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 자유화의 교훈

유럽 에너지 자유화의 교훈

그간 한국에 편향적으로 소개되어온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평가들을 숙고하고, 신자유주의의 도그마에서 벗어난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

2020년 1월 7일

[읽을거리]기후정의에너지, 기후위기, 유럽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자유화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악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문가나 환경단체 일각에서는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 특히 전력 자유화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했기 때문에 한국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매 전력 시장을 더욱 자유화하고, 소매 전력 판매를 민간기업에게 개방하고, 송배전망도 분할하자는 내용들이다.

대표적으로 2019년 9월 26일 민주당 김성환 의원과 기후솔루션이 주최하여 국회에서 열린 ‘한-EU 재생에너지 정책 워크숍’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왔다.

“재생에너지 계통수용과 관련해 유럽연합 역시 유사한 문제점들을 많이 경험했으나 전력시장을 통해서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 이러한 경험을 참고해 우리나라 역시 계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력시장제도 등 관련된 규제 체계를 바꾸어 나가야할 필요가 있다.”

2019년 10월 22일 환경단체의 한 인사는 언론 기고를 통해서, 현재의 공공 에너지 시스템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며, “국가독점 전력 및 가스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019년 12월 1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주최한 2050 저탄소전략 토론회에서도,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를 모범으로 보고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쟁체제”, “시장개혁”, “자유화”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고 있으나, 이런 주장들은 공통되게 유럽의 전력 자유화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유럽의 전력 자유화는 과연 성공하였나?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도움이 되었나?

유럽 에너지 자유화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그러나 영국 그리니치 대학교의 베라 웨그먼(Vera Weghmann) 박사2019년 7월 발표한 보고서 <유럽 에너지 자유화의 실패와 공공적 대안>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다양한 연구를 검토하여 20년간의 유럽 전력 자유화를 평가한 이 보고서는 한국에 그간 편향된 내용으로 소개된 자유화에 관한 대안적 정보들을 종합하고 있다. 2020년 1월 사회공공연구원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에 관한 신화를 비판적으로 평가해 보고, 자유화 외에 어떤 대안들이 제기되고 있는지를 소개하기 위해서 본 보고서를 번역하여 발간했다. 아래의 내용은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에 관한 비판적 평가를 다섯 가지 신화에 대한 반론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 유럽의 전력 자유화는 요금을 인하하지 못했다. 전력 자유화는 애초에 경쟁을 통해 효율이 향상되고 가격이 하락해서 전체의 효용이 커질 것이라는 다음과 같은 도식적 논리에 기반했다. 민영화·자유화 → 경쟁 촉진 → 효율성 향상 → 가격 하락. 그러나 20년간 유럽이 경험한 현실은 달랐다. 보조금을 받는 재생에너지가 시장에 진입하자 2008년 이후 도매전력가격은 하락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소매전력가격은 2008년 이후 연 3%씩 상승하였다. 전체 가계지출에서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용도 평균 6%로 상승하였다,(16쪽) 이렇게 전기요금이 상승하자 에너지 빈곤층도 증대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2014년 EU 내 최저소득가구에서 에너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9%에 육박해 지난 10년 동안 50%나 증가했음을 지적하였다.”(26-27쪽)

2) 자유화는 경쟁을 촉진하지 못했고 소비자 선택도 제한되었다. 자유화 이후 소규모 발전사와 소매기업들은 대기업들에 인수합병되었다. 2003년에는 7개 대기업이 등장했고 2009년에는 5개 대기업이 유럽 전력시장을 지배했다.(22-23쪽) 반면 시민들이 전력공급업체를 바꾸는 비율은 아주 미미해서, 2016년 기준 6%에 불과했다. 다양한 요금제도는 선택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충분한 시간과 기술을 갖지 못한 고객들은 희생양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결국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전기요금에 대한 가격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3) 전력망의 분리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 역시 없다. 전력 자유화의 핵심 요소 중에 하나는 전력 시스템을 분리(unbundling)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력망의 분리가 보다 효율적이고 저렴한 시스템으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소비자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지만, 지금까지 이것이 실제로 그렇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20쪽) 오히려 소유 분리가 가격 상승을 야기하거나, 각 부문 간의 조정 기능이 저하되는 문제점들을 보여주었다.

4) 자유화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계가 없고, 오히려 대립적이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가 확대된 까닭은 FIT(발전차액지원제도) 등을 통해서 고정가격을 보장해주고, take-or-pay(의무인수계약)을 통해서 사용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가격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는 투자를 촉진한 반면, 경쟁은 축소하는 것이다.(12쪽) “재생에너지의 부상은 시장 자유화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자유화로부터 보호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31쪽) 최근 많은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를 없애고 경쟁적 시장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고, 그 결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규모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5) 자유화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에너지 자유화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전력 자유화 초기인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EU 15개국에서 전력부문의 일자리가 약 25%에서 30% 가량 감소했다. 유럽연합위원회는 2019년 발표한 <모든 유럽인을 위한 청정 에너지> 정책에서 9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자 규모에 비례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통계 모델링에 입각한 이런 전망은 근거가 희박하다. 어디에 투자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자리가, 어디서 창출되는지에 관한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35-52쪽)

유럽의 교훈은 공공적 대안의 중요성!

베라 웨그먼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정의로운 전환”과 “규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공 소유”를 강조한다. “급격한 기후변화 속도에 대처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데에는 공공기관들이 훨씬 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공공 소유, 또는 공공성에 관한 이런 관심은 에너지민주주의를위한노동조합(TUED), 초국적연구소(TNI) 등 북미와 유럽의 노동운동, 사회운동, 좌파 정치 및 학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공공적으로 소유된 망이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화의 핵심이다. 그간 유럽의 민간기업들은 전력망 투자를 게을리해서 재생에너지 수용을 막아왔다. 영국의 송전망 독점 민간기업인 National Grid는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도, 투자는 줄였고, 규제당국에는 투자비용을 부풀려서 보고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국 노동당은 송전망의 재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배전망도 6개 기업에 민영화되었는데, 이들은 30% 이상의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절반을 주주에게 배당했다.(60-62쪽) 반면 유럽에서 재생에너지의 선두 주자인 덴마크에서는 국유화된 송전망을 활용해서 풍력발전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70-71쪽)

공공적인 전력 생산과 관리는 비용을 절감하고 안전성을 높인다. 공공적 전력 생산은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낮은 금리로 인해 자금 조달 비용이 줄고, 장기투자와 거래비용의 절감 등으로 효율성도 민간 부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 소유는 안전성이 높다. 독일은 원전 폐로 작업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 원전 폐로 작업을 국유화했다.(69쪽)

유럽의 교훈은 공공적 대안의 모색에 있다. 유럽에서는 국가별 특성에 따라 국가 수준, 지역 수준의 공공 소유가 시도되고 있다. 지역 차원의 전력 재공영화 사례는 2017년까지 311개였는데 그중 90%가 독일의 사례였다. 한편, 분산화는 지역공동체와 협동조합에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민간기업에게 문을 열어주는 위험성도 있다. 만약 지역공동체나 협동조합이 “이윤”을 추구한다면, “지배적인 시장논리에 그대로 종속”되는 것이다.(71쪽) 따라서 어떤 공공적 소유의 형태이든, 에너지 시스템의 탈상품화와 보편적 접근성이라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지구는 말 그대로 불타오르고 있다. <유럽 에너지 자유화의 실패와 공공적 대안>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전 세계에 메아리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까닭을 알려준다. 지금이야 말로 그간 한국에 편향적으로 소개되어온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평가들을 숙고하고, 신자유주의의 도그마에서 벗어난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 💡

구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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