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 새해 첫날 LPG가격 인상이 불러온 대중 봉기

새해 첫날 카자흐스탄 정부는 LPG 가격 통제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날 카자흐스탄 남서부 망기스타우(Маңғыстау облысы)주(州)의 기름값은 기존보다 두 배로 뛰어 리터당 120텡게KZT(한화 330원)까지 올랐다. 하루 아침에 1리터당 60텡게(165원)가 오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지난 10년 사이 사회 불만 정서가 가장 격렬하게 집중됐던 곳이다.

1월 2일, 망기스타우주의 도시 자나오젠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시위대는 LPG 가격을 리터당 120텡게에서 인상 조치 전 가격인 60텡게로 인하할 것을 요구했다. 자나오젠은 오젠 무나이 가스 유전(Ozen Munai Gas Monument)이 위치한 도시로, 약 10년 전인 2011년 12월 16~17일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이 있었다. 당시 나자르바예프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다치고 1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1년 오젠 무나이 노동자 파업 : 2011년 5월, 오젠 무나이 가스 유전의 노동자들은 위험수당 지급,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등 요구를 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은 지방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선언되었고 국영 석유회사는 약 1000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해고 노동자들 중 일부는 이에 맞선 항의 표시로 24시간 동안 도심 광장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된 요구는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노동자 권리 인정이었다. 파업은 정부 당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몇 달 동안 계속됐다. 정부의 교섭 해태과 노동권에 대한 교착 상태는 시위대의 분노를 키웠고, 저항은 더더욱 확대됐다. 광장을 점거하던 노동자들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독립기념일인 12월 16일 정부 당국은 공권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했다. 이날 경찰과 노동자들의 충돌로 86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1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카자흐스탄 망기스타우주 자나오젠시

당국은 모순적인 이론에 의존해 급작스러운 LPG 가격 인상 원인을 설명했다. 지방정부 관료들은 높은 수요에 원인을 돌렸고, 에너지 정책 관련부처는 보다 기술적인 이유를 들었다. 1월 1일부터 시장화 조치를 실시하게 되면서 국제시장에서 LPG 전자거래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을 탓한 것이다. 즉,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던 시장화 조치 이전에는 LPG 생산자가 손해를 감수하고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막줌 미자가리예프(Magzum Mirjagaliyev) 에너지 장관은 주유소들이 가격 담합을 하고 있다고 의심된다고 뒤집어 씌웠다. 주유소들이 LPG를 사들이는 가격은 80텡게 정도인데 이들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붙여 소매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화 조치’로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한 것 역시 무능한 것이었다.

결국 망기스타우 지역의 주유소들은 LPG 가격을 85-90텡게로 재인하했다. 그러나 정부나 업자들의 어떤 조치도 거리로 나선 성난 자나오젠 시민들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다른 서부지역 도시들에서도 소규모 시위들이 벌어졌다.

시위 발생 첫날 노동자들은 LPG 가격 인하와 노동자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가장 먼저 요구에 응하고 사태를 수습할 기회가 있었던 현지 관리들은 노동자 시위대의 요구를 무시했다. 케멜 토카예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대응은 실질적 의미도 없었고 너무 늦은 것이었다.

1월 3일, 노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의 물결은 더욱 거세져 전날의 몇 배로 늘어났다. 텡기스(Tengiz)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섰다. 텡기스에는 255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 인근 도시 악타우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충돌했고, 같은날 악토베(Aktobe)에선 100여 명 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망기스타우주의 유전 두 곳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졌다.

아티라우주의 주도 아티라우시의 경찰은 막스 보카예프(Maks Bokayev)라는 활동가를 체포했다. 그는 2016년 일대일로 사업으로 지역 주민들의 토지가 강탈 당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시위를 주도했고, 4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와 같은 예방 구금 조치를 당한 활동가는 막스 보카예프만이 아니다. 적어도 3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아무 이유 없이 체포됐다.

막스 보카예프 Maks Bokayev

당일 망기스타우주의 노동자들은 기존의 LPG 가격 안정화 요구에 더 하여 식량 가격 인하, 실업 대책 마련, 식수 부족 해결, 정권 퇴진 등 새로운 사회·정치적 요구들을 추가했다. 대도시 알마티의 도심 광장과 수도 누르술탄을 비롯한 도시들의 거리에는 시위대열이 모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도로가 봉쇄되었고, 늦은 밤에도 시위대는 흩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망기스타우주의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LPG 가격을 85텡게(235원)까지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뒤늦은 약속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대중들을 더 분노하게 했다.

다음날인 1월 4일, 시위대와 경찰이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알마아타(Alma-Ata)에서는 보안군이 출동해 시위대 해산을 위한 섬광 수류탄(군중에게 충격을 주어 순간적으로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작은 폭탄)을 난사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굴하지 않고 경찰력에 대항했고, 여러 대의 경찰 차량을 전복시켰다. 같은 날 저녁, 인터넷, SNS 메신저, 소셜미디어 등이 운영을 중단했다.

파업 노동자들이 잔뜩 올라탄 트럭이 알마티 시내에 진입하는 모습

1월 4일부터 5일까지 24시간 동안 카자흐스탄 케멜 토카예프(Қасым-Жомарт Кемелұлы Тоқаев)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로서 정세 안정화를 위한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다. 대국민 담화 발표, 시위 발생 지역의 긴급 상황에 계엄 도입, 대량의 경찰력을 통해 최루탄과 물대포, 섬광탄 등을 시위대 해산을 위해 사용했다. 반발을 불러온 개혁조치를 철회하고, 시위대의 요구에 응해 현 정부 내각을 파면했으며, 심지어 항의 대상이었던 전 대통령을 완전히 물러나게 했다. 또, 전국의 통신망을 차단하고, 폭력행위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토카예프가 이런 노력을 다한 뒤에도 카자흐스탄 전역을 휩쓴 항의의 물결은 멈추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의 시위자들은 지난 5일 밤 시청사에 진입해 경찰서·방송국을 점거하였고, 이어서 알마티 국제공항을 추가로 점거하여 접수했다. 알마티주의 주도인 탈디코르간시에서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Нурсултан Абишевич Назарбаев) 전 대통령의 조각상이 시위대에 의해 쓰러졌다. 남서부 도시인 악타우(Актау)에서는 토카예프 대통령도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만인 집회가 연이어 발생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급격하게 오른 LPG 가격이 전자 입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근거해 LPG 가격 인상을 해명하려 노력했다. 즉, “우리가 아니라 시장이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망기스타우주 지방정부는 모든 것이 시장경제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과거의 가격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망기스타우 지역의 가스 가격을 리터당 50텡게로 낮추어야 했다. 토카에프 대통령은 시민들의 다른 요구는 별도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내각을 해임하고, 자나오젠 LPG 처리공장의 책임자를 체포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1991년 독립 이래 28년 간 장기 집권했고, 2019년 3월 19일 대통령직 사임을 선언했다. 불황을 겪던 1990년대에 적극적인 외자 유치와 시장 개방을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수도를 알마티(Almaty)에서 아스타나(Astana)로 옮겼다.

우리 시간으로 6일 새벽,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카자흐스탄 동부 시간 밤11시에 통행금지 규칙이 발동되기 불과 30분 전이었다. 두 시간 뒤 토카예프는 집단안보조약기구(오데카베; CSTO;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에 전화를 걸어 이 조약을 활용했다. CSTO에 국내 ‘테러리스트’들을 무마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전까지 30년 동안 카자흐스탄은 안정적이고 평온한 국가였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단 한 번의 가격 인상으로 완전히 바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집단안보조약기구는 옛 소련의 공화국 6개국의 지역안보 동맹이다. 1992년 5월 15일에 CST(Collective Security Treaty, 집단안보조약)으로 출발하여 2002년 10월 7일에 상설기구인 CSTO가 되었다. 가맹 국가는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며, 비공식 회원국가로 아프가니스탄과 세르비아가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러시아는 CSTO의 군사적 기능을 점진적으로 강화해왔다. CSTO의 집단안보조약(Договор о коллектив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4조에는 “만약에 회원국이 비회원국 혹은 비회원국들의 집단적 침략을 받는다면, 그 것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21세기 다자주의 국제외교 환경 속에서 나름의 협력안보를 추구한다. 신속대응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NATO와 같은 집단방위도 수행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왜?

카자흐스탄은 매우 넓은 영토(세계 9위) 안에 원유와 가스, 우라늄, 철, 금, 구리 등 풍부한 부존 자원을 갖고 있다. 또, 카스피해 유전개발에 대한 외국인투자로 2000년 이후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해왔다. 소비에트연방로부터 독립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 중 꽤 적극적으로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을 지속 추진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독립 이후 집권한 나자르바예프 정권은 안정적인 경제 시스템의 유지 속에서 서구 자본의 투자를 유치했고, 오랜 우호관계인 러시아나 중국과의 경제관계도 강화해왔다.

문제는 지나치게 에너지 자원에만 치중해왔다는 점이다. 에너지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에 비해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은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 주도하에 석유산업의 높은 성장을 바탕으로 제조업 발전과 경제구조를다변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외국인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하자 위기가 찾아왔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먹고 살 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연평균 10%를 넘던 경제성장률은 하락했다. 외자 유치를 통한 달러 유입과 국내 소비시장 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로 임금이 오르면서, 더 이상 석유산업만으로는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러시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1인당 GDP(달러) 변화 추이 (IMF의 2018년 세계경제전망 데이터베이스)

2010년대 카자흐스탄 정부는 산업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계속 하락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 경제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이런 노력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카자흐스탄은 여전히 주요 소비재와 생산재를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국내 기반이 미비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연이은 국제 유가 하락과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는 러시아에 경기침체를 불러왔다. 2014~2015년 러시아 루블화는 3배 가까이 폭락했고, 이에 따라 루블화에 대한 카자흐스탄 텡게화 가치도 하락했다. 이는 러시아와의 무역관계에 대한 카자흐스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본래 카자흐스탄 정부는 1루블-5텡게 환율 정책을 유지했는데, 더 이상 버티는 게 어려워졌다. 카자흐스탄은 적극적으로 환율에 개입하는 정책을 버리고 자유 변동 환율제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상대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클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연료 문제가 정치 화약고나 다름 없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오랫동안 에너지 가격 제재 조치를 집행하면서 가격 수준을 목표치에 맞추고 있었다. 생산비용을 낮추고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시장화 개혁’이 필요했으나, 현재의 카자흐스탄 경제 현실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에너지 가격 인상이 이뤄지기 전에도 카자흐스탄의 액화석유가스는 이론적으로는 자유시장에 진입한 지 이미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정책으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은 줄곧 리터당 50~60 텡게(원화로 환산하면 138~165원)를 맴돌고 있었다.

이에 비해 카자흐스탄처럼 기름값이 싸기로 유명하며 동일하게 에너지 수출대국이기도 한 러시아의 에너지 가격은 최근 카자흐스탄의 가격 인상 조치 전까지도 카자흐스탄 천연가스 가격의 3배가 넘은 상황이었다. 액화석유가스 가격은 현재 32루블 정도인데, 이를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원이다. 놀랄만큼 저렴한 가격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수년 동안 민생 유지와 사회 안정의 정치적 고려를 해온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런 가격 유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재 카자흐스탄은 LPG 1리터를 110탕게에 가까운 원가로 생산하는데,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 이 나라의 에너지기업들을 오랫동안 손해를 끼쳐왔다. 또, 외국에서 수출해온 가스는 거의 활용성이 없다. 이와 함께 기술적인 조건과 생산 능력의 제한으로 인하여 카자흐스탄의 노화된 설비는 국내의 지속적인 인구가 점차 증가할 수록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료 가격은 절대다수가 소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심스럽게 유지되고 있지만 공급 자체는 오랫동안 매우 긴박한 상태다. 

지난 10년, 카자흐스탄 경제는 견딜 수 없는 곤궁에 빠져왔다. 큰 폭의 인구가 빈곤선 근처까지 미끄러졌고, LPG는 그중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생활비 절감을 위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이며, 휘발유나 천연가스보다도 더 저렴하다. 이는 LPG를 공급사슬망 최저층의 혈액으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그것의 가격은 국내 식량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기초생활 필요 생산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LPG에 강하게 의존하며, LPG로부터 구동 및 운송되는 염가 식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미 퇴로가 없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대국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이 나라 일선의 생산자들은 가장 알뜰하고, 가장 낮은 가격의 소비를 통해 가장 저렴한 에너지로 어렵게 기본생활을 지속하기를 강요받는다. 이런 미천한 수요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카자흐스탄 민중들이 왜 이리도 LPG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2014년과 2017년, 두 차례 공급 결핍과 가격 파동이 불러온 에너지 위기들은 모두 카자흐스탄 국내에서 부정적인 사회 정서를 야기했다. 주유소에 늘어선 긴 줄과 기름값 파동은 가장 민감한 주제가 되었다. 이번 사태도 예외가 아니다. 1월 1일, LPG 가격 제재 정책이 공식적으로 취소되었고, 당일 남서부의 망기스타우(Маңғыстау облысы)주(州)에서 기름값이 두 배로 뛰어 리터당 120탕게까지 올랐다. 불운하게도 카자흐스탄 내에서 이 지역은 매우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과거 십년 동안 가장 격렬하게 사회 불만 정서가 집중되었던 곳이다. 

반박자 늦은 결정

망기스타우주는 천연가스를 풍부하게 생산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지 중 하나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카자흐스탄은 효과적인 개혁이 부족했고, 석유 및 가스 기업들은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석유 자원에 의탁하며 발전해온 도시들은 생활 조건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어디로도 갈 곳이 없고, 노동은 고되며, 임금 역시 수년 동안 오르는 꼴을 보지 못했다. 소수의 벼락부자들에 의존해 통계적인 평균치만 끌어올렸을 뿐이다.

앞서 설명했듯 2011년 망기스타우주 도시 자나오젠(Жаңаөзен)에서는 카자흐스탄 독립 30년 만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위가 일어났다. 석유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서자 시위 현장에 군대와 경찰이 출동했고, 결국 시위대에 총칼을 휘둘러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이 도시와 자국 정부와의 관계 역시 얼어붙었다. 10년 후 치솟는 LPG 가격을 마주하면서 자나오젠은 다시 첫번째 폭발지가 되었다.

여러 지역의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 그날 저녁, 시위대는 도심 곳곳에서 추위를 견디며 밤을 지새웠다.

4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매우 볼썽사납게도 “정부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저항하는 민중들에게 “이성을 되찾으라”고 호소했다. 

이후 수십 시간 동안 군경과 시위자들 사이에 몸싸움과 폭력사태가 계속되었다. 사태가 어긋난 방향으로 가속화되자,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집회로 모였고, 이제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2019년 대통령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도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있는데 그의 완전한 퇴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카자흐스탄 국가안전위원회(KNB; National Security Committee of Kazakhstan)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가족 구성원들 역시 여전히 카자흐스탄 정계와 경제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LPG산업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카예프는 하루 전의 자신의 강경한 입장을 놀라운 속도로 뒤집어버렸다. 1월 5일 아침, 그는 여러 차례 대통령 지시를 내려 내각의 사표를 잇따라 처리했다. 총리를 교체했으며, 국무 비서관과 국가안전위원회 제1부위원장(본래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조카 사마트 아비시가 맡고 있었다)을 대통령실 인선으로 교체했다. 그리고나서 꺼낸 회의 발언은 5일 간 효력을 갖고 있던 LPG 가격 시장화 개혁을 뒤집어버렸다. 5일 낮, 알마티의 시위대가 먼저 시정부를 타격한 후 여러 차례 함락 선고를 냈다. 5일 저녁, 토카예프는 다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나자르바예프의 국가안전위원회 위원장을 해임하고 자신이 맡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시점에서, 그 전에 시위자들이 제출한 모든 요구들은 어느 하나 충족되지 못한 것이었다. 한데 이 놀라운 조치마저도 시위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기세로 도심 곳곳을 공격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시위대는 심지어 국제공항을 점거해 통제권 하에 두었다. 

1월 6일 새벽, 알마티 공항을 점거했던 수십 명의 시위자들이 스스로 공항을 떠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약 30분 정도가 지난 후, 토카예프는 푸틴, 루카셴코와 전화통화를 마쳤다. 그리고는 집단안보조약기구에 군사 협조를 요청하였다. 집단안보조약기구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Nikol Pashinyan) 총리는 카자흐스탄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와 벨라루스 양국 군대를 주축으로 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월 5일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의 주유소 앞. (사진 Valery Sharifulin/TASS)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3년, 카자흐스탄 정치에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의 지위가 매우 크긴 했지만,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있었다. 장녀인 다리가 나자르바예프(Дариға Нұрсұлтанқызы Назарбаева)는 2020년에 갑자기 토카예프에 의해 참의원 의장 직위에서 파면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1년 권력 이양 과도기에 “나자르바예프 사임, 전 참의원 의장 토카예프에 대통령직 인계, 다리카 나자르바예프는 참의원 의장”의 약속이 있었다는 루머가 깨졌다. 2021년 봄, 나자르바예프 대신 정책자문기구인 ‘카자흐스탄 인민대회’의 의장이 된 토카예프는 나자르바예프 사임 이후 유지돼 온 공식 직책을 이어받았다. 이처럼 카자흐스탄의 전임-현임 지도자들은 둘 사이 갈등을 권력 이양의 제도화를 통해 없애고자 했다. 이와 같은 제도화된 권력이양은 통치 엘리트들의 연합과 정치적 사보타주 해소에 기여한다. 대다수 민중에게는 좋지 않은 현실을 연장하지만 말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여전히 카자흐스탄의 진정한 권력자로 비춰지고 있다. 1월 5일 사직한 아스카르 우자크파예비치 마민(Асқар Ұзақбайұлы Мамин) 총리는 그가 임명한 인사였다. 의회에서도 그의 당파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제1당이다. 국부펀드(Samruk-Kazyna)를 통해 나자르바예프는 계속해서 경제의 감제고지를 통제하고 있으며,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직은 카자흐스탄 안보부대에 대한 장악을 한층 더 확보하였다. 이 직책은 법적으로 나자르바예프가 평생 맡기로 돼 있었다.

이것은 1월 5일에 발생한 모든 것을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했다. 나자르바예프 자신 말고도 5일 밤늦게 나자르바예프의 오랜 조력자였던 카림 마시모프 카자흐스탄 국가안보위원회 의장도 마찬가지로 이번 폭풍으로 해임되었고, 에르멕 사긴바예프 전 국가안보국 국장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시위대 요구는 여전히 끊임없이 갱신되었다. 그 중 하나는 정부가 카자흐스탄 텡게화 평가절하를 윤허하기 전에 사람들이 진 은행채무를 감면해 달라는 것이었다. 생필품 가격 인상과 연료 가격 인상이 목전에 다가온 상황에서 이는 무엇보다 절실한 요구다.

5일 아침 ‘물갈이’를 이룬 국무비서관과 국가안보회의(NSC) 제1부위원장, 나자르바예프가 임명한 마민 총리까지 합하면 5일 단 24시간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최소 5개 요직이 나자르바예프 계열 인사에게서 현 대통령측 인사들에게 넘어왔다. 알마티는 1월 5일 어떤 경험을 했는지, 심지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껏 카자흐스탄 시위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함께 하는 정치적 대변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현직 권력자들 간의 쟁투가 어떻게 끝나건 어느 한 세력이 지금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조직적인 노동자운동의 성장이다. 지난 몇 년 간 카자흐스탄 정부는 기존 노총과 별도의 노조를 설립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연달아 짓밟아왔다. 일선 노동자들은 카자흐스탄노총(Federation of Trade Unions of Kazakhstan)이 자신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성장은 이 운동의 성패를 가늠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6일 새벽, 정부는 알마티 공항을 점거한 시위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조직력을 갖고 있다”며, 이를 빌미로 ‘반테러 작전’에 나섰다. 나아가 토카예프 대통령은 마찬가지의 이유로 집단안전보장기구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시위대가 카자흐스탄 밖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국토의 절반이 소요로 뒤덮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악타우 지역 공권력이 시위대에 합세해 카자흐스탄 정부군과 대치하는 장면도 연출되었다는 소식도 나왔다. CSTO는 2,500여 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구성해 카자흐스탄 현지로 증파했다.

1월 7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범죄자, 살인자와 협상에 나설 수 없다고 밝히면서, “시위 진압 군대가 경고 없이 발포하는 것을 승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학살 명령을 내린 셈이다. 이날 정부 발표에 따르면 체포된 인원은 3천여 명이고, 26명이 사살되었으며, 부상자는 18명이다.

1월 9일, 시위대에게 점거되었던 알마티 공항이 당국의 통제로 돌아갔다. 그러나 공항 운영이 다시 재개되진 않았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5,800명을 체포했으며, 사망자는 어린이 둘을 포함해 총 164명이라고 밝혔다. 알마티에서만 103명이 목숨을 잃었다.

1월 4일 아스타나 도심 (사진 Pavel Mikheyev/Reuters)

색깔 혁명이 아니다

LPG 가격 상승은 대중 시위의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나아가 카자흐스탄 항쟁은 색깔 혁명이 아니다. 출발은 자나오젠의 노동자들이었고, 수십년 동안 누적된 사회적 불만이 폭발한 결과다.

카자흐스탄 서부지역은 실업이 만연해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과 민영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업은 문을 닫았고, 실제 움직이는 부문은 정유산업 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부분 외국자본이 소유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석유의 70퍼센트는 서구 시장으로 수출되는데, 그 이익은 외국자본에 돌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서부의 도시들은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일자리가 크게 줄고 있고, 노동자들은 임금과 보너스를 잃기 시작했다.

아티라우 지역에서 텐기즈 오일회사가 4만 명의 노동자를 한꺼번에 해고했을 때, 그것은 카자흐스탄 서부 전역에 진정한 충격이 됐다. 정부는 그런 대량해고를 막기 위해 거의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정유공장 노동자 1명은 5~10명의 가족을 부양한다. 따라서 해고는 즉 한 가족이 굶주리도록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석유 부문과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부가적인 부문 외에는 일자리가 없다.

카자흐스탄은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자재 국가 모델을 구축해왔다. 국제유가의 급락과 함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중산층은 무너졌고, 산업은 파괴되었다. 국산 제품의 불균질한 유통 구조는 부패 요소를 크게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사회 안전망을 와해시켰다. 초국적 자본은 원유나 천연가스의 육로 소송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의 연료를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선 항상 ‘파이프’를 정비하고 관리하기 위한 약 500만 명의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할 때 카자흐스탄 인구 1,800만 명은 너무 많다. 카자흐스탄 사회주의운동 활동가 아이누르 쿠르마노프(Aynur Kurmanov)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이 반란이 여러모로 반식민지적인 이유”이다. 그는 “현재의 시위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작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외에서 가스를 수출해 부족한 석유와 국내 시장에서 유가 상승을 이룬 독과점주의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항쟁은 지난 30년간 카자흐스탄에서 이뤄져온 자본주의 개혁의 파괴적 결과가 불러왔다는 것이다.

1월 11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하원에 출석해 “집단안보조약기구 평화유지군의 주요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이틀 안으로 평화유지군의 단계적인 철수가 개시된다. 철수 과정은 열흘은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자흐스탄의 대테러 진압 작전은 끝났고 현재 모든 지역이 안정을 되찾았다.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선언했다. 그는 2일 폭발한 시위가 “국제테러조직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터무니 없는 헛소리다. 🇰🇿🌊

이 글은 여러 국내외 언론 보도와 그밖의 분석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Joanna Lillis, Kazakhstan: Gas price hike fuels Zhanaozen protests, eurasianet
Georgi Kantchev, Kazakhstan’s Elite Got Richer on Natural Resources. Then Came the Unrest., The Wallstreet Journal
2022 Kazakh protests, wikipedia
Zanovo Media, A Color Revolution or a Working-Class Uprising?: an Interview with Aynur Kurmanov on the Protests in Kazakhstan, LEFTEAST
路尘, 燃油上涨的八毛钱,如何成为哈萨克斯坦不可承受之重, 世界说
윤도원, 2019년 카자흐스탄 권력승계 연구 권력복점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아시아리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성동기,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문제점, 정체성 그리고 전망,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김종관, 카자흐스탄의 에너지 산업과 경제정책, 중동연구
김상원, 카자흐스탄의 경제 성장과 다각화 전략, 아시아리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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