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예술가그룹 포티너스 스튜디오와의 대담

우크라이나 예술가그룹 포티너스 스튜디오와의 대담

"나라가 불타고 있을지라도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겁니다. 살아남으며 지속하는 것 말입니다."

2022년 12월 31일

[읽을거리]국제러시아, 문화예술, 반전평화, 우크라이나

🪆일시 : 2022년 10월 22일
🎈진행 : 이은희
🔦패널 : 알렉산더 사이러스(Oleksandr Sirous), 이호르 소코로브(Ihor Sokolov), 이반 스비트라이치니(Ivan Svitlychnyi), 강재영, 곽노원, 김솔지, 이문석
🧵소개 : 우크라이나의 예술인 단체 ‘포티너스 스튜디오(Photinus Studio)’와 한국의 이은희 작가가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에서의 예술 활동에 관하여 나눈 대담이다. 대담은 화상회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녹화 후 축약되었다. 녹화 영상은 이은희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2022 고양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18 모두 다른 빛깔》의 기간(2022. 11. 11~13) 동안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상영했다. 본 텍스트는 대담을 정리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관점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대담은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진행했으며, 기울임꼴로 표시된 텍스트는 한국어로 논의한 부분이다. 패널들의 일부 이야기는 논쟁적이고, 일부는 동아시아 뉴스레터 동동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다.

이은희 : 각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시각예술가 이은희이고, 최근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3개월간 교환 프로그램을 가서 오늘 대담에 참여하고 있는 알렉산더(Oleksandr)를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알렉산더, 그리고 다닐(Danil)이라는 다른 우크라이나 예술가의 발표를 들었고, 한국의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작업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전쟁에 관한 구체적인 소식과 개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군사적 상황을 위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대립과 무기 지원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개인의 이야기를 듣기 어렵습니다. 우크라이나 혹은 해외에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의 경험을 포함해서요. 따라서 이 대담에서는 우크라이나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활동과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예술가들의 활동 변화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한국의 여러 예술가와 기획자들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역사적/정치적/사회적 실천에 대한 관심을 가진 예술가와 기획자, 연구자들을 대담에 초대했습니다. 일단 제가 초대한 한국 분들의 소개를 들으면 좋겠네요.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문석 : 안녕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기획자 이문석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 함께 자리한 박유진 기획자의 이름을 화면에서 보실 수 있는데, 박유진 기획자와 저는 ‘Against The Dragon Light(ADL)’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ADL’은 4개의 아시아 국가,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을 중심으로 한 사회참여 예술을 연구하는 리서치 프로젝트입니다. 올해 2월부터 일어난 대량 학살(genocide)에 따라 한국의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우크라이나와 북유럽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세한 부분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우크라이나의 예술 종사자들의 이야기를요. 오늘 예술가분들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강재영 & 김솔지 : 저희는 서울에서 기획하고 있는 김솔지 강재영입니다. 저희는 작년부터 ‘분단이미지센터’라는 그룹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분단이 70년 정도 이상 지속이 되면서 분단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길어졌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예술 작품과 이미지가 생산되었지만, 그에 반해 분단의 이미지는 통일이라는 개념에 고정되거나, 굉장히 고착되어 비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탈분단 담론을 토대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치고 감각할 수 있는 작업을 작년부터 하고 있습니다.

이은희 : 한국은 전쟁이라는 감각을 잃었지만, 타국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이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민족성의 근본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은 전쟁과 분단 이후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근본에 관련된 수많은 분쟁이 있는데, 우크라이나와 한국도 비슷한 질문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담에서는 그간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예술적 교류가 많지 않았기에 예술과 예술적 실천이라는 범주 내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멤버가 대부분 예술가이자 창작가이기도 하고요. 이제 다른 분들이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반(Ivan Svitlychnyi) :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의 예술가이자 과학 예술과 미디어 아트를 아우르는 크로스 미디어 아티스트(Cross-Media Artist)로 2009년부터 활동했습니다. 때로는 조각과 회화 작업을 하고 큐레이터로서 예술 공간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하르키우(Kharkiv)에서 큰 규모의 작업 공간과 무료 사운드 레코딩 공간을 운영했었고, 문화 센터 연합과 협력해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2013년에는 다른 두 동료 예술가와 가상공간(virtual space)을 공동으로 운영해 기획자들이 원하는 기획을 실현하도록 했습니다. 페스티벌, 비엔날레 등을 공동 기획하다가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Kyiv)로 2014년에 거점을 옮겨 미디어 아트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커뮤니티를 만든 이유는 당시 우크라이나에 대규모의 미디어 아트 커뮤니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변화를 일으킬 방법을 고민하다가 예술가들과 비영리로 운영되는 미디어 아트 스쿨을 만들었고, 이것이 점점 큰 규모의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포티너스 스튜디오(Photinus Studio)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저희는 각자의 경험을 직접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했으며, 가르침과 배움을 함께 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생이 더 많은 기술을 알고 있다면 그가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포티너스 스튜디오는 국립 박물관과 같은 큰 미술 기관과 협업하고 디자이너 및 건축가와도 함께 일합니다.

알렉산더(Oleksandr Sirous) :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멤버인 알렉산더입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의 언어와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현재 상황에 공명하는 활동을 하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레지던시에서 이은희 작가와 만났을 때 우크라이나와 한국 간의 흥미로운 개입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담을 시작으로 하여 무언가를 더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예술은 지금의 상황과 더 이상 분리될 수 없기도 합니다. 전면적인 침공이 시작되고 한달 후 저는 우크라이나에서 나왔고, 유럽국가들의 레지던시를 돌아다니며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알리고 유럽과의 연결다리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유럽으로 갈수록 관계성을 발견하고 소통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의 예술과 문화적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이호르(Ihor Sokolov) : 안녕하세요, 저는 이호르입니다.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멤버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또한 전시에 필요한 기술 자문은 물론 다른 문화 분야에서도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어제 막 우크라이나에서 에스토니아로 넘어왔어요. 지금의 상황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22
ⓒ 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22

알렉산더 : 이호르는 어제 막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이호르는 수많은 폭발과 공습이 일어나는 와중에 정신없이 짐을 싸고 또 기차를 타고 국경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호르 : 이틀 동안 버스를 타고 왔는데, 정말 최악이었어요. 방금 전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에 있었는데, 이젠 여기에 싱크를 맞춰야 합니다.

이은희 :아, 직전에 키이우에 계셨군요.

이호르 : 네. 지금 키이우에는 많은 공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은희 : 여기서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 상황을 ‘전쟁(war)’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 ‘침략’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군사적 갈등 상황에서 침략받는 국가에서는 이것을 ‘전쟁’이 아닌 다른 용어로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반 : 2014년부터 시작된 ‘전쟁’입니다. 2014년 하르키우의 친러시아 정부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와 연관된 모든 문화 활동을 원치 않았습니다. 총기를 소지한 친러시아 무장 단체가 통신 수단을 끊어버리고 점령했습니다. 통칭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고, 근래에는 ‘대량 학살(genocide)’이라 말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러시아 군대가 저지른 행위에 따르면 말입니다. 어떤 다른 말로도 설명이 안 됩니다.

알렉산더 : 우크라이나 군인만이 아닌 시민들도 위협을 당하는 중이니까요.

이은희 : 그러면 앞으로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라 말하겠습니다.

이호르 : 현재 우크라이나 남성은 문화부의 허가 없이는 해외로 나갈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예술가들도 문화부의 허가를 통해서만 해외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반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해외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문화부가 만든 서신에 적힌 날짜에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이반 :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해외와 교류 중인 예술가라면 문화부에 신청하고 검토 후 몇 달이나 며칠간 해외 체류에 대한 허락을 받습니다. 기간 안에 반드시 귀국해야 하고, 아니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은희 : 이 방식으로 한번 나가면 언제까지고 해외에 있을 수 있는 건가요?

이반 : 아니요. 돌아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도 이러한 문화적 교류를 위한 방안이 있다는 것은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문화전쟁의 시기라는 것을 정부도 알기 때문입니다. 이건 최근 몇 년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백 년간 지속되어온 문화 전쟁입니다. 예술가들의 타국과의 교류를 위한 출국 허가는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대응할 방법으로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은희 :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꼭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비슷한 전쟁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지켜져야 하는 것 중에서는 예술과 문화가 가장 끝자락에 있을 것 같거든요. 모든 한국의 남성은 군대에 다녀오게 되어 있고, 더군다나 예술 활동을 위한 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견은 군사적으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여기 세 분처럼 예술이나 문화 계통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해외로 나가 자국의 상황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반 : 네 그렇지만 기간이 짧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문화와 환경에 전적인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해한다는 지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러시아가 엄청난 자본으로 뉴욕현대미술관이나 영국의 테이트 모던과 같은 큰 기관에 영향을 주려 하므로 맞서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큰 기관의 기획자들과 얘기하면 어느 자리에서건 러시아인들의 개입이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문화를 침탈하려 하는지 알기 때문에 우리는 헤쳐 나갈 겁니다. 이미 미술관들이 점령당한 지 몇 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를 인지한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창작자들이 해외로 나가 전하는 이야기와 프로젝트들이 중요하다는 점을요.

알렉산더 : 점진적으로라도 정부와 내각이 문화적 영향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예술가들이 해외로 나가는 일이 너무 어렵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들어 시외에 자리한 러시아 기관, 러시아 사람, 러시아와 협력하는 기관들을 보면 정말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 맞서는 의견을 퍼트려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문화를 장악하려는 방식을 보면 더 많은 예술가와 작업, 인적 자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문석 : 우크라이나 문화 기관과 러시아의 관계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문화적 영향력에 관한 말씀을 주셨는데, 문화기관을 둘러싼 러시아의 압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반 : 문화예술기관을 둘러싼 관계를 다시 설명해 드리자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오랜 관계부터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고 러시아보다 긴 역사를 지녔습니다. 이 점이 러시아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입니다. 그 때문에 러시아는 지금껏 우리의 문화와 영토를 탈취해왔습니다. 20세기에 소비에트 연방은 문화 점령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알리고자 했어요. 가령 우크라이나는 원래 국가가 아니고 정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는 구성국으로써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던 것이고, 소비에트 연방 이전에도 우크라이나 땅에는 정부와 고유의 언어가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이를 탈취하고 커다란 무력과 자본으로 모든 문화 기관에 영향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맞서는 중입니다.

외부와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예로 들어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본부를 모스크바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반대하자 러시아 ICOM과 우크라이나 ICOM이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2014년까지 우크라이나는 고대 그리스와 우크라이나, 키예프 루스 시기의 문화유적을 포함하여 크림반도에 관해 러시아의 고고학자들과 협업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발견한 모든 것을 가로채 모스크바로 가져갔습니다. 협업을 요청하고서는 다음 날 모스크바로 훔쳐 간 것입니다. 이 시점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문화적으로 완전히 갈라서기를 원했고,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의 모든 문화를 무효로 하려 했습니다. 두 나라는 서로 완전히 문화를 분리하려 했어요. 러시아는 아주 공격적인 방식으로 모든 걸 갈취했습니다. 다른 예를 들면 소비에트 연방 시기의 중앙집권주의적 정책이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을 조성했고 예술가들을 무자비하게 강압했습니다. 반면 모스크바에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은 모스크바에서 활동하기를 원했습니다. 러시아는 이들을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예술가로 분류합니다. 모든 단계별로 문화를 탈취하려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고 있고요.

이문석 : 러시아 정부나 러시아 문화기관에 의한 개입이 어떻게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술작품이 가진 우크라이나의 맥락과 정보를 지워버리는 것이 단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반 : 러시아에 이전부터 있었던 우크라이나 예술가들 말인가요?

이은희 : 네, 러시아 예술가로 조작된 우크라이나 출신 예술가들이요.

이반 : 예술가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강력한 프로파간다를 사용했고, 전시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것을 바보 취급하거나 러시아어만 사용하게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예술가라면 러시아인처럼 행동하기를 강요했고요. 점점 스스로를 러시아 예술가로 생각하도록 세뇌하고 언론을 통해 모든 상황에서 러시아 예술가로 소개하도록 했습니다. 몇 년간 저희도 사례를 알아보고 있는데 이러한 일은 만연했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아키펭코(Alexander Archipenko)와 같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조각가도 그렇게 소개됐습니다. 뉴욕현대미술관과 같은 큰 기관에서도 이들의 조각 작품 설명에 러시아 예술가, 러시아 출생이라 적었습니다. 그는 키이우 출신인데도 말입니다.

이은희 : 채팅창에 작가 정보를 써주실 수 있나요?

이반 : 네, 나중에 다른 예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키펭코와 말레비치(Kazimir Malevich)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출신이지 러시아 출신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라 엑스터(Aleksandra Ekster)와 같은 예술가도 러시아 예술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예술가입니다. 우리가 뭉뚱그려 ‘러시아 아방가르드’라고 부르는 건 전부 러시아의 것이 아닙니다. 그중 일부만 러시아 사람입니다. 러시아는 귀중한 작업을 큰 자본과 함께 기관에 넘겨 정보를 조작해왔습니다. 기관들은 여기에 반론하지 않습니다. 백 년 동안이나 이미 그랬으니까요.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출신 예술가를 으레 러시아 예술가라고 짐작해 버리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영향을 주려고 합니다. 전시에 우크라이나 예술가를 포함하려 하는 등 지금 같이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에도 말입니다. 그들은 모든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환경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훔쳐 가려 합니다. 전시에 우크라이나 예술가를 끼워 넣고선 우크라이나 예술가가 참여하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을 러시아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에 있는 대부분의 문화예술기관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비엔날레에 가끔 참여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2014년 이후 러시아 전시에 참여하는 데 심사숙고하며 충분히 논의합니다.

이은희 : 2014년 이후 사람들이 문화를 삭제하는 행위를 더 인지하게 되었다는 거죠?

이반 :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와 기관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되었습니다. 유산과 문화를 없애려는 행위가 1877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문화를 러시아화 해야 한다고 남긴 공식 기록물이요.

이은희 : (한국 패널들에게) 정리하면, 러시아라는 이름이 붙은 예술 운동이 완벽하게 러시아인으로만 기반을 둔 건 아니고, 우크라이나의 문화를 계속 지우려고 하는 러시아의 정책은 이미 100년 정도 지속되어왔다는 거네요. 그런데 저는 우크라이나인만 그런 방식으로 삭제했던 건지 우크라이나 작가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러시아 주변에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유사한 경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문석 : 카지미르 말레비치 같은 경우에도 저희가 러시아 예술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태어난 곳은 키이우로 지금 확인을 했습니다. 동유럽 국가들 안에서도 예술가들의 출신지가 각기 다르고, 오늘날의 러시아가 아니었던 지역에서 탄생하고 생활하고, 출신지의 맥락을 본인의 재현에 사용했던 예술가들인데 말이죠. 이들이 러시아 예술가, 혹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로 뭉뚱그려지고 그게 미술사로 기록되면서 ‘러시아 미술’이라 부르는 범주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벨라루스의 경우에는 유럽의 북한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나치 독일이 벨라루스를 점령하여 문화를 말살하고, 소련 연방으로 구성되면서 이 지역에서 스스로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진공 상태가 갑자기 만들어졌습니다. 나치 독일과 러시아가 충돌하면서 중간에 있는 나라들이 맥락을 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입니다. 이후 많은 부분이 소거되고, 소련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라는 이름 하나로 각인이 되었는데 그런 지점을 상세하게 살펴보는 일도 필요할 듯합니다.

알렉산더 : 러시아가 다른 국가의 문화를 점령하려 할 때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심한 강압을 겪었습니다. 벨라루스는 전체 국민의 90%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고 11~13%만 벨라루스어를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벨라루스어를 잊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100년 동안 러시아의 제일 큰 타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00년간 이어진 압박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연히 러시아 정부가 더 많은 자원을 갖고 강압합니다. 러시아는 키이우가 아닌 모스크바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길 원했습니다. 일례로 키이우에 자리한 매우 유서 깊은 예술 대학교의 유능한 인재와 교수들을 모두 모스크바로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모스크바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모스크바로 데려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 우크라이나는 2014년부터 강력한 분리를 시작하여 러시아와 협력하는 인물이 권력의 요직에 앉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들과 그들의 계략이 바이러스처럼 퍼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전에 이은희 작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제 동료였던 한 예술가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하르키우에서 수학했고 이후에는 수년간 러시아에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에서 많은 전시를 열고 있고요. 그런데 그는 이제 저를 비롯해 다른 우크라이나 출신 예술가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떠난 예술가들은 종종 그와 같이 자기 뿌리를 잊으려고 합니다. 많은 자원을 통해서 많은 기회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제국주의를 위한 프로파간다에 넘어간 것입니다. 여러 예술가와 갤러리들은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의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미술과 음악을 포함한 모든 문화 영역에서 러시아의 전략은 이전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상황이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 유럽의 예술 기관도 점점 이들과의 관계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올리가르히와 정치인들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예술가들도 결정을 내릴 때입니다.

이은희 : 현재 몇몇 아시아 국가의 상황과 비슷한 지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중국 정부가 취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은 대만과 홍콩 고유의 문화를 흡수하려고 합니다. 창작자들을 중국인으로 소개하거나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칭하도록 말입니다. 대만 예술가라고 말하면 국제적인 기회를 잘라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대만과 홍콩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표현하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알렉산더 : 작고 힘이 약한 국가를 강대국이 점령하려는 점이 그렇습니다. 러시아 제국주의가 방대한 자원을 이용해 타지키스탄과 다른 소국을 흡수한 것처럼 국민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를 삭제함으로써 이들을 점령하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고유 언어를 러시아어보다 열등하게 대하는 전략을 아주 서서히 퍼져나가게끔 했습니다. 벨라루스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여기에 적절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은희 : 전쟁 상황에서 출국이 가능한 이유를 몰랐는데, 창작자들이 징병되지 않고 우크라이나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이제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러시아에 대응하는 일종의 정책이죠? 해외에서 문화적인 대응으로서 현재 상황을 널리 알리도록 하는 방식 말입니다.

이반 : 그렇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소련 연방이 펼쳤던 정책을 말씀드렸듯 개개인의 문화만 없앤 것이 아니라 친러시아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숙청을 했습니다. 참혹했던 역사적 사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시절 KGB(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보안 위원회) 요원이 남긴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는데, “너무 많은 시인을 죽여 마치 내 손가락이 총 방아쇠에 묶여있는 것 같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문학이 꽃피우던 시절 너무 많은 시인이 짧은 시간에 숙청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전선의 다른 국가들도 아마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창작자와 기획자, 문화예술 분야의 모든 활동가가 함께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문석 : 말씀해주신 덕분에 현재 창작자로서 해외에서 활동하고 계신 이유와 문화적 맥락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2013년에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징병제를 없앤 것으로 들었는데, 상황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은희 : 그렇다면 2013년부터 우크라이나 남성이 군대에 강제로 가지 않아도 되나요?

ⓒ 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22
ⓒ 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22

이반 : 2013년부터는 계약 시스템으로 군대에 들어가는 방식을 천천히 도입했습니다. 군대가 소련 연방에 의해 거의 소멸하였기 때문에 실은 2013년까지도 제대로 된 군대가 없었습니다. 무기도 거의 없어 군인들이 최전방에 슬리퍼를 신고 가기까지 했습니다. 초반에는 국경에 있는 모든 이가 군대에 가야 했지만,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에는 완전한 군대가 만들어졌고, 해외에서 들여온 무기와 탄약 등도 갖추어졌습니다. 현재 우리는 몇몇 지역을 탈환했고,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된 거죠. 그렇지만 지금도 많은 창작자가 최전방에 나가 있어요.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인 동료도 지금 최전방에 가 있습니다. 많은 문화예술 기반의 창작자들이 군인이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키이우나 하르키우에 러시아 깃발이 꽂힌다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학살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형도 침공 직후 매우 위험한 최전방으로 갔습니다. 잘 알려진 지역을 포함한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명백한 대량 학살입니다.

이은희 : 그렇다면 대량 학살이 시작된 이후에 포티너스 스튜디오는 콜렉티브로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작업 방식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이반 : 사실 지금은 굉장히 위험하고 이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관점에서는 흥미롭기도 합니다. 저와 포티너스 스튜디오 멤버들은 창작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일단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기도 하고요. 전쟁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현재 모두가 군사적 상황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을 겪지 않는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커뮤니티는 활동을 계속해서 기획 중이고 커뮤니티를 지속하려 합니다. 최전방을 위해 많은 지원을 노력할 것이고요. 다른 우크라이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호르 : 저는 온라인에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러시아 프로파간다에 대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반 : 저는 문화적 배경과 역사에 대한 부분을 함께 조사하고 알리고 있습니다. 초반 몇 달 동안 모두가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을 했고, 공동 설립자인 리에라 폴리안스코바(Liera Polianskova)는 국립박물관과 함께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모두 다시 작업을 이어 나가며 창작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이러한 상황에 벗어나는 방식을 찾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좀 더 흥미로운 작업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큰 문화 기관과 더 자주 협력하게 되었고, 현재 상황을 대변한 작업과 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이한 상황입니다. 나라가 불타고 있을지라도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에요. 살아남으며 지속하는 것 말입니다.

알렉산더 : 이러한 작은 문화를 보존하고 이어 나갈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어요.

이반 : 맞습니다. 예술적 실천을 멈출 수 없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창작활동은 계속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저희는 예술가로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은희 : 이러한 재난의 상황에서도 콜렉티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대단합니다.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큰 장점은 다른 지원금이나 기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약 콜렉티브가 애초에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면 지원금이 없을 때 콜렉티브도 사라지게 될 것이잖아요. 그러나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멤버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유기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반 : 그렇기 때문에 계속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서포트하는 동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알렉산더 : 덧붙이자면,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이후 멤버들은 자발적으로 매니저 역할을 떠맡았습니다.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멤버도 석 달 동안 최전방에서 많은 것을 지원하려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위험한 사건을 목격했고 정말 기이한 경험담을 저희에게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정말 다행인 부분은 외부의 커뮤니티를 끌어들이는 것을 통해 우리의 실천을 더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정말 다른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없어요. 그렇기에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기회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자 합니다.

이은희 : 알겠습니다. 그리고 채팅창에 질문이 올라왔는데요, 최근 러시아가 파괴했거나 점령한 미술관이나 문화유적지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입니다.

이반 : 아주 많습니다. 점령된 지역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로 마리우폴(Mariupol)시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마리우폴은 전쟁 초반에 점령당한 지역으로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싸우는 중입니다.

이은희 : 미술관이 파괴되었나요? 아니면 점령되었나요?

이반 : 미술관이 파괴되었습니다. 그곳의 모든 소장품을 러시아가 빼앗은 후 파괴했습니다. 전쟁 이후 국립 박물관을 통해 여러 소식을 전달받고 있는데요. 만약 어떤 미술관이나 유적지가 대중매체나 언론에 소개가 되면 바로 러시아의 타깃이 됩니다. 예로 마리아 프리마첸코(Maria Prymachenko)라는 유명한 예술가가 있는데 미술관이 이 예술가의 작업을 재조명하겠다 말하면 바로 다음 날 파괴됩니다. 러시아는 모든 전력을 다해 우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미 많은 장소와 중요한 유적, 작품들이 파괴되거나 점령당했습니다. 여러분이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부분까지도 모두 파괴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의 빼앗기고 파괴된 문화재를 기록한 자료를 다음에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이은희 : 나중에 이걸 보게 될 관객도 새로운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오늘 제가 알게 된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사실 사전에 무엇을 얘기할지 다 계획을 했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질문이 섞여 들어간 듯하네요. 저는 최근 들어 재난적 상황으로 인해 예술의 역량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직접적인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이 어떻게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영향을 줄 수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예술 실천에 관해 바뀐 관점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실제 전쟁과 대량 학살을 겪고 있는 여러분이 독립된 창작자로든 콜렉티브로든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새롭게 갖게 된 관점이 있으신지요.

알렉산더 : 이걸로도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네요.

이반 : 모든 우크라이나의 창작자들은 지금의 전쟁 상황에 깊게 관여해 있습니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며 문화가 어떻게 바뀌는지 잘 알고 느끼고 있어요. 러시아가 감행하는 문화적 갈취와 파괴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문화 행동을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중이고, 국립 미술관과 여러 방면으로 새롭게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모두가 중요성을 인지한 채 각자의 할 일을 찾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해온 방식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이에 맞서는 우리만의 문화적 행위를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이건 또 다른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많은 것을 바꿉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입니다. 문화적 뿌리가 없다면 세계는 우리를 망각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다른 국가가 무엇을 해왔는지를 말입니다.

이은희 : 그렇다면 예술의 실천이 직접적으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군요. 투쟁이나 모금과 같은 방법이 아니어도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참여적 행위가 되는 것이네요.

이반 : 네, 전쟁을 다루는 작품을 제작하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예술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크라이나 예술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러시아도 이를 잘 알기에 굉장히 힘든 문화적 싸움이 되겠지만, 예술에서 전쟁을 다루던 그렇지 않던 간에 모든 실천이 도움이 됩니다. 현재 국립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퐁피두와 협업하여 우크라이나 예술에 관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실천입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저도 전쟁 이전에는 문화예술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냐고 생각했지만, 아닙니다. 정말 많은 걸 바꿉니다.

이은희 : 정말 깊이 간직해야 하는 말입니다. 저도 같은 고민을 계속해왔는데, 예술이 현실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강력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전에 한국 동료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중요하게 듣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의 동료들을 이 자리에 끌어모은 이유는 직접적인 것과는 다른 방식의 연대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와 어떠한 일로든 관계를 맺게 되면 거기서 감정적인 연대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우크라이나 직접적인 연결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단순히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제 주변 분들을 여러분과 연결해서 비슷한 감정을 나누기를 희망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최소한의 연대 형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반 : 네, 저도 이전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자 우리가 맡은 책임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 커뮤니티가 명확히 인식한다는 점, 포티너스 스튜디오뿐 아니라 모든 문화 예술 노동자가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알렉산더 : 아직도 많은 유럽인은 우크라이나의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집니다. 그 때문에 러시아 문화의 일부로 생각하거나 우크라이나의 문화가 비교적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문화예술 노동자나 기관이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알면 창작자로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여러 방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은희 : 여러분들은 정말 많은 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공유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관객들도 여러분들의 실천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알렉산더 : 만약 현재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이 해외로 나와 있지 않는다면 러시아 기관과 기획자, 예술가들의 입장만을 들을 겁니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 기관의 전시가 부품처럼 우크라이나 예술가를 끼워 넣으려 합니다. 작업을 조망하는 대신 전략적인 입장만을 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은희 : 정치적 올바름을 가장하기 위해서 그런가요?

알렉산더 :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관점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말 무서운 현실이 닥칠 것입니다.

이반 : 과거 제 아버지도 예술 활동을 억압받으셨어요. 그는 일평생 전시를 열 수 없었습니다. KGB의 강압 때문에요. 원하는 방식으로 철학과 신념을 바꿔버리는 거지요. 이제 미안하지만, 슬슬 자리를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이은희 : 다음 대담의 자리를 또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반 : 다음에는 다른 멤버와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키이우에서 열리는 전시를 준비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또 다른 총격이 일어난 후에 즉흥적으로 대화를 나눠볼 수 있겠지요. 매분 매초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맞춰야겠지만 가능은 합니다. 이제 이게 우리의 삶이 되었어요. 저희 쪽에서 질문을 많이 드리지 못했지만, 다음 세션에 준비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유럽 바깥의 상황을 아는 것은 저희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은희 : 오픈스튜디오 이후 새로운 피드백을 받으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질문이 있거나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제가 해야 할 다음 단계입니다. 이후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네요.

패널 소개

‘포티너스 스튜디오(Photinus Studio)’ : 우크라이나의 예술인 단체로, 2012년 막스 로보토브(Max Robotov), 리에라 폴리안스코바(Liera Polianskova), 이반 스비트라이치니(Ivan Svitlychnyi), 헤오르히 포토팔스키(Georgiy Potopalskiy)가 설립한 이후 여러 예술가와 음악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가 합류하며 규모를 점차 확장해 왔다. 단체로서 인터렉티브 라이트&사운드 설치, 프로젝션 맵핑과 멀티미디어 전시를 감독하는 활동을 했으며, 설립자 중 일부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전시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또한 ‘포티너스 학교(Photinus School)’를 운영하여 디지털 매체 관련 교육 워크숍을 진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예술 활동을 넘어 포티너스 이니셔티브(Photinus Initiative)를 설립하여 지혈대, 발전기, 가스버너, 호신용 스프레이, 의료품, 음식 등 인도주의적 구호 물품을 군인과 시민, 구조된 반려동물들에게 지원 중이다.

알렉산더 사이러스(Oleksandr Sirous) : 뉴 미디어와 사운드 아티스트로 일렉트로닉 음악, 미디어, 시각 예술 작업을 한다. 카마 위클리(KAMA Weekly)와 카본(Carbon)의 강사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와우(Ukrain WOW)’ 프로젝트와 도브젠코 센터(Dovzhenko Center)의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지역과 국제 레지던시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호르 소코로브(Ihor Sokolov) : 뉴미디어 예술가이자 VJ로 활동하며, 빛과 생성 그래픽을 사용하고,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환경을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우크라이나 와우’ 프로젝트와 ‘유체이탈체험(Out-of-body experience)’의 웹 퍼포먼스에 참가했다. 카본의 ‘터치디자이너 코스(Touchdesigner course)’의 강사이기도 하다.

이반 스비트라이치니(Ivan Svitlychnyi) : 포티너스 스튜디오의 설립 멤버로, 예술가이자 강사다. 뉴미디어와 사이언스 아트(science art) 관련 작업을 해왔다. 57회 베니스 비엔날레 우크라이나관 전시에 참여했으며, 제 4회 핀추크아트센터 상(PinchukArtCentre Award)과 2018년 말레비치 상(Malevich Prize)을 받은 경력이 있다.

강재영 : 미술계의 하부구조를 유영하다 분단으로 왜곡되어 보이는 지점에 관심을 품게 되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심을 가진 동료들과 콜렉티브 ‘분단이미지센터’, 그리고 ‘더블데스웍스’를 함께하고 있다.

곽노원 : 구 기획자 집단 ‘불량선인’의 일원(2017-2019)으로 《관악구 조원동 1645-2》(2017) 등의 전시를 공동 기획했고, 현대자동차 ZER01NE(2020)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 학예연구사(2021)로 근무,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2021) 등을 기획했다. '옳지 않은' 이미지와 이를 포착하는 과정, 내보이는 일, 보는 행위에 관심이 있다.

김솔지 : ‘분단이미지센터’의 멤버로, 예술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면서 만들어내는 전환에 관심이 있다. 위계 없는 자율 협업 플랫폼 ‘더블데스웍스’의 A-side로서 기획, 협력, 글쓰기를 한다.

이문석 :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2019년부터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지역의 사회참여예술과 예술가들을 조사하고 교류하는 프로젝트 《Against the Dragon Light》를 독립기획자로서 박유진 기획자와 진행하고 있다. 연희동에 위치한 전시공간 미학관을 운영하며 전시를 기획한다.

이은희 : 동시대를 이루는 기술 환경과 이미지의 관계를 관찰하고, 인간의 사회적인 문제를 기술 메커니즘에 빗대어 탐구한다. 개인이 다중 이미지로 변형되거나 기술 산업 시스템의 일부로 치환되는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사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레퍼런스 등에서 개인전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2)에 입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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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윤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