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선거 이후 시작될, 진짜 페미니즘 정치를 위한 한 발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인터뷰②

오는 5월 19일부터 6월 1일에 치러질 지방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뉴스는 ‘무투표 당선자’가 494명이나 나온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한다. 2002년 지방선거(496명) 이후 20년만에 최고치라는 이 숫자는 양당구도에 갖힌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 정당과는 다른 페미니즘 정치를 표방하며 지방선거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청주 페미니스트 연대로 지방선거에 출마한 김현정, 정송희, 이성지, 조영은, 유진영, 현슬기, 김영우 예비후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중 노동당 유진영 후보를 제외하면 전원 무소속이며 선거구는 모두 다르다. 페미니스트 연대로 출마하게 된 배경, 각자가 힘쓰는 공약, 후보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 들었다. 이 인터뷰를 둘로 나누어 소개한다.

🪅읽기: 인터뷰 |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의 출범과 지방선거

* * * * *

플랫폼C | 공약 페이지를 봤는데, 공약이 정말 많더라고요. 고민도 많이 한 것처럼 보였어요. 공약을 어떻게 마련했나 궁금합니다. 후보별로 주로 담당하는 공약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처음 정할 때 내가 이 선거구에 나가서 이런 공약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현슬기 | 처음에는 그냥 겹치지 않게 구를 정했고요. (웃음) 기존에 있는 여성 관련된 공약들이 뭐가 있는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좀 가졌어요. 그 뒤에 후보들이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각자 관심 있는 분야들을 정해서 공부하고 후보들이 공약을 낸 후, 선본에서 같이 논의해서 구체화하고 정돈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한 달 반의 회의를 거쳐 공약을 만든 거죠. 

7명의 후보들에게는 각기 주력하는 공약이 있다. 김현정 후보는 “성평등한 지방정부”를 목표로 청주시 성평등국 설치 등 성평등 추진 체계 구성과 동별 공공돌봄센터 설치를 내걸고 있다. 현슬기 후보는 “폭력없는 지역사회”를 모토로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피해 지원 조례 제정, 성소수자 차별금지와 인권교육이 명시된 인권조례 제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김현정 | 여가부 폐지에 대응하는 지역의 전략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청주시 복지국 안에 여성가족과가 있거든요. ‘여성가족과를 승격시켜서 성평등국으로 만들고 타 부서의 여성 관련 정책들을 성평등국 안으로 편입을 시키자’, ‘그러면서 각 부서가 원래 하던 기능을 넘어서 성평등 추진 체계를 만들어보자’, 이게 주요 공약입니다.

청주페미니스트연대 김현정 후보 ⓒ박상은

현슬기 | 저는 약자의 삶은 폭력과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이들을 위한 안전한 울타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청주는 다른 곳에 비해서도 안전망이 없어요.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면서 지자체 차원의 후속 조치 마련이 필요하지만, 저희 지역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은 1개밖에 없거든요. 인력이 부족하고 권한도 약한데, 권한은 또 분산되어 있고요. 촬영물 삭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공약을 준비했습니다.

생활임금과 안전된 고용을 보장하는 청년 일자리 창출, 돌봄 노동자 노동기본권 및 생활임금 보장 등을 주요 공약으로 하는 유진영 후보의 모토는 “여성노동자의 권리보장”이다. 김영우 후보는 “여성 빈곤” 문제를 주요한 키워드로 삼아 청년과 노인 1인 가구에 대한 지원 사업 확대, 청년여성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을 내걸고 있다. 또 지역구를 공부하다 여성 농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 농민 건강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유진영 | 코로나19 이후에 돌봄 노동자들이 필수 노동이라고 많이 얘기를 하지만, 처우나 노동 환경 등은 굉장히 열악하잖아요. 돌봄 노동자 노동 기본권 보장, 생활임금 보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화학물질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유산이나 여러 질병 문제가 요즘 대두되고 있잖아요. 여성 집중 사업장에 유해물질 피해 조사를 해야 한다는 공약도 있습니다.

김영우 | 우리한테 경제적 평등이 존재하지가 않는데 어떻게 진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청년하고 노인 그리고 1인 가구의 공통점은 빈곤이에요. 또 빈곤하기 때문에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가정 내 약자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청주시는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에 비해 63%밖에 되지 않아요. 이런 곳에서 여성들이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조례를 만들면 공공임대주택에서 청년 여성을 10% 할당할 수 있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청주시 청년 여성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청주페미니스트연대 김영우 후보 ⓒ박상은

정송희 후보는 “장애여성의 평등한 삶”을 모토로 장애인 이동권, 장애 여성을 위한 의료 조건 확대 및 의료비 지원 등 장애인 인권을, 이성지 후보는 “우리의 권리를 연결”하겠다는 기조로 사회적 소수자‧약자들의 공공 정책 접근성과 이주민 권리와 기후정의 조례 제정 등을, 조영은 후보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집중하며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접근권 확대 및 여성 재생산권리센터 설립을 내걸었다.

정송희 | 장애 여성은 비장애인 여성과 다르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자기 태아에게 영향이 갈까봐 검사도 사비로 되게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출산 지원비에서도 차별이 있거든요. 그걸 없애고 싶어요.

이성지 | 기후위기의 결과는 더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으로 오잖아요. 이런 불평등한 결과에 대해서 조례에 명시를 하고 이 불평등한 결과의 회복을 공공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영은 | 낙태죄 폐지되고 나서 법개정안조차 통과되지 않고 그냥 멈춰져 있는 상태거든요. 지역 정부에서라도 먼저 임신 중지에 대한 지원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조영은 후보 ⓒ청주페미니스트연대바선거구조영은

공약에 대해 일일이 다 묻다가는 밤을 샐 것 같다. 청주 페미니스트 연대 공약 페이지에 들어가 직접 공약을 뜯어보도록 하자.

몇 가지 쟁점적인 사안을 물었다. 첫 번째는 이주민 관련 공약이다. 2018년 예멘 난민 입국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난민 추방을 주장한 흐름이 등장했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극우 정치와 수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주민 공약을 내면서 관련한 고민은 없었을까?

이성지 | 청주에 이주민들이 많아요. 또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고요.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가 기능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들이 되었단 말이죠. 이주민들이 분명한 기여를 하고 있는데 우리 것을 빼앗아간다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최근에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고 있잖아요? 제가 상당구 시의원 예비후보로 나왔는데 상당구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얼마 전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한 후보가 진짜 노골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자기 선거 현수막으로 성안길 곳곳에다가 내걸었어요. 이런 행보가 이주민들에게 가장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들 중에 여성 우선을 주장하면서 다른 소수자들의 문제를 부정한다거나 과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단일한 지향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속에서 다양한 견해를 가진 개인들이 각자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주민이라는 그 집단이 페미니즘 담론과 전혀 상관없는 타자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주민 안에도 여성이 있고, 페미니즘 담론에서 떨어질 수 없는 존재죠. 저의 관점에서는 만약에 그런 주장을 하거나 혐오를 정당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견해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을텐데요. 하지만 “혐오가 페미니즘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문제다”라고 단순히 비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이성지 후보 ⓒ박상은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하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민감해져야 한다고 봐요. 그런 경험을 나누려고 했을 때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성들이 이런 외집단 구성원들에 대해서 갖는 적대감이 굉장히 높다는 통계 결과도 있고요. 이러한 우려의 상당수가 어떤 공격성이라든가 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동기에서라기 보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고 봐요. 그래서 이 두려움이 “여자들이 너네들 지금 정보 잘못 알고 있다”, “틀렸어”라고 교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왜 그런 두려움을 갖게 됐는지, 그 맥락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 전체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주민들은 선주민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노동 환경이라든가 거주 환경에 놓여 있잖아요. 이에 대해 나 몰라라 하면 안 되고 2등 시민 취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주민 관련한 공약을 꼭 넣고 싶었어요. 이주민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불편이라든가 생활의 어려움 같은 것들을 언어 장벽이나 제도적인 장벽 없이 호소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겠죠.

플랫폼C | 청주페미니스트연대의 공약을 살펴보면, 비단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약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 정치’를 여성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오늘날 페미니스트 정치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송희 |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죠. 그런데 그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페미니즘 정치는 여성만을 위한 정치다’라 여기고 공약을 짰다면 제 주요 공약인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제가 언급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여성 장애인만 겪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가 아니라,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견해이자 운동이기 때문에, 장애인 이동권 문제도 얘기하는 거죠. 페미니즘은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그 차별은 장애, 나이, 직업, 정상성, 성별, 인종 등 되게 다양한 범주에서 존재하잖아요. 그래서 그 모든 범주에서의 차별에 반대하고 권리 보장을 외치는 거예요. 내가 여성 인권을 외치고 장애인의 권리 보장도 외친다고 해서 혼합적인 무언가의 운동이 아니라, 내가 당하든 타인이 당하든 모든 차별을 다 반대하는 거기 때문에 이게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즘 정치라고 생각해요.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정송희 후보 ⓒ박상은

조영은 | 저는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배제와 시혜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쪽은 배제하면서 다른 쪽에는 시혜를 베푸는데, 그 시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재면서 베푸는 것이죠. 계속 그걸 재고 있는 게 느껴져요. 저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페미니즘이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통제할 수 없는 대상으로 떠올랐는데, 세게 배제해보려다가 실패한 거죠. 저는 배제랑 시혜가 공고화된 상태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남을 것만을 요구 받는다고 생각해요. 계속 살아남아야지, 너네가 뒤처지면 안 되지….

근데 저는 20대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을 찍는 것은 당장 5년 이후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이 진짜 민주당이 옳아서, 민주당 하면 여성을 위한 세상이 만들어질 거라고 뽑은 게 아니고 그 5년만큼도 내 삶을 담보할 수 없으니까요. 계속 사람들을 분절시키고, 모든 삶의 책임과 위기를 다 개인으로 수렴해 버리는 이 시스템에서 가장 필요한 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야’를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 사회가 시스템의 문제라고 얘기하지 못하게 계속 만들고 있는 거고요. 너 개인의 문제라고 계속 강조하니까 나보다약한 사람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가 무엇을 외치면 구조와 시스템을 얘기할 수 있지?’ 생각했을 때 저는 그게 페미니즘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저한테 줬던 울림은 ‘노인 여성은 노인 플러스 여성이 아니고 노인 여성이야’ 라는 것이었거든요. ‘여성 장애인은 여성 플러스 장애인이 아니고 여성 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해야 돼.’ 이렇게 다른 삶의 온전함을 계속 바라보는 방식이 페미니즘이 저한테 준 영감인 것 같아요. 그 삶들이 어떤 시스템에 기반해 있는지를 계속 볼 수 있게 해줬고요. “너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야”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게 페미니즘 정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영우 |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엄청나게 인식론적인 변화가 오잖아요. 나의 가족부터 친구까지 모든 문화적 차원에 있었던 것들이 가부장제가 설정한 시스템이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허용된 기쁨과 허용된 희로애락만 누리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재 정치구조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틀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허락한 정치 구조 내에서 페미니즘 정치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는 시기가 또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페미니즘 정치를 통해 단 한 번의 투표로 단 한 명만 뽑히는 그런 형식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른 형식의 정치가 도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예비후보 운동을 하지만, 정치는 선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일곱 명의 후보는 더 넓은 정치를 상상한다.

조영은 | 저희가 얘기하는 정책이, 선거의 정치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번 선거가 끝나면 저는 진짜 걔네에서 혹은 여기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페미니즘 정치를 지역에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 활동하면서 지역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 우리의 지향과 내용을 같이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거든요. 그걸 기반으로 진짜 지역에서 페미니즘 정치를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이런 기대를 해요.

플랫폼C | 공약 만들면서도 지역 현안을 살펴볼 계기가 됐다고 하셨는데요, 예비후보로 시민들을 더 넓게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만나면서 또 새롭게 느껴지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예비후보 활동 과정에서 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유진영 | 이 옷(선거운동복)을 입고 다니잖아요. 처음에는 되게 부끄러웠거든요. 여기 건물주분이 옷 입고 있는 걸 보더니 ‘아, 선거 나오셨어요? 아 그 페미예요?’ 이러시더라고요. (웃음) 근데 그 분이 50대 중년 남성이거든요. 그 분 입에서 ‘페미’라는 말이, 사실 평생 써보지도 못했을 말, ‘페미’라는 말을 내가 하게 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페미를 대중화시켰나 이런 생각을 좀 하고. (웃음) 그리고 명함을 나눠드리면 명함을 되게 잘 받아주시고 고생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그래서 ‘청주에서 여성정치, 청년정치는 정말 가뭄이었구나’, ‘그냥 밖에 나가기만 해도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좀 많이 들었어요. 

청주페미니스트연대와 함께 하며, 노동당 소속인 유진영 후보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이성지 | 제가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충북여성공동행동에 나가서 발언을 한 번 했었는데. 그때 한 명이 우리가 나눠주는 선전물 하나를 보는 앞에서 이렇게 꾸깃꾸깃해서 던져 놓고 가는 거예요. 그 행위는 어떤 선언이잖아요. ‘이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적대감을 가지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람의 선언은 이 정도구나’, ‘이 사람은 본인이 이 정도만 액션을 취하면 주변에서 알아서 눈치를 봤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거든요. 근데 이 사람은 자기가 기분 나쁜 표정 좀 짓고 제스처 좀 취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너무 했나?’라고 생각할 거라고 보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유세를 나가면 전반적으로 잘 받아주시는데, 유독 특정 연령대의 남성들만 저 멀리서부터 옆으로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와요. 진짜 눈 마주치면 죽는 것처럼. (웃음) 그래서 제가 ‘안녕하세요! 후보로 나왔습니다!’ 이러면서 명함을 주면 대답도 안 하고 옆만 보면서 “아닙니다” 이러고 지나가요.

사실 ‘두렵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두렵긴 한데 막상 몇 번 그렇게 마주치면 상당히 웃기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진짜 힘으로 저를 실질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고, 그런 게 안 무섭다는 것은 아닌데요. 하지만 지금까지 마주친 상당수의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 뭔지 모를뿐더러 그 미움의 정도도 굉장히 귀엽다? 지금까지는 그냥 꼬마아이가 엄마한테 하던 방식으로 싫어하는 걸 드러내는 거예요. ‘엄마 이거 싫어!’ 이런 식으로. (웃음) 

김현정 | 제가 기억에 남는 건요. 선본 옷을 입고 택시를 몇 번 탔는데 다 물어봐요. 다 뭐냐고 물어보냐면 ‘선거 운동 도와주시나 봐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젊은 여자가 자기가 나갔을 거라고 전혀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후보라고 생각을 안 해요. 이렇게 여자 이름이 크게 적혀 있는데도 ‘누구 선거 운동하시나 봐요’, ‘교육감 선거 도와주시나 봐요’라고 하죠. 그래서 제가 그럴 때마다 ‘제가 나왔습니다’하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면 진짜 놀래요. 아저씨들이 너무 놀라는 거예요. 그리고 한 번은 여성 기사님이 모는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맞아요. 이제는 청년 여성이 그니까 젊은 여자들이 정치를 좀 해야 돼’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 반응들을 봤을 때 일단은 중년 남성들한테는 뭔가 사고의 전환을 준다는 게 기쁘고, 그다음에 여성 기사님들이 해주는 그런 따뜻한 응원들이 너무 좋죠.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눈을 마주쳐주지 않는 젊은 남성들의 반응을 보며 후보들은 “페미니스트 메두사설”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과 눈 마주치면 돌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게 아닐까?’라며. 최근 많은 여성들이 토론회에서 얼굴을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 얼굴을 내보이고 활동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라고 말한다. 선거는 대중에게 노출이 많은 활동이다. 결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헐리우드 영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중

플랫폼C | 그 누구보다 페미니스트로서 노출이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 관련한 고민은 없으셨나요? 비슷한 고민이 있는 다른 페미니스트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현슬기 | 생각보다 우리한테 관심이 없더라고요. (웃음) 이유를 떠올려봤는데 지방선거가 우리 전국 시민들에게 큰 의미가 없고. 그리고 청주라는 지역은 이미 비수도권이니까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안중에 없는 대상이 되어서 생각보다 온라인에서 조명을 안 받더라고요. 어, 근데 이러면 곤란한데 (웃음)

청주페미니스트연대 현슬기 후보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조영은 | 가부장적인 가정생활‧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은 못 나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내 일상이 위협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해요. 지금 저희 후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온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한테 뭔가 함께할 수 있는 여지들이 좀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와 저렇게도 하는구나 이런 생각, 이런 마음이 들면 좋지 않을까요.

정송희 | 저희 집안이 진짜 가부장적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예비후보 출마한 것도 사실 아빠가 엊그제 알았어요. 제가 엄마한테는 얘기를 했는데 엄마도 아빠한테 얘기를 안 하신 거예요. 제 안전을 생각해서. 그러다가 제가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그냥 제 명함을 부모님 앞에서 들이밀었죠. 봐 이러면서. 엄마가 얘가 미쳤나 이런 시선을 하면서 저를 쳐다보셨고. (웃음) 저는 약간 그래도 좀 무섭지만 내가 숨기는 것보다 그냥 욕 들으면서 그냥 할 거 하자 이런 생각으로 명함을 줬는데, 아빠가 생각보다 뭐라고 하지를 않는 거예요. ‘어디 여자가 정치판에 나서!’ 이러면서 그럴 사람이거든요. 근데 안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뭐지? 아빠가 원하던 나의 진로였나?’ (웃음) 사실 저처럼 가부장적인 가정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되게 많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여성, 그래서 못 나온 여성분들이 있으면은 제 이 일화를 좀 알려서 나와도 괜찮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도 진짜 진짜 가부장적이에요. 그런데 여성 청년이 정치판에 발을 들인 거를 뭐라고 하지 않고 좋게 보더라고요. 

플랫폼C |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나요?

정송희 | 왜 주제가 장애인이냐고. 그래서 왜겠냐, 나 사회복지과인데. 그래서 장애인 문제 관련해서 이야기 나누고. 아빠가 지방선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관점도 알게 됐어요. 네가 나온 선거구에 장애인 비율이 안 높은데 네가 이 동네로 나왔으면 동네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약을 내야지 장애인을 맡으면 안 된다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장애인 공약을 냈는지 얘기하면서 장애인 친화적인 동네를 만들면 우리 동네가 얼마나 발전되겠냐,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가 마무리 됐어요. 굿엔딩이었죠. 가부장 가정 환경에서 진짜 손에 꼽을 만한 굿엔딩이었어요. 

플랫폼C |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페미니스트 정치 어떻게 할 수 있지?’ 고민하는 분들께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셨는데, 각 지역에서 ‘우리도 좀 페미니즘 정치로 공동대응을 해봤어야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께 마지막으로 좀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실까요? 

현슬기 | 저는 사실 페미니스트로 나서는 것보다 정치 자체의 진입장벽이 너무 커서 엄청 고민을 했거든요. 지금 정치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범람하고 있는 위기들을 다 약자들한테 전가를 하고 있잖아요. 심지어 모든 문제들을 젠더 갈등으로 만들어서 약자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고요. 저는 이 나쁜 정치를 깨부수고, 평등하고 존엄한 연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에 도전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선에 도전하는 것은 지선에서부터 페미니즘 정치를 실현하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겠다는 것도 있지만 유권자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정치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람들도 ‘정치 별거 아니네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김현정 | 저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싶어요. 선본에서 우리한테 가해질 수 있는 폭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온라인으로 악플이 달릴 거로 예상을 한다든가. 물론 악플이 달린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유튜브에 페미니스트를 검색을 해서 굳이 우리 동영상을 찾아와서 거기에 꼴페미들 이런 댓글을 쓰는 그 정도의, 아까 이성지 후보가 얘기했던 얕은 혐오수준이다.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덜 두려워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거는 ‘같이 하자 함께하자’. 이 운동을 여기 청주에서만 하고 선거가 끝나면 없던 일처럼 되어 버리는 것보다 우리의 존재가 선례가 되어서 정말 많은 다양한 지역들에 이런 운동들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런 시도가 계속되어야 정치의 문턱도 낮아질 수 있잖아요. 그리고 좀 더 이 지방의 일들, 우리도 정책을 공부하면서 지역을 알게 됐듯이 지방에서 일어난 일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람들이 좀 더 알게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이 운동을. 

조영은 | 한국 사회에 정말 다양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이 있잖아요. 어떤 페미니즘은 혐오세력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경향을 보거든요. 다양한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상황과 자기의 상황을 함께 인식하는 그런 경향을요. 저는 그 부분에서 희망을 놓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성들의 정치 세력화가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대의 정치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계속 고민하고 그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함께 해보는 걸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후보들은 두려움을 넘어 용기를 갖고, 불안함을 넘어 희망을 보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성지 후보가 한 마디를 덧붙여 주었다.

이성지 | “어렵지만 여자로 태어나서 한 번쯤 해볼만 하다!”

지난 5월 11일~12일 지방선거 후보등록일, 청주 페미니스트 연대 소속 예비후보 중 3명이 후보등록을 했다. 7명 중 3명이라니 아쉬운가? 천만에. 사실 인터뷰를 기획할 시점에는 7명 중 1명만 후보등록을 할 것이라 들었다. 1인당 최소 1500만 원으로 예상되는 선거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말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한 4월 말에는 2명이 후보등록을 할 계획이라고 하더니, 결국 3명이 후보 등록을 한 것이다. 어떤 희망을 가지고 한 명 한 명 결심을 했을까? 예비후보 운동의 경험이 긍정적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희망차다. 등록하지 않은 다른 예비후보들도 세 후보와 함께 끝까지 선거운동을 할 예정이다. 

인터뷰 후에 후보들은 모두 함께 마녀행진에 가져갈 피켓을 만들고 노래연습을 했다. 마녀 행진에서는 발언도 하고 만장도 들고 북도 쳤다. 기획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이 일치하는 운동, 페미니즘 정치를 위해 지역 사안을 공부하고 논의해서 함께 만들어낸 공약, ‘다른 사람들이 공약 베껴가면 어떡해요?’라는 질문에 ‘그것이 저희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답하는 대범함. 이 기획을 이어 지방선거 이후에 어떻게 페미니스트 정치를 확장해 나갈까? 6월 1일 이후가 더 기대된다. 청주 시민들 부럽다! 🙂

인터뷰 : 박상은
만난사람 : 청주페미니스트연대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