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는 이주민에 대한 무관심을 멈춰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지난 8월 23일 ‘오픈 데모크라시’에 실린 Hong Kong’s protest movement must stop ignoring migrant workers을 번역한 글이다. 이후 두 달의 시간이 지났고, 홍콩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 글이 언급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되어 번역했다. 홍콩 투쟁이 마주하고 있는 홍콩 사회의 모순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을 제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 미디어가 선호하는 서사에 대입하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에 있다.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도 ‘홍콩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 필자 : Promise Li
  • 번역 : 이산

8월 5일. 35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몇 십년 만에 이뤄진 홍콩 총파업에 참여했다. 항공편은 무더기로 취소됐고, 홍콩의 대중교통 체계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이 입법의회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소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송환법 수정 조항이 제출된 이후, 몇 주간 이어진 시위는 절정에 다다랐다. 총파업은 노동자·학생 간 연대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홍콩 시위 흐름의 중대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에는 노동조건에 대한 명시적 요구가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자치를 획득하는 일이 수백만을 거리로 나오도록 했지만, 총파업 현장에서 볼 수 있듯 이 운동에는 경시되고 있는 연대의 방향들이 존재한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홍콩 투쟁에서 특수한 위치에 서 있다. (총파업 규모보다 많은) 40만 명 가량의 필리핀·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홍콩에 왔지만, 그들의 80퍼센트는 채무와 인력사무소의 착취를 당하며 살아간다.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홍콩 경제에 1200만 달러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의 다수는 시위를 지지한다. 홍콩의 이주노동자 노조들 일부는 민주파인 홍콩노총(職工盟; HKCTU)에 소속되어 있고, 조합원들의 시위 참가를 강력히 독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압력들 때문에 참여에 제한이 있다. 또 시위대의 요구사항 중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항목이 없다. 이주노동자 중에는 노동 비자가 취소될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필리핀 영사관은 자국민 이주노동자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클라리쓰(Clarisse) 씨는 많은 고용인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시위 참여를 허용하지 않고, 심지어 일부는 법정 휴일을 지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들이 경찰과 시위대 간 주요 충돌 지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국제 가사노동자 연맹(IDWF)의 홍콩 회원인 피쉬 입(Fish Ip)에 따르면, 정부의 가짜 뉴스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살해 협박이 위챗·왓츠앱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유포됐다. 네팔·인도·파키스탄인들을 지목하며 이들이 시위에 참여할 경우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가사노동자가 아닌 이들에게 까지 보내진 이런 협박성 메시지는 홍콩에 얼마나 여러 소수민족들이 섞여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공격의 타깃이 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홍콩 경찰이 총파업 전날 필리핀인 댄서를 추행하고 체포하기까지 한 사실은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그밖에 협박 중에는 위엔롱(Yuen Long)에서 벌어진 시위자들에 대한 공격에서 일부 소수민족이 연루됐다는 루머에 기반한 것도 있었다.

이주자들에 대한 무관심

비록 기본적 노동권 중 상당 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아직까지 홍콩은 두바이 등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다른 곳들보다는 조금 나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6년부터 홍콩에서 일해온 필리핀인 호프 씨는 송환법이 이민자와 원주민 모두에게 공히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두려워 했다. 무엇보다도 호프 씨는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위태로워 질지 모른다는 점이 걱정이다. 그는 필리핀 영사관으로부터 이 시위에 대해 가사노동자들은 신경 쓰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클라리세 씨는 이런 입장에 반대한다. “우린 홍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홍콩은 우리에게 있어 제2의 고향이고, 여기서 뭐가 일어나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돼 있죠.”

홍콩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역경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다.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민주파와 정부 양측 모두로부터 무시당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과의 인터뷰는 이들이 홍콩을 또 다른 고향으로 인식하는 복잡한 심경을 보여준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더 많은 동아시아 여성들이 일터에 나갈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이민자들은 그들의 제한된 참여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의 노동은 더 많은 가구들이 거리로 나가도록 하고 있다.

홍콩의 곤경은 세계화된 착취 경제와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화의 구조적 효과와 깊숙이 연루돼 있다

시위는 홍콩의 평범한 대중들에게 홍콩의 구조적 문제에 관한 이해를 재고(再考)하는 계기가 됐지만,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경찰에 대해 늘어나는 불신은 급진화를 향한 새롭고 중요한 전진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의 환경에 대한 침묵은 시위대 요구의 근본적 약점을 드러낸다. 즉, 홍콩의 갈등이 세계화된 착취 경제와 새로운 형태의 식민화의 구조적 영향에 깊게 묶여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사노동자이자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연맹(IMWA)의 성원 스트링 아틴(Sring Atin) 씨는 시위에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이 운동의 요구가 이주민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틴 씨가 이 운동의 최대 주안점으로 바라보는 송환법 반대 투쟁은 반드시 “가장 소외된 공동체에 제대로 된 노동 조건을 보장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포함”해야만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시위대의] 근시안적인 모습은 지역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배타적이고 제노포비아적인 감성을 드러낸다. “홍콩 정체성”에 연결된 인종 민족주의의 감각은 중국인 전체에 대한 무비판적인 제노포비아를 대놓고 선동했던 ‘본토민주전선(本土民主前線; Hong Kong Indigenous)’과 같은 여러 지역주의 그룹에서 분리 불가능한 요소로 존재해왔다. 이런 배타적인 감성은 홍콩 투쟁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이주노동자의 문제에서 더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다.

계급과 인종은 홍콩 시위의 사각지대인가?

홍콩은 미국‧중국의 지정학적 갈등 사이에 끼어 있다. 윌프레드 챈(Wilfred Chan)은 디센트(Dissent)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도시가 “이런 중간적인 장소의 관점으로부터 권위주의에 맞선 생존의 정치학, 반자본주의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그 대답은 홍콩의 노동자운동에 놓여있으며, 새로운 연합을 상상하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초국적 반자본주의 정치를 향한 가능성은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정체성에 도전한다. 또, 이주민과 원주민이 거리에서 어깨를 맞대 싸우고 있는 이 도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홍콩 시위에서의 인종적 분열은 홍콩의 노동‧경제와 제도적 구조에 남아있는 식민지 잔재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하는 데에 있어 걸림돌로 기능한다.

동남아-여성-가사노동자들은 미완의 탈식민화 과정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홍콩은 특정 젠더에 대한 착취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예컨대 식민지 시기 부유한 가정은 자주 무급이나 저임금으로 일하는 중국인 여성 가사노동자 ‘식모(妹仔)’에 의지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젠더나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자국에서 밀려난 동남아시아 여성들은 필수적인 돌봄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이주 학자 라셀 파르레냐스(Rhacel Parreñas)는 이를 “재생산 노동의 국제적 분업”이라 묘사한 바 있다. 파르레냐스는 저서 <세계화의 하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민 송출국과 유입국 양측 모두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성평등한 가사노동 분업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인종적‧계급적 특권을 사용해 자신이 책임지게 될 재생산 노동을 무권리 상태의 여성들에게 전가했다.”

이주민과 초국적 네트워크가 홍콩의 문화적 정체성을 빚어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이고 배제적인 ‘소속’ 개념은 지속적으로 인종적 구분을 강화시키고 있다. 홍콩의 뿌리에 자리잡은 깊은 ‘부당함’에 진정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급진 운동은 반드시 보통선거권 요구보다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놓아야한다.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강조하는 것은
권위주의 비판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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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의 요구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 권위주의에 대한 방점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다. 반대로 이는 노동을 그 자체의 복합적인 동학으로 드러낸다. 식민지 이후 홍콩의 안팎 모두에서 말이다. 어째서 홍콩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은 이토록 낮고, 그들의 조국에선 심지어 더 낮은가? 홍콩과 중국 정부는 어떤 식으로 이 억압의 네트워크에 공모하고 있는가? 이 시위는 소외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접근 가능한가? 만일 시위대가 홍콩의 모두를 위한 해방과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이들 질문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주노동자 노조와 사회운동 단체들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승리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데 실패해왔다. 현재 홍콩 시위를 보다 포괄적으로 만들자는 이들의 요구는 홍콩 시위에 있어 시사점을 제기한다. 시위 지지를 표명하며 자기 조직화한 가사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시사하듯, 가사‧돌봄노동은 정당한 노동일뿐만 아니라, 대중투쟁의 조건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위대의 구호 “우리 홍콩, 우리가 지킨다(自己香港自己救)”에서 ‘우리(自己)’에 누가 포함되는가? 이 ‘우리’의 일부에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 초국적이고도 지역적인 노동자들을 포함할 때, 홍콩 사회운동과 전략은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들은 그저 학술적인 것도, 추측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홍콩 해방을 위한 투쟁의 한계를 설정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실 자본주의 하에 있는 홍콩에서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한족 민족주의(대민족주의), 홍콩 인종민족주의(소민족주의) 및 기타 배타적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동반해야만 한다. 또한 중국의 식민주의적 야망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내부를 살펴야 한다.

자유는 검정 마스크의 전위 대열에만 있지 않다. 전방 대열에 없는 다수에게도 자유를 향한 길이 있다. 우리는 누가 ‘지역(local)’에 포함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들 지역 주민들이 초국적인 주체들과 엮여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홍콩의 경우에는 4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자본에 맞서 싸우는 글로벌-풀뿌리 투쟁의 필수적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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