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

이 글은 지난 5월 27일(금) 서울 정동 주한러시아대서관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행동 집회 발언 내용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오는 6월 24일(금) 저녁7시에도 같은 자리에서 집회가 예정돼 있다.

2월 말부터 5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무엇보다 푸틴의 침공 결정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와 나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실들을 근거로 한다. 반전평화를 요구하고, 반전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두 문제를 공히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 아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를 건국하고 통치해온 지배계급은 대외부채에 의존하여 ‘나라 만들기(State Building)’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서구식 민주화와 시장화, 국가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제도의 구축, 민족정체성의 확립 등 무수한 과제들이 벼락같이 쏟아졌다.

보로디안카의 파괴된 아파트단지에 남은 어린이 (사진: Alexey Furman)

소수의 과두엘리트들과 자본가들은 민중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자기들의 자산은 증식했다. 개발도상국들이 겪는 잔혹한 일이 우크라이나에서도 벌어졌다. 이러한 사유화 흐름 속에서 떼돈을 벌어 大자본가가 된 이들을 올리가르히(Олігархи)라고 부르는데, 러시아 체제만큼이나 우크라이나 역시 이들 자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왔다.

대외부채가 꾸준하게 증가하는 사이,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출 상한을 연장해주며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정리해고가 가능해지고, 노조 탄압과 민영화 조치들이 이뤄졌듯, 우크라이나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무역 자유화가 촉진됐고, 필수상품에 대한 가격 통제가 금지됐으며, 기초적인 생활필수품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역시 축소됐다. 

2004년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이나 초국적 금융자본의 압박에 따라 약 1,100개, 2005년 890개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대부분의 매각 기업은 우크라이나 내의 개인이나 기업이 차지했지만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기업은 외국자본이 매입했다.

이와 동시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금융업에서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 유치했다. 하지만 이러한 섣부른 금융시장 개방과 무역자유화의 결과, 우크라이나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취약해지고 말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야기한 세계 금융위기는 곧바로 우크라이나의 경제위기로 전이됐다. 2009년 러시아 가스에 대한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이 악화됐다.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됐고, 철강 가격 하락으로 무역수지와 내수 경기마저 악화됐으며, 환율도 폭등했다. 또, IMF가 해고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강요함으로써 노동시장은 불안정해졌다. 

국제통화기금이 강요한 정책의 효과는 참담했다. 우크라이나 실질 임금은 유럽 최하위로 전락했다. 다시 외화 유출, 환율 폭락, 은행의 대량 예금인출 사태 인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IMF로부터 구제금융 받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우크라이나 경제가 초국적 금융자본의 먹잇감이 되자, 정치적 조건이 취약해지고 불안정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2010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전 총리가 당선되어 (2004년 오렌지혁명에 대한) ‘반혁명’의 결과를 낳았지만, 출발부터 국민적 위임이 확고한 정권은 아니었다. 1차 선거에서 야누코비치는 35.34%를 획득했는데, 이는 역대 1차 투표 승리자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이었다. 게다가 그는 아무런 윤리 개념이 없고, 직권남용에 대해 뻔뻔한 태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그가 승리한 원인은 유권자의 지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경제위기에 대한 어부지리였다. 

2010년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

통상 국가권력을 쥔 권력자들은 정권의 기반이 약할 경우 반대파를 포용하고 부동층을 흡수하여 정치적 기반을 넓히거나,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적을 탄압하고 권위주의나 독재 노선을 선택한다. 야누코비치는 후자였다.

집권 초기부터 그는 중앙권력 강화를 위해 권력의 수직화 작업을 진행한다. 사법권력 활용해 정적인 티모센코를 제거했고,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감찰 활동을 전개한다. 또, 언론 자유 축소와 비판적 언론매체를 탄압했고, 반정부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다. 헌법재판소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재판관들로 채우고 2004년 헌법개정안(오렌지 혁명의 결과) 무력화했으며, 독재 시기였던 1996년 헌법을 복원함으로써 사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려 했다. (MB가 했던 작업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 굳이 명명한다면 푸틴의 통치모델과 유사한 ‘러시아식 관리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경제 정책이 실패하고, 정권 인사들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야누코비치 정권의 정통성은 점점 더 약화되었다.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해선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해야 했지만, 일시적인 처방전이 중심이었다. 가령 우크라이나 경제에 중요한 것은 러시아로부터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들여오느냐였는데, 이에 따라 야누코비치는 2010년 4월 러시아와의 빅딜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가격을 대략 30% 가량 인하 받기로 하는 대신, 러시아 함대의 세바스토폴 주둔 기간을 25년 연장해주기로 합의한다. 이에 따라 집권 초기에 경제성장률이 회복되지만, 2012년부터는 다시 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간다.

우크라이나 통과 가스관의 지배 지분 확보를 노리고 있었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경제를 회생시키기보다는 가스 대금 누적을 유도하여 가스관 확보를 노리는 정책을 펼친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부터 큰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티모센코 투옥 등의 강압 정책으로 서방으로부터의 재정 지원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즈음 국제 정세 양상은 보다 복잡해진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수년간 이어오던 양적완화를 축소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의 불똥이 우크라이나로 튀었다. 수년 동안 대외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한 우크라이나 같은 신흥국 시장에 엄청난 타격이 생긴 것이다.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유럽연합과의 협상은 중단됐고, 결국 친러-반러 세력이 대립하는 내부 분열과 2014년 11월 유로마이단으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신냉전 체제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2021년 기준 우크라이나의 대외 부채는 1300억 달러(163조원)에 달하고, 이는 1년 국내총생산과 맞먹으며, 절반은 정부 부채다. IMF가 130억 달러, 세계은행 등이 80억 달러 이상의 채권자다. 올해 상환해야 할 부채는 엄청난 규모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중국이나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대외부채는 30억 달러 정도) 전쟁 직후 이 부채 규모는 크게 늘었다.

우크라이나 부채는 탕감되어야 한다 (사진: Serhii Korovainyi)

오늘날 우크라이나 대외 채무의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민중 다수가 아니라, 올리가르히 1퍼센트의 재벌과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생긴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2014년과 2022년 두 번의 전쟁 발발 이전이 벌어졌다. 이 빚을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은 잘못됐다.

2013년 12월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재무부를 설득해 아일랜드 더블린 증권거래소에 30억 달러에 유가증권을 발행했다. 나중에 이는 150억 달러가 됐다. 러시아는 아일랜드에 설립한 민간 회사를 통해 이 채권을 이자율 5%에 사들였다. 젤렌스키 정부는 한동안 러시아에 빚을 갚으려 했고, 2억3300만 달러의 이자가 러시아에 지불됐다. 하지만 2015년 12월, 포로셴코 정부는 채무의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 채무 상환을 유예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IMF와 유럽은행 등의 채무가 그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신자유주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채무 상환을 지속하고 있고, 심지어 전쟁 채권을 발행하면서 IMF와 세계은행, 유럽투자은행 등에 신용을 요청하고 부채를 늘리고 있다. 

포탄에 의해 세상을 떠난 여섯 살 아들을 추모하는 엄마 (사진: Niclas Hammarström)

IMF는 1%의 풍요를 선호하고, 불평등의 증가를 촉진시켰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대외부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IMF 부채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점진적 파괴 과정과 우크라이나 민중 대다수의 삶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한 만큼 당장 탕감되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삶을 위해 채무 상환을 멈추어야 한다. 반사회적인 긴축 정책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국민들을 위해 채무 상환을 중단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재벌들의 자산을 추징하고, 이들에게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국제 사회’라는 말랑말랑한 것이 아직 조금의 존재 가치라도 있다면, 전쟁을 가속화하고 민중들의 시체만 쌓을 뿐인 무기 지원이 아니라, 이 채무를 탕감해야 한다. 그리고 상환 대신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기금으로 이전해야 한다. 

한국 정부에게도 충분히 책임과 권한이 있다. G20 국가들은 2020년 채무서비스 중단 이니셔티브(DSSI)를 출범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73개 빈곤국 중 43개국 대해 50억 달러 규모의 공공부문 부채상환 유예 혜택을 부여한 바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는 IMF의 채무 체납국가 대상 채무감면 프로그램의 요청으로 530억 원을 출연해 아프리카 수단의 대외채무를 탕감한 바 있다. 이런 금융원조 조치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이뤄지지 말란 법은 없다. 말로만 지지한다고 하지 말고, 방산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무기 장사에 몰두하지 말고, 우크라이나 민중들에게 지워진 막대한 채무를 탕감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구조적 요인은 금융화로 인한 경제 실패에 있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전쟁 중단과 부채 탕감이 필요하다. IMF와 유럽은행, 러시아 정부 모두 그 책임을 갖고 있고, 우리 정부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국제사회는 말로만 전쟁 비난하면서 뒤에서 무기 장사를 하지 말고, 우크라이나 민중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즉시 해야 한다.

지난 5월 말 러시아 상페테부르크의 한 콘서트장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청중들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
러시아군은 즉각 철수하라!
양국 정부는 즉시 평화협상에 임하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글: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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