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인종 난민은 어떻게 해서 감추어지는가

서구의 선별적 연대와 비서구 국가에 대한 이중잣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5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정세를 위기로 고조시킨 러시아 푸틴의 팽창주의가 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 미국-나토의 동진 정책 역시 이 전쟁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러시아와 미국의 군사 패권 행보는 전쟁의 참혹함과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플랫폼c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민중들에게 연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전쟁 관련 글들을 번역해 소개한 바 있다. 또, 주한러시아대사관 앞 반전 집회와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에도 계속해서 함께 하고 있다.

지난 4월, 플랫폼c 월례포럼에서는 전쟁의 배경과 구조적 모순들, 이에 맞선 반전평화운동에 대해 소개하고 토론했다. 이날 마지막 발표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서구 세계의 상이한 반응을 소개한 바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전 세계에 퍼지며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민중들에게 연대한다는 글들과 함께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했던 논쟁 주제 중 하나는 ‘전쟁에 대한 서구인들의 이중적 반응’이었다. 간단히 말해, 선진국들은 이때까지 비서구 세계에서 일어났던 전쟁들에 대해서는 왜 우크라이나 전쟁만큼 반전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바로 인근이기 때문에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비서구권 국가와 다르며, 유럽인들로써는 직접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전쟁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더라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뿐임을 방증할 뿐이다.

혹자는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은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구 세계의 영향력 있는 미디어들이 전쟁을 비추는 태도를 볼 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많은 내전들은 선진국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다. 특히 서구 선진국이 러시아를 비판하는 지점이 전쟁 범죄와 민중에 대한 폭력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비아, 예멘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만큼의 전쟁반대 목소리가 서방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글은 지난 4월 월례포럼 마지막 발제문을 재정리한 것으로, 전쟁에 대한 서구의 이중적 태도가 인종주의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해관계와도 깊이 연루되어있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논증한다. 요점은 어느 전쟁이 더 중요한지를 따지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인종주의적 이중 잣대가 자국의 이익에 따른 전쟁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크게 다섯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세 차원에서의 이중잣대, 이러한 태도가 전쟁과 연계되는 지점,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다른 전쟁들의 비극적 연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 차원의 이중잣대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s Watch) 중동및북아프리카지부의 사라 레아 휘트슨(Sarah Leah Whitson)은 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이중성을 지적한 바 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게는 관대하고 러시아에게는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 정부는 러시아에 대해 적극적인 경제 제재와 보이콧을 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전쟁 범죄를 몇십년간 저질러온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런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처벌한다.

지난 3월 미국 의회는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러시아 제재와 보이콧을 논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제재와 보이콧을 불법화하는 법안 입법을 시도했다. 이 법안은 존재 자체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지속시키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50개주 중 과반이 넘는 27개 주에서 채택되었다. 이에 맞서 미국 사회운동 진영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며 비판했지만, 정치권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 1967년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한 이스라엘은 점령지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 자국민을 이주시켜 불법 정착촌을 건설하고 확장시켰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공존하는 이스라엘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 [출처: AP/뉴시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너무나 악명 높아 공공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월 1일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규탄한다고 주창했으나, 동시에 유엔이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것은 ‘인권이사회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것’이라며 조사를 중단하라는 뜻을 피력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자국 이익과 관련된다면 민주당, 공화당을 막론하고 전쟁에 침묵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변부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테러와의 전쟁’ 또는 ‘억압적 정권 대 민주주의’라는 구도를 정형화 한다. 나아가 자신을 ‘민중해방의 대리인’이나 ‘민주주의의 투사’ 쯤으로 이미지화 하며 전쟁을 정당화한다. 미국은 그러한 구도와 이미지를 가장 많이 활용해온 국가 중 하나다.

유럽과 캐나다 등 다른 서구권 국가들도 위선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영국과 캐나다는 지난해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조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은 예멘 내전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 영국-프랑스-미국의 지지를 받는 아랍연합이 보호하는 하디 정부 간 전쟁이 201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과거 ‘축복받은 아라비아’로 불렸던 예멘은 현재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로 불리고 있다. 내전의 양상을 띠고 있는 이 대리전에서 영국-프랑스-미국은 아랍연합,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들의 군수 물자 및 정보 지원은 사우디의 예멘 공습을 수월하게 했다.

예멘 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사망자 23만명은 대부분 사우디 주도의 아랍연합군의 폭격에 의한 것이며, 대부분은 민간인 구역과 시설에 투하됐고 전체 사망자 중 4분의1이 아동이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는 사우디에 무기뿐만 아니라 인도적 지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외교적 보호를 제공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내전에서 행해진 전쟁범죄를 조사하기 위한 국제적인 조사단 설립을 차단하고 있다. 📰관련기사 읽기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의 행보는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자국과 연관된 전쟁에는 묵인하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러한 이중적 모습은 선진국, 소위 열강들이 자신들의 진영논리나 이익에 따라 선택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다른 권위주의 열강 국가들에서도 관찰된다. 양상이 다를 뿐이다.

또한 비서구국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한 서구인들의 상대적 무관심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발적 관심은 인종주의와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잣대를 고발한 언론들은 대부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내에 개입해 자신들의 이권 다툼을 하고 있는 열강들의 지정학적 권력 관계에서 희생된 비서구국가 민중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자, 서구와 비서구 간의 인종주의적 위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는 동안, UN이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라고 묘사한 예멘 전쟁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서구 언론들의 이중잣대

서방 언론들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보도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인종주의적이고 과거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케하는 발언들로 점철되어 있다.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CBS뉴스의 선임 해외특파원 찰리 다가타 기자는 “이 곳은, 실례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수십 년 간 갈등이 발생해온 곳이 아니다”라며, “이곳은 이런 갈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비교적 문명화됐고 비교적 유럽의 도시“라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NBC뉴스의 켈리 코비엘라 해외특파원은 “대놓고 말하면 이들은 시리아에서 오는 난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들”이라며, “이들은 크리스천이고, 백인이고, 그들은 아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비서구국가 난민들과는 ‘다른’, 깨끗하고 무결한 백인 난민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영국 텔레그래프의 다니엘 하난은 ‘푸틴의 극악한 침공은 문명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인은 우리와 매우 닮았다. 그게 이 사태가 충격적인 이유”, “전쟁은 더 이상 빈곤하고 외딴 인구집단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등 비서구인들에게 전쟁은 일어날 수 있지만 서구인들에게 전쟁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여 거센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 뉴스채널 BFMTV의 필리페 코르베 기자는 “시리아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 우리들의 것과 똑같은 차를 타고 떠나는 유럽인들“이라며 유럽인들과 비서구인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이처럼 서구 언론들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발화는 단순히 유럽권의 전쟁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비서구인들에 대한 구별짓기가 기저에 깔려있다. ‘문명과 먼, 비문명’인 비서구국가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일상적이지만 ‘문명화된 유럽’에서의 전쟁은 당연하지 않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서구인들의 평화가 타국의 전쟁 위험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많은 비서구국가의 전쟁은 식민시기의 지배와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 및 위계의 연속선상에 있다. 아랍·중동 언론인협회는 이를 두고 ”다른 비극은 당연히 여기는 서방 저널리즘“이라는 성명을 내며 서구인들의 인종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언론인과 비평가들이 모여 이라크 전쟁 당시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언론 보도를 비교하는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긍정적 평가보단 비판의 날을 세웠다. Antiwar.com의 공동 설립자 에릭 가리스(Eric garris)는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취재하는 주류 언론인들은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지지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그들의 허풍은 미국과 러시아 간의 직접적 충돌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우려했다. 또한 그는 대다수의 주류 언론인들이 익명의 미국 정보 당국자들의 입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사실로 보도한다고 지적한다.

CIA의 전임 대변임 레이 맥가번(Ray McGovern)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선제 공격 명분인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테러리스트들에게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이 증거가 확실치 않은 거짓된 주장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이를 사실처럼 취급하고 언론인들이 ‘입증’(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지적한다. 당시 거짓된 주장의 입증에 앞장섰던 언론인 데이비드 생거와 톰 생커는 현재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일방적이고 위험한 보도를 지속하고 있다.

난민과 민중에 대한 이중잣대

우크라이나 난민과 비서구 국가 난민에 대한 서구 사회 백인 엘리트들의 대우는 같지 않다. 동일하게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이라고 해도 인종과 정체성에 따라 난민 수용 여부가 갈린다. 유럽연합과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는 국경의 문을 재빨리 연 반면, 전쟁을 피해 아프리카인들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외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이웃인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국경을 개방하고 숙박, 교통, 음식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소치이자, 국제법상 폴란드의 의무와 일치한다. 하지만 왜 이런 정책들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콩고, 카메룬과 같은 나라들에서 온 수천 명의 망명 신청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나? 이들은 2021년 6월 이후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을 따라 물, 난방, 의료 등의 필수적 자원에 대한 접근 없이 비인간적인 환경에 갇혀있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는 유럽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는 아프리카, 인도, 중동 아시아 출신의 많은 유학생들은 국경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90일의 체류 기간까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유럽인의 분류에 들어가는 사람들로, 대부분 백인이다. 이들에게는 국경을 넘어가 난민에게 제공하는 지원을 받을 자격과 망명 신청 없이 유럽에서 생활할 수 있는 3년 비자가 주어진다. 하지만 유색인종 유학생들은 그러한 비자를 받지 못한다. 유럽 연합에서 난민을 받는 기준은 실질적 위협의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과 인종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2012년 이스라엘군의 폭력 진압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시민 Ahed Tamimi의 모습. 한동안 이 사진이 이스라엘군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러시아군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이라는 유명세를 타는 웃지못할 헤프닝도 벌어졌다

비서구 국가나 유색인종 난민과 우크라이나 백인 난민을 대하는 유럽의 태도가 이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채석진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서구인들의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우호적인 대응은, 난민의 상황과 처지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유럽/비유럽이라는 인종적 위계질서의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서구인들에게 우크라이나 난민은 유럽의 부에 기생해 살려고 들어오는 ‘야만적’ 이방인이 아니라, 러시아 군인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문명화된’ 우리의 이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과 같은 사람들을 이방인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는 행위이다. 이는 서구와 비서구를 차별화하는 오래된 도식, 문명과 야만이라는 식민주의의 망령이 지금까지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구인들만 인종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종주의적 위계에 길들여진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미디어나 일부 여론도 이러한 태도를 드러낸다. 한국의 경우 예멘이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들어왔을 때 일부 여론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전교조 교사이자 진보정당 출신인 노옥희 울산 교육감은 이런 인종주의적 부정 여론을 돌파하기 위해 몸소 아프가니스탄 출신 어린이들과 등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난민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더럽고 냄새난다’, ‘성폭력을 저지를 것이다’, ‘국민이나 잘 챙기지 왜 난민을 받느냐’ 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서구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과도한 비판일까? 자신들이 ‘비문명’이라 취급받으며 똑같은 소리를 듣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서구 전쟁에 대한 묵인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어떻게 연결되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 정당화 명분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라는 선례가 있다. 크렘린은 실질적으로 미국이 2003년 이라크 전쟁 시기에 추진했던 것과 같은 국제법상의 ‘선제’ 원칙을 추진하고 있다. 1945년 유엔헌장 51조는 자기방어를 허용하고 한 국가가 “무력 공격이 발생할 경우” 다른 국가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51조의 문구가 공격을 계획하거나 모의하는 침략자에 대한 “선제적” 공격(무력 사용)을 허용한다는 광범위한 법적 주장을 펼쳤다. “선제적 자기 방어”라는 새로운 원칙을 제시하는 주장에 국제 사회와 법률 전문가들은 경고와 거부의 의사를 밝혔으나 부시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무력을 사용했다. 러시아의 “나토가 동부로 확장되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선제적 자기 방어’의 명분과 미국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들고 있다”는 이라크 전쟁 당시 선제 공격의 명분은 서로 상통한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의 전쟁 경험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에 침략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2015년 9월 말부터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하며 억압적인 아사드 정권을 지지해 왔다. 러시아는 6년 반 동안 북서부 시리아에 주요 군사기지인 흐메이밈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장관은 시리아에 있는 320개 이상의 무기를 성공적으로 시험했다고 자랑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 지휘관의 85% 이상이 시리아에서 얻은 전투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 이 ‘전투 경험’은 대부분 민간 시설들을 겨냥했고 이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민중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하지만 푸틴은 당시 시리아에서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서방의 이슬람 혐오 우익 단체들과 전 세계의 권위주의 지지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이는 러시아에게 ‘다른 나라를 침략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시리아 북동부 지방의 고속도로에서 러시아 병사가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 델릴 소울레이만/AFP)
서구-비서구

억압 받는 자들은 연결된다. 우크라이나에 자금이 몰리면서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예멘,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원금 삭감이 시작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줄어들고 있는 국제 원조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예멘,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 긴급사태가 가장 심각한 국가들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은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굶주린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굶주린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빼앗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멘의 경우 WFP(세계식량계획)는 원조를 필요로 하는 인구가 올해 1740만 명으로, 12월까지 100만 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식량 지원 자금이 9억 달러 부족하다고 밝혔다. 자금 목표의 11%만이 달성되었고 13억 달러가 기부될 것이라는 약속이 나왔으나. 이것은 유엔이 요구하는 43억 달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인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IPC 척도(Integrated Food Security Phase Classification의 머리글자를 모은 말로, 식량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하기 위한 기준)에 따르면, 약 3만1000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수준의 굶주림에 직면해 있으며, 이 숫자는 6월까지 16만1000명으로 증가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지난해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개발원조가 동결되면서 모든 방면에서 위기가 왔다. 인구의 절반이 식량 불안에 직면하고 있으나 유엔이 제출한 44억4천만 달러 호소는 지난 1월 출범한 이후 13%의 자금만 지원받았다. WFP만 해도 향후 6개월 간의 기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긴급히 필요한 자금에 5억2천500만 달러가 부족하다. 유엔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가 빚을 지고 있으며, 95%의 가정이 충분한 식사를 하지 않고 있고, 거의 모든 여성 가장의 가정은 충분한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에티오피아는 북부 티그레이에서 벌어진 교전으로 2백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엔은 9억 5천 7백만 달러의 자금을 목표하고 있지만 3억 달러 이상이 부족하다. 유엔은 매주 87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10월 중순 이후로는 74만 명에 불과하다. 티그레이에 있는 대부분의 가정은 식량이 부족하며, 빚을 갚기 위해 식사를 줄이거나 농작물을 팔고 구걸하고 있다. 454,000명의 영양실조 아이들이 있는데, 이 중 1/4 이상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난민 수천 명을 나깝(네게브) 사막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알리아’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정부의 기준에 따르면 [외]조부모 중 최소 1명이 유대인이라는 걸 인증하면 유대인으로 인정된다) 문제는 나깝 사막이 이스라엘 정부의 인종청소 장소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는 팔레스타인 원주민 베두인들의 집과 마을을 거의 200차례 파괴했다. 숲을 조성한다는 핑계로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곳에 우크라이나 유대인 난민을 보내는 상황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직원이 카불에서 겨울 지원금을 나눠주고 있다.
선별적 연대를 넘어

이렇게 여러 차원에 걸쳐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서구의 인종주의와 이중잣대에 대해 살펴보았다. 처음 이 발제를 기획했을 때 나의 문제의식은, 다른 전쟁도 무고한 사람들 죽어나가는 건 똑같은데 왜 이 정도로 화제가 되지 않았냐는 것에서 나왔다. 왜 팔레스타인은 이 정도로 화자되지 않지? 예멘 난민 받아들일 때는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었는데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없지? 이런 의문에서 발제를 준비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에서 인종주의가 매우 깊게 박혀 있고, 이것은 자신의 이익에 따른 선별적 분노와 연대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인종주의가 역사적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근대 형성의 주요 축 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자본주의에는 자본과 노동뿐만 아니라 인종과 성차라는 또 다른 위계화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월터 미뇰로는 식민주의의 근간은 인종주의이며, 비유럽에게 강요된 식민성을 ‘식민적 차이’라고 명명한다. ‘식민적 차이’라는 것은 ‘선진국-개발도상국’ 간의 위계적 관계이자, 소위 타자의 ‘문화적 차이‘나 ‘특수성’이라는 관념도 제국적-식민적 권력 관계에 기반한 유럽중심적 기준에서 구성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유색인종 난민들에게 따라붙는 ‘더럽고 냄새나는’, ‘발전되지 않은’, ‘비문명’이라는 수식어들은 비서구인들에게 강요된 ‘특수성, 특징’이자,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서구인들의 오만함을 드러낸다. 인종주의가 근대와 자본주의 형성에 주축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까지도 인종주의는 국가나 군수산업의 이윤에 따른 지정학적 논리와 맞물려 소위 선진국들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재생산하고 약자에 대한 배제를 견고화하는데 일조한다.

혹자는 러시아도 미국도 똑같이 잘못했다는 것은 ‘양비론’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전쟁의 장기말에 불과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인종과 정체성, 국적에 따른 ‘선택적 연대’가 아닌, 전쟁으로 고통 받는 모든 민중들과의 반전평과 국제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글: 현빈 (플랫폼c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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