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원전 재가동 여론 조성에 맞선 시민사회의 반발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이전의 1995년의 한신-아와지 대지진보다 심각한 피해를 낳았다. 후쿠시마현의 원자력 발전소가 지진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중단됐고, 원자로 통제는 불가능해졌다. 결국 원전이 폭발했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 부근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이 사건은 2009년 자민당의 오랜 집권을 끊고 정권 교체에 성공한 리버럴 계열의 민주당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됐다. 이후 정권은 자민당에게 다시 돌아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유지된 아베 신조 2기 내각이 권위주의를 강화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일본은 총 55기의 원전을 보유한 세계 3위의 원전 대국이었다. 3.11 이후 모든 원전은 안전성 확인 등을 이유로 멈추게 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안전성 조사나 주민 동의 절차 등을 거쳐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단 10기에 불과하다. 주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재가동을 시도한 원전 중 일부는 주민 소송 결과 사고 발생시 주민 피난 계획이 미흡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재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2021년 3월, 일본 이바라키현 주민들이 도카이 제2원전 재가동 중지를 요구한 1심 재판에서 미토지방재판소는 사고 발생시 주민 피난 계획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은 ‘일본원자력발전’의 항소로 2심을 진행 중이다.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자인 도쿄전력을 비롯하여 권역별로 발전소를 소유한 대형 민간 전력사업체의 연합기구 ‘전기사업연합회’도 마찬가지다. 해당 단체는 표면적으로는 ‘에너지 믹스’(energy mix) 개념을 빌려 일본의 전력 생산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특히 “2011년 이후 일본 전력 생산량 중 약 80%가 화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특정 발전 수단에 의지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에너지 믹스’가 이뤄져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경제적 효율성 향상이 가능하며 환경 보호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 ‘전기사업연합회’의 2017년 에너지믹스 캠페인 CF. ‘화력 발전’을 형상화한 덩치 큰 남성이 힘은 좋지만 자꾸 여기저기 불리며 혹사당하는 모습을 강조하며, 화력발전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 캠페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됐다. (출처: 일본 전기사업연합회)

화력 이외의 ‘다른 전력 발전 수단’은 수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기사업연합회 에너지믹스 캠페인의 궁극적 바람은 원자력 발전이다. ‘에너지 믹스’의 특징으로 ‘안전’을 거론하면서 슬며시 ‘원자력’을 언급한다. 새로운 규제 기준 덕분에 원전은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신재생 에너지를 말하지만, 가동 중단 중인 원전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력사업 자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도 원전 가동 재개에 서서히 무게를 옮기고 있으나, 시민들의 불안감을 모르지 않기에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자세를 급속도로 바꾸어 놓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한동안 석탄이나 석유를 비롯한 원료의 가격은 하락했다. 팬데믹 피해가 차츰 회복되자, 급속도로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산유국이자 세계적인 천연가스 매장 국가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석유 가격은 급등했고, 석탄과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 모두 급등하는 연쇄 현상이 벌어졌다.

이러한 여파는 일본의 전력 수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2016년부터 전력의 자유로운 도소매를 허용하고 있다. 발전소를 보유하지 않아도 다른 전력 사업자로부터 도매가로 전력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서비스하는 소위 ‘신전력’ 회사들이 생겨났다. 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원료 가격 상승은 전력 도매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비용 감당이 어려워진 전력업체들이 속속 폐업을 결정하거나, 다른 업체들과 합병에 나서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3월 16일 후쿠시마현 앞바다에 진도 7.4의 강진이 발생해 인근 화력 발전소들이 안전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때 일본 정부는 시민들에게 2011년 이후 오랜만에 ‘블랙 아웃’(black out, 대정전. 가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 실제 사용되는 전력량보다 현저히 적어 전국적인 정전이 발생한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전력 사용량을 줄여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다행히 실제 블랙 아웃은 발생하지 않았다. 얄궃게도 ‘에너지 믹스’를 강조하며, 살짝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태양광 발전 설비를 최대한 가동한 결과였다.

일본 정부는 태양광 발전으로 인해 블랙 아웃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원료 가격이 치솟는 와중에도 싸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원자력 발전으로의 귀환을 촉진하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s)’ 개발을 앞당기려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일본의 국책 원자력 연구기관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와 대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은 미국 에너지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SMR 개발을 목표로 설립한 스타트업 ‘테라파워(TerraPower)’와 공동으로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2028년 운전 개시를 목표로 SMR 공동 개발을 합의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4월 8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본의 전력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발언했다. 이후 4월 12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저렴하고 안정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하겠다고 발언하며, 원전 재가동 의지를 확고히 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전력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일본의 무역 수출액은 증가했지만 급등한 원료 가격으로 인한 수입액 상승분이 이를 상회했다. 결과적으로 2021년에 7년 만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물가 역시 급속도로 오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가 직접 경제성을 강조하며 원전 부활의 필요성을 강하게 외치고 있고, 이에 따라 일본 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원전 재가동을 찬성하는 여론이 과반을 돌파하는 상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본 여론이 원전 재가동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원전은 경제적으로 훌륭한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원전은 결코 ‘값싼’ 에너지 발전 수단이 아님이 드러났다. 동시에 한번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있음이 밝혀졌다. 소형모듈원전 역시 경제성이 떨어지고 위험도 역시 높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17일,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뉴스케일파워(New Scale Power)의 소형모듈원전에 대한 보고서 통해, “너무 뒤늦고, 너무 비싸고, 너무 위험하고, 너무 불확실하다”(“too late, too expensive, too risky and too uncertain”)는 결론을 공개했다. 이 소형모듈원전 계획은 설계 출력량을 수차례에 걸쳐 변경하는 등 불안정성을 드러냈고, 건설비와 건설 기간이 높아졌으며, 운전 능력도 예상보다 미달할 것이라며, 전력 생산 비용이 추정치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손쉽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에너지 안보가 중요하다”는 말로 덮어버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은 다른 서구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의 제재 조치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사할린 석유 및 천연가스 광구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중국 견제”를 이유로 철수를 하지 않을 것을 표명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침공’은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와 편의에 따라 제멋대로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지난 3월 21일 일본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원전 재가동의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현수막 상단에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하단에는 ‘원전에 손대지마!’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출처: 레이버넷 재팬)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모습에 진보적인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요구하는 운동에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결합하며, 공동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일본 각지에서 보이고 있는 이런 저항은 평화와 전쟁반대 요구가 원전 재가동 시도를 반대하는 운동과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저항하는 일본 시민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군수산업이 지니는 문제점이 더욱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 발전은 재처리를 거쳐 핵무기로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평화를 위협한다고 지적하고, 러시아군의 침공 과정에서 체르노빌 원전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지적되는 상황이 원전이 지니는 위험성을 고민하는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점점 강도 높게 원전 재가동을 부르짖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재개에 회의적 경향이 강했던 일본 여론도 찬성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주시해야할 부분이다. 화력발전에 전력 생산을 의존하는 일본에 많은 부담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적인 기후정의운동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일본의 기후정의운동은 매우 미진하다. 기존의 원전반대 운동은 이에 대해서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도 기후위기를 근거로 원전의 유용함을 선전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원전반대 운동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공포와 불안을 기반으로 세력을 모을 수 있었지만, 이후 어떠한 대안 체제가 필요한지에 대해선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해왔다. 원전 반대 운동이 근래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반전을 구하는 운동과 만났듯,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원전 반대 운동은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이는 단지 일본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후정의운동이 공동행동과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

글: 성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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