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의 시대』 서평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낙관은 무엇인가?

※ 이 서평은 지난해 여름 플랫폼c 회원들이 진행한 세미나를 통해 공동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난해 봄 출간한 『추월의 시대 – 세대론과 색깔론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성장기』(메디치미디어)는 ‘MZ세대’라는 키워드를 화두로 삼고 등장한 책들 중 하나다. 김시우, 백승호, 양승훈, 임경빈, 하헌기, 한윤형 등 이 책의 필자들은 언론지면이나 유튜브에서 발언해 온 30대 논객들이다. 저자들은 ‘세대론’을 넘어서겠다며 포부 넘치게 ‘추월’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하지만, 결과적으로는 586세대에 대한 세대론적‧계층론적 비판에 머무르고, 사회 모순에 대한 납작한 분석을 솔깃한 언어로 재생산한다.

『K-를 생각한다』 비판에 이어 우리는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세대를 기준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주장들이 과잉소비되고 있는 양상(주장의 적실성과 수용하는 방식을 포함해)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80년대생도 봐주세요

『추월의 시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그간 한국 사회가 ‘친일-좌빨’, ‘보수-진보’라는 대립쌍으로만 사회 현상을 바라봄으로써, 무수한 분열을 야기했을 뿐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니 한국 사회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기존의 통념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 과정을 거치며 이미 ‘추격의 시대’를 끝내고 ‘추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강요된 열등감”이 스스로를 위축시켰지만, 이제는 열등감에 빠지지 말고 한국인 공동체에 대해 자긍심을 갖자고 주장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추월의 시대를 이끌어갈 자로 자신들을 호명한다. 이들은 30년대생부터 50년대생까지를 ‘산업화 세대’, 60년대생부터 70년대생까지를 ‘민주화 세대’라고 정의하고, 앞선 두 세대의 대립 프레임으로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80년대생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받아안으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다음 세대라고 내세운다. (참고로 『추월의 시대』의 저자들은 모두 80년대생 남성인데, 놀랍게도 각 챕터마다 느와르 영화 컨셉을 한 저자의 사진들도 함께 볼 수 있다.)

하……

저자들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과제에만 몰두하면서 담론 역시 성취보다 결함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발전론적이고 목적론적 시간관에서 동아시아의 근대는 서구 사회를 이상적인 기준점으로 삼아왔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좌우 담론이 ‘선진국(서구) 따라잡기’라는 과제에 몰두해왔다는 비판은 일리 있다. 하지만 ‘성취냐 결함이냐’는 평가 기준 역시 여전히 서구 사회를 이상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결함이 아니라 성취를 봐야 한다’는 저자들의 관점 역시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과제에 몰두해온 한국 사회의 담론 구조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걸 방증한다. “이제는 성취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는 이 책의 대전제는 출발부터 좌표를 상실한다.

K-방역은 이미 선진국을 추월했다?

4차 대유행이 한창인 지금 ‘K-방역’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4차 대유행과 무관하게 저자들의 시각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지금의 K-방역은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무원을 혹사시키고 국민들에게 피해를 전가하면서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한국 사회에서 펼쳐진 몇 가지 논쟁들을 되짚으면서, 일각에서 제기된 비판들을 반박하고 실제로는 한국 방역당국의 조치들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극우 유튜버나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담론들로 인해 진보 언론들 역시 방역 실패 주장들의 허점을 제대로 공박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방역 당국의 활약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들이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한국인들이 “코로나19 정국의 한복판에서 한국 사회는 어느 순간 모두를 추월해버렸고 앞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여타 선진국들을 앞지르는 ‘추월의 시대’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앞으로 한국 사회의 롤모델은 사라질 것이기에, ‘K-스탠더드’를 성립시키는 것을 과제로 설정한다.

문제는 이 책이 제시한 ‘K-스탠더드’가 의료현장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사상누각이라는 데 있다. 우선 한국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법정 유급 병가와 상병수당이 모두 없는 나라다. 한국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실제 더 많이 감염되었는데, 명백한 데이터로 입증되는 이와 같은 사실은 ‘방역 성공신화’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한 2021년 1월 연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계층이 가장 높은 4분위 계층에 비해 약 19%, 60세 이상에서는 4분위 계층에 비해 1분위가 39%, 2분위가 29%, 3분위는 13% 더 많이 감염됐다.

취약계층에 대한 방역이 ‘정상시민’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은 지난 5월 홈리스행동이 아웃리치를 통해 조사한 「거리홈리스 백신접종 실태조사」 결과에 잘 드러난다. 이 결과에 따르면, 거리 홈리스의 접종률은 29.7% 수준이다. 백신 접종에 대한 가짜 정보가 난무할 뿐만 아니라, 접종 자체에 대한 소식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이는 법적으로는 접종이 가능해도 어디서 어떻게 접종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특히 “이상반응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대응할 방법이 없”고, “접종 후 휴식을 취할 장소가 없”다는 점 역시 접종을 방해하는 요소다. 

방역 신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 의료의 열악한 현실에 있다. 병상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병상 수도 많고 세계 10대 병원 중 4개가 서울에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지만, 공공병원 병상은 현저하게 부족하다. 코로나 이후 민간 병원은 코로나 환자를 전혀 받지 않다보니,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겪는 극심한 과로는 처참하다. 즉, 4차 유행 이전까지 한국의 코로나 방역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방역 수칙을 잘 수행하고, 노동 현장의 인력들이 초인적인 과로를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위대한 대한민국이 선진국들을 “이미 추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처럼 『추월의 시대』는 실제 보건의료 현장의 실제 상황에 관해서만 보더라도 현실의 문제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실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시야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최근 여러 매스미디어나 지식계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저자들이 사회문제를 ‘국가’ 혹은 ‘세대’를 중심으로만 인식하고 스스로를 긍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현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총리의 독후감
엉뚱한 공정 담론

공정에 대한 시각 역시 여러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책의 8장 ‘공채공화국 타파: 공채를 줄이는 것이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구조개혁’을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시험 선발 능력주의’를 모두 지양하자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공채 자체를 거부하고 수시 채용을 긍정한다. 중소기업에서 먼저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대기업 진출 기회가 열리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수시 채용에서도 시험 준비와 마찬가지로 계층 격차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경제적 여건에 따라 출발선과 주어진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스스로 대문으로 내쫓은 ‘시험선발 능력주의’를 뒷문으로 슬그머니 다시 들여온다.

저자들은 공정성 논의의 대안에 대해 시험 선발이 아닌, 꾸준하고 지속적인 평가를 통한 유연한 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신규 채용하는 공무원부터는 직무안정성을 회수하고, 5급 공무원시험을 폐지하며, 7ㆍ9급 공무원시험선발의 비중을 줄이고 민간과 공직 간 이직의 장벽을 낮추어 ‘어공’을 50%로 늘리자고 주장한다. 이는 임금피크제와 직무급제, 연금 개혁 등 안정적 일자리들에 대한 ‘양보론’을 펼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공’으로 새로 고용될 이들이 누구일지, 그 기준이 무엇이 될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입직 경로만 달라질 뿐, 결과적으로 채용된 이들의 격차가 해소될지는 알 수 없다. 

공무원 시험에 취업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공무원의 ‘고용안정성’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고용안정성’을 포기해 공정성 논란을 줄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공무원과 공공기관을 유연화할 경우 결국 민간일자리와 같이 불안정 노동으로 하향평준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들은 뾰족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우등생의 우울?

저자들은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들이 “우등생의 우울”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가 겪는 사회문제에 대해 많은 지점을 공백으로 남겨 둔 답이다. 저자들이 스스로 밝히는 높은 자동화 수준과 산업구조의 변화 국면에서 어떤 방향의 대안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고, 광주형 일자리 역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자동화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노동권 없는 자동화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2016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이후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본다. 이들의 주장은 한국식 유교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계속 먹을 수 있”게만 하면 집권자의 정당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수행 능력에 따른 유교적 정당성론’이 시민사회의 근본 윤리가 됐다는 사회학자 이철승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박근혜 탄핵이 “동아시아 유교사회의 일원이면서, 그 문맥 안에서 나름의 고유성까지 갖고 있던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수용한 하나의 경로를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한다. 

일단 민주주의를 대중 시위의 발발,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통수권자의 교체 여부로 판가름 짓는 저자들의 시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관념을 반영한다. 이런 시각은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나 제도 바깥의 정치를 간과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현대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저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지배 체제로 인식한다. 따라서 촛불을 전후한 우리의 과제는 사회경제적 모순이 폭발한 결과 발생한 대중 봉기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누락한 현실의 모순을 응시하는데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촛불 항쟁이 발생한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지목되었던 사회 양극화와 재벌 자본의 독점, 고용 불안과 주거 불안정 등의 문제에 대해 평가는 전무하다. 대신 박근혜를 자신이 뽑고 자신이 탄핵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를 “책임 있는 포퓰리즘 사회”로 볼 수 있다고만 주장할 뿐이다. 이들은 성취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를 재배치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공백과 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실천할 공간을 삭제해버린다.

촛불 항쟁으로 폭발한 재생산의 위기는 생산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재생산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모순의 표현이었다. 한국에 적합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장점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한국 전근대사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자는 저자들의 낙관적 의지의 표명 이상으로 이론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들은 ‘추월의 시대’를 이끌 주체로서 80년대생을 봐달라고 제안한다.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 청년세대의 균형 잡힌 관점, 기득권화된 386세대 퇴진, K-방역의 성공, 급속한 경제발전, 그로 인한 사회문제와 극복, 능력이 제대로 검증될 수 있는 공정한 방식의 발명 요구,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서사,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재평가 등을 과제로 늘어놓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논의들을 통하여 ‘단순한 비관론’이 아닌 근거있는 ‘현명한 낙관론’을 갖자고 말한다. 그리고 낙관론의 주체는 바로 저자들 자기 자신이기도 한 80년대생이라고 주장한다.

’80년대생’을 새로운 주체로 세우는 주장은 이 책의 글 전반에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경제발전과 복지, 좌와 우, 과거세대와 청년세대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태도로 읽힌다. 분명 둘 중 어느 하나를 적대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양자 모두에 대한 인정 또한 그만큼 충분한 근거를 갖추었는가? 앞의 논의에서 살펴본 것 바와 같이 이 책의 주장의 근거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과연 저자들이 주장하는 ‘현명한 낙관론’이 근거 있는 낙관론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처럼 저자들은 여러 긍정적인 언사들을 한국 사회에 공동체 의식을 다시 부여하고, 자긍심을 갖자며 한국인에 대한 ‘임파워링(empowering)’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주기 이전에, 현존하는 문제들을 덮는 것은 아닐까? 낙관론이 진정으로 현명할 수 있으려면, 무턱대고 대립하는 양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양자의 공과 과를 더 엄밀히 평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추월의 시대』는 그간 한국사회가 걸어온 길에 대한 섣부른 인정을 시도하며 근거가 부족한 낙관론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시각이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엄밀하게 분석하고 비판함에 있어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 변혁의 상상력 대신, 이러한 종류의 책들이 주목을 받고 ’80년대생’, ’90년대생’의 담론으로 언론에 표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이라고 지칭되는 ‘386세대’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감, 그리고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고자 하는 열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망은 현재 ‘386세대 정치인’이 보여주는 위선, 악화일로의 부동산 문제 등 자산불평등, 소득불평등과 분절적인 노동시장의 문제를 보았을 때에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월의 시대』는 “산업화-민주화 세대의 연결고리”를 주제로 80년대생 저자들이 써내려가는 새로운 역사 인식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들의 ‘추월’이라는 인식이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진보-보수 혹은 친일-좌빨 등의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는 프레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이 주장들을 유효한 것으로 인식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사회 모순의 요인을 세대를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점이다. 『추월의 시대』 저자들은 스스로 80년대생을 사회의 무게추로 지칭하며,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이후의 새로운 주체로 비추고자 시도한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 특정 세대를 해결의 주체로 만들어내려 시도하는데, 문제는 ‘3040-남성-엘리트’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해결의 주체 측면에서 세대를 소환하는 논지는 2019년 출간하여 세대론의 대표적 저서로 부상한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가 주장하는 386세대의 결자해지론과도 맞닿아 있다. 여러 통계를 이용해 오늘날 386세대가 한국사회의 위계구조에서 불평등을 생산함을 증명하고 있는 이 연구서는 『추월의 시대』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민주화세대-산업화세대를 단절적으로 구분한다. 두 책에서 공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 설명을 시도하는 한편, 해결 주체마저 세대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사회운동과 계급의 구성에 철저히 무관심한 이러한 관점은 특정 세대에게 대안을 기대하거나, 어느 세대에도 기대를 하지 않는, 근거없는 낙관과 비관으로 귀결되고 만다.

낙관주의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여러 모순들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대신 사태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라는 식의 K-어쩌구 낙관주의,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한 낭만주의적 낙관주의가 있고, 모순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비판하되 집단적이고 사회운동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그것이 만들어낼 승리의 서사에 대해 상상하는 낙관주의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낙관은 무엇일까? 그것이 80년대생이건 90년대생이건, 이준석이건 신지예건 매스미디어와 지식인들(친민주당이건 반민주당이건)이 유포하는 담론들 사이에는 배울 점이 희박해보인다. ☠️

구호 외치는 배달노동자들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