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평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주] 21대 총선 이후 19일의 시간이 지났다. 진보정당 활동가인 필자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평가를 하는데 있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고민 속에서 평가하고 논쟁해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가져야 할 고민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시간이 다가온 만큼, 앞으로 치열하고 진지한 평가 과정이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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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의원 선거(이하 ‘총선’)가 끝났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야당 미래통합당을 밀어내고 국회 의석의 60퍼센트을 차지했다.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촛불’로부터 3년, 국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분명히 선긋지 못하고 국회를 파행으로 내몰았던 세력을 밀어내고, 집권 여당에 한번 더 기회를 주었다.

진보정당은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동당은 수년 간의 내분과 갈등으로 당세가 약해져 선거에 힘을 쓰지 못했다(0.12%). 녹색당은 당내 여러문제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정치개혁연합 합류 논의에 흔들리다가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0.21%). 민중당은 꾸준한 조직화로 어느정도 성과를 내긴 했으나 과거 통합진보당 시절에 잃어버린 확장력을 극복하지 못했다(1.05%). 정의당은 지난 선거때보다 지지율이 조금 더 오르긴 했지만 4년 전 6석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9.67%). 진보정당의 지지율을 다 합하면 11.05퍼센트다. 2006년 민주노동당 지지율 13%에 약간 못 미친다. 15년 전 지지율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단지 지난 총선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는 이유로 자족해야 할까? 치열하게 ‘선거 평가’를 해야 할 때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열심히 평가하고 나면 뭔가 달라지긴 할까?

평가 매너리즘

기득권 정당들은 의석의 증감과 구도의 변화를 두고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확인 한 후, 이를 기본으로 더 큰 성공을 위한 전략, 또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큰 줄기의 전략을 짠다. 전략은 다음 선거 전까지 다양한 전술로 효능감 있게 펼쳐진다. 당의 전략이 실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의석이 없거나 있더라도 극히 ‘소수’이기에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공히 확인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주관적 평가에만 의존하게 된다.

정의당은 이번에 민주당의 정국안정론과 미통당의 문재인 심판론에 맞서 “양당 기득권 타파”와 “원칙있는 정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 슬로건과 그에 따른 전략이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의석수로는 확인되지 못했다. 하기에 선거 평가를 하려는 이들은 이번에도 확실한 근거를 갖고 평가에 나서기보다 몇 개의 여론조사에 기댄 채 망설이며 평가를 시작한다.

애써 평가를 마치고 이에 근거하여 이후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러고나면 거대 양당의 정치공방에 대응하느라 세웠뒀던 계획은 당내에서 공유되지 못한 채 잊히기 일쑤다. 그렇게 해서 원대했던 계획을 제대로 실행해 보지도 못한 채 다음 선거를 맞이 하게 된다. 부랴부랴 선거를 준비하고 바쁘게 치루고나면, 다시 평가서를 마주하게 된다. 효능감과 집행력이 담보되지 못하는 평가와 계획세우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평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만다. 부족한 데이터로 평가를 하고, 계획을 세워도 현안 대응 탓에 확산과 집행을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평가’를 평가하기

기존 진보정당 내 평가 방식은 단편적이고 단기적이었다. 우선 지역위원회와 시도당에서 평가 토론회를 열면 소수의 활동 당원들만 참석하고, 평가 발제를 담당한 사람 몇몇이 짧게는 반년, 길게는 일년 간 당의 현안 대응에 대한 공과를 살피고,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당이 얻은 성적도 살핀다. 그 후에는 본 선거를 이전에 중앙당이 짰던 슬로건과 전략을 분석하고, 지역별 선거전략을 확인한다. 중간중간 전문가와 당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평가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평가서를 당내 대의기구에서 채택하면, 이제 계획을 세울 차례다. 향후 반년~1년 간 어떤 기조로 움직일건지 정해 의견수렴을 거친 후, 역시 대의기구를 통해 채택한다. 익숙한 평가와 계획의 패턴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평가 매너리즘을 극복하기란 어렵다. 평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기존의 평가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만 한다. 우선, ① 선거 평가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빈번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 ② 공식적인 선거 평가 과정에선 시민·사회운동 활동가·언론인·연구자 등 당 바깥에 있는 이들의 참여를 폭넓게 유도해 진행함으로써 당 바깥의 시야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평가하는 일을 단지 ‘때 되면 해야하는 숙제’가 아니라 ‘당의 행사’이자 ‘운동’이 되도록, 격려와 비판이 맹렬히 오가는 ‘사건’이 되도록 해야 한다. ③ 당원들이 자신의 선거평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틀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돈과 시간을 좀 더 들여 더 많은 데이터와 의견을 수렴하고, 우리가 선 자리에 어떤 위기와 기회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보다 심도 있고 사회운동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④ 당내 정파·의견그룹·소모임 등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직접 나서서 논쟁의 장을 정기적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진보정당의 필요성, 정당활동의 의미, 당원의 역할 등 선거와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근본적이고 발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말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제각기 다른 진단을 내리는 이들을 초대해 공개 토론을 진행하는 것도 좋겠다. 이는 견해의 차이를 이해하고, 각자의 관점을 보다 합리적으로 정립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⑤ 이와 같은 꾸준한 평가와 지속적인 전망을 세우고 집행하기 위해 중앙당 차원에서, 혹은 시도당 차원에서 ‘중장기 전략수립 태스크포스’를 꾸릴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은 큰 당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과 자원의 일부를 따로 빼놓지 않는 이상, 큰 당들의 정치공방 속에서 자기계획과 전망을 잃고 시류에 휩쓸리기 쉽다. 끝으로, ⑥ 당원들이 당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당내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룬 정기 매체의 발간도 추진해야 한다. 우리가 나누었던 평가의 기준과 혁신의 기획들이 어떻게 점검되고, 교정되고 있는지 모든 당원과 시민사회운동이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 이와 같은 ‘매체’를 통해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당원 스스로 자신이 이 당의 주인이고, 혁신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긴 싸움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지지율로만 보면 10퍼센트 남짓이고, 국회 의석수로 따지면 거대 양당 283대 6으로 2.1퍼센트다. 지방의회 의석수로 따지면 1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이런 난망한 조건 하에서 중장기적 시야를 놓치면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한 톨의 평가와 한번의 계획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현안과 이슈에 철저히 대응하더라도, 동시에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멀리 내다보며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갈 길이 멀다. ‘제대로 된 평가 투쟁’을 통해 진보정당 혁신의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

 

이효성(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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