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은 어떻게 ‘돌봄’이 될 수 있을까?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논점

텔레그램 채널 ‘노동안전보건소식’을 구독하고 있다. 관련 소식을 그날그날 스크랩해 올려주는 채널이다. 노동안전 정책과 사회운동 소식을 따라가기 위해 구독을 시작했는데, 산재사망 뉴스도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온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사고와 질병을 포함한 산재 사망자수는 2,062명. 하루 평균 5.6명이 사망하고 있으니 뉴스가 매일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건만, 구체적인 사례로 전해지는 뉴스를 볼 때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마음을 굳게 먹어야만 기사를 읽을 수 있다.

통계상 전체 산재 사망자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2013년 산재 사망자수는 1,929명이었다). 또한 기사의 주요 소재가 되는 사고로 인한 산재사망은 줄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산재사망 뉴스를 접하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몇 년 전만 해도 산재사망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어도,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음을 굳게 먹고 이 뉴스들을 다 보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15년 사회운동의 성과, 중대재해처벌법

한국사회는 일터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모아 새로운 법 하나를 만들어 냈다. 바로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의무 위반에 대해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법률이다. 2003년, 노동건강연대가 해외의 기업살인법 논의를 소개하면서 한국에도 이러한 아이디어가 알려졌다. 당시 영국에서는 1987년에 발생한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사고 및 1997년 패딩턴 열차사고 등을 계기로 기업살인법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고, 캐나다에서는 1992년 웨스트레이 광산 폭발 사고를 계기로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각국의 사회운동을 통해 영국에서는 2007년에 기업살인법이, 캐나다에서는 2004년 웨스트레이법이 제정됐다.

한국에서는 2006년 노동건강연대‧민주노동당‧민주노총 등이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을 구성하여 활동을 시작하면서 운동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2010년대 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사망 문제가 ‘위험의 외주화’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전까지는 캠페인에만 머물렀던 기업살인법은 2013년 드디어 법안의 형태로 발의되었다.

산재사망 대책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 출범식 및 기자회견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기업살인법 운동의 전기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업살인법의 범위를 시민재해까지 확장하자는 문제의식이 부상했다. 산재사망과 시민재해를 포함한 입법 초안이 마련되었고, 이때 법안의 명칭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확정된다. 2015년 7월 22일 21개 단체가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연대’가 발족하고 입법청원도 하면서 이전보다 운동이 확산되기는 했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대 국회에서는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그러나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2018년 12월 태안화력 고 김용균 사망사고 등이 이어지면서 산재사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는 계속 높아져 갔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를 계기로 2019년 1월 15일,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기도 했다. 무려 28년 만의 전부 개정이었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김용균법’이라 불렸다.

2020년 4월 29일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는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산재를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2020년 5월 27일 133개 단체가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출범했다. 5년 전에 비해 훨씬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힘을 모은 것이다. 2020년 연말, 국회는 다른 법은 다 통과시키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절대 상정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국회 앞에 농성장이 차려졌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고 이한빛의 아버지 이용관 씨 등이 한 달 가까운 기간 단식농성을 한 끝에야 중대재해처벌법은 간신히 통과되었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은 수많은 노동자들과 참사 피해자들의 죽음과 죽음을 잇대어, 또 자신의 가족과 동료 시민의 죽음을 막지 못한 이들이 흘린 눈물과 눈물을 모아 만들어졌다.

‘처벌인가, 예방인가’라는 구도의 문제

중대재해처벌법만큼 제정 후 시행 전까지 논란이 많은 법이 있었을까.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운동을 주도한 사회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법이었다. 산재사고의 약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이 3년 유예되었고, 사고가 반복되었던 기업에 대해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삭제되었다. 그러나 기업친화적 입장에서 이 법은 시행령을 통해서든, 개정을 통해서든 어떻게든 빨리 약화시켜야 하는 법이었다. 작년 12월 2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산재사망사고 현장을 방문해, 노동자의 실수 때문에 비참한 일이 발생했다며 사고 뒤 책임을 논하기보다 근본적인 사고 예방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발언했다.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처벌 강도를 징역형에서 벌금형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다.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집중하자는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기업과 경제지, 보수언론 등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처벌보다 예방’이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너무나 맞는 말이어서, 유사한 주장을 계속 듣다 보면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며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불편하게 들릴 정도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이름에도 있듯이 기본적으로 ‘처벌’에 관한 법이고, 예방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 김용균의 죽음으로 간신히 전면개정될 수 있었던 그 법 말이다. 사실 중대재해처벌법은 대체 왜 법으로 정해진 예방조치를 기업이 스스로 시행하지 않는지를 골몰하다가 제안된 법이다. 사회운동가들은 기업의 안전에의 투자, 안전문화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관심과 의지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은 한 전문가의 말처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리더의 관심과 노력을 촉발할 수 있는 법’이며, 예방을 위한 핵심 법률은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산재 예방 노력을 위한 지렛대인 것이다.

둘째, ‘처벌보다 예방’을 주장하는 이들보다 ‘제대로 된 처벌’을 주장하는 이들이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훨씬 많이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이 법 하나로 산업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도록 근로감독을 더 체계적으로 할 것을, 전문적인 규제정책을 위해 산업안전보건청 등을 설립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작업 현장을 잘 아는 노동자들과 함께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고, 급박한 위험이 생겼을 때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실제로 행사될 수 있어야 하며, 예방을 위한 인력과 예산 집행을 적절히 하라는 등 이미 법에 정해진 권리 중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한다. 제대로 된 사고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처벌보다 예방’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기업이 스스로 예방 조치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조항을 더 약하게 개정해야 한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 주장을 사용한다. 현재 한국의 맥락에서 ‘처벌보다 예방’은 어떻게 하면 예방 조치를 제대로 작동시킬까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기 위함이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대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수사적 의미가 강하다.

Reuben Kadish, Industrial Accident, ca. 1941
‘처벌’은 어떻게 ‘돌봄’이 될 수 있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겨우 세 달이 지났다. 경제지에서는 법 시행 100일이 지났는데도 산재사망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가 없다는 방증이 아니냐고 한다. 이 법이 처음에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기업이 예방조치는 뒷전으로 하고 법정 싸움에만 예산을 쓴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누가 처벌받고 받지 않았느냐만 쳐다본다면, 그래서 앞서 언급한 수많은 예방을 위한 방안들이 제대로 논의되지도 시행되지도 못한 채 사장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정말 처벌만을 위한 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기업이 법률자문 계약에 들일 돈을 예방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사용하고,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법정 싸움에 쓰기보다 작업장에서 죽고 다치고 병드는 이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쓸 때, ‘처벌’을 위한 법은 ‘돌봄’을 위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안전만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착취해 나의 안온한 삶을 보장받기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이다. 그곳에서 돌봄의 새로운 원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4호 : 돌봄의 정의』 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커버 사진 ⓒ김한주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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