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죽어간 러시아 병사는 누구인가

편집자의 말 : 이 글의 원문 《数据故事:那些战死乌克兰的俄兵是谁?》은 5개월 넘게 지속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러시아 병사들의 정체성을 데이터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있다. 푸틴의 침략으로 벌어진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민중과 군인뿐 아니라 젊은 러시아 병사들의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다. ”개전 이후 사기가 떨어진 러시아 장병들은 감옥에 갈지언정 전장에는 가지 않으려 했다. 뉴스는 언제나 러시아 병사들의 죽은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하지만 우리는 차갑게 식은 이들에 관하여 거의 알지 못한다. 살아생전 그들은 누구였으며 어디에서 왔고, 왜 입대한 걸까? 젊고, 가난하고, 변두리에 살며 저학력자인 그들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군대에 갔다. 하지만 오히려 이국에서 죽어가는 중이다.”

러시아의 독립언론아이스토리 iStories는 전쟁 발발 이후 여러 방식을 통해 전사자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7월 초까지 취합된 자료만 4천 건이 넘는다. 자료를 중화권 언론 「단전매」가 분석했다. 분석을 통해 병사들 대부분이 러시아 변방 출신이고, 삶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사실이 알려졌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서술한 서사 밖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군의 실제 사망자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개전 이후 4개월여 동안 러시아는 두 차례 군 사망 수치를 발표했는데, 마지막 발표일이 3월 25일이다. 푸틴이 러시아군에 서진을 명령한 지 한 달이 지나 크렘린궁(러시아 정부)은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1351명의 러시아군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식 발표된 수치와 언론사의 추정치에는 큰 차이가 있다. 러시아의 독립언론 「메디아조나(Mediazona)」와 영국 국영 언론 BBC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최소 4,000명 이상의 러시아군 병사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독립언론 「아이스토리」는 텔레그램을 통해 전사자 데이터를 수집했는데, 이에 따르면 2022년 7월 현재 공식 수치보다 3배 많은 4,157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독립 연구자들은 이 숫자 또한 실제 숫자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에서 러시아 병사들은 전장의 폐허에 쓰러져 있다. 생전에 병사들은 누구였는가. 이들이 군대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살아서 귀환했다면 병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무엇인가.

데이터는 병사 대다수가 젊고, 가난하고, 소수민족이며 러시아 변방의 접경지대 출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청년들은 고향의 실업률이 높아 어려운 생활을 했으며 충분한 교육의 기회나 일자리를 제공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입대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군인 중 상당수는 느닷없는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고, 충분한 준비 없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경험이 없고 원치도 않으니 도망치고 싶을 뿐

올해 4월 독립 언론 「모스크바 타임즈 Moscow Times」는 전사자 유가족을 인터뷰했다. 러시아 서부 도시 푸스코프(Псков) 출신의 이고르(Igor)는 2021년 2월에 자진 입대했고, 2022년 초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교외에서 스무 살도 안 되는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사망 당시 그의 딸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BBC가 인터뷰한 이도 비슷하다. 20대 초반인 세르게이(Sergey)는 이고르와 마찬가지로 2021년 입대하여 올해 1월에 우크라이나 접경에 파견되었고, 2월 24일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긴박하게 전투에 투입됐다. 5주 뒤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법률 지원을 요청했으며,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싸우라는 상급자의 요구에 “돌아가서 죽고 싶지 않다”라며 저항했다.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러시아군에는 세르게이나 이고르와 같은 사례가 많다. 세르게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25세 미만의 군인들이 큰 피해를 당하였고, 그가 속한 부대의 병사 50명 대부분이 이 연령대의 청년이라고 전했다. 전장에서 이들 중 10명이 숨졌고, 10명이 다쳤다.

게다가 러시아 국방부는 군대 내 10대 병사들의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사망한 러시아 병사의 3분의 1은 정확한 연령은 알 수 없었으며, 나머지 3분의 2는 21세 이하가 16%, 30세 이하가 60%였다. 전사자의 절반은 27세 미만이다.

러시아군의 연령별 전사자 수 (최종 업데이트 2022년 7월 4일)

침공 2주가 지난 3월 8일, 푸틴은 러시아군에는 직업 군인(러시아의 병역 제도는 징병과 모병을 결합한 형태이다)만 있을 뿐, 징집병(conscripts)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러시아군의 포로 동영상은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냈다. 이튿날 러시아 국방부는 군대에 징집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새로 징집된 병사를 최전선에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지만, 징집병이 4개월 이상 복무하면 전장에 파견이 가능하므로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징집병 대다수는 구체적인 작전을 모르는 채 우크라이나에 파병되었다. 러시아군의 일부 장교는 신병의 가족에게 그가 직업병으로 복무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배치는 훈련일뿐 징집병은 참전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고용 계약에 관한 거짓말 또한 병사가 귀향하면 가족에게 알려질 사실이다.

갓 입대한 젊은 병사들은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했다. 또한 장비가 부족해 야간 투시경이나 기본 장비 없이 행군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훈련을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으로 배치됐고, 가족과 연락이 끊어졌다.

러시아 법은 18~27세 사이의 모든 남성 시민은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푸틴은 여러 차례 징병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고, 마지막으로 2019년에도 징병제 폐지 공약을 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러시아 국방부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러시아 연방 전역에서 군대를 징집하고 힜다.

징병이 시작된 4월 1일부터 CSMR(The Committee of Soldiers’ Mothers of Russia)과 인권단체 아고라(Agora)에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러시아의 청년들은 징집 시 우크라이나에 파병돼 목숨을 잃을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모집병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랴티아자유재단(Freedom For Buryatia)은 전쟁 이후 전장에서 벗어나려는 병사들에게 법률 지원을 해 왔다. 전화로 도움을 청한 병사들은 계약을 해지하고 전장에서 탈출하길 원했다.

러시아 법은 병사들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전투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병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모집병의 전투 거부권은 제대로 행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부랴티아자유재단의 수석연구원 마리아 비슈코바(Maria Vyushkova)는 “장교들은 병력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병사들이 귀가하지 못하도록 심리적 조작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군의 가장 큰 문제는 군사 장비와 무기, 차량, 로켓, 대포, 미사일은 충분하나 병사는 부족하다는 점이니까요.”

실제 러시아 법은 병사들에게 전쟁터에 남아 있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도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 법률은 부랴티야자유재단이 병사들에게 법률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전쟁 이후 부랴티야자유재단은 약 100명의 군인에게 법률 지원을 했고 이 같은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군대에 가거나, 빈곤에 시달리거나

타지에서 전사한 군인 중 수도 모스크바나 두 번째로 큰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은 거의 없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변방에서 온 사람들로, 번화한 대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료에 따르면, 고향이 알려진 전사자 중 북코카서스(Предкавказье)의 다게스탄 공화국(Dagestan) 출신이 가장 많았고, 동시베리아 부랴티야 공화국(Buryatia)이 그 뒤를 이었다.

다게스탄은 러시아 남서부의 북코카서스 지방으로, 카스피해(Caspian Sea)와 가깝고, 남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와 접해 있다. 다게스탄은 주민의 80% 이상이 이슬람교도이며, 정교회나 기독교 신자들은 소수이다. 지난 수십 년간 코카서스 지역이 여러 차례 국제 뉴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소련 붕괴 이후 여러 차례의 충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충돌의 역사 : 1991년 그루지야 내전과 압하지야 전쟁, 1992년 북오세티야-인구시 전쟁, 1994~1996년 제1차 체첸 전쟁, 1999년 다게스탄 전쟁, 그리고 두 차례의 체첸 전쟁 등. 이후에는 충돌이 크게 줄었는데, 지난 10여 년간 발생한 비교적 큰 군사적 충돌은 2008년 러시아가 그루지야와 남오세티야 간 분쟁에 개입한 사건이다.

다게스탄은 러시아 연방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다.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현지 주민의 14.7%가 빈곤선 이하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인구의 약 20%에 온수 공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지역은 경제 구조가 단순해 청년 노동자의 4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실업 역시 심각한데, 공업이 발전하지 못했으며 경제 구조가 불안정하므로 2022년 1분기 다게스탄의 실업률은 14.8%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 전체의 4.4%보다 훨씬 높다. 다게스탄에는 노예제와 유사한 ‘강제노동’까지 존재하는데, 벽돌 공장에 납치되어 식사만 배급받고 월급 없이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랴티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부랴티아는 남쪽으로 몽골에 접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불교나 샤머니즘을 믿는다. 다게스탄과 마찬가지로 국토의 80%는 산악 지대다. 시베리아 변방의 부라티야 공화국 인구의 약 20%는 빈곤선 이하 수준의 생활을 하며, 약 50%의 인구는 온수를 공급받지 못한다.

부랴티아에서 자란 비슈코바(Vyushkova)는 ”부랴티아는 (여러 통계 데이터에서) 소득과 생활 수준, 교통, 교육, 실업률, 기후 등에서 낮은 점수를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 연방의 85개 행정구 중 부랴티아의 중위소득 순위는 69위다. 또한 그는 “삶의 질은 중위소득 순위보다 훨씬 더 나쁘다”며, “아마도 최하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중위소득과 가계소득, 높은 실업률 때문에 부랴티아 사람들은 군대에 입대한다. 비슈코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부랴티아에는 여러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요. 소련 시절부터 그랬죠. 이 부대들은 소련 정권이 만든 겁니다. 하지만 부대들은 아직 존재하고, 우리는 모두 군인들이 우크라이나로 파병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구조적인 모순은 교육으로도 해결되기 어려울 듯하다. 부랴티아의 중학생들은 러시아어, 수학, 역사 3개 과목에서 모두 러시아 전체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앞의 러시아어와 수학은 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불합격하면 졸업할 수 없고, 대학 입시도 할 수 없다. 역사는 선택과목이지만 대학 진학과 연관되어 점수가 지나치게 낮으면 입학을 할 수 없다.

다게스탄의 경우엔 더 열악하다. 2021년 다게스탄 지역 중학생들의 수학 평균 성적은 러시아 공식 규정의 통과선 아래로 떨어졌다. 불합격은 대학 진학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곧 진학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음을 의미한다. 연방교육과학감독국(Rosobrnadzor)의 평가에 따르면, 부랴티아의 중등교육 질은 85개 지역 중 76위, 다게스탄은 꼴찌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다. 이 지역의 학교들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다.

모스크바 국립대·고등경제대·모스크바 물리기술대 등 러시아의 거의 모든 명문 대학은 수도 모스크바에 있다. 이 밖에 수학과 역사를 가르치는 대다수 학교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으며, 학교들은 학생이 올림피아드와 공립 시험을 준비하도록 한다. 러시아 올림피아드는 엘리트 학생들이 시험을 보지 않고도 국내 최고의 대학에 진학하도록 매년 24개 과목이 운영된다. 올림피아드의 웹사이트는 매년 승자와 준우승자의 비율을 기준으로 러시아의 지역 순위를 매기는데, 모스크바가 1위를, 다게스탄과 부랴티야가 마지막 두 자리를 차지했다.

자원이 풍부한 학교를 나온 졸업생들은 당연히 고임금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일정 정도 자녀의 보충수업이나 과외의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대도시의 중위소득은 빈곤 지역 평균소득의 2~3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소득과 기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러시아의 접경지를 장기적인 빈곤에 빠트린 것이다.

군인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활 조건과 직업 시장, 교육 수준 등 여러 문제가 부랴티아의 청년들을 군대로 내몰았다. 비슈코바는 “(군대에서) 현지의 일자리보다 더 많은 생활 편의 시설과 높은 임금을 제공하며, 더 나은 복지”를 누릴 수 있고 말한다. 군인은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업은 때로 문을 닫지만 군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게스탄의 월 평균 수입은 2만 3600루블(약 53만원)이고, 부랴티아는 2만 2500루블(약 51만원)이다. 이는 러시아 평균 소득인 약 3만 루블(68만원)보다 훨씬 낮다. 물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러시아 변방에 있는 비슬라브계 소수민족 밀집 지역인 투바(Tuva), 부랴티아, 북오세티아-알라니아(North-Ossetia-Alania), 체첸, 다게스탄 출신 병사의 전쟁 사망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으며, 이들 지역의 중위소득 역시 전국 평균보다 낮다.

변방의 가난한 청년들에게 입대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심지어 유일한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낮은 계급 군인의 봉급은 빈곤 지역 중위소득의 두 배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군인’이라는 직업이 러시아에서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것은 아니다. 비슈코바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에서는 모두가 군 복무를 기피”한다며, “그곳에는 더 많은 (일자리) 기회가 있고, 인맥이나 기회, 그밖에 방법이 있다면 어떤 비용도 마다하지 않고 병역을 빠져나갈 것”이라 말했다. 그는 만약 최종적으로 병역 기피에 실패해 징집되면 ‘루저’ 취급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상황은 사회 전반에 걸친 불평등에서 비롯되었으며, 러시아 정부가 행정구역별 병력 모집인원을 할당한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다게스탄과 부랴티아와 같은 곳은 인구가 적고 병역 할당량이 적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청년들은 병역을 기피하지만 다게스탄과 부랴티야 지역 청년들은 어떻게든 군 복무를 하려고 애쓴다.

다게스탄과 부랴티야 청년들이 교육과 경제 차원에서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청년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인생 궤도는 점차 멀어진다. 하지만 군 복무 역시 빈곤 지역 청년들이 삶을 바꿀 수 있는 탄탄대로(康庄大道)가 되지 못한다.

부랴티아 출신의 청년들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군에 지원다.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려 하지만 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다. ‘질 나쁜 일자리’라는 사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전쟁에 나갈 경우 목숨을 잃기 쉽다는 점이다. 평시와 전시의 군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 전 군인이란 직장과 같은 개념으로 실제로 전면전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지금 상당수의 병사는 죽음을 피하고자 계약을 해지하려 한다.

러시아 정치를 연구해온 파블 루친(Pavel Luzin)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러시아 육군 중 많은 병사와 장교들이 소도시나 농촌 마을에서 왔습니다. 이런 점은 사회경제적인 여건이나 교육이 계층별로 나뉜 것과 관련이 있죠. 육군이 요구하는 조건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들은 공군이나 해군, 항공 우주군 등 다른 부대에 합류했거든요.”

대학에 들어갈 기회가 없는 다게스탄과 부랴티아의 청년들은 입대함으로써 빈곤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육군에 들어갈 기회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전쟁의 늪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었다.

2022년 5월 19일 우크라이나 무장부대가 하르키우 지역에서 말라 로한(Mala Rohan) 마을을 탈환한 후, 자원자들이 러시아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 Vitalii Hnidyi)

전쟁터의 뒤편 : PTSD, 가정폭력, 폭력의 굴레

다게스탄이나 부랴티아의 청년들이 군 생활을 안전하게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면 좀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터에 파병되면 평생의 트라우마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비슈코바는 어린 시절 자신의 옆집에 살았던 이웃을 기억한다. 그의 이웃은 체첸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온 퇴역 군인이었다. 그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술에 취할 때마다 아내를 폭행하고 가구를 집어던졌다. 얇은 아파트 벽을 통해 비슈코바의 집까지 소리가 전해졌다.

1994년과 1999년의 체첸 전쟁에도 병역의 경험이 없던 수많은 병사가 참전했다. 하인리히 뵐 재단 모스크바지부(Heinrich Böll Foundation in Moscow)에서 일하는 사회학자 이리나 코스테리나(Irina Kosterina)는 북코카서스 지역 남성을 연구하다가 이 지역이 러시아의 다른 지역들보다 크게 군사화되었고, 남성들은 폭력적으로 변했으며, 그로 인한 가정폭력이 빈번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국가가 가한 폭력이 군인의 가족에게까지 옮겨진 것이다.

코스테리나는 영국의 정치 비판 웹사이트 오픈데모크라시(Open Democracy)와의 인터뷰에서 다게스탄에서의 일화를 언급했다. 다게스탄에서 그와 동료들은 식사에 사용할 칼을 찾았다. 당시 주변에 있던 현지 남성들은 코스테리나의 차로 몰려와 각자가 소지한 단도를 내밀며 식칼로 쓰라고 건네주었다. 그가 단도를 휴대한 이유를 묻자, 사람들은 “길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다게스탄에서는 이처럼 비수나 단검, 총을 소지하는 것이 일상이다. BBC는 다게스탄을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는다. 폭탄 테러와 납치, 살인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코스테리나는 남성들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남성이 좌절을 느낄 때 여성보다 훨씬 덜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하고, 외부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걸 꺼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9일, 러시아 돈바스 침공 중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가족들이 2차 세계대전 종전 77주년 ‘불멸의 군단 행진’ 후, 전사자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AP)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전쟁과 군대의 아픔을 고향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전사한 병사의 유족 또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연방 마가단주 콜리마(Kolyma)의 샤슈코프의 사례를 보자. 34세의 나이에 소령 계급이었던 사슈코프는 군대에서의 생활을 순조롭게 하는 중이었으며 그의 가정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5월 9일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숨을 잃자 가족의 어려운 경제 여건이 드러났다. 고향 사람들은 샤슈코프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고 그의 모친의 생활비를 모금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사한 러시아 군인의 가족이 겪는 경제적 곤란은 흔하다. 정부는 전사자 가족에게 많은 돈을 지급해야 하지만 절차가 길고 복잡하며, 가족들은 절차를 통과할 때까지 당장 생활비나 장례 비용을 직접 치러야 한다. 배상비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역시 고인의 배우자와 부모에 국한된다. 미혼이거나 부모가 없는 전사자에게는 보상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는다. 다친 병사들은 보상받을 기회가 없고, 의료비마저 자부담해야 한다. 일부 러시아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우크라이나 군대에 포로로 잡힌 후, 포로 교환을 통해 러시아로 송환됐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여의치 않은 가족들은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모금을 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경험하고 고향에 돌아온 부랴티아 청년들도 PTSD를 겪는다. 하지만 현재 현지의 민간단체들이 이런 이들을 지원하기는 어렵다. 역량이 낮아 보다 시급한 문제들을 우선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랴티아자유재단 역시 “가능한 많은 사람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고, 전쟁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귀향한 병사들의 트라우마 문제는 계속해서 남아 있지만 푸틴 정권 이후 보다 합리적인 정치 세력이 집권해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랄 뿐이다. 이는 민간단체의 희생이 아닌 전쟁을 일으킨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랴티아자유재단 활동가 비슈코바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전쟁에 파병됐던 병사를 맞이한 가족들은 상황이 전쟁 전과는 판이해졌다고 증언했다.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향에 돌아왔던 러시아 군인들이 전쟁터로 다시 끌려 가지 않고, 사상자와 가족에게 보상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푸틴의 최악수로 러시아 연방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민중이 처한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글 : Yanina Sorokina, 黃奕邦(端傳媒), 陳婉容(端傳媒)
번역 : 권보현
편집 : 홍명교
교열 : 윤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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