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없다

기시다 후미오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없다

2022년 9월 1일

[동아시아]일본동아시아, 일본, 자본주의

지난 2022년 6월 7일,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경제 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과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행 계획을 내놓고, 내각 회의에서 이를 결정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작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내놓은 비전이다. 하지만 총리에 취임하고 실내용을 내놓기 전까지 그것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일본의 사회운동 주간지 『週刊金曜日(슈우칸킨요비; 주간금요일)의 7월 8일 헤드라인은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악몽”이었다. 해당 지면을 통해 수년 동안 ‘아베노믹스’를 비판해 온 가네코 마사루 (릿쿄대학 특임교수), 저널리스트 야마다 아쓰시(인터넷미디어 「데모크라시타임스」 발행인이자, 「아사히신문」의 전직 기자)가 함께 현 기시다 총리가 새롭게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 대담을 펼쳤다.

이 대담에서 가네코 교수는 크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① 기시다 총리는 아베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아베와 차별되는 독자적인 정책을 구상하지는 못할 것이다.

② 기시다 총리는 선거 당시 자신이 내세운 ‘(재분배에 중점을 둔) 새로운 자본주의’정책을 가볍게 폐기했다.

③ 일본의 경제구조는 경제산업성의 노후한 정책으로 신산업(이른바 ‘4차산업혁명’) 전환이 어렵고, 아베 재임기간 축적된 잘못된 경제 정책(아베노믹스)으로 인해 만일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일본 경제는 회생이 불가능할 것이다.

  • 아베노믹스 : 일본 아베 신조 내각 시기(2012~2020) 시행된 일련의 경제 정책을 일컫는다. 20년 간 일본 경제를 괴롭힌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시행한 대규모 양적완화를 지칭한다. 이렇게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살리고 물가를 올려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이다.

가네코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는 세 가지 주장에 대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선 그는 기시다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수정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네코 마사루에 따르면, 2년 전 기시다 후미오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면서 아베노믹스를 비판하고, ‘재정 건전화’ 방침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발표한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에서는 기초적 재정수지(primary balance)를 2025년까지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중단했다. 재정건전성(fiscal soundness) 방침을 철회한 셈이다. 가네코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아베노믹스 노선을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의 굳건한 비전이 없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둘,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의 주된 내용으로 ① 금융소득세 강화, ② 임금 인상한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세를 내세우고 있다. 2021년 8월 26일, 자민당 총재선거에 입후보했을 당시 그는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같은 해 10월 8일, 취임 후 첫 연설에서도 ‘분배’를 강조하며 “분배 없이는 성장도 없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각을 발족한지 일주일 만에 평균 주가가 하락하자, 기시다 내각은 당황하고 만다. 결국 1년이 지난 2021년 10월 10일, 기시다 총리는 후지TV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금융소득과세는 없다”며 궤도를 수정했다. 또, 법인세 감세 정책 역시 실질적인 임금 인상을 견인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가네코 교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인 분배 정책이 폐기됐다고 본다.

셋, 현재 일본 경제는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가네코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기업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권과 결탁한 기업에게 특권을 주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일본은행이 직접 회사채를 사들여 구제하는 정책을 사용해왔다. 또한 실질적인 무이자, 무담보로 중소기업과 지방은행에 자금을 공급했기에 금리를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금리를 올리는 순간, 국채 가치가 떨어지고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어 일본은행이 신용위기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함께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네코 교수는 만약 일본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면 일본 경제는 붕괴할 수도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올해 들어 급락해온 엔화 가치 추이. 2022년 9월 1일, 엔화 대비 달러 가치는 24년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를 살렸는지, 아니면 더 큰 위기로 내몰았는지 판단하기엔 이른 시점인지도 모른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는 ‘과연 아베노믹스가 올바른 해법이었을까’라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은 “‘헬리콥터 머니’(막대한 통화공급 확대) 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오히려 더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한승동의 경우, “2013년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가 초기에 거둔 수출 증대와 주가 상승, 고용 증대 등의 효과는 엄청난 돈을 푼 대가로 유지되는 높은 주가 대신 1천조 엔이 넘는 천문학적인 국가부채(GDP의 260%에 가까운 누적 재정적자)와 마이너스 금리로 남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달리, 일본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저물가 상황을 오래 겪었은 것과 비교할 때, 최근 인플레이션 수치가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본 중앙은행이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완화적 통화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가네코 교수의 견해로 돌아와, 강경한 비판론자인 그는 “일본 경제가 붕괴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비관적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최근 출간한 저서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국가 人を救えない国:安倍・菅政権で失われた経済を取り戻す』에서 그는 ‘일본을 되살릴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 정부의 코로나 정책과 ‘아베노믹스’를 조목조목 비판한 뒤, 결론부 ‘일본은 다시 태어난다’는 챕터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를 다섯 가지 꼽아보자. 하나, 코로나 퇴치를 위해 무증상자를 철저히 검사할 것. 둘, 화력,원자력을 사용하는 거대한 에너지의 시대는 끝났다. 전력회사를 해체하고 분산혁명 뉴딜정책을 실시할 것. 셋,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과세와 지출정책을 만들고, 교육과 연구 분야 예산을 증액할 것. 넷, 연고자본주의(정경유착, 재벌과 족벌경영) 를 끊어낼 것. 다섯,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실현할 것. (무엇보다)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필수노동자를 구제하고 차별을 근절할 것.”

그가 말하는 구체적 대안 사례가 뭘까? 가령 2011년 나가노현의 이이다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연합(南信州広域連合; 신슈남쪽지역을 중심으로 1개 시, 10개 마을이 모여 구성. 총인구 17만7,000명, 면적은 약 2천㎢)에서 ‘지방소멸’ 위기에 맞서 마을 주민의 건강권을 행사하기 위해 진료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는 보건의료의 위기와 양극화에 대응해 일종의 돌봄사회 공동체를 강화하는 대안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이즘링크(ism-Link)에서는 마을의 5개 기간병원이 중심이 되어 진료소, 요양시설을 구축하고, 방문간호사와 요양보호사, 약사가 함께 정보를 공유한다. 방문간호사가 환자의 자택을 방문하면, 클라우드서버에 환자의 상태와 약 처방 내용이 공유되는 시스템이다. 가네코 마사루는 이러한 시스템을 지역마다 구축하면서 점차 사회보장의 재원과 권한을 지방에 대거 이양하고, 이를 통해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튼튼한 지역경제를 만들자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도 일본처럼 내수대비 무역 경제 의존도가 높고 식량자급률은 미미하며 지방소멸은 어느 국가보다 빠르다. 지방에서 급증하는 빈집 문제를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는데, 일본 내무성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주택 중 14%(850만채)가 비어 있다. 노무라 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38년 일본의 빈집 분포는 전체 주택의 31%(2200만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참고: [한겨레21] 인구감소지역 주민 44% “3년 안에 이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 국가 부채는 일본만큼 위험하지 않지만 이미 인구감소가 시작되었음에도 복지체제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 이후 재정 지출은 늘었지만 미국, 유럽 등의 지출에 비해 턱없이 낮은 편임에도 국방비증액, 부자감세 등으로 재원확보가 어려워지고 대중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어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허구”이고, “우리를 구원할 ‘다른 체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네코 교수와 같은 이들의 진단과 해법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뢰할 만한 조언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만약 그것이 어떤 힌트를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성패는 일본 사회운동의 ‘대안 체제’를 향한 비전과 성장에 달려 있다.

글 : 박근영
교열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