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동아시아의 국제연대를 위해 내딛은 한 걸음

서평 | 동아시아의 국제연대를 위해 내딛은 한 걸음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서평

2022년 2월 24일

[읽을거리]비평동아시아, 중국, 동아시아와 사람, 활동가

계간지 『황해문화』 2021년 겨울호에 실린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서평을 필자와 ‘황해문화’ 측의 동의를 구해 전재(轉載)한다. 필자 하남석은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으로, 저서·역서로 『차이나 붐: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 대안적 문명과 거버넌스』(공저), 『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혁명에서 ‘신시대’로』(공저) 등이 있다. 중국의 체제 변동과 대중 저항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착한 중국인은 1989년에 다 죽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중국 관련 기사나 유튜브 영상 아래 댓글창을 열게 되면 자주 볼 수 있는 혐오 표현 중 하나다. 한국의 온라인 게시물에서 반중 정서를 넘어 중국에 대한 혐오 반응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들의 묘사 속에서 중국인들은 전체주의적인 자신의 체제를 다른 어떤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주변 국가들에 강압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로 그려진다. 그 속에서 다양한 중국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우월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자의 모습으로 납작하게 일원화되어버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정당화된다.

하지만 이런 혐오표현을 즐기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다수가 아니듯, 이 맹목적 애국주의에 함몰된 중국인들도 다수가 아니다. 나아가 중국에서도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현은 무엇인지 질문하며 자신의 체제를 좀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가와 지식인이 우리 사회를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고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는 저자가 중국 대륙에서 바로 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젊은 저항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교류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홍명교는 활동가이자 글을 쓰는 연구자이며 영화를 만드는 문화예술인이기도 하고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의 직업을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항상 부지런하게 여러 영역에 걸쳐 활동하는 이이며, 열정적이면서도 냉철한 시야를 가지고 우리 사회와 세계의 정세를 읽어내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의 오랜 활동에 지쳐 자신을 회복하려고 2018년 초 중국으로 훌쩍 길을 떠났다. 물론 그가 중국에 간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한편에서 중국의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을 만나 교류하고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단초를 찾아보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먼 길을 나선 것이었다. 그는 현재 아시아의 사회운동이 100년 전보다 더 교류가 없는 상황이며 국제적인 소통은 거의 없기에, 차후 사회운동에 기회가 오더라도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아시아의 진보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3억 농민공, 한국과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노동자가 국제적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어가 좀 익숙해지자 중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타국에서의 마주침과 환대, 우정과 열정의 나눔

저자가 처음 찾아간 곳은 베이징 외곽의 피촌(皮村)이었다. 피촌에는 노동자(농민공) 문화공간이자 풀뿌리 운동조직인 ‘베이징 노동자의 집’이 있다. 베이징 노동자의 집을 중심으로 중국의 많은 청년 활동가가 농민공 교육운동을 비롯해 문화예술운동, 소비자 협동조합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교류한다. 저자는 피촌 방문을 통해 그곳에 자주 방문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고 또다시 이들을 통해 베이징의 여러 조직과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각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의 학생운동가, 도시 안에서 새로운 문화 및 거주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는 706 청년공간, 투더우코뮌(土逗公社)와 격류망(激流網) 등 중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활동가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과의 우연하면서도 필연적인 마주침, 중국 활동가들의 환대와 우정 속에서 서로의 운동을 소개하고 경험을 나누는 모습들이 책 속에 펼쳐진다.

이런 만남과 토론을 읽으면서 2007년의 개인적인 기억도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여러 조직 중 하나로 잠깐 소개되는 베이징의 ‘유토피아(烏有之鄕)’라는 곳에서 1년간 외국인 회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연구하고 있던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에 관한 인터넷 자료를 찾다가 여러 글을 모아놓은 유토피아라는 사이트를 발견하였고 오프라인의 사무실 겸 서점이 베이징 대학교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주말마다 중국의 유명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와서 강연을 했고 수요일 저녁에는 마오쩌둥 시기의 영화나 중국의 빈부격차나 사회문제를 다룬 해외 다큐멘터리를 번역해 상영회가 열리고 있었다.

유토피아의 문을 들어선 순간 마치 한국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 대학가 앞의 사회과학 서점들에 들어온 듯했다. 하지만 당시부터 이들 사이에도 이념적인 분화가 일어나기 시작해 2007년 말 무렵에는 주로 구좌파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마오쩌둥주의를 따르는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유토피아의 주류가 되었었다. 한편,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저 중국의 남쪽에서는 여러 노동NGO와 인권변호사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 책은 그로부터 10년 뒤의 상황들을 담고 있는데, 여러 억압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당시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조직과 모임, 웹사이트 등이 만들어졌고 중국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과 교류가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또 한편으로 반가운 것은 저자가 피촌을 비롯해 여러 모임을 갖게 되는 계기에는 그동안 한국의 비판적 중국연구자들과 진보 언론인들이 중국의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 비판적 사상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것이 그 기반이 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한국의 중국연구에서 주류적인 흐름은 아니더라도, 기층에서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참조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대안적 근대를 모색하던 사상가들과 활동가들의 흐름을 번역하고 소개해온 것이 동아시아 국제연대를 위한 소중한 만남의 조그만 뒷받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물론 이 책은 연구자들의 번역이나 소개와는 또 다르다. 연구자들의 작업이 주로 관찰이나 평가에 머물렀던 반면, 이 책에서는 저자 스스로가 활동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를 활동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하고 각자의 역사적 경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나누고 있다. 연구자들의 작업이 중국 활동가나 사상가의 이야기를 번역하거나 듣고 전하는 쪽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저자는 중국 활동가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한국의 운동 경험속에 녹아든 공과 과를 보다 냉철하게 전하면서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활동의 계기로 만들어나간다. 이를 통해 독자 역시 이들의 고민을 따라가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특징이자 큰 장점이다.

중국과 우리의 차이와 동시대성

저자가 만났던 중국의 청년활동가, 특히 각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 학생들은 일명 자스커지(佳士科技: Jasic Technology) 사건으로 당국의 강력한 탄압에 직면한다.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2018년 여름 자스커지라는 선전의 큰 기업에서 노조를 세우려는 노동자들이 억울한 해고를 당하였고, 이들이 노조를 조직하려 하자 사측이 오히려 어용노조를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억울한 상황이 중국의 SNS를 통해 알려지자 각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 학생들이 자스 커지 지원단을 만들어 직접 현장에 내려가 노학연대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곧바로 당국의 강력한 탄압에 직면했으며, 그해 가을부터 각 대학에서 이 동아리들은 등록취소되고 이들을 대체해 어용 동아리들이 생겼다. 그리고 지원단을 통해 노학연대 활동에 나섰던 학생 활동가들은 거의 대부분 당국에 연행되었다. 이때 연행되거나 가택연금 된 관련자들만 100여 명이 넘었다. 당시 만들어졌던 어용노조와 어용동아리들이 사회주의 없는 사회주의, 마르크스 없는 마르크스주의를 상징했기에 이를 풍자하여 ‘록르크스주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르크스의 중국어 표기가 ‘馬’克思라는 것을 이용해 진실과 거짓을 바 꿔치기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빗대어 ‘록르크스(‘鹿’克思)’ 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다. 풍자는 시원했지만 당국의 탄압은 촘촘하고 거셌다.

중국 당국의 탄압은 자스커지 지원단에만 그치지 않았다. 광둥 지역의 오래된 노동NGO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당국에 연행되거나 고향인 농촌으로 강제귀향 당했다. 진보적 웹사이트들은 폐쇄되거나 SNS 계정을 정지당했다. 피촌의 노동자의 집은 폐쇄는 피했지만 그들의 활동은 제약 받았다. 저자는 중국에 좀더 오래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엄혹해지면서 중국 체류 1년 만인 2019년 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대신 이들과 나눴던 경험, 이들의 엄혹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렇듯 활동가들에 대한 당국의 엄혹한 탄압을 보면 중국의 현재 상황은 한국의 1980년대나 그 이전의 독재 시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당시 우리와는 달리 중국의 활동가들은 반체제인사로 보기 힘들다는 차이가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오쩌둥주의를 자신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의 질문은 스스로의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하는 중국이 어째서 이 체제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탄압하느냐 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현 체제 속에서 합법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한편,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또 깨닫게 되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청년 세대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동시대성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청년들과 중국의 신세대 농민공들이 받는 처우의 차이는 크지 않다. 둘 다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여러 산업재해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으며, 중간착취자들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제약당하고 고통받는다. 권리 의식도 나름 강하고 불공평에도 민감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에 절망이나 자포자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 다니는 비교적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학벌의 위계,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기업들의 과로문화는 스스로를 ‘실패청년’으로 여기게 한다. 이런 중국의 상황 속에서는 당연히 시대와 사회에 저항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한국과 중국의 청년 노동자들간의 공통점은 공감과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절망 속에서 싹튼 연대의 희망 : “청산이 있는데 땔감을 걱정하랴”

책 속의 자스커지 지원단 활동을 다룬 부분을 읽다가 2018년 겨울에서 2019년 새해로 넘어가던 시기 자스커지 지원단 학생 활동가들과 나눴던 SNS의 메시지함을 다시 살펴봤다. 당시의 엄혹한 탄압과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2~3일에 한 번씩 가명의 아이디를 바꿔가며 여러 번 연락해 국제연대를 요청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탄압 상황을 한국에 많이 알려달라고 부탁해왔으며,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게 “당국이 우리를 다 잡아갈 수는 없다. 자스커지 지원단은 광활한 대지의 들풀과 같아서 당국이 우리를 다 태워버리려 해도 태울 수 없다. 전국의 좌파 동지 들을 어떻게 다 잡아가겠는가?”라며 굳센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 뒤 이들과의 연락이 끊겼고 대대적인 검거로 잡혀들어간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그들이 제발 무사히 풀려나기만을 기원할 따름이다.

저자도 비슷한 처지의 중국 활동가에게 우려를 담은 메시지를 보내자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고 한다. “중국엔 이런 말이 있어. 청산이 있는 데 땔감을 걱정하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오히려 더 굳센 장기적 전망 속에서 의연하고 낙관적이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이들은 한국의 운동 상황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자신들이 읽었던 중 국어로 번역된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뒤의 이야기들을 더 궁금해하며 영어나 중국어로 된 한국의 사회운동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중국에도 많은 홍명교가 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도 위에신(岳昕)과 천커신(陳可欣)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더 많이 교류하고 연대할 것이며, 서로의 역사적 경험을 나누고 조금씩 동아시아의 국제연대를 만들어나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과정의 산물이며 또 한 걸음을 신중하지만 힘차게 딛고 나간 것이다.


글 : 하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