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낳은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대중운동

『미래가 불타고 있다』 서평

 

‘기후위기’라는 말은 일상이 됐다. 2018년 인천에서 채택된 UN IPCC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언급하고, 국회에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외치며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혁신에서 기업의 역할을 자임한다. 마트에서는 각종 친환경 제품들이 소비자 윤리의 이름 아래에서 선택을 기다린다.

기후위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가? 기성 정치인들과 자본이 제시하는 대안은 과연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의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목전에 닥친 기후위기를 멈추기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멈추어야 하고, 개인의 일상을 넘어선 대중운동으로 정치와 경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다.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위기, 트럼프주의,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현장에서의 실천을 주도하는 활동가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This changes everything』, 『’노’로는 충분하지 않다 NO is not enough』 등 이전 저작들도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클라인이 기후위기에 관련하여 쓴 칼럼과 연설들을 모은 것으로, 다소 긴 프롤로그와 열여섯 편의 글들이 400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첫 글에서 마지막 글까지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것, 해결책은 정치를 움직이는 대중운동일 뿐 다른 우회로는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경제체제를 바꾸는 그린뉴딜이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알아듣기 쉬운 언어들로 적혀 있어 읽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다. 이 서평에서는 저자의 메시지를 세 줄기로 요약하여 소개하고 우리에게 더 필요한 고민을 제시한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문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명확하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문제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려는 ‘인간 본성’때문도,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려는 좌파가 지어낸 정치적 수사도 아니다. 오히려 기후위기의 원인이 탄소배출을 절제하지 않으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그리고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에 있음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14장 「푸에르토리코 재앙의 원인은 자연이 아니다」에서는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덮쳤을 때 푸에르토리코의 전력ㆍ수도ㆍ의료ㆍ통신과 함께 모든 운수가 마비된 이유는 허리케인이 아닌, 선출되지 않은 금융 관료들에 의해 망가진 푸에르토리코의 사회체제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1장 「구멍이 뚫린 세계」에서는 멕시코만에서 이루어진 최악의 기름유출 사건인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이 제시된다. 사건 당시 석유기업 BP와 석유채굴에서 이익을 얻는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은 해결할 수 있다는 수사만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들이 불가역적인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0년 토론토 G20 회의장 앞에서의 나오미 클라인 (Lucas Oleniuk/Toronto Star/Getty Images)

기후위기는 물에 잠긴 어느 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피상적으로 암시하는) 경제적 성과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구이동과 환경변화는 새로운 정치적 균열과 전쟁, 피해자들을 만들어 낸다. 11장 「연무의 계절」에서는 북미와 호주 등 최근 세계 각지에서 대형 산불의 규모와 수가 증가하고 있는 원인은 더 따뜻해지고 더 건조해진 날씨라는 것이 제시된다. 산불로 인한 연기와 대기 오염으로 피해받는 30만명 중 대부분의 사람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산다.

8장 「온난화 세계에서 자행되는 타자화의 폭력」에서는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 2000밀리미터 이하 건조 경계선에 드론 폭격 지점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높은 기온과 물 부족이 해당 지역의 정치적 갈등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제시된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51명을 죽인 총격 테러가 난민을 반대하는 자칭 ‘민족주의 환경 파시스트’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 2011년 노르웨이 총기난사 테러를 일으킨 브레이빅이 ‘환경의 탈을 쓴 공산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 과연 21세기에 들어 빈발하고 있는 테러와 국지전이라는 정치외교 문제가 과연 기후위기와 무관한 것이라고 단언지을수 있을지 질문하게 된다.

21세기에 등장한 정치적 격동은 테러와 국지전만이 아니다. 2010년대는 브렉시트와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한 10년이기도 했다. 서방 극우 포퓰리즘의 등장 배경 중 하나로 지적되는 난민의 유입은 바로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갈등들이 불러온 것이라는 분석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 클라인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서방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공통된 수사에 주목한다. 바로 기후위기라는 담론 자체가 좌파가 자유시장의 통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려는 음모라는 공격들이다. 그는 이 공격들이 역설적으로 우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더욱 진정으로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기후위기의 극복은 자본주의의 변형과 통제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극복은 정부가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에 개입하고, 탄소배출과 금융투기에 세금을 부과하고, 석유기업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을 퇴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기업과 우파 정치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기후위기 자체를 부정하고, 해묵은 색깔론마저 다시 들먹이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공격한다. 클라인은 이러한 시도에 맞서 대중들의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이야말로 더 이상 우파가 두려워하는 망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시민들이 운동을 통해 직접 현실로 만들어 내어야 할 목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타고 있는 멕시코만의 BP 딥워터 호라이즌 (Reuters)

기후위기 해결에 있어 우회로는 없다

두 번째 메시지는 결코 첫번째 메시지와 떨어져 있지 않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대중운동 이외에 우회로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6장 「혼자 힘으로 세계를 구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에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p.181)라고 명확히 밝힌다. 개인이 윤리적인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 개인이 소비와 선택을 통해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실천을 한다고 믿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비건인증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제품들이 매대에 늘어나고, ESG 경영(환경 Environment·사회 Social·거버넌스Governance의 약자)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유망주로 떠오른다. 하지만 클라인은 이러한 방식의 전술은 개개인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게 함으로써 일종의 자아실현을 돕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집단적인 운동으로서 경제와 정치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활동가들은 개인의 소비 행위를 정치적 영역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서술을 캐나다의 소비주의적 문화와 대비시키는 장면은 한국을 포함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유행하는 환경운동의 풍조를 비추어 볼 거울을 제공해 준다.

소비주의 운동보다 더욱 위험한 시도는 아마도 ‘지구 해킹(Earth Hacking)’일 것이다. 3장 「지구공학 시험대에 오른 바다」에는 기후위기에 대해 지구공학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이들이 묘사된다. 탄소를 흡수할 플랑크톤 번식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캐나다 인근 태평양에 철분 120톤을 쏟아부은 미국인 사업가 러스 조지, 빌 게이츠가 투자했다는 ‘성층권 방패’ 프로젝트, 대기에 황산염 에어로졸을 분사한 인공화산재 방법과 같이 SF영화에서만 보던 기술들이 과학의 이름을 빌어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치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인류는 살아오던 그대로 성장하고 소비하면 된다는 듯한 메시지를 던지는 지구 해킹이야말로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지구공학은 기후와 환경에 끼칠 후과가 검증되거나 예측될 수 없는 기술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선진국이나 심지어 단 한 명의 자본가의 선택으로 전 지구환경에 걸쳐 예측불가능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은 전 지구의 인류가 함께 단합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원칙에서 가장 멀어져 있는 대응방법이다.

개인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고서 기후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의 문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헛된 기대의 투영일 뿐이다. 소비가 아닌 기후위기에 대한 토론과 운동을 통해 공동체과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오직 탄소를 배출하는 소비와 생산 자체를 줄임으로서, 그러한 풍조를 부추기는 문화와 정치경제체제를 바꾸어 나갈 때에만 가능하다. 이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대규모의 조직적 대중운동으로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 클라인의 입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클라인이 제시하는 목표점은 바로 ‘그린 뉴딜’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미 하원의원와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 (Bill Clark / CQ-Roll Call, Inc via Getty Images)

미국의 그린뉴딜 운동에 비추어

대중운동의 목표에 있어서 저자는 두루뭉술한 언어를 던지지 않는다. ‘그린 뉴딜’이라는 대중운동이 따를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그린 뉴딜의 원칙은 일자리의 창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의 활동 규제, 기후위기로 인해 혹은 산업전환에서 피해를 감수해야 할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보장정책 등 여러 ‘정의로운 전환’ 담론과 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끊임없이 강조되는 것은 이 운동이 노동ㆍ여성ㆍ빈곤ㆍ주거 등 기존의 사회운동과 함께하는 대중운동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다.

21세기 한국에서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은 루즈벨트와 케인즈의 이름만으로 어렴풋이 받아들여질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에서 뉴딜은 미국민들이 함께 단결해 1930년대의 대공황을 이겨낸 국가적인 기억과 경험으로 남아있다.[1] 클라인이 제시하는 ‘그린뉴딜’의 제안은 그러한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 기초해 있다.

15장 「그린 뉴딜의 성패는 운동의 힘에 달렸다」에서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을 채택했던 때는 역사적 규모의 노동 운동 물결이 휩쓸던 때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34년에는 팀스터 봉기와 미니애폴리스 총파업이, 같은 해에 83일에 걸친 웨스트코스트 항만 노동자들의 항만 봉쇄가, 1936년과 1937년에는 플린트에서 자동차 노동자들의 연좌 농성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대중 운동은 대공황이 몰고 온 고통에 대응해 사회 보장 제도와 실업보험 등 전면적인 사회 복지 제도를 요구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버려진 공장의 소유와 경영을 노동자들에게 넘겨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p.366)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그린 뉴딜이란, 대규모의 대중운동이 정치에 압박을 가하여 경제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에 핵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클라인은 미국의 선라이즈 무브먼트,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사회운동의 과제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주장이 북미의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유념하면서 읽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사 앞에서 기습시위를 진행하는 멸종저항 서울 (한재각)

 

덧붙여 : 우리 사회운동의 미래도 불타고 있다

한국 정부도 그린뉴딜을 수입해 K-뉴딜로 만들어내어 선전하는 데 열심이다.[2] 하지만 K-뉴딜은 디지털뉴딜이 더욱 우선순위에 있고, 그린뉴딜 부분도 해외 그린에너지산업 수주, 그린모빌리티 산업 육성 등 정부가 기업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 우선목표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 또한 ‘공정한 전환’이라는 이름 하에 수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고용안전망과 인재양성 또한 K-뉴딜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일 뿐 기존 탄소배출 산업 일자리를 전환하거나 보상하는 계획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기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의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조차 구체적인 숫자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를 수사로 사용할 뿐이라는 점이 보여지고 있다.[3]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마저 기후위기와 환경운동을 알리바이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텀블러 나눠주기, 환경운동 전문가 특강은 사실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기후위기는 어떤 부문운동에게 떠맡겨놓을 일이 아닌, 모든 사회운동이 각자의 과제를 발굴해서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때가 늦어 노동자들에게 모든 피해가 전가되기 전에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단체협약과 기후파업을 통해 탄소배출 기업에 대한 규제와 일자리가 보장되는 산업전환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는 겨울날씨 하루는 여름날씨가 반복되다가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5월에 가장 고통을 겪을 이들은 마땅한 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주거시설에 사는 도시빈민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의 단일한 내용은 아직 없다. 정부와 기업은 끊임없는 그린워싱을 통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비와 탄소배출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 이제 사회운동은 비판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다할 수 없다. 다만 끊임없고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기후위기의 대응을 급진화시키고, 정치인과 기업을 압박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환경운동’만이 아닌 모든 사회운동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즉각적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절실하다.

 

임현창 | 플랫폼c 활동가

 


[1]  클라인이 미국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과 함께 만든 유투브 영상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강하게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d9uTH0iprVQ

[2]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는 다음 정부 홈페이지 참조. 한국판 뉴딜 | 정책위키-한눈에 보는 정책 | 기획&특집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korea.kr)

[3] 한정애 “NDC 상향치 구체적으로 말하기 일러…탄소중립 시나리오 나와 봐야” – 경향신문 (khan.co.kr)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