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청년활동가교육 시범과정에 참여하다

※ 이 글은 2021년 8월 13일부터 9월 3일까지 3주간 진행된 민주노총의 신규 청년활동가 교육 시범과정에 플랫폼c 회원 풀숲이 참여한 이후 남긴 후기이다. (커버 이미지 ⓒ노동과세계 송승현 기자)

두 가지 지원동기

민주노총 청년활동가 교육 시범과정(이하 교육)을 알게 된 것은 민주노총 페이스북에 올라온 공고를 통해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내 관심을 끌었다. 우선 학생운동 축소를 목격하면서 활동가의 재생산 경로 또한 다변화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컸다. 그간 활동가 양성에 많은 기여를 해 온 기존의 학생운동조직들은 학생운동 자체의 축소로 인해 크게 위축됐고, 이로 인해 청년 활동가 중에서도 학생운동을 경험한다는 것은 일부만의 경험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도 개별 학생회나 학회 등에서 활동하는 개인이 있을 뿐, 학생운동조직의 멤버십을 갖고 이뤄지는 활동은 거의 사라졌다시피하다.

이런 난점은 이미 사회운동 전반에서 인식되어 있다. 따라서 학생운동이 아닌 공간에서 새 활동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고민 또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가령 참여연대는 청년공익활동가학교를 이미 25기째 진행하고 있고, 졸업생들은 시민단체·정당·언론 등으로 진출하고 있다. 서울시 NPO 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각종 사회운동단체 및 공익단체의 채용공고가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과거 사회운동에서 채용공고가 가장 많이 올라오는 곳은 진보넷 구인게시판이었다)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이 성과연봉제 폐기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환수된 1600억원을 기반으로 조성한 공공상생연대기금은 공익활동가의 실질적 조건 개선, 새로운 활동가 및 사회운동 사업 발굴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학생운동이 활동가 양성의 경로가 되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한국사회에 사회운동이 필요하고, 사회운동을 만들 신규 활동가에 대한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노동운동에서도 현장 조합원의 간부화와 채용활동가 재생산은 오랜 과제였다. 하지만 ‘노동운동가’라는 직업에 대한 이미지는 숭고한 지향과 운동에 대한 자부심과는 별개로, 과로와 적은 활동비, 불안정성 등 현실적 조건으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 때문에 나는 노동조합의 현직 활동가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들은 활동가 재생산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풀어나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두번째는 개인적 진로 고민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2018년 대학에 입학해 조직적 학생운동의 가장 끝자락을 스친 나는 2년차부터 진로고민을 했다. 활동가가 될 것인지, 혹은 연구자나 여타 전문직이 되어 운동에 기여할 방법을 찾을 지가 고민이었다. 기존 학생운동 조직 선배들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 밟아가면 조직적 네트워크를 배경삼아 활동가로 진출할 수 있었지만, 당장 조직 자체부터가 불투명한 전망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선배들이 했던 것과 같은 규모의 동기들이 함께 활동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후배들이 그럴 수 있으리라는 가망도 당분간은 적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바깥에서 전망을 찾지도 못하던 내게 활동가가 될 수 있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학생운동 이후 나는 여러 과정을 거쳐 플랫폼c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평가하기에 운동 전망을 함께 고민할 또래 네트워크는 여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활동가를 꿈꾸게 될 이들에게도 내가 겪은 것과 같은 조건이 강제된다면 그들도 결국에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교육은 오히려 내 또래에서 내 고민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란 점을 알려줬다. 교육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낡아가는 학생운동조직 바깥에는 이미 서로를 지탱해 줄 새로운 조직형태와 ‘느슨한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렇듯, 민주노총 신규활동가교육은 어쩌면 인적 네트워크와 운동의 전망에 관한 고민을 진전시키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세 가지 활동가론

민주노총 신규 활동가 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다. 노조 활동가들이 갖는 ‘운동적 기풍’을 체험하는 것, 노동운동가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각자가 갖고 있는 고민의 맥락을 배우는 것,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과 함께 노동조합이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들을 통해 나 자신의 진로를 그리는 한편,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활동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이런 수확은 교육 과정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한 미조직실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을 수 있었다. 교육생들을 동등한 활동가로 대하는 그들의 태도, 교육이 진행되는 과정 내내 매일 피드백을 제출받으며 끊임없이 활동가 대 활동가의 관점에서 교육생들과 진행과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우리가 교육을 듣는 것은 물론, 앞으로 있을 2기, 3기 참가자들을 위해 함께 교육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첫번째 활동가 기풍에 대한 고민은 교육 첫 날인 8월 13일, 단병호 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이 강연에서 한 말이 압축적으로 대변한다. “활동가의 길은 비단길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면서도, 활동가가 대중을 위해 하는 일들이 타인을 위한 희생이나 봉사가 아니란 것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보상 심리가 작동해 개인적인 성취가 우선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 전 위원장은 “오히려 운동은 활동가가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 스스로 꿈꾸는 가치에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확신을 갖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 다시 대중 속에서 나오며, 자신과 주변의 정치적 주체성을 벼려야 한다는 말이 서늘하면서도 무겁게 다가왔다. 사회운동에 몸담았던 많은 이들이 체제에 투항하는 모습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활동가들에게 지표가 될 만한 말이라고 느꼈다.

단병호 전 위원장의 말은 교육과정에서 활동가들을 만나며 느낀 활동 기풍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 내내 교육생들은 많은 질문을 던졌다. 어지간해서는 질문이 잘 나오지 않는 여느 교육 프로그램의 풍경과는 달랐다. 시간을 넘겨 질문이 이어지고, 연사가 질문을 그만해 달라고 요청할 만큼 강연형 프로그램이든, 현장 탐방 프로그램이든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운동 자체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었던 것은 ‘위원장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시범교육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실에서 각각 1주간 맡아서 진행됐는데, 매주 초 혹은 마지막에는 ‘위원장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위원장과의 대화 시간에는 어김없이 여성노동, 이주노동의 현안에 관련한 질문에서부터 노조 내부의 정치적 긴장관계, 비정규직-정규직 갈등과 같은 산별노조 내부의 격차,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국면에서 벌어지는 일자리와 (탈)성장의 쟁점, 노조 내 평등 문화와 활동가 처우 개선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각 노조 위원장의 답변을 들으며, 그들이 경험을 통해 쌓아온 활동가관을 배울 수 있었다.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은 노조 내부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질문에 “누가 명령한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적할 때 지적하고 매를 들 때 매를 들자는 원칙 아래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공운수노조 현정희 위원장은 비정규직-정규직 갈등에서 정규직 노조의 태도에 대해 “원칙과 기준은 조합원들이 인정할 때 존재가능한 것”이라며, “지키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제명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선 모든 것을 내놓고 토론할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단지 옳은 지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고, 느리더라도 조직 전체가 함께 토론하며 스스로를 바꾸는 것만이 진정한 변화의 길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나 활동가가 아닌 교육생들이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질문’이란 문제를 인식하는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위해선 민주노총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민주노총 바깥에서 가해지는 비판의 의미 또한 잘 이해하고 있어야 던질 수 있다. 전자의 시선만으로는 민주노총의 많은 것을 마냥 좋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후자의 시선만으로는 노동운동 내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표피적인 비난의 언설만 늘어놓을 수 있다. 나를 포함한 교육생들의 질문은 그 사이의 균형을 잡고, 앞으로 스스로 자신의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던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노동조합의 고민과 삶의 궤적

두번째로 노조 활동가와 조합원들이 걸어온 궤적과 그 고민의 맥락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에서 진행한 ‘사람책’ 프로그램, 청년 활동가 집담회, 현장 탐방 등의 프로그램은 그런 기회를 제공해줬다. 1주차에 치러진 민주노총 교육에서 민주노총 운동을 조감해 볼 수 있었다면,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에서 진행된 2주차 및 3주차 교육에서는 산업 현장에 직접 가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조직력을 키우는 산별노조 운동의 진짜 모습을 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중 교육생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사람책’이다. 사람책(Human Library)은 덴마크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개발한 것으로, 책이 아닌 특정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일종의 ‘책’이 되어 청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전달한다는 컨셉으로 이뤄지는 활동이다. 노동조합에서 ‘사람책’ 활동은 조합원과 간부가 정해진 매뉴얼과 일방향적 교육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고민과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활용된다. 교육생들의 높은 호응도 ‘책’과 같이 깊이 있고 맥락 있는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대화하며 교감을 나눈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이리라 생각된다.

교육생들이 각자 작성한 ‘나도사람책’

공공운수노조에서 ‘사람책’ 활동은 총 세 권이 준비돼 있었다. 첫째는 공공운수노조 상근 활동가 A로,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책은 90년대 후반 이후 쇠퇴하는 학생운동에서 “결국은 남은 후배”가 되어, 상근활동가 길을 걷게 됐다는 클리셰적 스토리로 시작된다. 의도치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활동인 노동조합 활동에서 갖는 부담감으로 슬럼프를 겪었다는 경험 역시 노조 활동에서 지게 되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지속하고, 현재 자신과 조직의 역량을 인정하면서 이를 극복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활동가라는 직업 역시 다른 여느 직업과 마찬가지로 ‘슬럼프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한다. ‘활동가도 하나의 직업이구나’하는 인상이 남았다.

두 번째 사람책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조합원 B였다. 건간보험 고객센터는 2021년 내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고, 매우 격렬한 투쟁이 이어진 현장이다.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는 옆자리에서 일하고 있더라도 서로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이였다는 이야기, 2월 첫 파업에서 폭설을 맞으며 피케팅을 하고 유인물을 나눠주며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 그러자 관리자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유대감이 생기고 ‘동지’가 됐다는 이야기, 인터넷상에서 “좀비”라는 조롱이 쏟아진 건강보험공단 본사 투쟁 당시 조합원들이 다 같이 언덕을 기어오를 때 본인의 어깨를 타고 넘어가라고 한 뒤로는 “어깨언니”라는 별명이 지어졌다는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이 기억들은 “절대 추억이 될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프고 힘든 처절한 이야기들”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사람책 본인도, 듣는 교육생들도 눈물을 흘렸다. 여느 자료집이나 정리된 기록물에서 봤다면 그렇게 감정이 강렬하게 전해오지는 않았을 터이기에 면대면으로 만나는 사람책의 의의가 크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세 번째는 교육생들이 직접 사람책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멸종반란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지를 사람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요가에서 비거니즘으로, 그리고 페미니즘적 실천의 경험이 다시 기후위기에 맞선 활동으로 이어지는 4년 동안의 경로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나도 대학에서의 활동과 정당 활동을 하며 나름 좌충우돌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경험은 단조롭게 느껴졌다. 당시까지 일주일 넘게 교육을 같이 들었지만 정작 교육생들끼리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풀이가 아니더라도, 공식적인 활동에서 서로의 활동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

3주차, 금속노조에서의 ‘사람책’은 마치 ‘취업박람회’ 같았다. 다섯 명의 사람책을 각각 30분 안에 돌아보려니 긴밀한 고민을 나누기보다는 각자의 활동과 삶의 경로를 소개하는 질문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활동가들마다 청년 활동가 영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모습에서 이 사업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책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간부, 금속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중앙사무처 노동안전실 간부,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경남지부 사무처 간부를 차례로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사람책 중에는 현장 노동자 출신의 선출직 간부, 연구자, 법률인, 국회의원 보좌관 등 궤적을 거쳐 금속노조에 온 다양한 활동가들 있었다. 내가 고민해온 진로 역시 하나같이 금속노조의 사람책들이 걸어온 길들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내 활동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노동조합과 맞닿을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묘하게 위안이 됐다.

금속노조에서 이틀간 진행된 현장탐방에서도 ‘노조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과정에 여러 제약이 있었는데 답답함이 뻥 뚫리는 경험이었다. 교육생들은 부평공단에 새로 조직된 금속노조 인천지부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를 방문했는데, 이 공장은 신생 지회임에도 불구하고 193명의 노동자 중 191명이 다 조합원으로 가입한 곳이었다. 작업중에도 사업장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고, 공장 곳곳에 쟁의 관련 선전물들이 부착된 풍경이나 모든 조합원이 노조 조끼를 입고 일을 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에 의한 사업장 통제가 무엇인지 얼핏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공장 순회 이후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는 2019년 노조 설립 이후 도급업체가 2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고용, 근속, 노조 인정 등 세 요구를 승계하는 투쟁에서 계속 승리해왔다. 지난 투쟁에 대한 회고를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함께 노조에 가입해 집회도 나가고, 파업을 하면서 교육도 같이 진행한다는 것을 들으며 노동조합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인천지부 방문 날, 퇴근 시간에 맞춰 부평공단 앞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알리고, 임금명세서 발급 법제화를 설명하는 선전물을 배포했했다. 선전전을 진행할 때마다 행인들이 잘 받아가면 재미가 붙지만, 너무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한데 선전전 때 함께 선전전을 진행하던 지부 활동가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장 이런 유인물을 뿌린다고 해서 새로 연락이 들어오거나 바로 조합원이 늘지는 않지만, 다들 받고 나서 머리 한구석에 기억을 남겨놓는다고. 나중에 실제 자신에게 노동조합의 힘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수년 전의 유인물이라도 들고 와서 상담을 받는다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노동조합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확신과 전망을 갖고 꾸준히 활동할 자신감을 기르는 게 활동가의 직업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세 번째로 남은 질문은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가들을 노동조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이다. 이번 교육 사업을 맡은 활동가들은 교육과정을 민주노총에서 새로 기획하고 시행하는 과정마저도 조직 내부에서 논쟁을 거쳐 만든 결과라고 들려주었다. 배우는 내용만이 아닌, 교육과정 진행 자체도 끊임없이 논쟁의 과정이었다. 교육과정 신청 전부터 ‘성중립 화장실 개설 여부’를 조사했고, 새 사무실 건물로 이전하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한 공공운수노조에서는 물론, 기존 건물 구조로 인해 성중립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은 민주노총 건물에서도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됐다. 식단에 있어서도 비건 식단 조사가 있었고, 점심 식사에서 비건 식당 식비가 지원되거나, 비건도시락이 제공됐다. 이러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식단은 교육생들의 아쉬움을 낳기도 했다. 모두가 비건 식단을 실천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방안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식생활을 기준으로 교육생들이 식사시간에 갈리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던 것도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다. 전원이 비건 식단을 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제안도 있어 실제 하루는 전원 비건식을 먹는 날이 기획되기도 했다. 한편, 금속노조 단양수련원에서 진행될 때에는 모든 공식적인 식사는 비건식으로 제공됐지만, 추가 제공된 음식에선 지적이 있기도 했다. 특정인에게 소외감을 주지 않는 한편, 아직 비건식과 해당 개념이 낯선 이들에게 맥락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마냥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것은 비단 비건 뿐만이 아닌 다른 문제에서도 적용되는 딜레마였다. 정치적 지향과 구별되지 않는 낯선 문화적 실천을 기존의 조직 문화와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은 셈이다. 이를 조직적으로 논의하면서 풀어나가는 것이 노동조합다운 기풍일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청년공론장 사업 포스터

한편, 앞서 언급한 고민들이 막다른 곳에 갇히지 않게 하는 실마리도 교육 프로그램에서 얻을 수 있었다. 교육기간 중 공공운수노조에서는 그간 노조가 청년 조합원과 활동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음을 알리고 싶은듯, ‘청년조합원 대상 사업’에 대한 발제와 청년활동가 집담회가 열렸다. 흔히 많은 언론이 오늘날의 청년 노동자, 특히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가 보수적이고 실리적이라 묘사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노조가 먼저 쉽게 냉소하거나 절망해 스스로를 가둬서도 안된다. 공공운수노조 내에서도 간부의 고령화 현상과 청년조합원의 간부화 지체의 원인을 “노조의 변화가능성 및 공동체적 측면에서의 신뢰가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이에 따른 해결책으로 공공운수노조의 조직 가치인 ‘공공성’이 실리주의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됐다. 또, 청년 조합원들이 보다 적극적인 구성원이 되고, 의사결정체계에서 노동조합 조직에 대한 신뢰와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청년들이 알아서 간부로 성장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닌, 직접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해 스스로 의사결정능력을 높이는 것이 제도적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청년세대에서 핵심 주체들이 서면 ‘청년들의 공간’이 열리고, 더 많은 청년조합원들이 해당 공간에 들어오게 되어 대화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다. 결국 가치의 확대를 위해 중요한 것은 차이의 인정하되, 차이를 기준으로 별개의 사업을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틈입할 수 있는 주체적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어진 청년활동가 집담회는 진로를 고민하는 교육생들에게 유효한 자리였다. 공공운수노조 사무처부터 의료연대본부, 화물연대본부, 공항항만운송본부, 교육공무직본부 등 업종본부, 지역지부에서 일하는 청년 활동가들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노조 바깥의 피상적 인상과 다르게, 청년 활동가들은 꾸준하게 노동조합의 일선에 서고 있었다. 아직 노조 전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는 없더라도, 책읽기모임을 통해 답답함을 해소하거나 다른 세대 활동가들과의 토론을 통해 고민을 해소하는 기회를 얻는다고 말해주었다. 한편, 언제나 솔직하게 현장 조합원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 채용간부와 현장간부의 역할이 다름을 인지하고 본인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인상깊었다. 맡은 바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수행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균형잡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결국에는 활동가 스스로가 활동가로서의 전망에 대한 질문을 잃지 않는 치열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 역시 일깨웠다.

활동가에 목마른 민주노총이 우물을 팠다

민주노총 청년 활동가 시범교육은 민주노총이 활동가 재생산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새롭고 고무적인 시도이다. 이제껏 활동가의 화수분이 되어왔던 학생운동 조직들은 소멸해 가고 있다. 대학 안팎의 활동 또한 파편화되어 개인 수준의 실천으로 해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운동판’의 활동가들을 지속적으로 묶어줄 네트워크도 변화해야 한다. 강한 구속력으로 묶이는 정파조직 형태와 한 가지 의제에 맞춰 뭉치고 흩어지는 느슨한 네트워크 연대체 사이 중간 정도의 결속력을 가진 호혜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 운동의 지향과 전망을 토론하며 개별적 실천과 실무로 분해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나의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마지막 날, 소감 발표에서 많은 교육생들은 이 프로그램이 자신의 진로 결정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3주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교육을 함께 이수한 사람들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활동가로서도, 생활인으로서도 충분히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점점 불안정해지는 직업 환경에서, 본인의 지향을 실현하는 곳일뿐더러, 치열한 소명의식을 겸비한다면 직업으로도 안정적인 곳이 노조 활동가라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교육에 참가한 사람들이 나중에 민주노총 소속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이 사업은 결코 민주노총에 손해가 아니다. 사회운동 전반에서 의제나 단체들 간 단절과 고립이 깊어지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노동자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 전반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내 각 영역이 상호간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서로의 운동에 대한 이해가 낮아지면 소통에서도 오류가 생기기 십상이고, 사소한 차이가 오해와 갈등으로 발전하는 것은 더욱 쉽다. 이는 운동사회 안에서조차 ‘민주노총’을 부적절하게 비판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이유다. 그럴 때일수록 민주노총 밖에서 노동운동의 맥락과 기풍을 이해하는 활동가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노총 바깥에서 민주노총을 지지하고 자신의 활동으로서 연대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이 ‘위원장과의 대화’ 에서 말한 것을 옮기고 싶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조합원이 230만 명이고, 상근 활동가만 2,000여 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학생 시절부터 ‘금속노조 장학생’으로 연을 맺는다. 반면 한국의 금속노조는 조합원이 18만명에 상근활동가도 전국을 다 합쳐야 100여명 수준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삼성 장학생’이 아닌 ‘금속노조 장학생’이 되어 활동가가 되거나 연구자가 되어 노동운동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이 가능해질까? 삼성에도 노조가 생길 것이고, 지금은 2명뿐인 금속노조 여성실도 더 큰 규모의 평등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 445개 사업장 중 125개 사업장이 복수노조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을 딛고 조직실이 시도할 수 있는 선택지도 훨씬 늘어날 것이다. 민주노총 활동가교육이 3주간 30명이 아닌 3개월간 300명 규모로 확대된다면, 서울만이 아닌 지역본부에서도 활동가교육이 진행될 수 있다면,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만이 아닌 16개 산별 모두에서 활동가교육이 진행된다면 그런 꿈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1기 교육생들 중 10여명이 참여하는 책읽기모임에 참여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읽는 책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2주 간격으로 서로 모여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식을 듣고, 책 내용에서 출발해서 각자 운동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이어간다. 이야기가 이리저리 삼천포로 빠지고, 때로는 서로 다른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같이 꾸준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끝난다. 우리는 보다 밀접해졌고, 함께 프로그램을 이수한 교육생들은 기후위기 집회와 노동자대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같은 기수 사이에서 연결망들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에는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몇 해가 지나고 다음 기수의 교육생들이 꾸준히 쌓인다면 민주노총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연결망을 확장하는 사업을 펼쳐 나갔으면 하는 바램 또한 절실하다.

‘후기’로만 끝낼 수는 없어서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남기고 싶은 것은 내가 활동가 교육을 하며 직접 만나고 가본 현장들 중 지금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연대의 당부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주얼리업종분회이다. 나는 이들을 안양시 주얼리SL 사업장 앞에서 만났다. 주얼리 업종은 서울 내에만 800여개 사업장, 7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위치해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영세한 규모다. 그 때문에 많은 주얼리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바깥에서 건강에 유해한 물질을 다루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주얼리업종분회는 이러한 주얼리노동자들의 요구를 업종 전체의 요구로 묶어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주얼리SL은 안양에 위치해 있지만, 30명 넘게 주얼리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 내에서는 대규모 사업장에 속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얼리SL은 매년 최저임금을 위반해 왔고,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산입범위 개악이 이루어지자 기존에 지급하던 식대를 편입시켜 임금을 동결했다. 잔업수당에서는 남녀간 성별차등이 존재하고, 코로나19 이후에는 포괄임금제와 주4일제를 적용해 임금을 이전 대비 70% 수준으로 삭감시켰다. 이에 주얼리SL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회사는 조합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각 노동자마다 CCTV를 한대씩 설치해 감시통제를 강화하고 파업에는 대체인력 투입을 자행했다.

내가 민주노총 활동가교육의 조별 현장탐방 일환으로 안양 주얼리SL을 방문한 날은 9월 2일 목요일으로, 이때 이미 주얼리업종분회는 천막으로 된 현장사무실을 설치해 3주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장사무실에서 이루어진 간담회에서 조합원분들은 우리 교육생 네 명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셨다. 그 때, 연대를 약속드리고 왔지만 이후 들려오는 소식은 상황의 악화였다. 노동조합이 계속해서 투쟁하며 교섭을 요구하자 주얼리SL은 공장 폐업과 전원 해고를 통보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한 채 무기한 전면파업을 80일 넘게 이어갔다. 안양고용지청 앞에서 수 차례 연대집회를 열고, 11월이 되어서는 더욱 다른 사업장에까지 연대하며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12월 1일 주얼리SL 노동자들은 파업투쟁 140일, 무기한 전면파업 85일만에 사측과 폐업철회 및 최소한의 법적문제해소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음 투쟁을 기약한다는 말도 남겼다. 앞으로도 이 후기를 읽는 분들이 주얼리업종분회의 활동에 주목해 달라는 부탁으로 이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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