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와 영끌의 희망고문에서 탈출하기

빚투와 영끌의 희망고문에서 탈출하기

평범한 시민들의 금융시장으로의 포섭은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넘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2021년 5월 31일

[읽을거리]정치경제, 사회운동, 부채, 금융

투기 열풍에 포획 당하다

이른바 ‘MZ세대’라 불리는 청년층의 자산투기 현상이 화제다. 부동산은 물론이고, 주식과 채권을 비롯한 금융상품에 대한 투기 목적의 자산유입이야 이전부터 지적되어 온 현상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재테크로 돌릴 수 있는 자산이 충분한 기업이나 기성세대가 아닌 20~30대와 대학생까지 자산투기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산투기 현상의 효과는 경제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가상화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금융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갔고 집권 여당과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2030세대가 모이면 주식과 코인 이야기가 쏟아진다는 언론의 흥분과 우려가 함께 섞인 보도들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와 같은 자산투기 열풍은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캠퍼스에서는 코로나 시국을 뚫고 주식투자 동아리들이 생기는 한편,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자들이 주식과 코인에 시간을 빼앗겨 조합 활동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자산투기 현상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거나 투기에 뛰어든 이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여 해결을 시도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 투기 열풍에 그대로 포섭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역시 사회운동의 대안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사회운동은 다시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2020년의 동학개미 현상에서부터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부터 기성언론의 경제면까지를 달구고 있는 가상화폐 열풍을 하나의 연결된 현상으로 보고 원인을 찾아본다. 자산투기를 통한 일확천금에의 목표가 왜 환상에 불과한지를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 두가지에서 짚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현상에 사회운동이 포섭되지 말아야 할 이유와 대안을 위한 고민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산투기현상, 잊혀진 익숙한 과거

가상화폐 열풍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부동산과 주식에 과도한 거품이 끼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산이 유입되는 현상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굳이 거품의 사례를 찾기 위해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2000년 3월까지 ‘닷컴 버블’의 기억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들이 나스닥에 상장해 주가를 올린 흐름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환위기 직후 20퍼센트 넘게 치솟았던 금리가 진정되면서 5퍼센트대로 낮아졌고, 당시 주식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었다. 첨단 IT기술의 환상, 미국에서 불어닥친 신경제와 닷컴버블, 외환위기 이후 실업을 타개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의 흐름을 타고 장외·중소시장이었던 코스닥 시장이 끓어올랐다.

1999년 새해 ‘764 포인트’로 출발한 코스닥 지수는 6개월 만에 2000선을 돌파했고, 1998년 2천 개 수준이던 벤처 기업 숫자는 2001년 1만 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활황은 점차 투기 현상으로 귀결됐다. 주가 상승의 재미를 본 벤처 기업들은 액면 분할과 무상증자를 통해 주식 가격을 낮추었다가 다시 올리고, IT와는 상관없는 기업들이 사명에 ‘닷컴’, ‘인터넷’을 넣는 등의 수작을 통해 투기판에 불을 붙였다. 결국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일부 벤처 자본가들의 주가 조작, 미국 닷컴버블의 붕괴 등으로 2000년 말 코스닥 지수는 525 포인트로 폭락했다. 이후 코스닥은 주식 열풍이 불어온 뒤인 올 4월에 와서야 20년 7개월만에 코스닥지수 1000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등 긴 터널에 들어갔다.*1

가상화폐 현상 역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17년 말부터 2018년까지 우리 사회는 가상화폐 열풍을 겪은 바 있다. “존버”나 “가즈아”, “한강물”과 관련된 인터넷 밈(meme)들이 남긴 흔적이 이를 잘 드러낸다. 가상화폐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연결된 가치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 누구나 ‘채굴 작업(mining)’을 통해 가상화폐를 얻을 수 있다는 선전들, “중앙정부의 권위에서 벗어낸 새로운 화폐”라는 경구들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이 가격을 올리고 투자자들을 불러들이며 거품을 부풀렸고, 2017년 초 900 달러였던 비트코인 값은 당해 12월 2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비트코인에 대한 맹목적 기대가 사라지며 거품은 꺼졌다. 2018년 말 비트코인은 3000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2

이와 같은 경험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산투자열풍이 곧 꺼질 거품이 아닌지를 묻게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그때와 얼마나 같고 다를까? 현 자산투기 열풍의 원인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왜 지금 자산투기로 몰리는가

① 코로나19로 인한 과잉유동성과 실물경제 부진 : 2020년부터 다시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2020년 동학개미 열풍이 시작이었다.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한 실물경제 붕괴 우려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국내 주식을 사고 있던 개인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대규모 순매수에 나선 것이다. 주가하락의 원인이던 대규모 외국인 매물을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받아내면서 이를 ‘동학개미운동’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3월 19일 코스피가 1439.43으로 저점을 찍은 뒤 지수는 반등하기 시작한다.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셀트리온, 현대차와 같은 대형 우량주 주심으로 저가매수에 나선 개인투자자 덕분에 코스피는 회복세에 올라탔고 2021년 1월 ‘삼천피’를 달성했다. 한국의 대표 대형 우량주 삼성전자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가 158만명이 늘었고 주식 수도 2019년 전체의 3.62%에서 2020년 8.10%로 두배가 뛰었다.

동학개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해외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로 변신했다. 테슬라, 애플, 쿠팡 등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을 중심으로 2021년 3월 현재 한국 소액투자자들은 577억달러의 해외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2020년의 유동성 청년들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나선 맥락도 이 흐름 안에 있다. 과연 그 배경은 무엇일까?

2020년 초의 증시 하락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미국 연준(Fed)은 연달아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0.00-0.25%의 제로금리를 실현했고, 환매조건부채권(RP), 국채, 주택저당증권(MBS), 기업어음(CP)를 매입하며 시장에 수조달러 규모의 무제한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팬데믹 긴급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2020년 5월 7500억 유로 (약 1008조원) 가량의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 또한 금융회사들의 환매조건부채권을 수 차례 매입하며 약 19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했다.

한국 정부도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현재까지 무려 86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국가부채 증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강행하며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3*4 이렇게 유동성이 시중에 풀린 결과 자산시장 가격의 상승을 불러왔다. 한국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상승했다. 2021년 3월 발표된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실물경제 상황보다 높은 속도의 자산가격 상승은 미국, 독일등 주요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국가의 양적완화와, 각 경제주체들의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낙관적 기대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5

한편 양적완화로 유동성은 넘치지만 아직도 실물경제성장률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중 유동성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광의통화(M2)의 규모는 2020년 9월 3115조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0년 1월 한국의 실업률은 5.7퍼센트로 199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청년실업률은 2021년 2월 이후 10퍼센트를 넘어섰다. 실제 생산설비에 투자되는 금액의 등락을 측정하는 설비투자증가율은 2018년 이후 2년 연속 각각 -2.3퍼센트와 -7.5퍼센트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실물경제가 부진한 상황에서 넘쳐나는 유동성이 수익률 높은 자산시장으로 몰려들어 거품이 끼고 있는 셈이다.*6*7

②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 : 그렇다면 왜 청년들의 자산투기는 전통적 자산인 부동산이나 금이 아닌 주식과 가상화폐로 몰려들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앞 절의 마지막에서 힌트를 찾아야 한다. 바로 실물경제의 부진, 세대 내 양극화, 그리고 미래 전망으로서 주식과 가상화폐가 이들에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물경제 성과가 부진한 상황에서 청년실업률은 높아지고만 있는 상황이다.

지난 8년간 전체 가구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금액)이 35%성장하는 사이 20대만 순자산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2012년 이후 전체 가구의 평균 순사자산은 2억6,874만원에서 3억6,287만원으로 35퍼센트 증가했다. 20대의 평균 자산은 8,954만원에서 1억720만원으로 19.7퍼센트 증가했지만, 그동안 부채가 171.2퍼센트로 폭증하면서 순자산은 7,671만원에서 7,241만원으로 감소했다. 그 원인은 2017년 이후 전체 가구 근로소득이 8.3퍼센트 늘어나는 동안 20대는 2,866만원에서 2,769만원으로 감소하는 등 일자리 문제에 있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 참고로 이 수치는 세대 평균값을 기준으로 측정한 것으로*8 , 중앙값을 기준으로 측정해도 20대가 가장 순자산이 줄고 부채가 늘어난 연령대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9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세대 내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19~34세 가운데 고용과 소득, 사회보험이 ‘매우 불안정’한 집단은 2002년 19.2퍼센트에서 2018년 31.4퍼센트로 크게 늘었다. 한편 같은 시기 고용과 소득이 ‘안정적인’ 집단의 비율도 27.6퍼센트에서 41.7퍼센트로 상승했다.*10 최근 서울연구원 조사에서는 부모 대비 자녀가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어 상승한 경우는 29.7퍼센트, 하락한 비율은 46.9퍼센트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5분위로 나누었을 때 소득 하위 2분위에서 1분위로의 하락, 소득 4분위에서 5분위로의 상승이 두드러지는 등 양극단에서의 고착화, 양극단으로의 이동 현상이 발견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부 불평등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분야가 자산 33퍼센트, 소득 26.6퍼센트 등 자산과 소득에서 양극화가 벌어진다는 인식은 세대 내에서 공유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 청년 중 자신이나 자신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이는 전체의 4분의1이 되지 못한다.*11

노동 소득에 의한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차단된 이들이 마지막 희망을 거는 곳이 바로 자산소득이다. 하지만 월급과 저축으로 ‘내 집 마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을 통한 자산소득 증대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먼 이야기다. 부동산 시장은 그 사회적 지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는 만큼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있다. 그 결과 누구나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고, 비교적 소액으로 한 단위의 투자가 가능하며 보다 즉각적으로 결과를 알 수 있는 유동성이 높은 자산시장에 시선이 끌리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에게 있어 주식과 가상화폐는 그 차이가 크지 않다. 그 결과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 전망을 두고 빚까지 내어 투자하는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12

따라서 2021년 상반기의 가상화폐 붐은 지난해 과도한 유동성으로 상승기에 있던 주식시장이 조정에 접어들어서면서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꿈꿀 수 있는 가상화폐 시장으로 옮겨간 것이라 봐야 한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주식시장 투자자예탁금이 증가하는 등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 이 주장에 근거를 더한다.

자산투기의 주관적 원인 : 2030세대의 ‘슬픈’ 현실

2020년의 유동성 파티와 청년세대 자산·소득 양극화만이 지금 목격되는 자산투기 붐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2030세대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청년세대에서 투자를 위한 부채가 늘어나고 그 위험이 지적되는데도 계속해서 위험자산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2030세대의 필터버블 효과(개인별 맞춤형 정보가 제공될 때 각자의 가치관에 맞춰 걸러진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 부채 누적 및 상환 경험의 부족, 이전의 버블 경제에 대한 경험 부족, 관계적 측면에서의 고립 등을 이야기한다. 이는 객관적인 경제 상황에 더해 2030세대의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13

2030세대는 이전의 97년 외환위기 이후 닷컴 버블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는 않은 세대다. 상승할 것으로만 보이던 주식시장의 거품이 터지는 경험, 이로 인해 거대한 부채가 누적되고 이를 끝까지 상환해 본 경험이 없다. 이에 더해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가 스스로 증명해 온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뒤늦게 태어나 집을 구하지도, 집으로 이익을 얻지도 못하는 이들의 ‘왜 나는 안돼’라는 억울함이 깊게 깔려 있다는 점도 언급되고 있다.*14

필터버블 효과는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는 것 같은’ 정서를 지칭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효과나 확증편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전에도 2030세대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혼자 보내는 여가시간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 1인 가구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74분이다.*15

이미 불안정한 주거 및 경제적 상황에 더해 심리적ㆍ사회적 고립이 덮치고 있다는 상황은 청년세대 고독사 증가, 우울증, 자살률 증가와 같은 지표에서 드러난다. 코로나19는 이 경향을 더 가속시켰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양질의 정보를 교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론과 부추기는 듯이 보도되는 자산투기 열풍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수익률 자랑은 사람들로하여금 조급한 매매로 빠지게 한다. 작년의 주식 열풍에서 ‘신참 개미’가 ‘고참 개미’보다 수익률이 낮았다는 사실, 20~30대 남성이 동세대 여성보다 각각 18퍼센트포인트, 15퍼센트포인트 낮은 수익률을 보였던 것의 원인은 단타 매매로 인한 높은 회전율, 필요이상의 정보와 과도한 투자 자신감으로 지적된다.*16

10년에 한 번 있을 상승장은 끝났다

아직까지 동학개미들의 성적표는 준수해 보인다. 2021년 3월 <한국경제>가 2030세대 주식 투자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3.8퍼센트가 주식 투자로 수익을 얻고 있고, 이 중 10퍼센트 이상 수익을 올리는 고수익자가 60퍼센트를 넘었다. 전체 투자자 중 32.8퍼센트는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6개월 미만이었다.*17 이는 지금의 주식시장에서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것과 이를 인식한 청년들이 잃어버린 계층 사다리의 대안을 찾아 자산투기에 뛰어든 것 자체가 막연히 환상이라기보다는 꽤나 근거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한다.

이렇게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면 왜 지금의 자산투기 현상이 문제적이라는 말인가? 우선 주식이든 가상화폐든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졌던 상승장은 당분간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현재의 자산시장 활황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장에 유입된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선진국에서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면서 경기지표의 회복이 전망되고 있는 지금, 이미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양적 완화의 점진적인 종료를 시사하고 있다. 시장이 과열되어 있다는 우려가 이미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고 미국 재닛 옐런(Janet Yellen) 재무장관이 금리인상 발언을 내놓은 이후 이미 증시가 한번 휘청였다. 5월 27일에는 한국은행도 연내 금리인상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세계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만큼 당장 금리인상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곧 시장에서의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지난 1년간이 누구나 주식에서 벌 수 있는 10년에 한번 있을 상승장이었다면 이제는 제로섬 게임으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지난 1년간 단타매매의 단맛에 익숙해진 한국의 개미투자자들이 장기·안정 투자로 이어갈 수 있을 지도 두고 볼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의 투자가 부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금리 인상은 부채 상환 압박을 높일 것이다. ‘빚투’에 나선 청년층의 상당수가 이용한 대출상품이 변동금리를 적용받는 상품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있을 금리인상에서 이들이 매우 취약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빚투와 영끌 속에서 이미 부풀 대로 부풀어 1,765조를 돌파한 한국의 총 가계부채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가상화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4월 하순에서만 해도 가상화폐 시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5월 중순이 넘어가며 가상화폐 시장은 중국의 가상화폐 거래 및 채굴 금지, 미국와 유럽에서 가상화폐 제도화와 함께 통제 움직임을 보이면서 급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금융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 및 과세 기준 선정에 들어갔다. 그러한 뉴스 탓인지 가상화폐의 대장주 비트코인이 4월 중순 1코인당 약 8,200만 원의 최고가를 찍은 이후 계속 하락해 5월 하순 현재는 4천만 원대로 내려앉았다. (이후 나흘 사이 3천만 원대로 무너지기도 했다) 앞으로 이는 더욱 하락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5월 초순 코인당 약 5천만 원의 최고가를 찍었던 이더리움은 한때 3천만 원대가 무너졌다가 잠시 회복한 상태다. (마찬가지로 지난 나흘 사이 2천만 원대로 무너졌다) ‘돈 복사기’의 환성이 ‘돈 삭제기’의 비명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 시장의 투기성은 엘런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들썩이는 촌극으로 이미 민낯을 드러냈다. 최근 도지코인(dogecoin) 가격을 올려치기 하는 한편,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게 했다가 이를 취소하면서 가상화폐 시장을 뒤흔든 바 있는 일런 머스크는 여타 금융시장이었다면 도덕적 비난 뿐만이 아닌 사법적 제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열풍에서는 상징적인 인물로 부상한 바 있다. 도지코인이 인기를 얻으니 헷갈리는 이름을 사용해 이용자를 꾀려는 스캠(사기) 코인이었던 ‘진도지코인’과 같은 아류 코인이 수도없이 쏟아지기도 했다. 특정 인물의 말 한마디에 시장 전체가 들썩이고, 한 코인의 가격이 올라가면 이름이 비슷한 코인 가격도 같이 올라가는 현실은 어떠한 가상화폐는 내재적 가치도 없는 투기 대상일 뿐이라는 점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는 자산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자산투자가 노동으로는 이루지 못하는 계층상을 이룰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많은 투자자들의 전망도 헛된 희망에 가깝다. 이미 지난 2020년 10월 경향신문 ‘2030 자낳세 보고서’ 기획은 자산투자도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낸 바 있다.*18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대출을 받아본 경험도, 투자가 계층 상승의 사다리라는 명제에 동의하는 비율도, 부모에게 금융투자 교육과 지원을 받는다는 비율도, 앞으로 투자를 통해 계층상승이 이루어질것이라고 전망하는 비중도 모두 자기 자신을 경제적 계층에서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 이 현실은 자산투자 또한 공정한 게임이라기보다는 다른 여타 모든 ‘계층의 사다리’로 여겨지던 교육, 노동에서와 별 다를 바 없이 부모의 자산과 사회적 배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자산투자 또한 자기자산이 있는 이들에게 더욱 유리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과 가상화폐시장이 상승장을 벗어나 조정 국면으로 들어서면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 편히 그 돈을 그대로 주식계좌에 묻어둘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오를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주식에 그대로 빚을 물려놓고도 버틸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러한 환상을 직시할 때 자산투기가 계층상승이나 미래보장을 담보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근거가 빈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환상에 대한 지적을 넘어

지금까지의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과 지적들을 종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산시장의 위험성이 수없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자산투자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미래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경제가 불안정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켜줄 사회적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둘 다 위험하다면 힘든 노동소득보다는 덜 힘들고 수익이 즉각적인 자산소득에 베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이 ‘영끌’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지자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은 ‘주식’이었다. 주식 빚투는 주식 조정국면에서 그대로 가상화폐로 옮겨갔다. 가상화폐가 하락하자 갈 곳 잃은 돈은 다시 주식과 금, 여러 자산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자산시장이라는 범위 내에서 풍선효과가 무한히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이 상황에서는 시장의 규제나 도덕적 수사도 풍선효과를 다른 곳으로 옮아가게 하는 딜레마에 빠질 뿐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금융시장으로의 포섭은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넘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퇴직금의 금융자산화, 주식의 분기별 배당금 지급은 이들의 이해가 주주와 금융자본의 이해에 동기화되는 효과를 낳는다. 만약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라면, 자본가의 이해관계와 뒤얽혀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망각하게 될 위험이 크다. 최근 이루어진 연구들은 금융시장에 깊이 참여하는 시민일 수록 불평등의 문제와 같은 사회경제적 가치에 있어서 자유시장경쟁을 옹호하는 경향성을 보이게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19 이는 금융화가 진행될수록 앞으로 더욱 사회운동에 적대적인 환경이 재생산될 것이라는 지점을 암시한다. 이제 사회운동이 바깥의 사회 이전에, 사회운동 자신의 전망을 그려나가기 위해서라도 금융시장이 아닌 다른 방식의 희망이 가능하다는 구체적 비전을 사회운동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역할은 금융시장 규제나 문제 지적에서 그칠 수 없다. 문제의 대상을 금융화가 옳냐 아니냐에서, 다른 방식의 삶의 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으로 바뀌야 한다. 우물 안에 고립되어 끊임없이 등락하는 그래프를 지켜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 자신의 노동조건을 바꿀수 있다는 실천적 경험을 각자의 일터에서 만들어야 한다. 주거권 운동을 통해 영끌과 빚투를 하지 않아도 적절한 생활 환경을 갖춘 집에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알려야 한다. 개인들을 ‘희망고문의 전장’인 투기시장으로 이끄는 주식 유투버 대신, 자산시장은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기존 계층에 따라 정보와 접근성, 성공 가능성의 기회가 차단되는 불공정한 장이라는 사실이 공통의 인식이 확장되어야 한다. 2030세대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싸움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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