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활동하려면 내 고유한 삶의 영역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를 만나다’시리즈 다섯번째 인터뷰 대상은 밍갱 활동가다. 밍갱 활동가는 2021년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 선전홍보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신입 활동가로서 여성-노동 운동에 대한 생각과 함께, 2000년대 후반 학생운동 시절부터 여러 운동을 거쳐왔다는 그가 가진 활동관을 물어보았다. 인터뷰 전 편은 여기서 읽을 수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987년 창립되어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의 취약함을 바꾸어 내기 위해 활동해 왔다. 전국여성노동조합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활동하고 있다. 여성노동상담소 ‘평등의 전화’를 운영하고, ‘페미노동아카데미’, ‘페미워커클럽’ 등을 통해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YH노조의 김경숙 열사를 기념하는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매년 시상한다. 2021년에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엘지빌딩분회가 김경숙상을 수상했다. 👉홈페이지

지난 인터뷰
김윤영 (상) 12년차 반빈곤 활동가에게 워라밸을 물었다
김윤영 (하) 내가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반빈곤 운동가가 된 이유
박장준 (상) 지역사회운동노조를 표방하는 희망연대노조에서 배운 것
박장준 (하) “노학연대 경험이 내 활동의 견인추”
신지영 (상) 운동이 나를 잡아먹으면 안 된다,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지영 (하) 내가 나를 ‘활동가’라고 부르게 됐을 때
공성식 (상) 포스트-코로나 시대, 반자본주의적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의 역할 찾아야
공성식 (하) 서로 돌봐주는 ‘규모의 운동’
임민경 (상) 취약한 사람에게도 좋은 환경이 모두한테 좋은 환경

밍갱에게 운동이란 ‘그냥 하는 것’
쌍용차사태 이후 놓을 수 없는 운동

플씨 : 지금까지 활동 과정에서 인상깊었던 순간은 뭔가요? 예컨대 2021년에 처음 사회운동을 접하거나, 직접 참여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본인의 경험이라든지.

밍갱 : 저한테는 2009년 쌍용차 사태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해 저는 XX대학 총학생회 집행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여름 내내 평택에서 살면서 농성도 하고 집회도 참가했죠. 그때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이전까지는 소속된 조직에서 세미나도 하면서 “자본과 국가의 결탁이 어쩌고 저쩌고” 같은 얘기를 말로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그게 뭔지 몰랐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총학생회 집행부를 하면서도 “난 조금 하다 때려칠거야”라고 하고 다녔어요. 활동으로 계속 먹고살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죠. 당장 때려치워도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서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면서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평택역까지 경찰에게 쫓긴 적이 있었어요. 연대하러 간 사람들이 죽도록 도망가며 뛰고 있는데 경찰이 띄운 헬리콥터가 계속 따라왔죠. 그러면서 공중에서 최루액을 뿌리고, 저공 비행을 하면서 흙먼지를 날리더라고요. 거기에 커다랗게 경찰 마크가 붙어 있었거든요. 뒤에서는 구사대가 쇠파이프를 질질 끌고 오면서 사람들을 폭행하고 있었고요. 뒤에서 비명소리가 나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어요. ‘이게 국가와 자본의 결탁이고, 이게 자본주의구나’ 실감이 났어요. 국가가 정해놓은 틀 밖으로 빠져나오면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마 제 또래 활동가들이나 비슷한 세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경험일 거에요.

플씨 : 그 전인 2000년대 초반에는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이나 파견법 반대 투쟁이 있었고요.

밍갱 : 이라크 반전 집회도 나갔어요. 그땐 명확하게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학생은 아니었고 그냥 집회에 참여했었죠. (웃음)

플씨 : 쌍용차 사태와 같은 경험이 두번째 대학을 다니며 활동하도록 영향을 주었나요? 첫번째 대학을 다닐 때는 미술을 공부하며 학생회 활동을 했고, 두번째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공부하며 여성주의 교지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밍갱 : 맞아요. 2009년 총학생회 활동이 끝나고 나서 저는 정파에서도 나오고, 학생운동도 때려치웠어요. 학교도 자퇴했고요. 첫 학교에서는 전공이 시각디자인이었는데요. 학교를 때려치운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대학의 모습이 제가 생각하던 대학이 아니라, 직업훈련소가 같다고 느껴서에요. 그래서 ‘이럴 거면 자격증 학원을 다니지 내가 왜 대학을 다니고 있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만뒀죠. 

2010년에는 수능 공부를 했어요. 그때는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반년 정도 고시원을 잡아서 수능 공부를 하면서 혼자 틀어박혀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중 하나가 ‘내가 행복하려면 도대체 뭐가 필요할까’하는 생각이었어요. 고민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행복할 방법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결론이 났는지 모르겠는데 그 생각을 하고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그냥 제가 반골이라는 얘기죠. (웃음) 어쨌든 그 뒤로 제가 활동에 관련된 무언가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 경험에 쌍용차 사태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2010년에 그냥 수능 공부해서 대학 다시 들어가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그때 어느 학교로 갈까 고민하다가 좀 진보적인 수업을 하는 곳으로 골라서 가게 된 거죠. 그 뒤로 활동을 쉰 적은 있어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활동가의 ‘직업의식’

플씨 : 지금껏 만나온 여성들 중에 ‘저렇게 살아야지’ 하고 영감을 주고 롤모델이 된 사람이 있나요?

밍갱 : 멋있다고 생각이 드는 여성 활동가들은 많이 있어요. 매일 뵙는 한국여노 솔키(배진경) 대표님도 그런 분이고요. 그런데 제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롤모델은 제가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멋있는 여성들이 많고, 운동가로서 배워야 할 점이 있는 사람도 정말 많아요.

플씨 : 혹시 활동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활동가로서 가져야 할 자질이나, 서로 다른 자질 간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밍갱 : 물론 저도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얘기하고, 활동가 자의식이 있죠. 이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 있나요?

플씨 : 그런 사람은 없었죠. (웃음)

밍갱 : 당연히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죠. 활동판은 오히려 언제나 사람이 없어서 문제잖아요. 근데 대개 ‘활동가 윤리’, ‘활동가 의식’, ‘조직의 기풍’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잖아요. 저는 그런 말들이 조금 싫어요. ‘강철의 활동가’ 같은 걸 훌륭한 활동가의 상으로 가졌던 과거의 저 자신에 대한 반작용일수도 있고요. 그런 말들이 활동가라는 직업에 대한 선민의식을 조장하는 점도 있죠. 또, 활동도 노동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활동가에게 과도한 것들을 요구하기 위해 이런 용어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이런 말을 지금은 좀 싫어하게 됐어요.

그러다 최근에 ‘활동가로서의 직업의식’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마음에 들더라고요. 활동가가 별다른 직업이 아니라, 다른 여느 직업과 같이 하나의 일이고, 다만 거기 수반되는 ‘직업의식’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말인 것 같아서요. 물론 임금을 받고 직업으로서 활동하지 않지만 훌륭한 활동가인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직업의식’은 다 포괄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긴 하지만요. 또, 직업의식이라는 말이 아까 말한 ‘활동가 윤리’와 같이 특정 직업에 맞는 이미지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사용이 되기도 하니까 이게 완벽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활동가가 어떤 특수한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표현하는 점에서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3년 정도 활동을 쉰 기간이 있어요. 그 기간 동안 저는 일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활동판 밖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왜냐하면 19살 때부터 활동 밖에 안 하고 살아왔으니까 20대 내내 만난 사람이 운동판에 있는 사람 밖에 없는거예요. 그런데 막상 돌아다니니까 활동판이라는 작은 우물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윤리적으로, 혹은 더 고민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실천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되게 많은 거에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활동가라는 게 그냥 대중 중 1인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됐어요. 옳은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훌륭한 시민으로 산다는 것만도 무척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요. 그래서 활동가라는 게 뭔가 굉장히 특수한 일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게 활동이 나아가야 할 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플씨 : 저희 인터뷰의 취지이기도 한 것 같아요.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밍갱 : 정말로 각자가 있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은 활동가는 뭘까’ 고민하며 살아왔는데, 쉬면서 보니 좋은 활동가고 나발이고 좋은 시민이 되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근데 좋은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는 게 좋은 활동가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활동가는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회운동이 누구나 활동가로 살 수 있는 공간은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사실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면이 있지요.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조건에 맞는 역할이 주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활동이라고 할 때, 기본적으로 어떤 진보적인 지향을 가지잖아요. 앞에서 제가 특정한 활동가상이란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진보적인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진보적인 사회가 이미 실현된 상태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성소수자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성소수자 혐오가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가 필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사회운동의 공간들이 좀 더 다양한 사람들한테 자리를 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성격이나 성향, 잘하고 못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에게 역할이 주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런 공간을 외부로도 점점 넓혀가려고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활동가의 자질이 따로 있다기 보다는, 어떤 자질을 가진 사람도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2018년, 파리 길거리에서 샴페인을 사고 병나발을 부는 밍갱
“더 이상 강철의 활동가는 아니더라도”

플씨 : 조금 전에 ‘여느 직업과 다르지 않은 활동가’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활동가들도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 WORK & LIFE BALANCE)이 있고, 다들 혁명에 모든 걸 쏟아붓지는 않아도 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밍갱 : 공감해요. 활동하다보면 농성장에서 잘 때 폰 알람을 꼭 민중가요로 맞춰놓은 사람들도 있고, 술만 먹으면 같이 민중가요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예전부터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웃음) 민중가요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삶에서 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순간도 있을텐데 알람을 민중가요로 하면 민중가요가 싫어지지 않을까요?

플씨 : 어디선가 본 장면이네요. (웃음)

밍갱 : 오래 활동하기 위해서는 내 고유한 삶의 영역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치관이 분리되는 게 아니니까 일상에도 내 활동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활동의 영역과 활동이 아닌 삶의 영역의 분리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오래 활동하기에 더 나은 것 같더라고요.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옛날에는 전혀 분리가 안 됐던 것 같아요. 19살 때부터 활동을 해서 30살 정도까지는 취미가 없었어요.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음악 듣는 것, 영화 보는 것, 게임하는 것 다 좋아했거든요. 근데 활동을 시작하면서 30살 정도까지는 취미가 싹 사라지고 다 거의 끊다시피 했어요. 취미 생활을 하려면 체력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고, 또 감정 소모도 필요한데, 그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죠. 당시엔 활동가는 의지력을 가지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감정적으로 휘둘리게 하는 것들은 다 멀리했던 것 같아요. 소설 같은 것도 안 보고, 음악도 안 듣고, 그렇게 취미가 없이 살았죠. 그런 걸 하기엔 너무 바쁘기도 했고요. 엄청 무리를 하면서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던 거죠.

플씨 : 흔히 그런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취미도 없고, 24시간 내내 발제문 쓰고 세미나 하다가 집회 나갔다가 술먹으면 민중가요 부른다던지 말이죠. 생활나눔 하면 다 이미 아니까 나눌 생활이 없고요 (웃음)

밍갱 : 맞아요. 특히 학생 때 조직운동을 하면 그런 것 같아요. 이것저것 시키는 거 다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30살 쯤에 활동을 쉬면서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죠. 그렇게 취미를 한 번 되찾으니까 다시는 못 잃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한 번 꽂힌 걸 주구장창 덕질하다가 또 다른 몰입할 것으로 옮겨가는 루틴이 있거든요. 예전에 개인으로 활동할 때는 삶이 불규칙하니까 그런 루틴을 조절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상근을 시작하고 나서는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한 후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요즘에는 무협 웹소설을 재미있게 봐요. 각 문파 간의 관계, 대표 기술, 이런 무협 팬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장르적 문법, 세계관이 너무 재미있어요. 게임은 요즘 잘 못해요… 얼마전 보리 동지가 방탈출 게임도 추천해 주셨는데, 우리 플랫폼G(플랫폼C 내 게임 소모임)에서 방 탈출 카페도 한번 가보면 어때요? 

플씨 : 정말 괜찮네요. 꼭 추진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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