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 어떤 균열을 내고 있는가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해마다 세계 각국의 젠더 격차를 지수로 나타내 보고한다. 이 지수는 경제, 정치 ,교육, 건강의 네 분야의 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한다. 일본은 이 국가별 지수에서 젠더 평등 지수가 선진국 중에서는 최하위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 중국보다 낮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153국 중 110위, 121위, 121위, 120위로 순위가 낮아지거나 비슷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경제포럼이 경제 분야에서 젠더 격차를 평가하는 기준은 경제활동참가 기회와 성비, 동일노동에서의 성별임금격차, 노동소득 추계치, 관리직 비율, 전문직 비율 등이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 민간 기업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14.7퍼센트다. 일본 정부는 여성 관리직 비율을 2020년까지 30%로 올리겠다고 계획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1 반면 관리직을 제외한 일반직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54.4퍼센트로, 남성(22.1퍼센트)보다 두 배 이상이었다. 또, 2020년 기준 남성 노동자(단기노동자 제외)의 급여를 ‘100’으로 봤을 때, 여성의 급여는 ‘74.3’에 불과했다.2

2021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젠데격차지수에서 일본은 119위를 기록했다. 한국 역시 101위로 만만치 않다.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한편, 정규직 여성을 위한 이직 사이트 ‘여성을 위한 전직 type’(女の転職type)가 회원 677명을 대상으로 2022년 3~4월 실시한 ‘직장내 괴롭힘 설문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퍼센트가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위계에 의한 괴롭힘(갑질)’이 58.1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성희롱(sexual harassment)’ 역시 36퍼센트였다.

또, ‘괴롭힘을 당하긴 했지만 아무에게도 상담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30퍼센트, ‘상담받았으나 개선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81퍼센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향후 퇴직이나 이직을 선택했거나 선택하겠다’는 답변이 50퍼센트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3

일본의 전국단위 노동조합 연맹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도 최근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2022년 5월, 렌고가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는 응답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 다음으로 높았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에는 20~50대 모든 연령대에서 남성의 1.5~4배 높았다.4 이처럼 일본 여성노동자가 겪는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피해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볼 때, 일본 여성노동자의 위치는 매우 낮다.

일본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낮은 원인은 무엇일까?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 츠츠이 쥰야(筒井淳也) 교수는 “(육아와 가사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남성적인 근무환경에 있다”고 본다. 츠츠이 교수는 여성들이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관리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여성 관리직의 비율을 높이는 것보다,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쿄대학(東京大学)의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명예교수도 이와 비슷하게 지적한다. 일본의 권위주의적인 직장 형태(종신고용, 연공서열)가 경제적인 성별 격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에노 교수는 1985년에 이미 ‘남녀고용균등법’이 제정됐지만, 관리직은 남성, 일반직은 여성으로 구분지어 놓는 등 고용은 하되 대우는 달리하는 차별구조를 지속해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높은 직급으로 승진한 소수의 여성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다. 그 이유가 서구 국가에서는 국가에서 보육을 책임지거나 베이비시터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장이 발달된 반면, 일본에선 둘 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경제는 가사와 일 모두를 책임지며 일해온 여성들의 희생으로 떠받쳐온 구조였다”는 게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주장이다.5

1984년~2019년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들판의 불꽃

그러나 일본의 여성들도 계속 침묵하고 있지는 않다. 문화계에서부터 #미투 운동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고, 저변에는 페미니즘 실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미투 운동은 “일본 미투의 선구자”라 불리는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의 싸움이다. 2015년 이토 시오리는 TBS 기자였던 야마구치 노리유키와 술을 마신 후,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이를 고소했지만, ‘혐의 불충분’이란 이유로 성폭행 가해자가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된다. 2017년, 그는 월간 문학·시사교양지 <문예춘추>를 통해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고,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와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이후 이토 시오리는 2020년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으며, 야마구치 노리유키와의 소송에서 승리했다. 그 후로도 이토 시오리는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음해·비방하는 2차 가해자들에 맞서 민사소송을 진행중이다. 이토 시오리를 비방하는 그림을 그린 만화가 하스미 도시코와 이 게시물을 옮긴 두 명은 명예훼손으로 배상액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반면, 이토 시오리 비방 트윗에 ‘좋아요’를 누른 스기다 미오 중의원에 대해서도 220만엔을 배상하라고 청구했으나 1심에서 패배했다. 이토 시오리는 이에 맞서 항소할 계획이다.

이토 시오리의 #미투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자기 이름을 밝히고 싸우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토 시오리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고,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지망했기 때문에 외국 언론과의 기자회견이 가능했다. 이런 점들이 그가 #미투 운동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됐다.6

이토 시오리의 투쟁이 시작됐을 때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고 미미했다. 2019년 4월 10일, ‘이토 시오리의 민사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Open the Black Box’가 여성운동단체들과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블랙박스를 하나씩 열어가자”는 취지에 150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는 일본 내에서 ‘위안부’ 지원운동을 이끌어온 재일조선인 양징자(梁澄子) 씨가 참석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 내 미투 운동은 위안부 운동과 연계를 맺기도 했다.7

유명 타블로이드 매체 『주간문춘(週刊文春)』이 영화감독 사카키 히데오의 성폭력을 보도한 후로 일본 영화계의 #미투 운동도 불붙고 있다. 사카키 히데오와 소노 시온, 배우 키노시타 호우카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배우들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경제 웹진 『BUSINESS INSIDER』가 2022년 5월에 보도한 영화계·예능계 종사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답변자의 80퍼센트가 직장 갑질이나 성희롱을 겪었다고 답했다. 피해 사실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 중 10퍼센트는 “원하지 않은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답했다.

배우이자 모델인 미즈하라 키코는 영화계의 성폭력적 제작환경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한 후, 반발과 비방에 시달렸다. 2022년 4월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거짓 소문과 음해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응원의 답글을 달거나, 해시태그로 공유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미즈하라 키코도 응원에 힘입어 예능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아줌마북스와 플라워시위

서점가의 인기도서 목록은 그 무렵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서점가에선 페미니스트 서적이 붐이다. 2018년과 2021년엔 페미니즘 전문 출판사 에세테라북스아줌마북스가 생겨났다.8 두 출판사 모두 한국의 페미니즘 도서 열풍에 발 맞춘 한국 페미니즘 번역책이 많다. 알려진대로 ‘19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페미니즘 번역 도서로 페미니즘 번역도서 붐의 선구자 역할을 했는데 2022년 현재까지 23만부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두 출판사는 책을 출판하는 활동 외에 일본 여성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에도 열심이다. 에세테라북스를 설립한 마쓰오 아키코는 성폭력에 항의하는 플라워 시위 공동 발기인이다. 아줌마북스의 기타하라 미노리 대표 역시 플라워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다. 플라워시위는 2019년 3월 잇따른 성폭력 무죄 판결에 대한 항의로 같은해 4월 도쿄역 인근에서 시작됐으며, 이후 매월 11일 개최되고 있다. 참가자들이 꽃을 가지고 모이는 것으로부터 플라워시위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 시위로 인해 무죄판결이 난 4건의 사건 중 3건이 유죄로 바뀌었다. 플라워시위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각지 47개 지역과 해외에서 진행중이다.

일본의 여성운동은 가부장적이고 여성에게 더 차별적인 단단한 바위 같은 사회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고 있다. 이것이 바위를 부수는 더 큰 균열로 나아갈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

일본의 플라워시위 모습

참고 자료
[1] 2005년 일본 내각부 산하 남녀공동참여계획국(男女共同参画局)의 기본계획(2차) https://www.gender.go.jp/kaigi/danjo_kaigi/siryo/pdf/ka27-1.pdf
[2] 2020년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 자료 https://www.mhlw.go.jp/bunya/koyoukintou/josei-jitsujo/dl/20-01.pdf
[3] BUSINESS INSIDER 기사. 2022. 5. 3. https://www.businessinsider.jp/post-253845
[4] 직장내 갑질 실태조사 2021,6,25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仕事の世界におけるハラスメントに関する実態調査2021.
[5] 동양경제 2021. 6. 8 칼럼 중 そこで女性にすべてのしわ寄せがきます
[6] 양아람·이행선,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대동문화연구 제106호, 2019.
[7] 양징자 씨는 키타하라 미노리 씨와 연결되고, 플라워시위를 추동하는 배경이 된다. 조경희, 「일본의 #MeToo 운동과 포스트 페미니즘 – 무력화하는 힘, 접속하는 마음」, 『여성문학연구』 56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
[8] 아줌마북스는 기타하라 미노리가 한국의 페미니즘 서적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출판사다. 기타하라 미노리는 ‘위안부’문제를 일본에 알리는 활동과 여성을 위한 섹스굿즈샵을 운영하고 미투 운동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해왔다. 아줌마북스의 홈페이지에는 위안부 할머니의 미술교사이자 할머니들과 함께 진행한 미술 수업 이야기를 그린 『못다핀 꽃』의 이경신 작가와 포르노사이트 소라넷 폐쇄 과정을 담은 페미니즘 다큐 소설『하용가』의 정미경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글: 박근영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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