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 외면하는 심상정의 행보

독일 대사ㆍ최태원과의 만남은 ‘녹색성장·그린워싱·현상유지’ 지지

1월 17일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닷새간의 칩거 끝에 선거운동을 재개했다. 심상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여성이 공격받고, 기후위기가 외면되고 있는 대선입니다. 녹색과 여성과 노동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진 심상정 후보의 행보는 실망스럽고 경악스러웠다. 18일 미하엘 라이펜슈툴(Michael Reiffenstuel) 주한 독일대사를 만난 데 이어 19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SK그룹 회장인 최태원을 만났다. 기후위기의 최전선 당사자들, 고통받고 투쟁하는 이들이 아니라, 왜 이들이란 말인가? 심상정 후보가 독일대사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살펴보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날 독일대사는 “(탈탄소) 전환은 기업에게 큰 도전이나, 기업의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본다면 이익에 도움이 된다”며, 독일 정부의 기업 지원 방안을 심 후보에게 소개했다. 심상정 후보는 “오늘 주신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대한민국도 기후위기 극복 선도국가가 될 수 있도록 저와 정의당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라이펜슈툴 독일 대사의 조언에는 기업과 시장 중심의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녹색성장 정책들을 노골적으로 담고 있다. 세계 기후정의운동이 기업 권력을 강화하는 녹색성장 노선을 버리고, 체제를 변화시키자고 외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다. 한국에 에너지 전환과 녹색 정책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독일은 유럽 경제, 특히 에너지 산업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이끈 나라다. 최근 이슈가 된 유럽의 에너지 가격 급등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 산업에 대한 민영화와 규제 철폐, ‘가격의 신자유주의화’이다. 민영화ㆍ자유화된 에너지 산업 구조는 기후 목표에 걸맞는 속도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산업 환경과 조건이 전혀 다른 한국에서 독일식 모형의 추종은 ‘은밀하지만 폭력적인’ 민영화로 이어지고 유사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크다. 유럽의 ‘모범’ 사례가 궁금하거든 독일 대사를 만날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 활동가나 유럽의 에너지 자유화를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심상정 후보와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독일대사

이튿날 심상정 후보는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났다. 심 후보는 최태원 회장을 향해 “심상정이 반기업적이고 반시장적이라 생각했다면 오해”라며, “활기찬 민간 기업이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고 기업은 시민의 필요에 대응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사회를 이롭게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누구보다도 ESG 경영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왔다”며 최태원 회장을 추켜세웠다.

여기서 ESG경영이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평가 기준에 포함한 경영기조를 말한다. ESG경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ESG경영이 대세가 되었고, 이제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번지르르하게 말한다. 그러나 기업이 자본가와 주주의 것으로 남겨진 이상, 사기극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ESG경영을 표방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여전히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학살을 위한 수익금을 송금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SK가 추구하는 ESG는 무엇인가? 작년 8월 SK에너지는 ‘탄소중립 휘발유’ 판매 계획을 발표했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만큼 탄소배출권을 매입해 탄소중립을 이룬 휘발유를 출시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유를 사용해도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다는 궤변이자 끔찍한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다.

SK에너지가 탄소중립 휘발유를 만들기 위해 손잡은 상대는 초국적 금융자본인 맥쿼리다. 민영화와 민자사업, 금융투기로 악명 높은 그 맥쿼리가 맞다. SK에너지는 맥쿼리 그룹과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및 상쇄 관련 협정을 포함하는 탄소배출권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맥쿼리를 통해 조림·산림 황폐화 방지 프로젝트 등에서 발행한 배출권을 구입해 일부 휘발유 제품에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호주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맥쿼리 코리아오퍼튜니티즈운용(맥쿼리PE)은 2013년 건설 폐기물 처리 업체 대길산업을 인수했다. 이를 시작으로 2014년 폐기물 중간처리 업체 진주산업, 2017년 생활폐기물 처리업체 리클린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2017년 6월에는 영남권 최대 폐기물 소각·매립 업체인 코엔텍의 지분 33.63%를 795억 원에 인수한 뒤, 지분을 59%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맥쿼리PE는 2년여 만에 IS동서·이엔에프 프라이빗에퀴티(E&F) 컨소시엄에 코엔텍 보유 지분 전량과 폐기물 중간처분 업체 새한환경 지분 100%를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무려 5천억 원에 달했다.”, 은혜진, 「자본은 쓰레기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참세상

탄소중립 휘발유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대기업과 자본의 태세를 보여준다. 화석연료 판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탄소중립 휘발유 제품의 출시와 같은 능동적인 전략으로 석유제품마저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온실가스 배출권은 맥쿼리와 같은 금융자본을 통해 측정되고 조달된다. 거대한 금융·회계·법률 자본은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과 마찬가지로 탄소시장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며 탄소중립의 매개자이자 평가자 역할을 한다. 온실가스 배출권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는 조림·산림 황폐화 방지 프로젝트(REDD+)가 저개발국의 환경과 농민의 삶을 파괴한다는 악명은 사라진다.

초국적 금융자본 맥쿼리는 탄소중립 실현에 빠질 수 없는 녹색 금융기관이 되고, 화석연료 기업 SK에너지는 탄소중립 휘발유를 파는 녹색 기업이 된다. 나아가 높은 가격을 감수하며 탄소중립 상품을 사는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녹색 소비자가 실천적인 ‘기후 시민’의 모델이 된다. 이런 게임에서는 누구나 승자가 된다.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화석연료 자본주의로 이득을 얻은 이들의 지위는 다시 공고해진다. 시민은 이런 변화 속에서 상품이나 투자를 선택하는 녹색 소비자로 주체화되고, 저개발국과 환경에 대한 착취는 지속한다.

즉,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불러왔던 권력 관계는 변하지 않고, 디테일이 조금 변화할 뿐이다. 초국적 금융과 화석연료 기업의 사업 내용은 바뀌지만, 이들의 지위는 그대로다. 물론 기후위기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착취에 기반해 이윤을 뽑아내고 더 많이 생산・소비하는 체제도 유지될 것이다.

심상정 후보는 이런 게임에 동참하고 싶은 걸까? “기후위기에 맞서 다시 뛰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든 당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에 불과하다”고 외친 기후정의 활동가들을 외면하고 있지 않는가? 녹색성장, 그린워싱,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온순한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면 심상정 후보는 독일대사관과 대한상공회의소를 향한 발걸음을 거두어야 한다.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에 맞서기 위해 갈 곳이 너무나 많다. 🔥

글 :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플랫폼c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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