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도 해설 : 어느 홍콩인의 눈으로 본 2022년 동아시아

시국도 해설 : 어느 홍콩인의 눈으로 본 2022년 동아시아

2022년 10월 28일

동아시아, 남중국해, 대만, 러시아, 코로나19, 중국, 홍콩, 태국,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동아시국형세도》(東亞時局形勢圖)로도 불리는 《시국도》(時局圖)는 중국 근대사에서 저명한 한 폭의 시사 만평 작품이다. 1840년대 아편전쟁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청나라는 영국에 홍콩 일대를 할양해야 했다. 이후 한족 지식인 사회는 제국주의에 대한 강한 경계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와중인 19세기 말, 서구 열강들에 의해 침략주의적인 공세를 받고 있는 정세 속에서 흥중회의 회원인 사찬태(謝贊泰)는 중국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시국도》를 그렸다.

《시국도》는 1898년 홍콩의 신문이었던 《보인문사사간》(輔仁文社社刊)에 처음 게재됐고, 1903년 채원배가 다시 그린 것이 《과분중국도》(瓜分中國圖)라는 제목으로 《아사경문》(俄事警聞)에 게재됐다.

최근 이것을 모방한 또 하나의 만평이 나왔다. 바로 홍콩 출신의 만화가 ‘아토’阿涂가 그린 《시국도》다. 이 그림은 “2022년 극동아시아 정세”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아토는 9월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 작품을 게시하면서 “120년 전 홍콩 화가 사천태는 <시국도>라는 작품을 통해 망국이 임박한 청나라의 난국을 묘사하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만청(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부패와 무능을 경고했다. 60년마다 도는 갑자년의 순환이 두 바퀴돌아 지금껏 두 번의 갑자가 지나갔지만, 사회 상황의 흥망성쇠, 복과 화는 아직도 예측할 수가 없다”고 적었다.

아토는 2019년 홍콩 항쟁을 거치며 현지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한 시사만화가가 됐다. 이 그림은 현재 홍콩인 다수가 동아시아 정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러시아 : 전쟁과 동원 거부 시위

이 그림의 좌측 상단에 위치한 러시아와 중국 사의의 묘사는 최근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한창인 러시아의 상황과 이에 대한 중국의 난처한 입장을 드러낸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황이 뜻대로 전개되지 않자, 최근 전술핵 공격을 언급하며 파국적 상황의 도래에 다가서고 있다.

푸틴이 탄 장갑차 뒤에는 러시아제 탱크 한 대가 쇠사슬에 묶여 끌려오고 있는데, 이 탱크 주위에 강제로 묶인 병사들의 모습은 지난 9월 21일 러시아 전역 동원령을 선포해 병력을 보강하고 있는 러시아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동원령은 예비군 등 군 경험자 30만 명을 대상으로 했다. 러시아 정부가 동원령을 발동한 것은 1945년 종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전역에서 동원 거부 시위가 일어났다. 9월 22일 러시아 내 24개 도시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일어나 최소 425명이 체포됐다. 연이는 시위로 수천 명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가 멈추지 않자 푸틴은 동원 거부시 최대 10년 구속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동원령 선포 이튿날 교통을 차단했고, 부유층만이 뇌물이나 신분증 위조 등 방식으로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동원령 이전까지는 빈곤층과 소수민족 중심으로 전쟁에 모병됐다면, 이제는 대학생과 노동자들, 도시에 사는 중산층 시민까지 동원 대상이 됐다. 9월 25일 상업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위성 사진을 보면, 러시아를 떠나려는 차량 행렬이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 제로 코로나

노란색 황포를 입은 곰(푸우)이 오른손에는 마오주석어록, 왼손에는 낫을 들고 있고, 러브레터를 건넨 러시아의 제스쳐에 난처해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드러낸다. 중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난하지도,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쌓아온 관계(랴오닝함 구축 등)나 유럽연합과 대척하길 원하지 않는 것 때문에 푸틴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도 못하고 있다.

한데 이 푸우의 옆에는 ‘칭링종(清零宗)‘이라고 적힌 깃대가 세워져 있는데, 문자 그대로 하면 ‘제로 코로나 임금’을 뜻한다. 조(祖)와 종(宗)은 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업적을 평가하는 칭호로, 국난을 극복한 왕은 조(祖)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왕은 종(宗)이라 부른다.

시진핑 주위로 방역복을 입은 여러 명의 요원들이 절을 하고 있는데, 절대권력이 되어가는 시진핑 주석을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는 일련의 관료들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 중국에서는 팬데믹 기간 내내 시위가 빈발했는데, ‘X’ 표시를 든 판다가 다른 판다들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은 이런 혼돈을 묘사하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 : 양두구육?

한반도 정세에 대한 아토의 인식은 세간의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아보인다. 남한의 모습이 재밌는데, 중국공산당 모자를 쓴 판다가 위안화가 담긴 돈 보따리를 건네자, 중국을 향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뒤에는 성조기를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최근 정세에 대한 남한의 곤란을 보여주지만, 이외의 다양한 흐름은 보여주지 못한다.

다른 한편 북한은 미사일을 러시아에 건네고, 중국이 이를 북돋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는 지난 9월 5일 <뉴욕타임스>가 정보당국 인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수백만개의 로켓과 포탄을 구입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제재로 공급망에 심각한 제한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군수 물자를 위해 ‘왕따 국가들(pariah states)’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한 것을 반영한다.

이에 대해 9월 22일 북한 국방성은 “우리는 이전에도 러시아에 무기나 탄약을 수출한 적이 없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 “적대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군사적 목표 추구를 위해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미국 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실제로 거래가 완료된 것은 아직 아니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산 무기가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보탰다.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오보일 가능성에 미 정부 공식 입장까지 힘을 실는 모습이다. 아토 작가는 이런 부정확한 정보를 당연시하고 있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오른편에 ‘자위대’ 깃발을 세워놓은 일본 국기를 머리에 멘 인사가 외롭게 칼을 갈고 있다. 이는 지속적으로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는 일본 지배계급의 모습을 반영한다.

동남아시아 : 인신매매와 착취

동남아시아 내륙부에 묘사된 두 상황은 최근 해외 화인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두 사건을 가리킨다. 하나는 미얀마 군부와 중국의 관계로, 2021년 2월 미얀마 쿠데타 이후 중국 정부가 미얀마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의구심이 그것이다. 물론 이는 절반만 사실인데, 역사적으로 중국공산당은 미얀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군부만이 아니라, 미얀마 북부의 반군 세력, 200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 세력 등 다양한 세력과 모두 관계를 맺어왔다.

미얀마-태국 접경과 캄보디아에 걸쳐 있는 ‘대만인’ 납치 그림은 최근 외신 보도를 통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대규모 인신매매 사건을 가리킨다.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출신의 10~20대 청년들을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이라며 캄보디아나 인도, 태국으로 유도한 후, “사기 공장(fraud factories)”으로 불리는 온라인 신용사기 센터로 데려가 강제로 일을 시켰다. 그밖에도 피해자들은 미얀마 동부의 슈웨 콕코(Shwe Kokko)처럼 치안이 미비한 곳에 마련된 카지노 관광 시설에 갇히기도 했다. 인터폴은 수천여 명의 피해자들이 강제수감되어 이런 현장에 일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투자 사기부터 불법 도박 등 온라인 사기는 나름대로 “숙련”이 필요한 일이다. 그 때문에 인신매매업자들은 15~25세의 젊은층을 데려와 가두어두고 강제로 일을 시킨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동남아시아 일대의 범죄 조직들이 달라진 환경에서 계속 돈을 벌기 위해 비즈니스의 형태를 바꾼 것이다.

홍콩·대만·남중국해 : 고조되는 긴장

남쪽으로 내려가면 대만해협과 웨강아오 대만구(粤港澳大湾区, Greater Bay Area), 남중국해 일대가 펼쳐진다. 여기서 웨강아오 대만구란 홍콩-마카오와 광둥성의 선전(深圳)시와 광저우(广州)시 등 대도시, 그리고 주하이(珠海), 포산(佛山), 동관(东莞), 중산(中山), 장먼(江门), 후이저우(惠州), 자오칭(肇庆) 등 지급시(중국의 2급 행정구역 단위인 지급행정구(地级行政区)의 한 단위)들을 포괄한다.

2018년 10월 시진핑 주석의 광둥성 시찰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는 홍콩 항쟁이 발생한 이듬해부터 광둥성·홍콩·마카오 지역통합 발전계획인 ‘웨강아오 대만구’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구 7천만 명, GDP 1조 5천억 달러(1인당 GDP 2만2천 달러)의 메가 경제권을 형성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주요 기점으로서 경제발전과 대외개방을 추동하고, 동시에 홍콩·마카오와 중국 대륙의 정치적 통합을 목적으로 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2019년 6월 전 도시적 규모의 홍콩 항쟁이 발생하자 이 계획은 크게 흔들렸다. 당국은 강도 높은 탄압으로 사회운동을 억누르고, 2020년 5월 말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입법해 정치적 불안 요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다. 노동운동과 언론 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홍콩 시민사회는 깊은 잠복기에 접어들었다.

푸젠성과 대만섬이 마주한 대만해협의 대치 상황은 최근 양안과 미·중 갈등의 악화를 묘사한다. 최근 중국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훈련 수위를 높여왔고, 대만 정부도 이에 대응해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고, 동시에 상륙 저지 훈련 빈도를 높여왔다.

남중국해에 중국이 임의로 그어놓은 해상경계선인 9단선에서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 역시 중국의 태평양 진출에 대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이 낳은 산물이다. 중국 정부는 과거 국민당 정부가 그어놓은 해상경계를 고집하고 있지만, 이는 합법성과 정확성이 불명확하고, 인접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은 국지전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