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노가리골목 오비베어를 지키자고 외치는 이유

4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해오며 생맥주와 노가리라는 조합을 만들어낸 곳. 
배타적인 독점권을 주장하면서 사업체의 규모와 수를 확장하기보다는 

상생의 가치로 주변의 다른 가게들과 함께 을지로 노가리골목이라는 고유한 문화를 만들었던 곳.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거나 장사를 하는 지역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다양한 도시의 방문객들과 여러 미식가들의 목을 축여주던 곳. 
그래서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로부터 ‘백년가게’와 ‘미래유산’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곳. 

이 을지오비베어가 지난 4월 21일 건물주 방종식 만선호프 사장의 야간 불법 강제집행으로 인해 쫓겨났다.

어마어마한 폭력이었다. 직접적인 강제집행과 그로 인한 축출은 이 날 새벽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지만,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퇴거 압력이 있었고, 심지어 여섯 차례의 강제집행 시도가 있었다. 최초의 퇴거 압박이 들어왔을 때부터 이 뿌리뽑힘(강제철거)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강제집행 시도가 들어오면서 물리적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시간이 누적되면서 이 정신적·물리적 폭력을 견디는 고통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이러한 축출 과정만 해도 몇 년이 걸렸다. 

‘백년가게’, ‘서울미래유산’ 을지오비베어가 강제철거됐다

이는 단순히 한 가게의 문제가 아니다. 일련의 사회적 연쇄작용이다. 만선호프가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위해 주변 건물들을 사들이면서 다른 가게들에 가한 축출 압력과 그 폭력적인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노가리골목에 몇몇 가게들이 사라지고 곳곳에 만선호프 간판이 걸리기 시작하면 다른 가게는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가게마다 자신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 사건은 비단 을지오비베어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노가리골목에서 이미 사라진 다른 호프집들이 겪은 일이고, 지금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몇몇 가게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영세 상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강제집행 사태를 알리기 위한 선전전 유포물과 피켓

이처럼 개별적이고도 집단적이며, 연쇄적인 축출은 비단 을지오비베어나 노가리골목의 문제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강제 축출이 발생하면서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우리 주변의 여러 장소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는 건물주가 ‘소유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합법’적인 폭력으로, 자영업 소상공인들의 생계와 인생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집합적으로 만들어놓은 도시의 공통적 자산을 파괴했다. 이윤 축적을 최우선으로 삼는 약탈적 자본을 규제하는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이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을지오비베어와 OB베어에 연대해온 사람들은 강제집행 이후 매일 밤 을지오비베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을지오비베어를 지키고 이 골목의 여러 가게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거대한 싸움의 시작이 될 수 있어서다. 예배, 공연, 디제잉(DJing), 낭독 등을 통해 노가리골목에 오는 시민들에게 이 사안을 알리고, 만선호프 불매에 함께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선호프의 방종식 사장에게 지금이라도 대화를 통해 을지오비베어와 상생할 수는 방법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피케팅과 골목 행진도 한다. 지난 5월 11일에는 본격적인 투쟁 선포를 위한 기자회견도 가졌다.  

매주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진행 중인 투쟁일정

이렇듯 을지오비베어는 우리가 지켜야 할 구체적이면서 상징적인 공간이자 이름이다. 투쟁 과정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듯, 핵심은 을지오비베어만 지키자는 게 아니라 을지오비베어부터 지키자는 것이다. 이는 만선호프의 오랜 폭력을 멈추게 하는 직접적인 승리를 얻어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약탈적 자본으로부터 자영업 소상공인 세입자들의 생존권과 도시의 역사와 문화라는 공통의 자산을 지킬 수 있도록 도시정책, 임대차보호법, 백년가게육성사업, 서울미래유산 등의 제도적 장치를 고치는 일까지도 전부 포함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지금의 투쟁에 연대하고 서로 마주치면서 만들어지는 공통의 정치적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이 투쟁은 약탈적 자본에 대항하여 우리의 삶을 둘러싼 조건들을 하나씩 변화시키고 또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연대했던 이들은 우리가 조금씩 힘을 합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공통의 경험과 감각을 공유할 것이고, 또 다른 변화의 계기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맥주를 마시러 노가리 골목에 오는 일 외에도, 이곳에 와야 할 또다른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최혁규 / 플랫폼C 회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을지OB베어 투쟁선언문]
1980년, 을지로 공구거리 한편에 자리를 잡은 여섯 평 남짓 작은 가게의 역사가 시작된다. 4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웃가게 하나 둘 늘어나는 것 질투하나 없이 상생의 정신으로 골목을 일군 이 가게는 을지로노가리 골목의 원조 ‘을지OB베어’다. 그 공로와 역사가 인정되어 2018년 8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로 지정하였다. 우리는 아직 ‘백년가게’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도시의 생태계와 생존권을 고려하지 않은 막개발, 골목의 상권과 문화적 유산을 일군 소상공인의 계수되지 않는 노력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로 맞닥뜨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이다. 이 도시는 백년가게를 가지게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쫓겨남의 도시에서 을지OB베어와 같은 오랜 노포의 묵묵한 존재감이 빛나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 가게가 한 자리를 지키며 지금까지 장사할 수 있음으로 인해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떤 문화를 꽃피우게 되는지, 보이지 않는 곳의 묵묵한 노동이 도시의 유무형의 자산을 만들고 그것을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뚝심 있는 한 가게와 그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골목을 만든다. 재정을 쏟아 부어 억지로 조성하려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문화를 일군다. ‘을지로-노가리 골목’은 그렇게 모든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민들의 지지와 골목의 특수성이 인정받아 2017년, 중구청의 허가로 골목의 트레이드 마크인 야장영업을 허가 받았다. 독점의 골목이 아닌 상생의 골목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2014년, 인근 가게 만선호프를 인수한 방OO 대표는 골목의 작은 이웃 가게들 10개를 쫓아내며 문어발식 확장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2018년부터는 원조가게 을지OB베어의 건물주를 매수해 다섯 차례의 강제집행을 종용하였고, 결국 지난 2022년 1월 건물의 지분 62% 가량을 만선호프가 인수하며 건물주가 되었다. 만선호프 대표가 약속한 대화를 앞두고 있던 4월 21일 새벽 3시, 을지OB베어의 3대 사장과 연대인 2명이 잠을 자고 있는 가게에 만선호프가 고용한 용역 70여명이 들이닥친다. 여섯평 남짓 작은 가게를 집행하기 위해 70명이 야간에 동원되었으며 거꾸로 들려나와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진 3대 사장은 실신 상태로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모이기까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여섯 번째의 강제집행, 을지OB베어는 만선호프가 쫓아낸 11번째 이웃가게가 되었다.
이 골목은 ‘을지로 만선 골목’이 아니다! 이 골목은 오래된 한 가게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여러 가게들의 손 때 묻은 노동과, 공구거리의 단골들, 새로이 을지로를 찾은 모든 시민들의 발걸음이 함께 만든 공공의 골목이다. 이 골목의 원조가게 조차 현행법을 이유로 이렇게 허무하게 쫓아나야 한다면, 그 과정 중에 공공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며 손 놓고 있다면 서울시에 지킬 수 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다. 만들 수 있는 문화도 하나도 없다. 보존할 수 있는 골목 또한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 골목이 ‘을지OB베어의 골목’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우리는 단지 이 문화의 시작이자 일부로서 전통과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켜가며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 말했을 뿐이다. 강제집행으로 우리를 쫓아내고, 간판을 떼고 그 자리에 만선호프 간판을 붙인다 한들, 그래서 이 골목에 11번째 만선호프 간판이 붙는다 한들 이곳은 ‘만선호프 골목’ 이 될 수 없다. 이곳은 우리와 이웃한 가게들이 터를 잡아 반세기 가까이 지켜온 우리 생활의 터전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백년가게를 일굴 것이며, 이웃과 더불어 백년골목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이 골목을 찾아 우리 가게의 맥주를 마시는 손님이 ‘한결같다’ 말할 수 있는 그런 가게를 일궈갈 것이다. 42년을 지켜온 가게는 앞으로 그만큼의 시간을 또 견뎌내 100년 가게가 될 것이고 오늘을 돌아보며 골목을 지켰노라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상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건물주 만선호프는 상생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정치는 을지OB베어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을지OB베어가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난다. 을지OB베어도 지키지 못하는 서울시는 어떤 소상공인도 지킬 수 없다. 우리는 이 골목에서 끝까지 투쟁하며 상생을 외칠 것이다. 목이 쉬어라 외치는 절박한 목소리는 쫓겨난 모든 가게와 쫓겨날 위기의 모든 가게와 함께 하는 목소리다. 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우리는 요구한다.
1.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2.서울시와 중구청은 서울미래유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본래 가치 보존을 위해 을지OB베어 사태를 해결하라!
3.중소벤처기업부는 백년가게 지정을 넘어 백년가게 보존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2022년 5월 10일, 42년 동안 한결같이 문을 열었던 오후 1시
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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