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 2021년에도 계속되는 태국의 왕실 개혁 민주항쟁

2020년 방콕의 가을을 뜨겁게 불태웠던 태국 시민들의 항쟁(「태국 : 거꾸로 읽는 태국 민주항쟁」 참고)이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 천천히 잦아들면서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물론 태국의 코로나 상황은 1일 신규 확진자 2만 명을 넘나들었던 8월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하루 6천 명 수준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불만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촉발된 태국 민주항쟁의 직접적 원인은 군부 쿠데타와 왕실에 있다. 몇 차례 연기 이후 실시된 2019년 3월 총선에서 군부는 매우 불공정한 규칙 속에서 승리했다. 군부가 만든 정당 팔랑쁘라차랏당(인민국가권력당; People’s State Power Party)은 표면적으로는 민간정부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군부가 영향력을 미치는 친군부 정권이다. 

이런 가운데 태국 경제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바트화 가치 급등은 수출 감소와 투자 위축을 낳았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은 관광산업을 핵심으로 하는 태국 경제 상황을 보다 악화시켰다. 2020년 태국 경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2년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2020년 민주항쟁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한데 이런 상황은 2021년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9월 태국의 경제당국은 태국의 올해 성장율 전망을 기존 1.5퍼센트에서 2.5퍼센트 사이로 하향 조정했다. 태국 청년들은 사라진 일자리와 경제위기를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왕실과 군부가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 

6월, 다시 촉발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가 발동한 ‘비상법’에 맞선 불복종 행동의 일환이었다. 7월 이후로 시위는 더 크게 확대됐다. 7월 3일과 10일에는 운동단체 프라차콘 타이가 주최한 집회가 열렸고, 같은날 레드셔츠 진영이 주최한 차량 시위도 있었다. 그밖에도 7월 내내 곳곳에서 여러 단체들이 주도한 집회들이 이어졌다.

활동가이자 인권변호사 아논 남파

이런 저항은 8월 1일 전국 30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집회로 확대됐고, 2020년의 분위기를 다시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틀 후 태국의 저명한 활동가 아논 남파(Arnon Nampa)는 형법 112조의 폐지와 왕실 재산에 대한 감시 등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고, 며칠 후 왕실모독죄로 체포됐다. 8월 내내 이와 같은 불복종 저항이 이어졌고, 급기야 9월에는 점점 격화되는 시위에서 52명의 시민들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점증하는 시민 저항에 의회 내 야당 세력은 총리 불신임안을 내놓았다. 야당은 쁘라윳 총리와 다섯 명의 장관들에 대해 코로나 대응 실패와 부정부패를 이유로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8월 말~9월 초 4일 간 TV로 중계된 토론에서 야당 의원들은 쁘라윳 총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백신 접종, 부정부패에서 무능을 드러냈으며, 불신임 투표에서 표를 매수하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쁘라윳 총리는 “나는 부패하지 않았다. 태국은 코로나 유행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는 아닐지 모르지만, 최악은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이 시기 수도 방콕 도심에서는 총리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당시까지 태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20만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만2천여명에 달했다.

투표 결과 쁘라윳은 불신임 투표에서 승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지만, 시민들은 거리에서의 지속적인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활동가 Attapon Buapat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정치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의회가 답은 아니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답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불신임안이 부결된 당일 밤 운동단체 레뎀(Redem)은 룸피니 공원(Lumpini park)에서 집회를 열었다. 수천 명의 청년들이 현장으로 오려 시도하면서 온종일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컨테이너로 도로를 봉쇄해 시민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새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청년들을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했다. 이런 공방전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가을 이래 시위 양상은 보다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과격해졌다. 차량 시위, 오토바위 시위, 거리에서의 기습적인 시위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10월 6일 밤 방콕 시내 딘댕 사거리 인근에서 시위 진압 경관 한 명이 머리를 다쳐 쓰러졌다. 이 경관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이날 시위 현장에서 28명을 체포했고, 이튿날 딘댕 지역에서는 13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이 중에는 10대 청소년들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청 부대변인은 시위대가 폭죽, 폭발물, 새총 그리고 유리공 등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체포된 시민들

확실히 시위 양상은 지난해와 달라진 듯하다. 태국 시민들은 폭죽, 폭발물, 새총, 유리공과 같은 것을 활용해 최루탄과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에 맞서고 있다. 10월 28일, 2개월의 혼수상태 끝에 15살 청소년 와릿 솜노이(Warit Somnoi)가 죽었다. 8월 16일 딘댕 교차로에서 열린 시위에서 그는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쓰러졌다. 와릿 솜노이가 죽은 다음날 딘댕경찰서에 민주화 지지자들이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2명을 체포했다.

10월 31일, 파누사야(Panusaya)와 그녀의 동지들은 방콕 도심 한복판 상업지구가 몰려있는 라차프라송(Ratchaprasong)에서 왕실모독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된 이 집회에서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야간 집회에서 연설 중인 파누사야 활동가

11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청년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왕실 개혁 요구가 ‘군주제 전복’을 꾀하는 것이라며, 이와 관련된 활동을 중단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한 왕당파 변호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2020년 8월 학생 시위 리더 세 명이 “왕실 개혁” 등 10개 조항이 담긴 선언을 발표한 것에 대해, 이것이 군주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구속과 같은 처벌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왕실 개혁’요구와 맞닿아 있는 지금의 시민 저항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태국 헌법은 왕실이 공식적으로 의회정치 시스템보다 상위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군주제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되어 있다. 왕실을 모욕했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 징역 15년형에 쳐해질 수 있다. 1년여 간 이어지고 있는 민주항쟁은 ‘왕실 개혁’과 ‘군부정권 퇴진’을 핵심으로 한다. 최소 1,636명이 기소됐으며, 수백여 명이 체포됐고, 지금까지도 수십여 명이 구속 상태다. 이는 태국 현대사에서 매우 대담한 도전이다. 2020년 8월 두 차례의 집회에서 행해진 ‘왕실 개혁’ 요구를 담은 연설은 왕정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차단해온 오랜 금기를 깨뜨린 첫 사례이다. 

헌재 판결이 있었던 11월 12일, 법원 앞에는 많은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청년 활동가 파누사야는 자신들의 목표는 군주제 전복이 아니었으며, 다만 헌재 판결에 대해선 존중한다고 밝혔다. 주요 운동단체 중 하나인 ‘따마삿과 저항을 위한 연합전선(United Front of Thammasat and Demonstration)’은 군주제 개혁 요구는 왕실 전복 요구와 다르다며, “국민이 정치권력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쁘라윳 총리가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9월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음에도 시위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여론은 여전히 그에 대해 강하게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집권 여당은 내부 분열에 휩싸였고, 코로나 상황의 향배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쁘라윳 총리와 군부 정권은 코로나가 종식되고 관광산업이 부흥하는 것만이 이 난국의 탈출구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11월 14일에도 태국 시민들은 ‘왕실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집회 금지 조치에 불복종하고,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헌법재판소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있다”며, 세 손가락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시민 1명이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응급실로 실려갔다. 

11월 20일에는 방콕미술문화센터(BACC) 앞에서 시위 참여 이후 구속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는 활동가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는 플래시몹 시위가 열렸다. 플래시몹 참가자들은 2020년 12월 20일 시위와 관련해 왕실 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학생운동가 파누사야 시티지라와타나쿨 등 구속된 사람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태국의 인권변호사단체 TLHR에 따르면, 정치적 표현과 관련된 혐의로 최소한 25명이 재판을 받고 있으며, 그 중 6명은 왕실 모독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틀 후인 11월 22일 법원은 학생운동가 파누사야 시티지라와타나쿨의 보석을 취소했다. 법원은 파누사야가 시위에서 연설을 계속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시위 참가를 호소했기 때문에 보석 조건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또한 2021년 7월 28일에 그가 “바지랄롱코른 왕의 생일에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선언하며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이미지가 왕실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이 점 역시 보석 조건을 위반한다고 밝혔다. 파누사야는 현재 2020년 12월 20일 시암파라곤 쇼핑몰에서 활동가들이 왕실 모독죄 폐지 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구속 상태에 있다.

또한 법원은 팝밴드 The Bottom Blues의 리드 싱어 챠이아몬 캐위본판(Chaiamorn Kaewwibonpan)과 학생운동가 파누퐁 자드녹(Panupong Jadnok)에 대한 보석을 취소하지 않기로 판결했다. 태국 인권변호사(TLHR)에 따르면 법원은 차이아몬과 파누퐁이 계속 항의에 참석해 연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석 취소를 정당화할 만큼 그들의 행동은 심각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람에게 ‘전자 감시 팔찌’를 착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팔찌를 착용하는 한 그들은 의료 치료의 목적 외에 거주지를 떠나는 것이 금지된다. 같은 혐의로 보석 석방된 아논 남파(활동가이자 인권변호사)에게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졌다. 또, 같은 혐의로 구속된 활동가 패릿 치와락과 자투팻 분파타라라크사에 대한 심리를 열지 않고 보석을 취소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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