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자스민이 아니라, 심상정식 리더쉽

문제는 이자스민이 아니라, 심상정식 리더쉽

대의제 민주주의는 허울뿐인 형식으로 전락했고, 정당은 사회적 요구를 통합하고 조정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2019년 11월 7일

[읽을거리]정치정치, 진보정당, 정의당

정의당은 최근 이자스민 전 의원을 영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심상정 대표는 최근 이자스민 전 의원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언뜻보면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매우 다르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심상정 대표가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공표하기 직전까지도 상임위 지도부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처럼 전해듣기도 하고, 사석을 통해 건네듣기도 하지만, 정의당의 핵심 인사들은 심상정 대표가 추진하는 인사 영입 과정을 모른다. 즉, 정의당의 인사영입 시스템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용단이 있을 뿐이다.

이자스민 영입을 둘러싸고 안팎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들린다. 그간 기성정치의 구도상 보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자스민이 자유한국당 출신인 것이 핵심적 문제라고 할 순 없다. 자유한국당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얼마든 변할 수 있고, 자기 혁신과 반성을 통해 보다 왼쪽으로 진전할 수도 있다.

당연히도 이자스민 전 의원이 인터넷 기사 댓글창에서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얼마든 옹호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개인을 영입한 조직의 책임이다. 여러 인사들을 영입해놓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의 기획은 정치적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정의당의 핵심 인사들이 이자스민 영입 사실을 몰랐듯, 수만 명의 당원들, 정의당을 지켜보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조차 이자스민이 어떤 자기 혁신의 과정을 거쳤는지, 그가 정치나 한국 사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최근 심상정 대표는 이자스민만이 아니라, 영화감독 장혜영, 동성애 인권운동가이자 영화제작자 김조광수, 노동인권 변호사 권영국, 전 해군 제독 이병록 등의 입당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알려진 인물들이고, 한국 사회에서의 역할 역시 적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이끌었다. 그러니 이들의 입당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든 환영할 수 있고, 그들이 사회운동과 함께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조력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냐’이기에 앞서 ‘어떻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이는 실은 지난 총선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김종대, 추혜선 의원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입당했고, 국회의원이 됐다. 물론 그때에도 당원들은 그 둘의 정치관이나 자질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시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꽤 알려진 김종대가 들어왔으니 환영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진보정당 활동가 혹은 정치인에게 정확히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에 대해선 자문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 문제는 이자스민이란 개인이 아니다. 그를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자스민 영입은 얼마든 시스템을 거쳐 진행할 수 있고, 그래야 심상정 대표가 정치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조직적인 성과로 남게 된다. 심상정 대표는 몇 차례 자기반성의 말을 뱉으며, 그런 구조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사람 버릇이 어디가겠는가? 그는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언론에 나기 전까지 부대표도 몰랐다는 인사를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의당이 흑사회 같은 사조직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당은 사조직이 아니다. 정당은 정치조직이고,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면 더욱 민주주의적이고, 구성원들의 주체적인 역동으로부터 구축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영입 과정엔 어떤 토론이나 검증 절차도 없었다. 유명한 사람을 데려오면 된다는 점과 심상정의 ‘직관’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자스민이 아니라 다른 누가 들어오더라도 문제가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실체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는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논란은 ‘무엇을(what)’에만 집중된다. 그러니 진정한 ‘어떻게(how)’라는 문제에 다가서지도 못한다. 시스템이 위태롭다는 방증이다.

정당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문제 이면의 구조를 고찰해야 한다. 붕괴된 정치를 복원하는 일은,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구호만으로도, 성벽 앞에 나선 중세의 기사처럼 창끝을 벼린다고 해도 이뤄지지 않는다. 내부의 붕괴부터 살피고, 사유화된 모든 정치 과정을 공유화해야 한다. 지금 정의당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런 정치적 과정을 공유화하고, 젊은 세대 정치 활동가를 육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내부 역량을 통한 재생산 과정을 구조적으로 만들지 않고, 외부 유명 인사의 수혈만으로 뗌빵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다.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작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인사 영입 위원회’와 같은 공식적 구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대표마저 언론을 통해 새 영입 인사를 알게 되는 일은 반복되어선 안 된다.

신자유주의 이후 정당의 탈정치화는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허울뿐인 형식으로 전락했고, 정당은 사회적 요구를 통합하고 조정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불행히도 그것의 가장 ‘극단적 사례’가 정의당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