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동짓날 홈리스추모제를 진행하는 이유

홈리스추모제 참가기

매년 동짓날,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추모제’가 열린다.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긴 동짓날이 홈리스(Homeless) 상태에서의 삶, 죽음과 닮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홈리스’란 “집이 아닌 공간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거리나 시설에 더해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 비(非)주택과 사우나, 만화방 등지에서 생활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2021년 홈리스추모제에는 395명의 영정을 모셔 함께 기억하고 추모했다. 서울에서 공영장례를 주관하는 ‘나눔과나눔’과 서울시 내 일부 ‘쪽방상담소’에서만 수합한 수치이기 때문에 가장 최소치로 가정한 사망자 수다.

다양한 경로로 빈곤의 하향곡선을 따라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의 삶은 권리의 총체적 박탈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거와 사회보장, 노동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권리로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빈곤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그리고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마주하는 위기는 위태로운 삶에 가장 먼저 침투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역시 그렇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집단 감염과 사망이 속출하고, 방 또는 위생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가격리 조치조차 할 수 없는 삶이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재난지원금이나 백신 같이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감염법 관련 대책들에서도 배제되며, 그나마 안전한 공공공간에서의 퇴거와 억압이 강화되어왔다. 모두의 안전이 아니라, 배제와 차별의 연속과 강화는 사회불안과 위험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 삶을 둘러싼 문제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과소대표될 뿐이다. 이 악순환이 현재의 위기를 만들어냈고, 앞으로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죽음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은 틀렸다.

죽음은 삶의 연장이다. 장례조차 시장논리에 종속되고, 차별받고 낙인찍히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사회에서 존엄하지 못한 삶에 이어진 죽음이 도사린다. 따라서 매년 동짓날 홈리스 추모제를 진행하는 이유는 단지 추모에만 있지 않다. 홈리스 상태에서 사망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존엄이 박탈된 죽음을 거부하고 존엄한 삶의 권리를 쟁취하자는 마음을 한 번 더 크게 모으는 자리가 ‘홈리스추모제’다.

노숙인 관련 복지 정책이 실시된지 10년 넘게 지났다. 그러나 속이 텅 비었다. 보호와 관리, 감시 차원에서 작동하는 문제와 자치단체들의 조례에 의한 공영장례가 제도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시신처리 관점에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리가 매년 겨울 동짓날에 모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연결된 문제를 해결하여, “홈리스”도 존엄과 권리의 주체로서 ‘인간’이라는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홈리스추모제의 독특한 점은 다음년도 추모제 준비회의가 당해년도 평가회의 때 정해진다는 점이다. 실제 기획단이 꾸려지고 추모제를 준비하는 기간은 두 달 남짓이지만, 주거팀과 인권팀, 추모팀이 일년동안 팀별 사업과 투쟁을 진행하며 연속성을 확보한다. 그 활동들을 홈리스 추모주간 활동과 동짓날 추모제로 모아낸다. 빈곤사회연대는 각 팀에 한명 이상 활동가가 참여하고 있다. 주거팀과 추모팀이 꽤 오랜기간 유지되어왔고, 각 년도마다 대응 및 집중해야 할 사안으로부터 또는 고민과 시도로부터 팀이 만들어고 없어진다.

홈리스추모제 준비와 사전마당

원래 나는 노동팀 활동을 했고, 이번에는 새로 만들어진 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인권팀은 코로나19 시대에 강화되는 ‘형벌화 조치’ 공공장소 입장 제한 및 폐쇄, 강제퇴거, 노숙짐 처분, 백신 불평등과 의료 공백 등과 관련한 활동을 이어왔다. 한편 추모팀은 공영장례제도 관련 활동을 펼쳤고, 주거팀은 주거비 관련 제도와 매입임대, 지원주택, 쪽방지역 개발, 재난의 시대 주거권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추모제기획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동짓날 당일 사전마당과 추모제 준비팀이 꾸려진다. 일년 간의 활동을 하루 행사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각 팀과 유기적으로 소통하여 어떤 전시나 행사를 배치할지, 추모제의 기조와 발언, 공연을 결정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2019년까지 동짓날 서울역 광장이 홈리스추모제 사전행사로 가득했다. 당해년도 홈리스 10대 뉴스 등의 전시와 소원 트리, 기억의 계단, 사진관, 법률상담소, 휴게소, 삼행시, 윷놀이 등 참여형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사전마당이 종료될 즈음 팥죽을 나눠먹은 뒤 추모제를 함께 했다. 방역의 시기를 마주하며 재작년과 작년 홈리스추모제 사전마당은 전시프로그램으로 갈음할 수밖에 없었다. 당일 팥죽도 나눌 수도 없어, 추모제를 앞두고 거리노숙 밀집지역에 팥죽과 함께 선물 꾸러미를 배달하며 추모제를 알렸다. 그나마 재작년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던 추모제를 작년에는 현장에서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작년에는 온라인으로만 진행해서 그런 걸까? 이번 추모제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자리했고, 그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말자

추모제 당일은 반가운 이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획단 참가단체나 일상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이, 과거 홈리스행동과 야학에 적을 두고 활동했던 이들이 추모제를 기억하고 찾는다. 21년 전, 홈리스추모제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각자의 첫 홈리스추모제 때와는 나이도 상황도 달라졌지만, 행사 물품을 배치하고 무대 아시바를 쌓고 걸게를 걸고 앰프를 연결하고 행사 후 정리하는 일련의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또한 추모제는 함께 일상을 나누던 이들을 영정 속 사진으로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끊길 듯 말 듯 5년의 연을 이어왔던 양동 쪽방주민 남득우 님, 1년 간 지독하게 여러 차례 만나다가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한 주광석 님을 영정으로 만났다. 이렇게 동료나, 생전에 알지 못했지만 홈리스 상태에서의 존엄과 권리를 빼앗긴 채 죽음을 마주한 이들을 추모하는 것, 그 마음을 모아내는 소중한 자리가 바로 홈리스추모제다.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말자. 지난 홈리스추모제날 되새긴 다짐이다. 좌충우돌하지만 치열하게 쌓아가고 있는 우리의 역사가 홈리스 상태에서의 문제를 넘어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년 12월의 홈리스추모제는 이전보다 더 시끌벅적한 광장을 만들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자리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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