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적 노동체제의 지옥도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과로의 섬 – 죽도록 일하는 사회의 위험에 관하여’ 서평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일터』 2021년 8월호(통권 209호)에 기고한 『과로의 섬』 서평입니다. 해당 매체 편집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대만의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이자 현직 활동가인 황이링과 저널리스트 까오요우즈가 함께 쓴 노작 『과로의 섬』(나름북스)은 대만 사회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로 과로사 문제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여러 과로사 사건들을 해결해나가기 위한 하나하나의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끝까지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가치관을 쉴틈없이 주입하는 사회에서 대만 노동자들은 “근면함을 준칙 삼아 끊임없이 연마하고 발전하는 걸 일의 가치로 여기지만”, 결국 지쳐 쓰러진다.

하루 10~19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다가 어느날 밤 그대로 쓰러져 목숨을 잃은 쉬샤오빈, 장시간 초과근로에 잠도 못 자고 일하다 죽은 29살의 경비노동자 아웨이 등의 죽음은 과로사 문제에 경종을 울린 시발점이었다. 저자들은 이후 과학기술기업과 가전회사 등에서 일하던 이들의 갑작스런 죽음, 살인적인 초과근로에 시달리던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죽음 등을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직종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가령 경비 노동자들이나 IT기업 노동자들이 겪는 월 250~30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 일정기간 동안의 노동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량근로제가 불러온 잔혹한 현실은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 특히 레지던트 의사나 간호사들이 늘어나는 병상과 환자수에 비해 정체되어있는 인력 상태로 겪어야 하는 장시간 노동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후 더욱 극심해진 우리나라 의료 현장과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그러니 대만 노동자들의 겪어온 비극의 단면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실제 대만 자본은 한국의 재벌들처럼 ‘자수성가’의 신화를 축조하며 성장해왔고, 이는 심각한 수준의 산업재해를 양산했다. 저자들은 오늘날 대만 사회에 만연한 ‘과로’ 문제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배태됐음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그 구체적인 사례들과 해결 방안, 심지어 과로 문제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대처하고 맞서 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법·제도와 소송절차, 자가 예방 조치와 생활 균형의 습득,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까지 덧붙여 설명한다. 거시적인 문제에서 집단적 대응, 개인적인 대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셈이다. 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로사 문제에 대한 교과서이자 매뉴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대만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를 ‘방법으로 삼아’ 우리의 길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비로소 타국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만한 여력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대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곤 했다. 현대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경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첫째, 냉전 시대 양국 사회는 공히 서구 자본주의 진영이 동아시아에 그어놓은 전선의 첨병 역할을 부여받았다. 정치적으로 이는 반공주의의 강력한 통제 질서를 낳았고, 민주주의 없는 자본 증식을 동반했다. 둘째, 양국은 196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수출지향적 공업화의 경로를 밟았으며, 80년대를 거치며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라는 범주로 묶이며 가파른 성장곡선을 밟았다. 80년대 중반까지 양국의 노동정책은 철저하게 노동배제적이었으며, 노조 운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 역시 강력했다. 셋째, 두 나라 모두 40여 년에 걸친 권위주의 독재 정권의 시기를 경험했고, 사회운동의 저항을 통해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한데 이런 공통점은 1980년대 후반을 경과하며 차이를 드러낸다.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조합의 발언권과 규제력은 크게 확대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대만은 단체협약 체결건수나 노동조합 조직율 등에 있어 여전히 미미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노동쟁의의 숫자만이 아니라, 고용안정성과 임금 체계 등에도 차이를 낳았다.

반면 오늘날 과로 문제의 양상에 있어서는 양국의 차이가 크지 않다. 이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노동체제가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사업장 문화와 기업별 노조 체제 때문일 것이다. 양국 모두 노동조합은 여전히 기업의 경계를 넘어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규제력을 갖지 못하고 있고, 기업의 규모나 노조 유무에 따라 노동조건의 격차도 크다. 한국의 경우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노조 조직율이 높다.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장시간 노동 비율이 낮지만, 조직율이 현저하게 낮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장시간 노동 비율이 훨씬 높다. 반대로 대만의 경우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장시간 노동 비율이 낮고, 대규모 사업장에선 장시간 노동 비율이 다소 높은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노조 조직력의 차이와 중소규모 사업장의 전통적인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양국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는 누가 세계 최악인가를 다툴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다다라있다. 자연히 과로사 사건과 이를 둘러싼 정책적인 모순 등의 양상에 있어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사실들을 반추할 때, 우리는 과로사 문제에 대한 디테일한 대처에 있어서는 대만의 사례를 깊게 참조할 수 있고, 동시에 노조 운동의 힘을 키우는 방안에 있어서는 전략적 경중의 차이를 둘 수 있다.

무엇보다 한노보연에서 진행하는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와 같은 현실을 이해하는 일은 인접한 두 사회의 노동자 국제연대를 도모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된다. 이 책에서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듯, 대만의 대다수 자본가들은 90년대 이래 이루어진 글로벌화(중국과 동남아시아로의 공장 이전) 과정에서 “착취경제의 경험을 복제”해왔다. 당연히도 이는 대만의 장시간 노동 체제의 이식으로 이어졌다.

가령 연간 매출 기준 대만에서 가장 큰 기업들인 폭스콘과 페가트론은 오랜 기간 중국 내 공장들에서 장시간 노동 체계를 구축해왔다. 2011년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은 이것으로 인해 발생한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이런 경향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겨울 저장성 정저우와 쓰촨성 청두의 폭스콘 공장, 페가트론 상하이 공장에서의 파업 사례는 장시간 노동체제 아래 신세대 농민공들의 불만이 폭발해 벌어졌다. 2016년 3월 기준 페가트론 상하이 공장에서 월 100시간 이상의 연장 근무를 한 노동자들은 전체의 62퍼센트에 달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과로사 문제는 비단 대만과 한국의 문제를 넘어 양국 자본가들이 경계를 넘어 재생산하는 ‘노동체제’에 맞선 싸움을 사건화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과로의 섬』은 그 길을 가기 위한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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