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가 가꾸어야 할 자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상은 활동가 인터뷰①

활동가 인터뷰 시즌2

완연한 봄날이다. 지난해 여섯 명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진행한 인터뷰들은 사회운동 안팎에서 소소한 반향을 불러온 바 있다. 플랫폼c의 돋움활동가들이 기획하고 이끌어온 이 인터뷰 코너는 활동가들의 진지한 고민과 속내만이 아니라, 사소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 언어 등 형식을 갖춰 표현될 수 없는, 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쌓인 지식)처럼 존재해온 활동가들의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실패 혹은 성취의 경험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오늘날 젊은 활동가들이나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높은 열의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국 사회운동의 경험과 성취를 전해 듣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가 재생산의 메커니즘이 붕괴되고,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던 ‘활동가들의 지식’이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재생산 메커니즘을 새롭게 조직하는 과제만이 아니라, 그것을 회복하는 작업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인터뷰는 1세대보다는 중간 세대, 20대 후반~30대 중간 세대 활동가들로 집중되어 있기도 하다. 플랫폼c 활동회원 구성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연결’할 수 있는 주체들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시즌2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플랫폼c의 박상은 활동가다. 지난해 초부터 그는 매우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플랫폼c 반상근 활동을 하고 있고, 재난사회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습기살균제 참사나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가령 사회적참사위원회에서 보고서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는 지난 몇 년 사회적참사를 둘러싸고 진행된 한국 사회(운동)의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박상은 활동가에게 그간 활동 이력에 대해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대학 때는 학생운동을 했죠. 5년 동안은 대학에 있었고, 그 후 2년 동안은 학생운동 중앙조직 스태프를 했어요. 그리고나서 사회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G20대응민중행동 같은 연대체 담당을 많이 했고요. 그 뒤에는 그 단체의 기관지를 기획하고 발간하는 활동을 했어요. 2015-2016년에는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으로 일하다가, 특조위가 종료된 후에 다시 원래 단체로 돌아가서 <오늘보다>라는 잡지를 함께 만들다가, 2018년에 그 단체에서 탈퇴했습니다. 그 후에는 활동 전망을 찾으면서 대학원에서 사회학 공부를 하고 석사논문을 썼고요. 그 뒤에 지금의 플랫폼C에서 반상근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그의 표정에서 19년 전인 대학 1학년 때부터 이어져온 활동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그런 19년의 시간을 스쳐지나간 장면들은 어땠을지도 자못 궁금했다. 가령 ‘나의 첫 집회 발언’이라든지, ‘처음으로 쓴 성명서’라든지.

“처음으로 집회 사회를 본 기억이 나네요.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갔을 때 ‘겨울 민중연대 투쟁단’이라는 대학생 실천단의 단장이었어요. 겨민투는 여러 대학 학생들이 모여서 서울에 있는 투쟁 사업장들을 돌면서 연대하는 기획이었어요. 추운 날씨에 학생회관에서 함께 자면서 활동했죠. 그때 저는 순발력이 좋지 않아서 사회를 보는 것을 너무 무서워했어요. 그런데 투쟁 사업장들마다 집회 또는 선전전을 하기 때문에 단장으로서 발언과 사회를 하루에도 몇번씩 해야 했죠.”

급진적 학생운동의 일반적 사이클에서 두 달 남짓의 ‘방학’은 매우 귀중한 시간이다. 이 시기에 학생운동 조직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사업장을 순회하는 실천단이나 도시빈민과 연대하는 실천단 활동을 기획한다. 실천단 참가자들은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5박6일 간 숙식을 함께 하며 몸을 부딪친다. 낮에는 규율화된 집회와 토론 일정 등을 거치며, 생생한 투쟁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고, 밤에는 실천단원들과 뜨거운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숙박은 주로 전국 각 대학의 학생회관이나 빈 강의실에서 하는데,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전국 주요 도시의 대학들에는 좌파 학생운동 경향의 학생회나 동아리들이 잔존해 있어서,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 동지들’을 맞이하는 실무적인 역할을 자임했다.

“(겨민투 활동 기간이었던) 200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기륭공장 앞에서 집회 사회를 처음 봤어요.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나요. ‘내가 한 마디 잘못하면 어떡하지!?’하고 말이죠. 단장이다 보니 이것저것 챙겨야 했고, ‘사회’ 준비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발언은 3~5분 정도만 준비하면 되는데 사회자는 1시간 내내 집중해야 하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도 주시해야 하니 무서웠죠. 그런데 제 앞 순서에서 민중가수 한 분이 민중가요를 부르는데 솔직히 너무 못 부르시더라고요. (웃음) ‘저 분은 가수인데도 노래를 못 부르잖아. 난 학생인데 집회 사회 좀 못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확 풀리더라고요.”

리즈 시절 대학 시절

상은에게 이런 경험은 매순간 도전이었다. 하지만 어설프고 아마추어적인 경험들 하나하나가 활동의 자산이 됐다. 살다보면 우리는 누구나 ‘철저한 준비’를 강조하는 말을 듣는다. 한데 몸으로 배우는 경험의 지식은 집중적이고 강도높은 배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첫 휴가의 기억도 떠오르는데요. 사실 휴가를 어디로 갔는지는 기억 안 나요. 다만 기억나는 게 있다면 상근활동하겠다고 단체에 갔더니 5일의 휴가를 쓸 수 있고, 앞뒤 주말을 붙이면 총 9일(토-일-월-화-수-목-금-토-일)을 쓸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땐 오히려 실망감을 느꼈어요. ‘이렇게 놀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지 진짜 사회단체 사람들 너무하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웃음)

쉴 틈 없고 결의 높은 학생운동 7년의 경험을 지나 대학 사회 바깥으로 ‘진출’(학생운동 이후 사회운동 진입을 지칭하는 말)하다보니, 꽤나 기합이 들어가 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도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빡센 결의를 길고 안정적으로 지키는 것도 충분한 휴식과 여유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많이 쉬어야죠. (웃음)”

생각이 바뀐 계기가 궁금했다. 단 한 번도 방황한 적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상은에게도 활동을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다시 활동을 결의하고 지속하게 된 계기와 순간들은 무엇이었는지.

“‘활동을 그만둘까?’라는 고민을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아… 몇 달 전 그때가 관두기 참 좋을 때였는데…’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죠.”

사람의 기질과 성격은 저마다 다르니까 그것에 가치판단을 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그는 도망치거나 물러서려 하지 않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도망치지 않는 사람은 폭풍이 그치고 파도가 지나간 후에 복기한다.

“2016년 9월 말에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일이  끝나고 원래 있던 단체에 돌아가기 전에 넉달 정도 쉬었거든요. 그렇게 길게 쉰 게 그때 처음이었는데, 사실 은근슬쩍 관두려면 관둘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특조위 활동을 마치자마자 2016년 10월 말에 박근혜 탄핵 촛불이 시작됐잖아요. 심지어 그때 쉰답시고 읽은 게  에릭 홉스봄의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 김정한 선생님의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의 이런 책들이었어요. 홉스봄의 『혁명가』를 보면 2차 대전 시기에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이 담배로 당비 내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 파시스트들이 지배했던 시기 내지 못한 당비를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냈다는 얘기도 있죠. ‘이렇게 절실하게 갈망하고 실천했던 운동이란 게 대체 뭘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상은은 계속해서 단체활동에 대한 소회를 이어갔다.

“그렇게 다시 단체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한 1년 정도 뒤에 그 단체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그걸 둘러싸고 회원들 내에서 논쟁하게 됐거든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년 전에 관뒀어야 했는데 내가 왜 다시 운동을 해서 이런 꼴을 보고 있나’하고 말예요.”

당시 해당 단체에서 동반 탈퇴한 활동가들은 아래와 같은 탈퇴 사유서를 공개한 바 있다.

(…)
1. 사회진보연대가 현재 겪고 있는 곤란의 층위는 다양합니다. 이 모든 곤란을 이론적 통일성의 부족으로 진단하고 통일을 강요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일방적인 교육과 토론은 현실과의 정합을 떨어뜨리고 운동의 쇄신을 가로막습니다. 도리어 이념의 공백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붕괴론과 인민주의비판은 정세해석의 도구 중 하나이지 모든 활동 방향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2.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대중운동 평가안’은 결국 연대운동과 사회운동 참여에 대한 철회를  의미합니다. 한미FTA, 세월호, 박근혜 퇴진투쟁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이 투쟁이 결국 ‘민주당 재집권의 발판’으로 수렴되었다는 앙상한 평가를 남기는 것이 맞는지, 문제의 시작점에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는 단정적인 결론이 옳은지 다시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현재화를 고민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공백, 특히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고하고 ‘현재’의 운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웠듯 대중운동은 보수주의와 같은 부정적 이데올로기와 공명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평면적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중운동 평가는 사회진보연대 궤적과도 상충하며, 동의할 수 없습니다.
3. 윤소영교수의 성차별적 발언과 관련해 회원들 사이 문제의식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회원간담회 결과는 이행되지 않았고, 간담회 이후 회원토론회를 비롯한 회의 자리에서 간담회 결과와 상충하는 발언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제어는 없었습니다. 윤소영교수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인식의 상이함은 사회진보연대의 페미니즘의 현 주소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 토론회가 예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탈퇴 여부와 관계없이 페미니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4. 더 이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 2차 토론회 및 대중운동 평가, 종합토론회 등의 논의 과정 속에서 이견을 제시한 회원에 대한 공격이 정당한 토론을 가로막았습니다. 특정 회원들에게 ‘의견을 내지 말라’는 요청을 하거나 토론문을 자료집에서 제외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이견을 나눈 뒤 입장을 통일하는 것이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신뢰에 기반 하지 않은 토론이 반복되는 것은 모두의 발전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해 조직을 떠납니다. 더 나은 사회진보연대를 위해 다시는 이런 방식의 토론을 반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상의 이유로 우리는 사회진보연대를 떠납니다. 헤어지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때 다시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마음과 몸 건강히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2018년 11월 30일 / 회원 **명 일동

2018년 말 박상은 활동가는 오랫동안 몸 담고 의지해온 사회운동단체에서 탈퇴한다. 문제의식을 함께 나눈 여러 동료들과 함께였다. 갑작스레 상근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다시 쉬게 됐다. 한데 이 두번째 휴식은 상은 활동가에게 꽤나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다. 활동과 전망을 다시 고민하며 시작한 상근 활동을 본의 아니게 중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엄청 힘들더라고요. 계속 활동하고 싶은데 어디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러니까 일상이 거의 파괴됐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내가 활동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 노조나 다른 단체에 일자리를 구하고 싶진 않았어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어찌 생각해보면 흔한 일이다. 그런데 그는 좀 더 진전된 고민을 하게 됐다.

“저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싶었어요. 근데 조직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플랫폼C에서 함께 하고 있는 활동가 중 한 명은 당시 제주도에 있었고, 또 다른 활동가는 중국에 있었어요. 멀리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 주로 만나던 사람이 저 포함 셋이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냥 알음알음 만나면 되잖아’ 이런 정도의 고민이었죠.”

이듬해인 2019년 2월 16일, 상은 활동가를 비롯한 20여 명은 작은 모임을 갖는다. 현실적 조건에서 어느 정도의 빈도로 모임을 가질 수 있는지 조사하고, 사회운동 정세를 둘러싼 토론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매월 주제별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었는데, 중국의 노동자운동, 포퓰리즘, 페미니즘, 공산주의, 동아시아 정세, 기후위기, 서울대 A교수 투쟁과 조국 사태, 검찰 개혁 담론 등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를 아울렀다. 플랫폼c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은 건 2020년 이후부터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게 된 것도 있어요. 혼자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난 한가하니까’, ‘조직 만들어야 하니까 만나자’고 해서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활동하는 단체와 운동이 있고, 자신의 활동 근거지가 있거든요. 생각해보니 저 혼자 ‘이거를 해야 하니 모이자’고 보채는 식이 되면 마음이 어긋날 것 같았죠. 저도 저만의 일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바쁘게 돌아가는 전업 활동을 시작하기엔 새로운 조직을 만들 여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대학원에 갔죠.”

활동가의 세 가지 요소 : 조직·조정·돌봄

인터뷰 시즌1에서 우리는 종종 인터뷰이들에게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가요?”라는 우문을 던지곤 했다. 누군가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활동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뭘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질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둘 다 맞는 말이죠. ‘누구나 할 수 있다’ 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 하나로 답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활동가를 하나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직업보다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라든지, ‘이 재능 저 재능이 다 필요하다’라고 생각하곤 했는데요. 특정한 조직 기풍에서는 특정 재능이 높게 평가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가 학생운동 할 때 저희 조직은 중앙간부가 되려면 글을 잘 써야 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는데에 엄청 재능이 있었지만 글을 못 쓰는 사람들은 많이 괴로워했어요. 그렇게 한 재능만 중요하게 보는 조직은 별로 좋은 조직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 각자 다른 기준으로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마침 박상은 활동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우리 모두 재능이 있고, 우리가 그냥 각자 할 수 있는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면 된다”는 뜻이 되잖아요. 더 나가면 ‘잘하는 것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활동에 기대거나 누군가를 착취해서 활동하게 되는 일이 생겨요. 그래서 글이나 말, 그림같이 특정한 재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우리가 훈련해야 하는 자질이 있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됐어요. ‘조직’, ‘조정’, ‘돌봄’ 이 세 가지가 우리가 훈련해야 하는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왔죠. 저도 옛날부터 ‘조직가 아닌 활동가는 없다’고 생각해왔고, 중요한 원칙으로 여겨왔어요.

‘조정’은 좀 더 연차가 쌓이면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조직 안에서건, 여러 조직 간 관계에서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성향 차이들로 인한 미세한 갈등도 있잖아요. 그 사이를 조정하는 게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은 조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특히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느꼈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체와 단체를, 일과 일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조정하는 사람이 진짜 중요하다고요.

‘돌봄’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 생각하게 됐는데요. 돌봄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조직’과 ‘조정’ 둘에 들어가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꼭 사람을 챙기는 것 뿐만 아니라 공간을 돌보는 것, 조직의 체계를 돌보는 것이기도 하죠. 이런 돌봄은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는 좀 더 잘하고 누구는 원래 좀 잘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훈련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새 유행하는 MBTI로 따지면, 저는 ‘훈련된 E’에 가깝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요. 원래는 ‘I’였는데 사회운동 경험 속에서 훈련된 E가 된 거죠. (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김윤영 활동가는 “종합 예술인이 돼야 한다”고 얘기했다. 재정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선전용 포스터도 만들어야 되고, ‘이런 일 할 사람 모아야 한다’ 싶으면 사람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르네상스적 인재’라고 하더라고요.”

굳이 구분한다면 활동가적 자질은 ‘스페셜리스트-되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되기’를 지향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사회운동에도 분명 전문가주의적 경향은 존재하고, 전문성을 필요로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훈련해야 하는 자질’이라는 말이 귀에 콕 박힌다. 활동가들 역시 계속해서 스스로를 바꿔나가고, 모르는 것을 배워야 하니 말이다. 물론 그건 활동가가 아니라 해도, 누구에게나 있으면 좋은 덕분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을 바꾸기 위해 애쓰지만, 사실 자신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활동가와 연구자 사이의 경계

최근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연구활동가’로 규정하기도 한다. 반면 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플랫폼C 반상근 활동과 사회학 박사 과정이라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활동가’와 ‘연구자’라는 역할을 부여잡고 있는 박상은 활동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둘은 조율이 가능한 것일까, 아닐까? 불가능하다면 무엇 때문일까?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조직과 조정, 돌봄을 해야 하는데, 연구 작업에 열중하다보면 이 세 가지를 하기란 어려워요. 활동가는 사람을 만나고 보이지 않는 일을 해야하는데, 연구자는 어느 정도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사람을 만나는 데 시간을 쓸수록 연구한 것이나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덜 쓰게 되죠. 그래서 저는 같이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공부하면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죠. 이런 사람들만이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긴 한 것 같아요. 그걸 찾는 건 필요하죠. 한데 그걸 위해서 ‘우리에게 연구활동가가 필요하다’라고 까지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우연히 경계인으로 살게 되었을 때, 양쪽에 생길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무엇인지 인지하는 게 우선은 중요한 것 같아요.”

꽤나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관념 속에서 당위와 논리를 만들기보다 시차적인 관점으로부터 사유한 흔적이 엿보였다.

“활동하는 단체에서는 활동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연구하는 것을 어떻게 활동으로 이어가지?’ 라는 생각보다는요. 활동과 연구주제가 잘 연결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고, 일치하더라도 연구자의 연구질문과 활동가로서 해야 하는 일과 다뤄야 하는 의제는 많이 다르거든요. 연구자는 원래 전문가이기 때문에 한 가지만 쭉 파고, 남들이 관심이 없을 때에도 계속 업데이트를 해야 해요. 그렇지만 활동가는 생겨나는 현안마다 사람을 조직하고 대응방안을 짜야 하죠.”

그럼에도 연구자로서 ‘공부’하면서도 ‘활동’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도 사회운동에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다. 좌파 사회운동조직의 활동가로서,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으로서, 그리고 이후에는 재난사회학 연구자로서 공부해온 박상은 활동가에게도 그런 고민은 있었을 것이다.

“특조위 조사관으로 일하고난 후 세월호 진상규명에서 사회운동이 중대한 역할을 했었지만 한계도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 한계는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만이 아니라 한국의 사회운동 전체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죠. 예컨대 구조적 문제를 다루려고 했지만 의도치 않게 법적 책임을 묻는 운동으로 축소되었죠. 저는 운동이 했던 중대한 역할과 동시에 한계 같은 것들을 잘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비단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 뿐 아니라, 한국 사회운동 전체의 상황에 있어서도요.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사회운동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국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국면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이 연구를 한다고 해서 현재의 운동과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죠.

활동가와 연구자의 경계에 있으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 대해 이 정도의 논의도 학계에서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자들은 운동을 평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실제로 알기가 어렵죠. 저는 활동가로서 참여했고, 자기 평가의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21년 박상은 활동가는 「재난 인식론과 재난조사의 정치 :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을 발표한 바 있고, 한국과학기술학회에서 발행하는 『과학기술학연구』에서도 「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종결되지 못하는가? : 재난의 책임 배분 딜레마와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란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당시 플랫폼c 월례포럼을 통해서도 이 논문 내용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가졌고, 여러 언론들에도 소개된 바 있다.

[한겨레] ‘세월호 조사’ 결론 못 낸 결정적 이유, 그리고 1년의 기회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처벌’ 관점에 갇혀 진상규명 지지부진”

앞으로도 박상은 활동가는 사회운동에 즉각적으로 도움되는 건 아니라도, 운동을 중심에 두고 연구주제를 고민해나갈 생각이다. 그에게 요즘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물었다.

“요즘 2000년대 초중반 학생운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꼭 하려고 하는데요. 이게 지금 당장 학생운동을 잘 되게 하기 위한 연구는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 학생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면 다른 연구자들은 아무도 안 하고 지나갈 수가 있고, 접근하기도 어려운 주제거든요. 돌아보니 2000년대에 계속 ‘운동의 위기’라고만 규정하면서 당시에 존재했던 긍정적인 면을 잘 평가하지 못했더라고요. 그 역사를 잘 남기면 그 중 어떤 부분이 나중에 후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겠죠.”

그는 전문성이란 것에 대해 빠지기 쉬운 오류를 지적한다.

“분야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활동가 혹은 연구자가 더 전문성이 있냐 없냐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가령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고 할 때 활동가가 하루이틀만에 조사해서 하긴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계속 관심 가져온 주제가 아니니 활동가가 조사해서 하는 얘기는 전문적으로 10년씩 연구해 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와 다를 수밖에 없죠. 사회운동이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은 전문가를 모셔서 듣고 평가하는 게 필요하죠.

그런데 활동가가 가장 전문가인 의제도 많거든요. 플랫폼C 월례포럼으로 열었던 주제들 중에서 특히 좋았던 행사들은 작년 11월 있었던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활동가의 ‘주거권 문제의 대안들’이나 올 1월에 있었던 “버스를 타자 with 박경석” 같은 것이었어요. 그 영역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오래 활동한 사람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가장 전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우문이었던 것 같다.

운동은 ‘연결’이다

시즌1 인터뷰에서 항상 질문했듯, 이번에도 ‘나에게 운동이란?’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산다’고 하지만, 실은 많이 분할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삶을 몰라요. 모두 같은 노동자라고 하지만, 울산에 사는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저 멀리서 사는 플랫폼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잘 모르고,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삶을 잘 모르고, 한국인 정주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잘 모르죠. 가깝게 사는데 이리도 서로 모를 수가 있나 싶은데요. 사실 그걸 계속 연결하는 것,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사실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계속 말하고, 움직이고, 맥락화하고, 개입하는 게 활동가와 사회운동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평소 박상은 활동가는 플랫폼C가 나름의 지향을 갖되, 열린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둘은 상반되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두 가지를 모두 견지하는 게 가능할까?

“하나하나의 정세적인 계기에서, 토론을 통해 입장을 만들고, 그걸 축적하다보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난 달에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토론을 했잖아요. 그때 우리가 이 공동 토론을 통해 어떤 입장 혹은 전쟁에 대한 어떤 원칙을 결정했다는 게 구성원들 내에서 쌓이고, 그 과정에서 민주적이고 열린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것, 그런 결정 결정들이 쌓이면서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은가 싶은 거죠. 많은 조직들이 ‘우리는 열려 있다’고 표명하지만 사실은 표명만으로는 되는 게 아닐 거에요. 그런 경험을 실천적으로 축적해야죠. 자신있게 ‘지향을 갖되 열린 조직’이라는 건 이런 형태야, 라고 규정하진 못하지만 이런 과정을 성실하게 해나가는 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

인터뷰 : 보리, 현빈, 현창
만난사람 : 박상은
편집 : 홍명교

[2부에서 계속]

시즌1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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