 불린다.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적인 의심이 그 해의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전부 깨뜨려서 사람들은 더욱 원자화됐고, 신뢰할 수 있는 기구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상황에서, 비록 힘은 많이 들고 성과는 적을 지언정(事倍功半), 내지 민중들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자발적으로 구조에 나서고 있다. 시민사회를 재건하는 것은 바로 이럴 때 가능하다. 민중이 강해야 비로소 나라도 평안해질 수 있다. 

글 : 렁카이치 / 번역 :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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