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는 우리 시대 (2) : 온실가스 감축 전략과 생태 혁명

[역주] 미국의 생태 마르크스주의자 존 벨라미 포스터가 <먼슬리 리뷰> 2019년 11월호에 발표한 글을 소개한다. 최근 미국에서 부상한 그린 뉴딜 논쟁에 관해 잘 정리하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8년경 오바마 대통령이나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안한 그린 뉴딜이 생태적 현대화 버전이라면, 최근 기후정의운동이 제기하는 그린뉴딜은 생태 사회주의 지향에 가깝다. 이 글에서 존 벨라미 포스터는 과거와 현재의 그린 뉴딜이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또, 2012년, 2016년 대선 당시 미국 녹색당이 발표한 그린 뉴딜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주도해 미국 의회에 제출한 그린 뉴딜 결의안, 올 9월 버니 샌더스가 발표한 그린 뉴딜의 특징에 대해 논의하고, 장단점을 분석한다. 글 후반부에서는 IPCC가 제안하는 해결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혁명적/변혁적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개혁과 혁명을 일반화해 대립시키는 논리 구조는 다소 아쉽다. 그러나 생태 위기와 사회-경제 위기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본주의 모순적 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따라서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매우 소중한 지적이다. 이 글은 전체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각주가 포함된 전체 번역본은 첨부된 파일을 참고할 수 있다.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 오리건 대학교 교수, 먼슬리 리뷰 편집장

 

IPCC와 감축 전략들

그렇다고 구조적인 전환이 그 바탕에서부터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요즘 한창 지지받는 급진적 그린 뉴딜 전략들은 기후 변화와 씨름하자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느냐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모든 좌파적 사회 개입 전망을 가로막았던 IPCC 주도의 과학주의적 정책 과정을 중단시키고 말 듯하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후 변화의 원인과 결과들에 관한 그간의 접근들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개입과는 거리를 두며 신중했다. IPCC가 기후 비상사태를 완화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제안한 사회적 행동들은 이제껏 대부분 현재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승인하는 것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세계적 규모로 줄이려는 감축 전략들은,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축적 관계가 거의 전적으로 지배적이고 신고전파 경제학의 헤게모니가 발현 중인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감축 전략 속에서 응당] 고려해야 할 매개변수/요소들이, 이렇게 전제된 감축 시나리오 속의 가이드라인들에서는 통합평가모델(IAMs, 온실가스 배출량을 에너지 시장 및 토지 이용과 통합하는 대용량컴퓨터 모델) 및 사회경제적 공유경로(SSPs, 모든 모델에서 상정한 기후정책 실행의 부재 및 실질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체로 기술적 프레임워크에 기초한 것으로, 다섯 가지 현상유지 경로로 구성) 같은 장치를 통해 심대하게 제약받게 되는 셈이다.

현상유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지들은 의도적으로 지워버리는 이 같은 보수적 모델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비현실적 평가를 확산시킨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IPCC 과정에 통합된 감축 시나리오들에서는 ① 현재의 정치경제 헤게모니를 영속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② 많은 경우 실존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기술적 해법들에 바탕을 둔 변화에 우호적인 가운데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가 가진 의미를 격하하는 한편, ③ 탄소 배출 저감에 관해 수요 측 변수나 생태적 소비의 직접적 감축보다는 공급 측면, 주로 가격 관련 및 기술적 변수들에 방점을 찍으며, ④ 오버슈팅(overshooting) 배출 목표를 허용하는, 대기 중 탄소의 포집 및 어떤 방식의 격리 같은 이른바 음의 배출에 의존하고, ⑤ 최소화된 대중 참여 속에 간부급 엘리트 주도로 변화가 관리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대부분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⑥ 생태 혁명의 가능성(사실은 필연성)은 제쳐둔 채 완만한 대응을 상정하고 있다.

IPCC 모델과 그 전망치가 ‘기후 변화’와 그 사회・생태적 여파의 규모는 잘 잡아냈다. 그러나 IPCC에서 활용한 수많은 감축 모델은 이 같은 도전에 필요한 ‘사회 변화’의 규모를 체계적으로 격하시켰다. 그 대신 마법의 탄환들 이를테면 (탄소 거래 같은) 시장-가격 기반의 개입 방식이나, 필요성이나 규모면에서 적절치 않으며, 음의 배출에 기댄 미래 기술에서 파생된 해법들이 탄력을 받는다. 이 모델들은 파국적 귀결을 우려하면서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않거나 불합리하고 기이한 기술과, 이른바 시장 효율성을 유일한 비책처럼 가정한다. 이런 접근법들은 현재의 생산 양식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로 사회가 굴러가도 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후 감축 모델에서는 바이오에너지 탄소 포집 및 저장(BECCS) 기술을 포함시킨다. 이 기술은 에너지 생산용으로 소각가능한 대규모 식물(주로 나무) 재배를 촉진하고, 동시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지질이나 해양에 어떻게든 격리・저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실제로 적용하려면 인도의 한두 배 크기 정도 되는 땅과, 물 부족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농업에 투하되는 규모 정도의 물이 필요하다. 이렇게 순전히 기계적인 접근법들이 게걸스레 부추겨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IPCC 보고서가 구성된 방법 및 그 저면에서 보고서가 부응하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깊숙이 관계된다.

영국의 틴달 기후 변화연구센터 소속인 기후학자 케빈 앤더슨은 이렇게 말한다.

1.5-2℃라는 목표치를 이루려면 부유한 국가들마다 매년 10% 이상의 배출 감소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율이 현재 경제 시스템하에서 통상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바를 훌쩍 상회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궁지를 바로잡기 위해서 통합평가모델(IAMs)이 중요하고도 위험한 역할을 한다. 객관성이라는 탈을 쓴 이러한 리바이어던 같은 컴퓨터 모델의 사용으로, 기후 변화 감축에 관한 해석 작업이 번잡하고 맥락적인 개입의 정치에서 맥락 없는 수리적 형식주의로 대체된다. 이러한 전문가적 경계 안에서, 통합평가모델은 금융적 문법과 기술적 변화를 신뢰하고, 인간 행동에 대한 [정통적인] 경제적 해석을 버팀목 삼아 단순한 기후 모델들을 종합한다. …

통상적으로, 통합평가모델은 자유 시장의 공리들에 기초한 모델을 사용한다. 이들 모델에 뿌리박힌 알고리즘은 경제[학]적 균형에 근접한 한계 개념 기반의 변화들을 가정한다. 또 가격상의 한계적 변화에서 기인한 수요상의 작은 변이/편차들에 크게 의존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오늘날의 시장 경제적 균형에서 크게 탈피한 감축 목표를 설정하면서,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현존 사회의 모든 면면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앤더슨이 강조하다시피, 실제로 IPCC가 제공하고 국가적 감축 계획으로 통합된 현재의 기후 시나리오의 모델링과 예측치들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일반균형 분석에서 도출된 여러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이윤 시스템상의 여러 요구들에 기초한 점진주의적 변화라는 발상을 따르고 있다. 감축 시나리오상으로 이렇게 전제된 조건들은 현존하는 기후 비상사태란 맥락에 비춰 무의미하기도 하고, 필요한 행동들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는 큰 위험이기도 하다. 그 결과 현존하지 않는 기술이 유일한 구원자인 양 여겨지는 것이다. 2018년 발간된 IPCC 보고서를 보면 여기서 고려된 많은 모델들은 ‘전부’ 탄소저감(CDR)이나 이른바 음의 배출을 요구하고 있는데, 조림도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은 기술적인 수단을 통한 것이다. 앤더슨의 설명에 따르면, IPCC의 모든 감축 조치는 지금까지 “실패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보고서상의 예측치와는 근본적으로 상반된 과정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 이래로 70% 늘어났다.” 이 같은 배출의 결과는 온갖 양의 피드백 효과와 더불어 누진적이고 비선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배출 감축이 실패한 현 상황은 경제 시스템의 온건한 변화가 아닌 혁명적 재구성이라는 도전과 맞닥뜨리게 만들었다. 이는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이 아니다. 이런 입장은 파리 기후협약에 관한 과학적이고 수리적인 해석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이다.”

2018년도 IPCC 보고서는 도입부에서 기후 비상상태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를 포함한 감축 조치들이 앞선 보고서들에서 조심스레 독려됐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조치란 곧 소비를 줄일 방법들에 관한 것으로, 보통은 증대된 효율을 통해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된다(보통 여기서는 널리 알려진 ‘제본스의 역설’, 즉 자본주의하에서의 효율 증대는 축적 및 소비 증대로 이어진다는 점이 경시된다). 그간 소개된 다수의 감축 시나리오들은 수요 측면에서의 개입이 기후 변화를 다루는 가장 빠른 길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떤 모델에서는 1.5℃ 이하의 목표치가 경미한 오버슈팅만으로, 이른바 음의 배출 기술에 대한 의존 없이도 (이산화탄소 감축의 비기술적 형태라고들 하는) 영농 및 조림 관행의 개선으로 충족될 수 있음을 제안할 정도다. 이들 결과는 게다가, 빠른 경제 성장을 주되게 상정한 한편으로 기후정책적(또는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는 IPCC식 감축 모델상의 극히 제한적 가정들 ‘속에서’ 달성됐다. 이에 따라 가령 제이슨 힉켈과 기요르고스 칼리스 같은 상당수 급진적 비평가들은 수요 측면에서의 풍요와 재분배 정책들을 강조하고, (오늘날 0.01% 위주로만 혜택이 돌아가는) 이윤과 성장에 관해선 제약을 부과하는 사회정치적 접근법들이 감축 측면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됐다.

따라서 변혁적 변화라는 문제를 인류 문명이 살아남기 위한 기반으로 제기한다는 점과, 또한 실제로 필요한 것[필연적인 것]에 실제로 가능한 것의 영역을 개방한다는 점이, 급진화된 또는 민중적인 그린 뉴딜 전략의 주요 미덕이다. ‘필연의 자유’가 이 전략으로부터 가능해지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가능해질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혁명이 ‘생태민주주의적’이고 ‘생태사회주의적’인 두 단계를 거치게 될 것 같다는 점이다. 대중의 자기-세력화/동원(self-mobilization)은 처음에는 생태민주주의적 형태 속에서 정의로운 전환과 결부된 에너지 대안들의 구축을 강조 할 것이다. 생산이나 소비의 체계를 겨냥한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후 변화의 압박과 다양한 공동체들의 동원으로 추동된 사회적・생태적 정의를 위한 투쟁에 힘입어, 좀 더 포괄적인 생태 혁명적 관점이 생겨나고 기존 이데올로기의 장막이 파열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여전히 독점-금융자본의 권력이 지배적인 세계에서, 급진적 그린 뉴딜 구상은 여전히 녹색 케인스주의로 되돌아가는 경향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될 것이다. 무한한 일자리와 급속한 경제성장, 더 많은 소비에 대한 약속은 전 지구적 위기에 관한 그 어떤 해법과도 양립하기 어렵다. 『불타오르는 세계』에서 나오미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뢰할만한 그린 뉴딜이라면 그 어떤 경우든, 좋은 녹색 일자리로 번 돈이 고도소비형 생활양식으로 곧바로 이어져서 의도치 않게 탄소배출을 늘리고 마는 쪽(모든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와 많은 가처분소득을 얻지만 이를 일회성 상품 소비에 사용하는 시나리오)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은 [자원] 추출에 강력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삶의 질을 고양하며, 끝없는 소비의 쳇바퀴 바깥에서 즐거움을 누릴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는 전환이다.

생태적・사회적 자유를 향한 길을 만들려면, 인간 노동의 착취 및 자연과 인민의 수탈에 근간해 그 어느 시절보다도 더 빈번하고 극심한 경제・생태 위기를 초래중인 생산 양식은 기각돼야 한다. 독점-금융자본 체제하의 과잉축적 탓에 현 시스템의 보존을 위한 악폐가 모든 수준에 걸쳐 발생 중이다. 또한 자본에게 합리적인 것이 세계의 인민들과 지구에게는 불합리한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삶과 노동이 쓸모없는 상품들을 생산하는 데 낭비된다. 또한 세계의 물질적 자연자원들은 탕진되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해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생산과 부, 그리고 지구 자체가 이토록 방탕하게 소진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지속가능한 환경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 자유를 신장시키고 개인적・집단적 필요를 충족시킬 잠재역량도 그만큼 엄청나다는 얘기다.

현 기후위기 속에서, 지금 환경에 집적된 엄청난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생산해온 건 바로 이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여전히 1인당 배출량이 가장 많다. 더욱이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여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부와 기술은 그 국가들이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기후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부유한 국가들이 연간 10%나 그 이상으로 탄소를 감축하는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일이 꼭 필요하다. 멸종저항 같은 변혁적 운동들의 갑작스런 부상은 지구적 필연의 산물인 것과 더불어, 바로 부유한 나라들의 책임을 인정하자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생태적 전환의 주된 추동력은 지구 남반구에서 생겨날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세계체계 속에서 부유한 국가와 빈곤 국가들 간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다가 전 지구적 규모의 생태 위기의 여파까지 혹독하게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주변부야말로 혁명의 유산이 강력하게 전승된 곳이다. 또한 절실한 변화를 어떻게 이뤄갈지에 관한 구상이 가장 심원하게 지속중인 곳이기도 하다. 특히 쿠바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제국주의 세계체계의 가혹한 공세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경우 지구 경제 차원의 헤게모니 구조로 강요된) 에너지 추출에 의존해온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회 혁명을 위해 분투해왔다. 일반적으로 지구 남반구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이 생태적・경제적으로 악화되는 가운데 환경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가장 빠르게 불어날 장소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중국이 가진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면서도 모순적이다. 중국은 자원 소비와 오염이 가장 극심한 나라이자, 대량의 탄소 배출로 지구적 규모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나라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생태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이루고자 그 어떤 다른 나라들보다 대안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진력해온 나라이기도 하다. 특유한 농업 체계 덕에 먹거리 자급이 대체로 유지중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체계에서 농지는 사회적 소유물로 규정되고 농업 생산은 인민공사-단위 체제 시절의 책임 관계를 부분적으로 승계한 소규모 생산자들에 의해 주로 이뤄진다. 분명한 것은, 생태 문명의 창출이란 측면에서 중국 당-국가가, 이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게는 중국의 인민들이 지금과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지구의 장기적인 명운을 가름하는 데서 관건이 될 거라는 점이다.

생태 혁명은 자본주의 체계 전반과의 불화를 겪는다. 적어도 그것은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 과정이 충분히 펼쳐지게 될 때 자본주의 체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극우파로부터의 후방 지원을 받는 자본가 계급의 반동적 대응은 퇴행적이고 파괴적이며, 제멋대로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하고 화석연료 추출을 가속화하는 것처럼, 기후 변화와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여러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아마도 그 이면에 선단처럼 포진해 있는 세계적 투쟁 저변을 불태우고자) 소거하려는 현 트럼프 행정부의 허다한 시도들 속에서 이 같은 양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생태적 야만 내지 에코파시즘은 현재의 세계정치적 맥락에서 감지되는 위협이다. 이는 생태적인 대중 봉기가 쟁투해가야 할 현실의 일부다. 개혁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혁명적인 투쟁들만이 이런 여건들 속에서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 변화의 시대

현행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사회과학 문헌에서는 공통적으로, 단순하게 개인들의 행동이 합쳐져 사회가 구성된다고 본다. 좀 더 비판적인 다른 사상가들 사이에서는 정반대의 시각이 제시되는데, 여기서 개인들은 총체적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제3의 일반적 모델은 개인들을 일종의 전진-후퇴 움직임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한편 그 사회로부터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구조와 행위성 사이의 종합으로 본다.

진정한 사회 변혁의 여지를 거의 두지 않고서 대체로 자유주의적 접근법에 입각해 있는 이런 주류들과는 아주 다르게, 역사-변증법적 접근법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비판적 실재론의 철학자인 로이 바스카가 “변형론적 사회적 행위 모델”이라고 일컫는 것을 따르고 있다. 이 모델에서 개인들은 주어진 특정 사회(생산양식)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그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또한 이 특정 사회(생산양식)가 개인적 실존의 초기 변수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조건 및 생산관계는 이들의 생애 속에서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들과 모순들, 위기들을 낳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역사적 상황들에 속에서 인간 존재는 저마다의 계급[적 조건]과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이 반영된, 자생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어떤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존의 사회적 재생산 구조를 바꾸는 사회 변혁을 꾀하고자 한다. 급진적 도약 및 혁명들로 이뤄진 중대한 역사적 계기들과 새롭게 생성되는 여러 현실은 이로부터 나타난다. 칼 마르크스가 썼듯이 “인간은 저마다의 역사를 만들어내지만, 그들이 바라는 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들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마주치게 되며 그로부터 주어지고 전래된 환경들 아래서다.”

사회적 행위에 관한 이런 변형론적 모델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기해방 이론을 지지해준다. 기존 사회관계들은 보편적인 인간 발전에 족쇄가 되지만, 이 족쇄는 또한 노동 및 생산 과정(또는 마르크스가 인간과 자연 간의 사회적 물질대사 과정이라 했던 것) 속에서 근본적인 모순들을 낳는다. 어떤 위기와 변혁의 시기가 이로써 도래하여, 사회적 생산관계들(내지 계급・소유・권력 관계들)은 이 시기 동안 혁명적 전복의 위협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사회 간 물질대사 과정 속에서든, 생산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든 아주 극심한 모순들과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말이지 전례 없던 방식으로 말이다.

인류세 국면에서 지구적 규모의 생태적 비상상황은 자본의 과잉축적 및 제국주의적 수탈의 강화 과정과 중첩되고, 이는 신기원을 이루는 중이라 할 경제적, 생태적 위기를 낳고 있다. 이윤의 흐름을 지속하고자 새로운 소비 진작 경로를 마련하려는 자본의 움직임이, 자본 과잉축적이 전 지구적 생태위기를 가속화한다. 그 결과는 일종의 지구적 아마겟돈 상태로, 이는 사회경제적 안정성뿐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인간 종 자체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클라인은 그 핵심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생명 그 자체의 자연 법칙’과 자본주의 간의 ‘화해할 수 없는 균열’”에 주목한다. 또한 “자본의 무제한적이고 게걸스러운 탐욕에 근거한 경제 체계가 생명이 의존하는 자연 체계들을 압도하게 되리라고 많은 좌파들이 주장해왔다”는 점도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금까지, 엄청나게 가속화된 경제적 활동과 부유층의 과잉소비, 그에 따른 생태적 파괴를 통해서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 정확히 그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래도록 자연에 대한 지배를 영예로워했다. 위대한 프래그머티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1906년 “전쟁의 도덕적 등가물”에 관해 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좀처럼 언급되진 않지만, 그가 말한 도덕적 등가물은 ‘지구에 대한 전쟁’이었다. 그는 “군대의 일부를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에 맞서 싸우도록 편성”하자고 제안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제안을 뒤집어서 새롭고 혁명적인, 전쟁의 도덕적 등가물을 창출해야 한다. 지구를 정복하고자 부대를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거주 장소인 지구를 지켜내고자 사람들이 자기-세력화할 수 있는 쪽으로 말이다. 이 같은 전환은 지구적 공유자원[커먼즈]의 부활을 목표로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실질적 평등을 이루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이룩될 수 있다. 지난 9월 23일 유엔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여기,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겁니다. 세계가 깨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아니든, 변화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에서 우리 시대가 불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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